‘이 일을 절대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돼.’ ‘내일이 결과 발표 날이잖아.’ ‘만약 내가 엄마를 죽였다는 게 밝혀진다면... 밝을 줄로만 알았던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거야.’ ‘그리고 나는 문학 천재에서... 살인자가 되어 버리겠지!’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돼!’ 이것은 결코 가은이 원하는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기필코 빛나는 사람이 될 거야!’ ‘그래야지만 지엽 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살인자는... 지엽 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어!’ 벌벌 떨던 심가은이 바닥에 쓰러진 하이먼 스웨이를 한 번 보았는데, 대담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스쳤다. 어쨌든 그녀는 한 가지 일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내일의 결과 발표가 예정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 ‘이제 어쩌지...?’몸을 일으킨 가은이 대담하게 하이먼 스웨이를 욕실로 끌고 들어가 욕조에 담갔고, 서재를 원래대로 정리하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계단에 도착한 그녀가 평소처럼 아주머니를 불러 당부했다.“아주머니, 엄마가 며칠간 푹 쉬고 싶다고 하셨어요. 전혀 방해받고 싶지 않으시다니까 아주머니도 며칠간 푹 쉬시면 될 것 같아요.” 하이먼 스웨이는 휴식을 취할 때,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아주머니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네.”“하지만 제가 휴가를 보내는 동안 아가씨의 식사는 어쩌죠?” “아, 저는 며칠 동안 밖에 나가서 먹으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앞치마를 풀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어 가은을 바라보았다. “잠깐...”“사모님께서 내일 어떤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휴식을 취하신다는 걸까요?” 순간, 가은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그녀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2층에서 내려왔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모님께서 일정을 잊어버리신 건 아닐까요? 아무래도 제가 올라가서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요.”아주머
“아!”한밤중에 이서가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자, 옆방의 배미희가 급히 옷을 입고 그녀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서야, 왜 그래?”이서가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본 배미희가 그녀의 곁에 앉았고,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악몽이라도 꾼 거야?” 이서가 얼어붙은 손으로 배미희를 붙잡았다. 그녀는 배미희의 체온을 느끼고서야 숨을 내쉬며 그녀의 품에 뛰어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니.”배미희가 이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얼른 다시 자려무나.” 이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네.”그녀는 다시 다소곳하게 누웠다. 배미희는 눈을 감은 이서가 안정된 호흡을 되찾는 것을 보고서야 몸을 일으켜 떠나려고 했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이서가 말했다.“엄마, 내일 대회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스웨이 작가님도 오실까요?” 배미희가 말했다.“물론이지, 이번 대회가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건 너랑 스웨이 여사의 호소력 덕분이었잖니. 내일은 대회의 마지막 날이자 가장 중요한 날이니까 스웨이 여사는 반드시 올 거야.” 이서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됐어요. 엄마, 전 괜찮으니까 이만 나가 보셔도 돼요.” “아니야, 네가 잠드는 거 보고 갈게.”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배미희는 침대에 누운 이서가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서야 살금살금 그녀의 방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는 것을 들은 이서는 다시 눈을 떴는데,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하이먼 스웨이가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욕조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귀를 기울이자니,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살려줘... 나 좀 살려줘...”이서는 자신이 왜 이런 악몽을 꾼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 스웨이 작가님께 무슨 사고가 생긴 건 아닐까?’다음 날, 이서는 정신없이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를 마주한 배미희가 물었다.“대회 결과
“하지만... 그 악몽이 너무 생생했어요...”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엄마, 저를 대신해서 스웨이 작가님께 가봐 주실 수 있으세요?” 이서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본 배미희가 본래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이서야, 조금만 있으면 대회장에서 스웨이 여사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래, 내가 한 번 가보마.” 이서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 듯했다.대회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갈라서려고 했다. 떠나기 전, 배미희가 특별히 당부했다.“이서야, 반드시 기억해. 대회장에서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 알았지? 그리고 너희들도...”그녀가 이서의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이서를 꼭 지켜야 해! 알아들어?!”“예,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이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배미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본 이서와 경호원들은 그제야 대회장으로 들어섰다. 비록 이서의 경호원들은 평범한 사람처럼 치장한 상태였으나, 그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너무도 강력해서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리한 시선은 이내 이서에게 옮겨갔다. “저 여자... 본인이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으스댔던 여자잖아요!” “어머, 정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나온 사진이랑 똑같아요!” “쯧쯧쯧, 예쁘게 생기긴 했네요. 하지만 여기는 단편 소설 대회장이지, 미모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대회장이 아니잖아요? 대체 저렇게 많은 경호원은 왜 데려온 건지...” “게다가 저 여자는 H국 사람이잖아요. 외국 사람이 쓴 글은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감히 자신이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잘난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파리 소리처럼 이서의 귓가에 윙윙거리는 듯했으나,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이서,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잖아.’ 같은 시각, 대회장 2층에 있던 박예솔은 이서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줄곧 이서에게 무시당하던 가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욱이 하이먼 스웨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무서울 것이 없었기에 거칠고 무례하게 팔꿈치로 이서를 건드렸다. 이서는 하마터면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허, 윤이서 씨, 또 만났네? 윤이서 씨도 내가 이 대회에 참석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경멸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환의 답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야!”가은이 갑자기 이서의 옷을 잡아당겼다.순간, 이서의 경호원이 즉시 일어서서 가은을 노려보았고,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이 광경은 앞줄에 앉은 참가자 몇 명에게도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은이 이서의 옷을 잡아당기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이서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참가자로서 경쟁자에게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 세계로 퍼진 이서의 가십 뉴스를 보았기 때문에 이서가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이러한 고정관념이 더해지자, 그들은 이서가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긴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분분히 분노하며 일어나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그쪽이 그 유명한 윤이서 씨에요?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저도 기사를 봤는데 윤이서 씨의 칭찬이 정말 자자하더군요.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해서 남을 괴롭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쪽이 가졌다는 재능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니까요.”“맞아요, 재능이 있든 없든 타인을 괴롭히면 안 되는 거죠! 당장 사과하세요! 옆에 있는 참가자한테 사과하시라고요!” “사과해요, 얼른!”다른 참가자들도 분통을 터뜨렸다. 한동안 대회장에는 이서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경호원의 직무는 사람을 베거나 죽이는 것이었으나,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던 그는 어찌할 바를
옆에 있던 가은은 운서의 곁에 앉지 못했다.그녀는 이서와 한 자리라는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서의 평온한 얼굴을 본 가은은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참자! 참아야 해!’ ‘결과만 발표되면 윤이서를 호되게 혼내줄 수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른 후, 시상식의 막이 서서히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H선생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서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무대 사회자가 역대 대회를 소개하는 것을 건성으로 듣던 이서는 그가 심사위원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사회자에게 이름이 호명된 심사위원들이 하나하나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사회자가 모든 이름을 호명할 때까지 하이먼 스웨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서뿐만이 아니라 무대 아래의 다른 사람들도 이상함을 감지했고, 너도나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은요? 이번 대회에 참석하실 거라면서요?” “그러게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상식에 온 건데 말이에요.” “정말 이상하네요, 주인공이라서 마지막에 나오시려는 걸까요?” “아니에요, 모든 심사위원과 지도자가 무대 위에 오른 상태잖아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도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이서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으며, 꿈에서 보았던 욕조에 쓰러진 하이먼 스웨이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배미희에 전화하려고 했다. 바로 이때, 무대 위의 사회자가 외쳤다.“자, 이번 대회의 수상자를 발표하기에 앞서 대회의 주최자인 크리스 씨를 모시겠습니다!” 크리스라는 남자는 느릿느릿 무대에 올라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이를 본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는 대회 절차에 따라 우수상을 받은 참가자 5명을 먼저 발표했다.이름이 호명된 참가자들은 곧바로 기쁨에 겨워 무대에 올라 상을 받았다. 다음 순서는 1, 2, 3위에 오른 수상자를 발
가은과 예솔이 사랑한 남자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들이 이서를 원망하는 이유는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이서가 너무 훌륭하다는 것!가은은 심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좋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특기가 없었다. 그리고 예솔은 디자인 방면의 고수였지만, 디자인에만 국한된 것으로 다른 방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는 설계, 감독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여태껏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문학 분야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어떻게 질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하하!”크리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또 한 번 모든 사람의 주의력을 무대로 끌었다.“이제 진정한 우승자,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우리의 1등입니다!” 크리스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단편 소설 대회가 열린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큰 규모의 대회가 열린 것도, 이렇게 많은 보물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죠.” “아...”“물론 시상자로서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담기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우승자의 작품을 보고 3일간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어서, 거장인 모슨 선생님의 작품을 보는 것 같더군요.” “만약 이 참가자가 모슨 선생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면, 저는 이 참가자가 모슨 선생님의 뛰어난 제자 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슨을 알 것이었는데, 그는 현대 단편 문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었다.우승자의 작품에서 그런 모슨의 문필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 높은 수준의 찬사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순간, 대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아래의 참가자에게 떨어졌다. “그렇게 대단한 참가자가 있다고요? 대체 누굴까요?” “모슨 선생님의 문필이 엿보이는 작품이라니... 아마 나이가 꽤 많은 참가자이지 않을까요?” “궁금해 죽겠습니다,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자신이 1등이
“저는 심가은이라고 합니다. 글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녀는 이렇게 간단한 소개만으로 또 한 번 무대 아래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크리스가 물었다.“심가은 씨를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문학이라는 길을 걷게 되신 겁니까?” “사실 저는 이전에 문학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가은은 시종일관 거짓된 웃음을 유지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면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하지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의 인도하에 문학이라는 길을 걷게 되었죠.”크리스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머니가 누구시죠? 오늘 대회장에 오셨나요?”“저희 어머니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크리스조차도 표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심, 심가은 씨가 십여 년 동안 실종되었다던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따님이란 말입니까?!”“네, 맞습니다.”가은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제가 이 대회에 참가한 줄 모르고 계셨어요.” 즉, 이것은 그녀가 실력만으로 우승을 거며 쥐었다는 뜻이었다. 장내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크리스가 감격에 겨워 횡설수설했다.“그, 그럼... 심가은 씨의 문필이 모슨 선생님을 닮은 건... 모슨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인가요?” “어... 죄송합니다. 저는 이전에 문학을 접해 본 적도 없고, 최근에서야 저희 어머니께서 이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릴 생각으로 이 대회에 참석한 겁니다. 그래서... 사회자님이 말씀하시는 모슨 선생님이라는 분이 누군지 모릅니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환호성은 천장을 뒤집을 지경이었다!“천재예요! 절대적인 천재라고요! 모슨 선생님의 작품을 보지도 않았는데 모슨 선생님의 문필을 쓸 수 있다니... 저분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란 말입니까?” “어쨌든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으스대는 그 사람은 아닐 거예요! 하하!” “하하하하, 웃겨 죽겠네요. 윤이서 씨는 자신
회의장의 떠들썩함이 마침내 서서히 잦아들자, 크리스가 곧 입을 열었다.“네, 이렇게 1, 2, 3위를 모두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순서는...”“잠시만요!”갑자기 울려 퍼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모두 잇달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이번 대회는 불공정했다고요!”크리스가 마이크를 든 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불공정하다니요? 대체 뭐가 불공정했다는 겁니까? 대회에 제출된 모든 원고는 심사위원분들이 직접 고르신 겁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분들은 어떤 참가자의 원고를 받은 건지 전혀 모르셨고요.”크리스가 말했다. “제 말은 누군가가 대필했다는 겁니다!” 무대 아래가 술렁이기 시작했다.이서는 단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배미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듯했다.“대체 누구시죠?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참가자가 대필했다고 비난하는 거냐고요!”가은은 이 말을 마치고서야 자신의 감정이 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얼른 또 한마디 덧붙였다.“정식적인 대회의 명성을 그런 허접한 말 한마디로 더럽힐 생각이세요?”크리스도 가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그러죠.”배미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순간, 조용하던 대회장에 바퀴 마찰음이 메아리쳤다. 사람들은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분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퀴의 마찰음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마침내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놀란 사람들은 모두 냉기를 들이마셨다.휠체어에 탄 사람은 하이먼 스웨이였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은 것으로 보아 크게 다친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가은은 하이먼 스웨이를 보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두 다리를 덜덜 떨던 그녀는 하마터면 땅에 주저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