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악몽이 너무 생생했어요...”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엄마, 저를 대신해서 스웨이 작가님께 가봐 주실 수 있으세요?” 이서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본 배미희가 본래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이서야, 조금만 있으면 대회장에서 스웨이 여사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래, 내가 한 번 가보마.” 이서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 듯했다.대회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갈라서려고 했다. 떠나기 전, 배미희가 특별히 당부했다.“이서야, 반드시 기억해. 대회장에서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 알았지? 그리고 너희들도...”그녀가 이서의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이서를 꼭 지켜야 해! 알아들어?!”“예,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이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배미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본 이서와 경호원들은 그제야 대회장으로 들어섰다. 비록 이서의 경호원들은 평범한 사람처럼 치장한 상태였으나, 그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너무도 강력해서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리한 시선은 이내 이서에게 옮겨갔다. “저 여자... 본인이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으스댔던 여자잖아요!” “어머, 정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나온 사진이랑 똑같아요!” “쯧쯧쯧, 예쁘게 생기긴 했네요. 하지만 여기는 단편 소설 대회장이지, 미모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대회장이 아니잖아요? 대체 저렇게 많은 경호원은 왜 데려온 건지...” “게다가 저 여자는 H국 사람이잖아요. 외국 사람이 쓴 글은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감히 자신이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잘난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파리 소리처럼 이서의 귓가에 윙윙거리는 듯했으나,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이서,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잖아.’ 같은 시각, 대회장 2층에 있던 박예솔은 이서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줄곧 이서에게 무시당하던 가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욱이 하이먼 스웨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녀는 무서울 것이 없었기에 거칠고 무례하게 팔꿈치로 이서를 건드렸다. 이서는 하마터면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허, 윤이서 씨, 또 만났네? 윤이서 씨도 내가 이 대회에 참석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경멸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환의 답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야!”가은이 갑자기 이서의 옷을 잡아당겼다.순간, 이서의 경호원이 즉시 일어서서 가은을 노려보았고,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이 광경은 앞줄에 앉은 참가자 몇 명에게도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은이 이서의 옷을 잡아당기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이서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참가자로서 경쟁자에게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 세계로 퍼진 이서의 가십 뉴스를 보았기 때문에 이서가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이러한 고정관념이 더해지자, 그들은 이서가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긴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분분히 분노하며 일어나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그쪽이 그 유명한 윤이서 씨에요?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저도 기사를 봤는데 윤이서 씨의 칭찬이 정말 자자하더군요.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해서 남을 괴롭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쪽이 가졌다는 재능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니까요.”“맞아요, 재능이 있든 없든 타인을 괴롭히면 안 되는 거죠! 당장 사과하세요! 옆에 있는 참가자한테 사과하시라고요!” “사과해요, 얼른!”다른 참가자들도 분통을 터뜨렸다. 한동안 대회장에는 이서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경호원의 직무는 사람을 베거나 죽이는 것이었으나,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던 그는 어찌할 바를
옆에 있던 가은은 운서의 곁에 앉지 못했다.그녀는 이서와 한 자리라는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서의 평온한 얼굴을 본 가은은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참자! 참아야 해!’ ‘결과만 발표되면 윤이서를 호되게 혼내줄 수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른 후, 시상식의 막이 서서히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H선생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서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무대 사회자가 역대 대회를 소개하는 것을 건성으로 듣던 이서는 그가 심사위원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사회자에게 이름이 호명된 심사위원들이 하나하나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사회자가 모든 이름을 호명할 때까지 하이먼 스웨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서뿐만이 아니라 무대 아래의 다른 사람들도 이상함을 감지했고, 너도나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은요? 이번 대회에 참석하실 거라면서요?” “그러게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상식에 온 건데 말이에요.” “정말 이상하네요, 주인공이라서 마지막에 나오시려는 걸까요?” “아니에요, 모든 심사위원과 지도자가 무대 위에 오른 상태잖아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도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이서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으며, 꿈에서 보았던 욕조에 쓰러진 하이먼 스웨이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배미희에 전화하려고 했다. 바로 이때, 무대 위의 사회자가 외쳤다.“자, 이번 대회의 수상자를 발표하기에 앞서 대회의 주최자인 크리스 씨를 모시겠습니다!” 크리스라는 남자는 느릿느릿 무대에 올라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이를 본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는 대회 절차에 따라 우수상을 받은 참가자 5명을 먼저 발표했다.이름이 호명된 참가자들은 곧바로 기쁨에 겨워 무대에 올라 상을 받았다. 다음 순서는 1, 2, 3위에 오른 수상자를 발
가은과 예솔이 사랑한 남자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들이 이서를 원망하는 이유는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이서가 너무 훌륭하다는 것!가은은 심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좋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특기가 없었다. 그리고 예솔은 디자인 방면의 고수였지만, 디자인에만 국한된 것으로 다른 방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는 설계, 감독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여태껏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문학 분야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어떻게 질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하하!”크리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또 한 번 모든 사람의 주의력을 무대로 끌었다.“이제 진정한 우승자,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우리의 1등입니다!” 크리스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단편 소설 대회가 열린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큰 규모의 대회가 열린 것도, 이렇게 많은 보물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죠.” “아...”“물론 시상자로서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담기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우승자의 작품을 보고 3일간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어서, 거장인 모슨 선생님의 작품을 보는 것 같더군요.” “만약 이 참가자가 모슨 선생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면, 저는 이 참가자가 모슨 선생님의 뛰어난 제자 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슨을 알 것이었는데, 그는 현대 단편 문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었다.우승자의 작품에서 그런 모슨의 문필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 높은 수준의 찬사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순간, 대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아래의 참가자에게 떨어졌다. “그렇게 대단한 참가자가 있다고요? 대체 누굴까요?” “모슨 선생님의 문필이 엿보이는 작품이라니... 아마 나이가 꽤 많은 참가자이지 않을까요?” “궁금해 죽겠습니다,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자신이 1등이
“저는 심가은이라고 합니다. 글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녀는 이렇게 간단한 소개만으로 또 한 번 무대 아래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크리스가 물었다.“심가은 씨를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문학이라는 길을 걷게 되신 겁니까?” “사실 저는 이전에 문학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가은은 시종일관 거짓된 웃음을 유지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면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하지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의 인도하에 문학이라는 길을 걷게 되었죠.”크리스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머니가 누구시죠? 오늘 대회장에 오셨나요?”“저희 어머니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크리스조차도 표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심, 심가은 씨가 십여 년 동안 실종되었다던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따님이란 말입니까?!”“네, 맞습니다.”가은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제가 이 대회에 참가한 줄 모르고 계셨어요.” 즉, 이것은 그녀가 실력만으로 우승을 거며 쥐었다는 뜻이었다. 장내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크리스가 감격에 겨워 횡설수설했다.“그, 그럼... 심가은 씨의 문필이 모슨 선생님을 닮은 건... 모슨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인가요?” “어... 죄송합니다. 저는 이전에 문학을 접해 본 적도 없고, 최근에서야 저희 어머니께서 이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릴 생각으로 이 대회에 참석한 겁니다. 그래서... 사회자님이 말씀하시는 모슨 선생님이라는 분이 누군지 모릅니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환호성은 천장을 뒤집을 지경이었다!“천재예요! 절대적인 천재라고요! 모슨 선생님의 작품을 보지도 않았는데 모슨 선생님의 문필을 쓸 수 있다니... 저분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란 말입니까?” “어쨌든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보다 자신이 더 대단하다고 으스대는 그 사람은 아닐 거예요! 하하!” “하하하하, 웃겨 죽겠네요. 윤이서 씨는 자신
회의장의 떠들썩함이 마침내 서서히 잦아들자, 크리스가 곧 입을 열었다.“네, 이렇게 1, 2, 3위를 모두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순서는...”“잠시만요!”갑자기 울려 퍼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모두 잇달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이번 대회는 불공정했다고요!”크리스가 마이크를 든 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불공정하다니요? 대체 뭐가 불공정했다는 겁니까? 대회에 제출된 모든 원고는 심사위원분들이 직접 고르신 겁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분들은 어떤 참가자의 원고를 받은 건지 전혀 모르셨고요.”크리스가 말했다. “제 말은 누군가가 대필했다는 겁니다!” 무대 아래가 술렁이기 시작했다.이서는 단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배미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는 듯했다.“대체 누구시죠?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참가자가 대필했다고 비난하는 거냐고요!”가은은 이 말을 마치고서야 자신의 감정이 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얼른 또 한마디 덧붙였다.“정식적인 대회의 명성을 그런 허접한 말 한마디로 더럽힐 생각이세요?”크리스도 가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그러죠.”배미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순간, 조용하던 대회장에 바퀴 마찰음이 메아리쳤다. 사람들은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분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퀴의 마찰음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마침내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놀란 사람들은 모두 냉기를 들이마셨다.휠체어에 탄 사람은 하이먼 스웨이였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은 것으로 보아 크게 다친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가은은 하이먼 스웨이를 보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두 다리를 덜덜 떨던 그녀는 하마터면 땅에 주저앉을
‘그리고 나는 네가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걸 뻔히 알면서도 눈 감아 왔어!’‘개도 키워준 사람에 대한 은혜를 아는 법이거늘...’‘그런데 넌!’하이먼 스웨이가 팔걸이를 꽉 잡았다.이서가 천천히 다가오는 하이먼 스웨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아.’ 하지만 하이먼 스웨이는 그녀의 곁에 오래 머물지 않고 눈빛만 줄 뿐이었다. “스웨이 작가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놀란 크리스는 여기가 무대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하이먼 스웨이가 크리스의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어제부터 연락받지 않은 걸로도 모자라, 대회까지 늦게 참석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스탠드로 제 머리를 두 번이나 내리쳤고, 기절한 저를 욕조에 방치한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거든요.”비록 그녀의 말투는 나른하고 평온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끔찍한 장면이 그려지는 듯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도대체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길래 겁도 없이 작가님을 다치게 했다는 겁니까? 그 사람은 살인미수범입니다! 혹시... 그 사람의 얼굴은 보셨습니까?”크리스가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자,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하이먼 스웨이가 심가은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본 사람들은 온통 수군거리기 시작했으며, 믿을 수 없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궤멸에 이르른 가은은 죽기 살기로 아랫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무대에 털썩 주저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서도 믿기지 않다는 듯 가은을 바라보았다. ‘심가은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야. 이 여자는 항상 트집 잡는 걸 좋아했으니까.’‘하지만 딱 그 정도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친어머니의 목숨까지 노리는 사람이었을 줄이야!’“스웨이 작가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크리스가 다시 한번 모두가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심
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하이먼 스웨이와 2층에 있던 배미희 역시 덩달아 놀라서 재빨리 이서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리고 그 순간, 2층에 있던 자격수도 예솔의 명령을 받았다. “사격하세요!”모든 것은 짧은 몇 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펑!”소란스러웠던 대회장을 삽시간에 조용하게 만든 총성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것만 같았다.사람들이 총알이 어디에서 발사된 것인지 의아해하던 찰나, 또 한 번 펑 하는 총성이 울렸다. 하지만 이번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총성뿐만이 아니었는데, 이서의 앞에 서 있던 가은이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핏방울이 콧잔등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놀란 심가은은 눈을 크게 떴는데, 온통 원한이 가득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즉,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서를 미워한 것이었다. 쓰러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이서는 달려온 하이먼 스웨이에게 손이 잡혔다.“이서야, 어서 가자!” 이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네, 스웨이 작가님, 어서 가요.” 같은 시각, 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고, 허겁지겁 사방으로 몸을 숨기기 바빴다. 대회장에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공포에 질린 욕설만이 난무했다.그리고 그 순간, 저격수는 다시 한번 이서를 주시했다. 예솔은 첫 번째 총알이 이서를 관통하지 않자 다소 화가 나서 말했다.“이러고도 당신이 저격수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어쩜 이렇게 짧은 거리도 못 맞출 수가 있냐고요!” 하지만 그 남자는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피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조급해하지 마세요, 이제 고작 한 발이었는걸요. 이번에는 반드시 저 여자를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방금 그 총알이 저 여자를 관통하지 않은 건 내가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야.’‘진정한 사냥은 이제부터란 말이지.’“펑!”두 번째로 발사된 총알은 이서를 향해 정확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예솔은 이제야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