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듣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상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린 하나가 상언의 시선을 피했다.‘무서워... 내가 지켜온 굳건한 마음이 흔들릴까 봐... 너무 무서워.’“진심은 뭐고, 진심이 아닌 건 또 뭔데요?”“난 실험실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왜요?”상언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아직 내 말 안 끝났어요.”“...”“하지만 나는 실험실을 위해서 그 두 가지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하나를 향해 다가오는 상언의 말투에는 짙은 고통이 서려 있었다. “하나 씨는 내가 어떤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하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끊임없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저는 모르겠어요, 저는...”상언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내가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실험실을 재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서를 모함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하나 씨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하나는 입가에 맴도는 말을 간신히 참고 있었으나, 상언의 표정에 서린 슬픈 미소를 보고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상언이 하나의 손을 서서히 놓았다. “하나 씨,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으니까요.”책상을 짚고 있는 상언의 뒷모습은 대단히 피곤해 보였다. “여태 하나 씨에게 나는 중요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겠네요, 하나 씨에게는 나보다 이서가 우선이라는 사실을요.”“심지어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요.”상언이 말했다.“아니에요...”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 변명하려 했지만 변명할 길이 없었다.‘변명할 말이 없어... 이 선생님이 말한 게 전부 사실이니까...’‘이 선생님과 헤어질 수는 있을지라도... 이서와 절교할 수는 없어.’“난 일이 있어서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깊은숨을 들이마신 상언이 몸을 돌려 하나를 보았는데, 그의
‘하지만 DNA 검사 결과에는 확실히 가은이가 내 딸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병원 쪽에서 문제가 생긴 건가?’ ‘이서가 1년가량의 기억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을 텐데...’ “스웨이 작가님, 하나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 계시는 거죠?” 이서의 목소리는 마침내 하이먼 스웨이를 현실로 불러온 듯했다. “아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스웨이 작가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분명 입구에 서 계셨는데, 하나의 말을 못 들으셨을 리가 없잖아.’ ‘단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걸 거야.’ 하이먼 스웨이는 아무리 부인해도 이서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아 보이자,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서야, 너부터 솔직하게 말해다오. 너도 가은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스웨이 작가님, 하나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시지는 마세요. 가은 씨랑 저는 단지 몇 번 만났을 뿐이잖아요. 가은 씨가 벌인 일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그래.”하이먼 스웨이가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딸을 의심하면 안 되는 법이지...”하이먼 스웨이는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큰시큰한 듯했다.“그래, 가은이가 가끔은 거친 모습을 보여주지만, 천리를 뒤엎는 짓을 할 만한 애는 아니야.” 이 말은 이서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이서는 가은에 대해 좋지 않은 낌새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이기 때문에 사실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스웨이 작가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하이먼 스웨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서재로 들어가 다시 한번 그 메일을 열었으며, 또 한 번 자세히 훑어보았다.메일에는 심가은이 한 살 때 바뀌었으며, 당시 심씨 부부를 찾아갔을 때 그들이 매우 놀랐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하이먼 스웨이의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지는 듯했다. ‘그러니까... 가은이가 내 딸이 아니라는 거잖아?’ 하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신이 난 가은이 서재로 들어왔다.“엄마, 이것 좀 보세요!” 하이먼 스웨이가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 “뭔데?” “제가 쓴 단편소설인데, 한 번 보시겠어요?” “네가 소설을 썼다고?” 하이먼 스웨이는 마침내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가은의 원고를 몇 번 훑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원고, 문필이 왠지 낯설지 않은데...”가은은 심장이 쿵쾅거렸으나, 원고를 빼앗아 오는 충동을 꾹 참아야만 했다.“설마요, 제가 직접 쓴 건데요...”하이먼 스웨이가 다시 한번 원고를 훑어보았다.‘짙은 익숙함이 풍기는데...’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그나저나, 왜 갑자기 단편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엄마, 곧 한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시잖아요. 제가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딸인데도 소설을 쓸 줄 모른다고 하면, 사람들이 제가 엄마의 딸이 맞는지 의심할 것 같아서요.”“차라리 저도 이번 대회에 참가해서 제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가은이 말했다.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은아, 그런 의지를 갖추고 있는 건 좋은데... 화를 풀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건 옳지 않아. 화풀이를 위해서 글을 쓰면, 그 글은 생동감을 잃게 될 테니까.” 가은이 애써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엄마, 아직 제 작품이 어떤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소설의 대가인 하이먼 스웨이가 가은의 원고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은이는 분명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데...’가은은 하이먼 스웨이의 혜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하이먼 스웨이가 원고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가은아,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가은이 반짝이는 눈으로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하이먼 스웨이가 입을 열었다. “인터넷에 이서의 정보가 퍼졌다던데...” 하이먼 스웨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가은이 감정이 격해져
상언의 머릿속에 하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여태 하나 씨에게 나는 중요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겠네요, 하나 씨에게는 나보다 이서가 우선이라는 사실을요.”“심지어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요.”‘하나 씨는 이서를 정말 아끼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서를 욕하고 있다는 걸 알면, 분명히 아주 괴로워할 거야.’상언은 하나가 느낄 고통을 공감하는 듯했다.“상언아, 제발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냐?”상언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지환이 끝내 불만을 토로했다.하지만 그는 아예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환아, 이서를 욕하는 댓글을 다 지워버릴 수는 없는 거야?”지환이 상언을 한 번 보았다. “나도 그러고 싶어.”상언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내가 너무 멍청하게 굴었구나.’‘M국에서는 지환이도 별수 없잖아.’그렇다. H국은 하씨 일가가 꽉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M국에서 하지호의 기업이 성장한 이후로는 YS그룹이 지호의 기업을 여기저기서 억제할 뿐,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두 대기업은 물론이며 기업 산하의 언론도 그러했는데, 서로를 헐뜯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두 기업의 언론은 두 유파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이서의 정보를 보도한 언론이 바로 하지호의 언론이었던 것이었다.즉, 지환이 하지호의 언론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으며, 하지호가 지환의 언론의 완전히 누르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이었다. “내가 조치를 해서 이 정도인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조치를 하지 않았으면, 더 심한 욕이 있었을 거라는 뜻이야?” 상언이 초조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지환이 일어서서 상언의 앞으로 걸어갔다.“상언아, 네가 알아야 할 건... 이런 공개적인 공격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만, 비공개적인 공격은 쉽게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야. 내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비공개적인 공격이야.” “물론 이서
다시 셔먼의 자택으로 돌아온 상언의 심경은 저번과 사뭇 달랐다. 지난번에는 셔먼의 잘못을 지적하고 탓했으나, 이번에는 협상하러 왔다. “하하하, 내가 그랬죠? 이 선생은 다시 돌아올 거라고요.”“역시!”셔먼은 두 팔을 벌리고 상언과 포옹하려 했으나, 상언은 냉담하게 피할 뿐이었다. “셔먼 장관님, 오늘은 지난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제 대답을 들려드리려고 온 겁니다.” “오, 그럼 마음을 바꿨다는 겁니까?” “아니요, 첫 번째 조건은 받아들여서 몬토 씨가 그 땅을 팔도록 설득하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색이 변한 셔먼이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설마, 내 딸이 싫다는 겁니까?!”“장관님의 따님이 싫은 게 아니라, 하나 씨를 좋아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언이 또박또박 말했다. 셔먼이 냉소하며 콧방귀를 뀌었다.“이 선생, 이 선생이 나보다 더 잘 알 텐데요. 그 여자와의 사랑은 이 선생의 사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요!” 상언이 반박하려던 말을 삭히며 자리에 앉았다.“15분 드리겠습니다. 시간 내에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으신다면, 대통령님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저희 이씨 가문이 모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저희도 막대한 세금을 내는 큰 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이 말은 셔먼의 안색은 또 한 번 어두워지게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셔먼이 말했다.“이 선생, 우선 여기서 기다리세요, 올라가서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셔먼은 이 말을 끝으로 상언을 개의치 않은 채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 도착한 셔먼은 문을 닫고 급히 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사장님, 이 선생이 몬토 씨를 설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군요.] 지호의 반응이 이렇게 냉담할 줄 몰랐던 셔먼이 입을 벌렸다. [또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셔먼이 전화를 끊지 않자 지호가 고개를 살짝 젖혔다.[아, 혹시 두 번째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계속 그
케이티가 갑자기 누군가를 떠올리고서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래층에서 대화를 나누는 셔먼과 상언의 모습을 보고는 바로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같은 시각.하나는 이서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상언이 없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벌써 가려고?” 하나가 자신의 대회가 끝나면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서가 아쉬워하며 하나의 손을 잡았다. “하나야,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 ‘하나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는데... 하나가 돌아가면 또 이전처럼 외로워지는 게 아닐까?’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회사에서 특별히 내 사정을 배려해 준 거거든...”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이서야, 이러지 마. 난 이미 회사 측이랑 약속했단 말이야... 다음에 있을 M국 출장은 내가 가야 할 것 같아.” “그래, 알겠어.”이서가 하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하나야, 너무 아쉽다.”“바보야.”두 사람이 한창 대화를 나누던 찰나, 하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핸드폰을 확인하자, 이서가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회사에서 온 전화야?” “아니, 낯선 번호야. 통화 좀 하고 올게. 원고부터 보내놓고 있어.”“그래.”이서는 하나를 베란다로 보내고서야 고개를 돌려 우편함에 있는 원고를 보냈다. 모든 사람이 이 원고가 틀림없이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이서는 여전히 희망을 품지 않았다. ‘이 원고는 내가 처음으로 쓴 거잖아. 처음으로 쓴 글이 상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지.’같은 시각.베란다에 도착한 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케이티의 행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안 받을 줄 알았는데, 받으셨네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하나는 왠지 짜증이 나서 전화를 끊으려 했다. [오늘 이 선생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셨더라고요. 이 선생님께서 뭘 위해서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셨을까요?] 하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녀는 답안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했는
하나의 끊임없는 중얼거림을 들은 이서는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설마... 상언 오빠가 실험실을 재개하기 위해서 외교부 장관의 딸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거야? 말도 안 돼!”“오빠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네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오빠가 널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너에 관한 모든 일은 말해달라고 부탁하길래... 사소한 것까지 가르쳐 줬었단 말이야!”하지만 하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은 듯했다.“이서야, 네가 우리 부모님을 처음 뵀을 때... 네가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나?”이서가 고개를 저었다.‘내가 하나의 부모님을 처음 뵌 건 어릴 때의 일이었을 거야.’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해. 네가 우리 부모님의 금슬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했었거든. 그런데 내가 왜 이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 “겉모습만으로는 서로를 비난할 때의 추악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어.” “나도 때로는 사랑이라는 게 있다고 믿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해.”“사람 마음은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게다가 나는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고... 나, 나는...” 하나를 바라보던 이서는 그녀를 힘껏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야.”하나가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이서야, 너무 추워. 여기는 너무 추워. 정말이지 더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혹시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구해줄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여기를 떠나고 싶어.” “상언 오빠가 오면 설명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나가 이서의 품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듣기 싫어. 난 이제 이 선생님의 감언이설에 질렸어.”“하지만 이대로 널 보내면...”“난... 걱정할 거야.” 이서가 말했다. 괜찮아, 설마 내가 굳건한 사람이라는 걸 벌써 잊은 거야? 이곳을 떠나서 이 선생님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면, 나도 마음 정리를 할 수 있을 거야.”“이서야, 제발 여기를 떠나게 해줘
“그렇게 하자고요.”배미희는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에게 항로를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이서는 하나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겼는데, 호텔 입구에서 케이티를 맞닥뜨렸다.이것은 이서가 처음으로 케이티를 만난 것이었는데, 케이티가 걸어오는 것을 본 그녀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 범상치 않아.’“떠나려는 거예요?” 케이티는 하나에게 전화를 한 순간부터 줄곧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를 웃음거리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아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수많은 내연녀를 상대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든, 몸싸움하는 것이든, 그녀의 눈에는 모두 저속한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무시하자. 그게 내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허,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예요?”케이티가 냉소하며 하나에게 다가갔다.“어때요? 이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케이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을 느낀 그녀는 체면이라는 것을 잊은 듯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미쳤어? 당신 누구야?!”케이티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서야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이서임을 똑똑히 보았다. “이거 안 놔?” 이서의 힘이 갈수록 세지자, 통증을 느낀 케이티가 연거푸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제 친구한테 당장 사과하세요!”이서의 말투는 대단히 차가웠다. 케이티가 울먹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들이마셨다.“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거야?!”“제 친구를 괴롭혔으니, 당연히 사과하셔야죠!”“저 여자가 먼저 나를 괴롭혔다니까?!”케이티가 아무렇게나 손을 휘두르며 이서의 손에 여러 갈래의 상처를 남겼다. 상황을 지켜보던 하나는 동공이 심하게 움츠러 들었는데,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 케이티의 손을 ‘탁’ 쳤다. 명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