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디자인 콘테스트에 나가요?”“네.”세수하고 나온 이수는 고개를 숙이고 하지환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하지환은 주방의 유리문에 기대어 말했다.“먼저 한 잠 자요. 아침은 제가 간단하게 해 놓을게요.”“안 돼요.”윤이서는 코를 들이마셨다.“이따가 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 가야 해요.”하지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요?”그도 방금 병원에서 오는 길이었다. 하은철이 입원한 일은 어제 이미 알았다.“네, 은철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요.”이에 대해 이서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그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외면해 버리고 입에 대지도 않았다.“암튼 잠깐 앉아 계세요. 바로 돼요.”그녀는 정말이지 하지환과 같은 공간에 있는 자체가 부담스러웠다.하지환은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누르며 말했다.“설마 아직도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나요?”후드 소리에 하지환의 목소리를 묻히면서 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어젯밤에 다듬어 놓은 야채를 손질해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탕탕탕, 치익, 닥닥 음식하는 소리가 폭죽 터지듯 요란했다.미간을 한껏 찌푸린 하지환은 소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짙은 먹물이 끼었다.요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미 하지환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이서는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하지환이 가버리는 것도 좋았다.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대충 아침을 먹고서는 하씨 집안의 경호원에게 아침을 가져가라고 전화했다.경호원은 도시락을 챙겨가며 윤이서에게 물었다.“아가씨는 안 가나요?”하은철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경호원이 물었다.“네, 안 가요.”윤이서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저는 밀린 잠이나 자야겠어요.”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혼곤히 잠이 들었다.이서는 아주 평온하게 한 잠 잘 잤다. 임하나의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여보세요?”[이서야, 나
“에이, 신경 꺼. 이쪽 바닥에서 쟤와 하은철 삼촌의 혼사가 해프닝이라는 소문이 난 후부터 저년, 반은 미쳐 있어.”임하나는 지체 없이 야식 도시락을 열고 냄새를 한껏 맡았다.“와아, 냄새 봐라, 너무 맛있겠다. 이서야, 내가 얼마나 네 요리가 고팠는 줄 알아?”이서는 주차장을 힐끗 보았다.“먼저 먹어, 나 야식 배달 다녀올게.”“이렇게 급히? 민예지 그 미친년 간 다음에 가지……?”이서는 웃으며 말했다.“걔가 누굴 찾으러 왔는지 대충 알 거 같아. 부딪힐 일 없어.”“오, 그래.”임하나는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뺏긴 지 오래였다.“그럼 얼른 가봐.”이서는 일어나 주차장으로 가서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맞은편 하씨 빌딩으로 향했다.예전에 하은철이 야근할 때, 종종 야식 배달하러 왔었는데, 그때는 늘 냉담하게 받아줘서 나중에는 그게 익숙해졌었다.그런데 오늘 밤, 여기 서 있으니 왠지 모르게 다시 긴장되었다.“아가씨!”경비원은 한눈에 윤이서를 알아보고 눈빛에 동정표를 띠었다.“도련님께 야식 배달하러 오셨어요? 그런데 어떡하죠? 도련님 지금 안 계시거든요.”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경비원은 멍해졌다.“그럼?”“음…… 그게…….”윤이서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뜸 들이다가 말했다.“친구에게 주려고요…….”경비원은 거의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하씨 빌딩을 힐끗 보았다.“꼭대기 층으로 배달 가는 건가요?”총 88층으로 지어진 하씨 빌딩의 꼭대기 층은 줄곧 비어 있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입주했다. 그룹 전체 내부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개 경비원이 알리는 더욱 만무했다.다만 간혹 밤에 88층의 불이 켜지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오늘 밤처럼.이서도 꼭대기 층을 한번 보았다. 하지환이 그룹에 들어왔다고 한 이상 건물 전체에 꼭대기 층만 불이 켜져 있으니, 아마 거기로 가면 될 것이다.“네.”경비원은 윤이서의 통행로를 열어주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
화가 나서 씩씩거리던 민예지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냉소를 지었다.“됐어, 내가 너랑 이런 것들 가지고 시시콜콜 따져서 뭘 하겠니? 봐봐…….”민예지는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벨벳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보기 드문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이서 앞에 나타났다.머리가 ‘윙’ 어질어질 터질 것 같았다.아직 미처 반응하지 않았는데, 민예지가 그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지에 끼며 말했다.“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래. 아름답지?”따뜻한 주황색 불빛 아래 굴절된 빛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이서의 눈을 시리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했다.그녀는 명치의 위치를 눌렀다.“정말 너였어?!”‘하지환이 밖에 둔 여자가 민예지라니!’“당연히 나지.”민예지는 윤이서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득의양양했다.“안 그럼 너겠니? 꿈도 꾸지 마, 가서 거울이나 봐. 네가 가당키나 해? 어울리기는 하고?”이서의 눈은 이미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붉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한참 동안 낮게 중얼거렸다.“그래, 맞아. 계약에 따르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무슨 자격으로……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친 이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이서가 이렇게 눈치 빠르게 물러가자, 민예지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서가 가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했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너무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다.’‘정말 내게 줬으면 좋겠다.’“너 어떻게 들어왔어?”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민예지의 뒤에서 울렸다. 키다리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민예지의 손에 낀 반지를 낚아챘다.민예지는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마셨다.“아파요!”하지환은 차가운 기운이 눈가의 점까지 전해졌다.“누가 함부로 내 물건에 손 대래!”민예지는 억지로 애교를 부렸다.“저기…… 이 다이아몬드 반지, 너무 아름답네요. 저 주면 안 돼요?”하지환은 눈동자가 차가웠다. 그러다가 바닥에 놓인 보온 도시락통을
윤이서는 다급한 나머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다.하지환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이서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갔다.하지환은 여전히 눈 깜짝 않고 이서의 차가 가까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전조등의 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며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하게 그려냈다.불빛을 빌려, 그는 차 안에서 운전대를 꼭 쥐고 있는 이서를 보았다.차가 천천히 지면을 밟으며 다가갔다.1세기 같은 1초를 버티던 이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마침내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고는 차에서 뛰어내렸다.“미쳤어요? 왜 안 피해요? 죽고 싶어요?”하지환은 웃는 듯 마는 듯 도시락통을 들고 입을 열었다.“나에게 주는 거예요?”“아니요!”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인했다.하지환은 윤이서의 손을 잡으러 앞으로 나갔다.오늘 아침 이서가 하은철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는 모습을 본 그는 기분이 극도로 나빠져 복싱장에 가서 한바탕 분풀이하고 왔다. 그런데 지금 이서가 챙겨온 음식을 보니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윤이서는 피했다.“나 갈래요, 더 이상 막지 마세요.”하지환은 이서를 가까이 끌어당겨 화가 난 작은 여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어딜 가려고?”그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몸에서 나는 은은한 박하 향이 코끝을 파고들었다. 이서는 코가 시큰거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목을 꼿꼿이 세우고 두 사람의 거리를 확보하려 했다.“당연히 집에 가야죠.”“좋아, 그럼 같이 가.”그는 이서의 귀 끝을 가볍게 물었다.이서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잠깐 멍 때리다 바로 정신을 다잡고 거의 온몸의 힘을 다해 하지환을 밀면서 쌀쌀하게 말했다.“뭐하러요, 민…….”상대방의 사생활에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각난 이서는 억지로 ‘민예지와 함께하라’는 얘기를 속으로 삼켰다.그러고는 몸을 되돌려 차로 갔다.하지환은 그녀가 단순히 삐진 줄 알고, 냉큼 안아 이서가 어떻게 항거하든 상관하
요즈음 그는 매일 맛집 투어를 나선다.오늘 이른 아침, 집에서 유유히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즐기기도 전에 현관문이 ‘펑’ 하고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이상언은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몇 걸음 나가 보기도 전에 하지환이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왜? 또 무슨 일이야? 또 싸웠어?”하지환은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더니 입술을 바짝 오므렸다.이상언은 자신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 거라도 있니?”‘설마?’‘내가 뭘 했다고 밉보여?’하지환은 실눈을 뜨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이상언은 그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건네주었다.“자, 먹고 나면 다 해결돼. 그래도 안 되면, 하나 더 먹으면 되고…….”하지환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이상언. 너…….”이상언은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장난기를 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대체 뭔 일인데? 말 안 하면, 내가 어찌 알겠어?”하지환은 그를 흘겨보고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두 손 두발 다 든 이상언이 체념한 듯 말했다.“그럼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이야기하자.”……이서는 오늘도 평소대로 하은철에게 줄 아침을 준비를 마치고 경호원이 도시락 찾아가기를 기다렸다.시간을 보니 경호원이 도착하려면 아직 10여 분이 남았다. 그녀는 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디자인 시안을 다시 체크하고, 그리고 콘테스트 대회 주최 측에 시안을 발송할 예정이었다.노트북을 열어 메일 쓰기를 누르자마자 경호원이 도착했다.이서는 도시락을 가지러 갔다.“여기요.”경호원은 도시락을 받지 않고, 난처한 듯 얘기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오늘 도시락은 직접 배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저희도 참 난감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가씨.”윤이서는 숨을 내쉬며, 가방을 챙기러 갔다. “알았어요.”경호원은 곧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아가씨.”이서는 경호원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병실에 들어서자, 통깁스를 한 하
한 시간 남짓이 지났을 때, 이상언은 드디어 하지환의 입에서 윤이서와 지금 냉전 중임을 알게 되였다.이상언은 머리를 긁적였다.“그래서 반지는 줬어?”하지환은 그를 냉담하게 흘겨보았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줘?”이상언은 소파에 앉았다.“확실히 좀 이상한데? 그날 저녁, 이서 씨가 너를 찾아갔을 때…… 너 혹시 기분 나쁘게 했니?”하지환은 잠깐 회상했다.“아니.”그날 이서는 자발적으로 그에게 도시락을 배달 왔었다.“그럼, 뭐지? 여자 마음은 갈대 같아서 알다 가도 모르겠어.”이상언은 우거지상을 했다. 비록 앞 전에 여자 친구를 몇 명 사귀었지만 모두 가볍게 만나는 정도였다.연애에 있어서 젬병이긴 하지환이나 마찬가지다.하지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한 달 내에 해결된다며?”“이봐, 조급해하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방법을 생각하고 있잖아.”하지환은 얇은 입술을 한 줄로 오므리고, 조급한 게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겨우 참았다.“참, 이서 씨가 최근에 특별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지 알아보고,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어때? 호감도를 상승시킬지도 모르잖아.”하지환은 며칠 전 이서 컴퓨터에서 본 디자인 시안이 문득 생각났다.그는 한껏 뒤틀린 미간을 풀고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어디 가?”이상언이 하지환의 뒷모습을 쫓으며 물었다.하지환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다.이상언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로 돌아와 못다 한 아침 식사를 계속 했다.세상은 넓고, 먹을 건 많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서는 자기 집 대문이 크게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그녀는 놀란 가슴을 안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집 쪽으로 걸어갔다.집안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이 사태의 장본인인 윤수정은 휠체어에 앉아 이서를 보고도 뻔뻔하게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턱을 치켜 들고 있었다.“네가 그랬어?”윤이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노려보았다.윤수정은 휠체어를 밀고 윤이서 앞에 도착했다. 험상궂은 얼굴
조서 작성을 맡은 여경은 소파에 앉아 묵묵히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이서를 힐끗 보았다.한바탕 싸운 두 사람의 얼굴과 몸에 모두 정도가 다르게 상처가 나 있었다.그러나 정말 따지자면, 윤이서의 얼굴에 있는 몇 개의 긁힌 자국과 비교하면 윤수정은 그야말로 재난급이었다.얼굴에도 상처가 여러 군데 있었고 옷까지 찢어져 낭패해 보였다.육안으로 봐서는 이서가 수정을 일방적으로 괴롭혔다는 혐의가 성립될 정도였다.잠시 후 사진을 찍으며 현장 조사를 마친 경찰이 윤이서 앞으로 다가왔다.“두 분, 경찰서로 가서 조사에 협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네, 알겠습니다.”두 사람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윤이서는 독방에 배치되었다.경찰서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좀 진정되고 나니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잠시 뒤, 마침내 누군가가 들어왔다. 경찰이 아닌 양복과 구두를 신은 젊은이였다.그는 서류 가방을 이서 앞에 놓고 사무적으로 입을 열었다.“윤이서 씨, 나는 윤수정 씨의 변호사입니다. 제 대리인인 윤이서 씨가, 피해보상과 사과를 해주신다면 폭행죄 고소는 취하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이서가 웃었다.“제가 싫다면요?”변호사는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윤이서 씨를 폭행죄로 고소할 예정입니다. 기물파손은 피해보상만 하면 해결되는 반면, 폭행죄는 다릅니다. 의사 진단서까지 추가하게 되면 윤이서 씨한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듯합니다…….”이서는 입꼬리를 움직였다.“제가 무슨 법맹인 줄 아나 봐요? 윤수정 몸에 난 상처로는 폭행죄 성립이 안 됩니다.”변호사는 일어서서 웃었다.“자기소개가 늦었네요. 고천성이라고 합니다.”윤이서의 안색이 변했다.고천성, 하씨 그룹 산하의 가장 유명한 변호사로, 그가 수임한 사건은 100% 승소를 자랑하며 변호사계 불패의 신화를 이어오고 있는 전설의 인물이었다.‘나를 감방 보내기 위해 윤수정은 참말로 애쓰구나.’“윤이서 씨, 잘 생각해 보세요. 저는 먼저 잠깐 나
이서는 영문을 모른 채 송서묵의 뒤를 따랐다.송서묵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를 꽂고 한가로이 발걸음을 내디디며 이서에게 물었다.“윤이서 씨는 어떤 결과를 원하세요?”윤이서는 몇 분 동안 진지하게 생각했다.“이 사건인 경우, 최악의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송서묵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윤이서를 보는 눈빛에 약간의 의아함이 더해졌다.‘하은철 뒤꽁무니만 따라다닌다는 소문과 달리 꽤 독한 사람이었네.’“기물파손에 쌍방 폭행, 먼저 시비 걸고 도발했으니 판결이 확정되면, 아마도 열흘에서 보름가량 감금될 수 있습니다.”이서는 웃으며 얘기했다.“송 변호사님이라면 이에 그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송서묵은 웃으며 대답은 피했다.윤이서는 몸을 곧게 폈다.“궁금한 게 있어요.”“네. 말씀하세요.”“누가 의뢰했나요?”송서묵은 윤이서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음…… 이건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경찰서 오기 전, 상대방은 그에게 자기의 신분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 두었다. 그는 굳이 그 사람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경찰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입구에 도착하자 윤수정과 딱 부딪혔다.윤수정은 차에 오르다 말고 이서를 표독스럽게 쳐다보았다.“윤이서.”윤이서는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윤수정은 이미 휠체어를 타고 윤이서 앞에 다가왔다.여기는 경찰서이니, 굳이 이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변호사가 이미 내 뜻을 잘 전달했지?”말하는 사이에 고천성도 나왔다.그는 윤이서 뒤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윤수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턱을 젖히며 말했다.“네가 아무리 은철오빠의 비위와 입맛을 맞추려고 노력해도, 결론적으로 오빠라는 사람은 얻지 못할 거야!”윤이서는 차갑게 웃었다.“깜냥도 안 되는 남자를 보물로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걸? 송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먼저 갈게요.”“모셔다 드릴 게요.”“어떻게 귀찮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