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인수인계식 날이 다가왔다.이서는 윤재하 부부와 부녀관계를 끊었지만 결국 윤씨 가족이었고, 현재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윤씨 그룹의 전신이다.윤씨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이서가 인수한 민씨 그룹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이번 인수인계식을 틈타 얼굴을 드러내려고 나타났다.가능하다면 새 회사에서 말단 직원 자리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심정이었다.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은행 입구에 언론사 기자들 외에 가장 많이 모인 사람이 윤씨 집안 가족들이었다.이들의 얼굴은 모두 벽에 쌓인 벽돌처럼 한결같이 딱딱했다.비집고 들어갈 틈새 하나 없이 서로 쌓인, 표정에 미동조차 없는 얼굴들이었다.지나가는 기자를 붙잡고 한바탕 허풍을 떨었다.“윤이서가 내 조카딸이에요.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윤씨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이서라고 생각했어요. 보다시피, 이서가 윤씨 그룹 CEO가 된 이후 매달 매출액이 천천히 올라갈 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점점 늘고 있잖아요. 지금 보니까, 장사 천재야.”“저도 있어요, 저는 윤이서 대표 시누이예요. 이서가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어요. 안 그랬으면 하씨 집안에서 기어코 손녀를 며느리로 들이려고 했겠어요? 이게 바로 다 우리 이서가 똑똑하고 재주도 많으니까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죠!”“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부터 말해왔지만, 회사를 일찌감치 이서에게 맡겼어야 했는데, 우리 이서가 얼마나 대단한지 좀 보세요. 겨우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민씨 그룹을 인수했잖아요. 이서야, 너 지금 방송 보고 있지? 만약 이거 보면, 꼭 기억해줘. 나 네 둘째 고모의 큰 사촌오빠 아내의 둘째 외삼촌이다. 나중에 새 회사에서 나에게 일 주는 거 잊지 말고. 사장이나 회장 같은 건 됐고, 부사장 자리 정도면 충분해.”“...”이서는 생방송을 보면서 방금 그 사람이 한 말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앞줄의 임현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다가 못 참고 피식 웃었다.“아가
이서의 모습은 좀 전에 집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지금의 그녀는 과거보다 훨씬 침착하며 우아하고 대범했다.여왕의 풍모가 느껴졌다.서찬영은 이서를 발견하자 곧바로 다가왔다.“윤이서 대표님, 기자회견장이 다 준비되었으니 따라오십시오.”“네.”이서가 은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많은 기자가 다급하게 물었다.“윤이서 대표님, 이번에 윤 대표님을 지지해준 주주가 누구인지 밝힐 수 있습니까?”“그 주주는 하씨 그룹과 심씨 그룹에서 지지하는 윤수정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윤 대표님, 혹시 내부에 알려지지 않은 거래가 있지 않습니까?”“...”기자들의 추궁이 계속되자 서찬영은 경비원에게 그들을 막으라고 바삐 지시하고 기자들에게 직접 이야기했다.“기자 여러분, 저희는 진실을 파헤치고 보도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번 인수합병 발표 후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들 서두르지 마시고 먼저 인수합병 발표부터 하겠습니다.”기자들은 그제야 조용해졌다.이와 동시에 검은색 승용차 안에 있었다.윤수정은 차디찬 얼굴로 운전하는 윤재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여요? 어제 약속했는데. 왜 다시 바꾸는데요?”성지영은 수정이 윤재하의 운전대를 빼앗을까 봐 얼른 수정을 누르고 말했다.“수정아, 먼저 우리 말 좀 들어봐. 어제 너에게 오늘 이서의 신분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둘이 또 한참 동안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어. 근데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지금이 바로 이서가 가장 사람들한테 관심을 받는 기회야. 우리가 만약 이서의 신분을 폭로하면 민씨 그룹이 네 삼촌의 손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거야. 너한테도 그건 도리가 아니잖니?”수정의 안색이 매우 나빠졌다.“그래서 민씨 그룹을 얻기 위해 이서를 다시 딸로 받아들인다고요?”이서가 윤씨 가문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 수정의 마지막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만약 윤재하와 성지영이 이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수정으로서는 이서를 물리칠 방법이 없었다.“이
수정의 몸을 길가에 내던진 뒤 윤재하와 성지영은 다시 은행으로 달려갔다.어젯밤 수정을 속여서, 절대 수정이 이서의 인수합병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계획을 꾸몄다.이서가 민씨 그룹을 인수한 것은 곧 윤씨 가문이 다시 정상에 올랐다는 뜻이다.윤재하와 성지영은 이렇게 좋은 일에 절대로 작은 흠집이라도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또한 이번 일을 기회로 이서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가족이 되어야만 했다.그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런 때 이서가 그들의 딸이 아니라고 발표하면 이서가 현재 얻은 결과를 함께 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여보.” 성지영은 희색이 만면했다.“곧 있으면 우리는 이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하경철이 윤재하 부부에게 사준 저택은 매우 컸지만, 그들이 전에 살던 별장과 비교하면 작은 집에 불과했다. 이전 저택은 관리하는 사람만 수십 명이었다. 지금 사는 집에는 가정부 셋밖에 없다. 때때로 성지영은 스스로 식사준비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윤재하는 성지영에 비교적 이성적이었다.“이미 이서와 관계가 끊어진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마. 오늘은 이미 지났고, 비록 현장에 많은 기자가 있었지만, 당신이 이서를 압박해서 우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해야 하는데 아직 어렵네.”“상관없어, 이서는 자기가 우리 딸 아니라는 거 영원히 모를 거고. 언젠가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거예요. 결국 이서를 십 년 넘게 키운 건 우리잖아요.”윤재하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지. 이서가 그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잊기만 한다면 완벽할 텐데.”성지영의 눈동자가 바로 밝아졌다.“여보, 기억나요?”성지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재하가 알아맞혔다.“당연히 기억하지. 오래돼서 그 최면술사를 찾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한번 해봐야겠어요.”성지영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잘 생각해봐요. 만약 이서가 정말 그동안 일어난 일을 잊을 수만 있으면, 우리도 힘들게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잖아요. 때가 되면 가만히 앉아
여기자는 영문도 모른 채 대답했다.“봤죠.”“봤다면 한 사람당 질문 하나씩만 할 수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하지만 기자님의 질문은 세 개나 됩니다. 미안하지만 그중 한 가지 질문에만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에 답해 드릴까요?”기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첫 번째 질문을 선택했다.“당신을 지지해준 대주주는 누구입니까?”“그 질문이 확실하죠?”“네.”이서는 책상 모서리를 꼭 쥐었다.“YS그룹의 대표, 하지환 씨입니다.”무대 아래에서 갑자기 한바탕 떠들썩한 소란이 있었다.성지영과 윤재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특히 하지환이라는 세 글자는 두 사람의 귀에 몹시 익어서, 마치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았다.“어쩐지 마지막에 은행이 이서 손을 들어줬더라니, 원래 YS그룹의 대표가 직접 이서를 지지한 거였군.”“윤이서 정말 대단하네, YS그룹의 대표를 움직여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할 수 있다니.”“그래, 너희는 하씨 가문의 어른들이 모두 윤이서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거 알고 있었어?”“에이, 전에 하 영감의 죽음이 윤이서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잖아. 정말 관련이 있다면 YS그룹의 대표는 윤이서를 지지하지 않았겠지.”“그래, 나도 전에 인터넷상에 떠돌던 유언비어가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어.”“아마 윤이서를 압박하고 윤수정 편들어주면서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 같은데?”“...”무대 아래 사람들은 아직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서찬영은 어쩔 수 없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모두 조용히 해 주십시오. 시간이 계속 지나가고 있네요. 기자 여러분 다른 질문이 혹시 있습니까? 없으시면 기자회견 여기서 마칩니다.”무대 아래 사람들은 그제야 서서히 조용해졌다.서찬영은 상황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이서에게 물었다.“윤 대표님, 계속하시겠습니까?”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기자의 질문은 모두 YS그룹 대표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외모가 어떤지, 잘 생겼는지, 왜 윤이서를 지지하는지 등의 내용이었다.앞의 두 문제에 대해
이서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에 많은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눈길들이 오고 갔다.이서는 계속해서 설명했다.“만약 이 일이 남편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YS그룹 대표의 지지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 스스로 이렇게 큰 회사를 전혀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옆에서 계속 응원과 격려를 보내왔습니다.”“남편분이... 윤이서 대표가 민씨 그룹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까?”“아니오.” 이서는 그 여자 기자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남편이 직접 나를 도와 민씨 그룹을 경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무대 아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숨을 죽였다.모두들 이서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결혼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서는 자신의 남편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이서의 남편은 가난한 아르바이트생인 것으로만 알려졌었다.그런 남편이 민씨 그룹의 운영을 도울 거라고 하니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민씨 그룹은 비록 얼마 전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전체 자산 규모는 여전히 4대 가문 수준이다.이서는 민씨 그룹의 자산만으로도 윤씨 가문을 4대 가문의 반열로 되돌릴 수 있었다.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능한 남편의 도움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웠다.“또 질문 있으신가요?”의문에 찬 모두의 표정을 무시하고 이서가 조용히 물었다.이서가 보기에 현재는 모든 사람이 믿어줄 필요까지는 없다. 이서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지환의 경영실력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기자는 한동안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 앞에서 갑자기 경비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안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들어가면 안 돼요!”“이거 놔줘! 윤이서! 너는 민씨 그룹을 인수할 자격이 없어!”이서는 입구를 바라보며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윤수정을 발견했다.
[윤 대표 데리고 나오세요.]이 문자를 보고 서찬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서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윤 대표님, 우리 먼저 여기서 나가실까요?”이서는 발밑에 여러 사람과 윤수정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중 몇 사람은 뒷문을 통해 회의장을 떠났다.임현태의 차가 도착해서 이미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서찬영은 이서를 대신해 직접 차문을 열고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윤 대표님, 제 명함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하십시오.”이서는 지금 서찬영을 상대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대답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명함을 받고는 차에 올랐다.서찬영은 멀어진 차를 보고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아까 도착한 문자메시지가 아직 있었다.그는 핸드폰 번호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거 혹시 YS 대표님 번호 아닌가?‘윤이서가 민씨 그룹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배후에 YS의 대표가 있었기 때문이야.’서찬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차에 있던 임현태는 뒷좌석의 이서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좀 전에 하지환이 현태에게 직접 뒷문으로 가서 이서를 기다리라고 했는데, 아마도 이서가 뒷문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던 것 같다.‘윤 대표님 원래 예민하신 분인데 만에 하나 눈치를 챈다면...’현태가 엉뚱한 여러 사람과 사이, 이서가 자신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오히려 창백하고 굳은 표정으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 얼굴이었다.“윤 대표님?”현태가 연거푸 두 번 부르자 이서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네, 현태 씨?”현태는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죠.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왜 넋이 나간 것 같아요?”여러 사람과 했지만 현태의 질문에 대답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수정이 한 말은 이서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내가 여러 사람과 딸도 아니고 윤씨 가문이 아니라고?’‘전에 나도 내가 윤재하의 딸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의심했지만 그게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마이클 첸은 이서의 압박에 자기도 모르게 그 세 가지 방법을 다 이야기했다.말을 마치자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남편은 선생님께서 제시한 세 가지 방법 중에... 어떤 방법을 선택한다고 했나요?”“남편분은... 아무 말 없이 잘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습니다.”“그 세 가지 방법을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마이클 첸은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첫 번째 방법은 최면을 다시 시도하는 것이지만 모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전기 충격 요법인데 이 방법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잊게 할 수 있겠지만 세 방법 중 가장 고통스러울 겁니다. 세 번째 방법은...”“저 혼자 이겨내는 것.”이서는 마이클 첸의 말을 이어 말했다.마이클 첸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이서는 다시 한번 침묵에 잠겼다.오랫동안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마이클 첸을 바라보았습니다.“나는 두 번째 방법, 전기 충격 요법으로 할게요.”마이클 첸은 잠시 멈칫했다.“남편분과 먼저 상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아니요, 틀림없이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마이클 첸은 할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마이클 첸이 말했다.“윤이서 씨, 당신 남편이 전기 충격 요법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텐데 굳이... 게다가, 나도 당신 남편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마이클 말 없이 분명히 알고 있었다.만약 이서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도 역시 살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제가 그렇게 결정했어요.”이서가 일어서며 대답했다.“남편에게 말하지 마세요. 만약 이 문제에 대해서 지환 씨가 추궁하기 시작하면 저한테 넘기면 됩니다.”“그렇지만...”“치료의 시간과 장소 등의 결정은 선생님께 맡기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서는 말을 마치고 마이클 첸의 방을 떠났다.“...”이서가 이렇게 제멋대로인 것은 지환과
이서는 이번 생에 지환과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이서는 잠시 하던 생각을 멈추고 현태에게 말했다.“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잖아요. 현태 씨랑 소희, 하나를 불러서 함께 축하하고 싶어요. 괜찮겠죠?”“저는 괜찮은데, 소희 씨 쪽은 어떨지...”“지금 물어볼게요.”이서는 휴대전화를 들고 단톡방에 글을 올렸고, 임하나에게는 이상언에게 따로 알리도록 부탁했다.하나가 바로 답장했다.[OK.]이서는 심소희에게 물었다.[소희야, 현태 씨도 올 건데, 너는?]소희는 재빨리 답장했다. [이렇게 기쁜 일에 내가 빠지면 안 되죠.]그 후 소희는 다시 한번 이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이서 언니, 현태 오빠랑 나 지금 거의 친남매예요, 우리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그래, 알았어.]이서도 답장을 보냈다.단톡방에서 서나나도 엄청 흥분해서 댓글을 올렸다.[너희들 너무 신 나겠다, 나도 거기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나는 바로 장난스럽게 해외에서 고생하는 나나를 위로했다.[부럽긴, 너도 곧 성공할 거잖아. 이서는 지금 4대 기업 사장이야. 이서가 너를 곧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스타로 키울 텐데 그때가 곧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나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하나 언니는 맨날 나 놀리는 거 재밌죠? 만약에 내가 정말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다면 한 번만 만나겠어요? 매일 언니들 데리고 나가서 신 나게 놀 거야!]하나는 바로 신했다.[하하하, 너 오늘 말한 거 지켜야 해. 나나 말한 거 박제해 놔야지!]나나도 재빨리 대답했다. [맘대로 해, 난 약속 꼭 지킬 거야. 아, 맞다. 내가 며칠 전에 누구 만났는지 알아?]하나는 바로 궁금했다.[누구 만났는데?]이서와 심소희도 같이 궁금했다.[누구?]나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톡을 올렸다.[하이먼 스웨이 작가님 만났어요! 며칠 전에 갑자기 제작진을 만나러 와서 깜짝 놀랐잖아요. 그분은 H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지금 M국에 있지?]‘바다의 딸’은 최근 M국에서
이서는 지환의 대답을 듣고 나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까 분명히 얘기했잖아요, 화해한 척 연기하는 거라고요! 지엽이도 없는 데서 굳이 연기할 필요는 없어요.”지환은 살짝 눈을 들어 이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서야, 아무리 토사구팽이라지만, 이렇게 빨리 쳐내는 건 좀 심하지 않아?”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서는 곧바로 소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료는 다 읽어봤어? 정말 심태윤이 벌인 짓이야?”“네, 자료에는 심태윤이 어떻게 가짜 증거를 만들었는지도 다 나와 있었어요. 이 증거들만 경찰에 넘기면, 심태윤은 바로 잡혀가고 말 거예요.” 이서는 소희의 말투에서 뭔가 망설임이 느껴져 물었다. “왜 그래? 혹시 심태윤이 잡혀가면 소희 씨의 양부모를 돌볼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소희는 가볍게 웃었다. “언니, 저를 너무 착하게 보신 거 아니에요?”“그 사람들이 돈을 이유로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아시잖아요. 그 이후로 저는 그 사람들한테 기대한 것도 없고, 미련도 없었어요. 단지 이 일이 심태윤 혼자 한 짓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분명히 배후가 있을 거라고요.” “그 배후만 찾아내도 앞으로 골치 아플 일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심씨 가문 사람들이 이서 언니의 남편이 하 대표님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날 괴롭히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서 언니와 하 대표님이 헤어진다면, 나를 몰아내려는 사람들은 다시 들고일어날 거야.’ “혹시 이미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거야?” 이서는 소희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는데, 역시 자매다운 호흡이었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 말을 다른 사람한테 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언니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아요.”“제 생각엔... 강경숙이 관련된 것 같아요.” “강경숙?”“제가 심씨 가문에 돌아온 이후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강경숙과 심유인이잖아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게.” “지엽아...” “그런 표정 짓지 마.” 지엽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러면 내가 또 희망을 품을 것 같잖아.” 이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보다 내가 먼저 가도 될까?” 이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 내 마지막 소원이야.”지엽의 진지한 눈빛에 이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지엽은 잠시 이서를 바라보더니, 이서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기억에 새기듯 눈에 담은 후, 미소를 짓고 조용히 돌아섰다. ...한편, 고택 입구에서는 소희와 지환이 두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은 지엽 혼자였다. 지엽이 혼자 돌아오는 모습을 본 순간, 지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환은 한걸음에 다가가 지엽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거칠게 물었다. “이서는 어디 있어?” 지엽은 차분한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부럽다니까요?” 하지만 지환은 지엽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이서는 어디 있냐고 묻잖아!” 마침 그때 이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환이 지엽을 몰아붙이고 있는 모습을 본 이서는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하지환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서가 무사히 나오는 걸 본 지환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너... 괜찮아?” 이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 괜찮을 건 없지.” 지엽은 헝클어진 옷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서야, 봤지? 저 사람이 바로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널 아주 사랑하면서도 과할 정도로 집착하는 남자가 저 사람이라고.” 이서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지엽은 쓸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저 남자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게,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
차가 심씨 가문의 고택에 다다르자, 이서는 가장 먼저 지엽을 발견했다.지엽 역시 차에서 내리는 지환을 보고 얼굴이 굳어 버렸는데, 특히 이서가 자연스레 지환의 팔짱을 낀 순간, 지엽의 눈썹이 몇 번이나 심하게 떨렸다. “두 사람...” 지엽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택의 대문이 열리며 소희가 나왔다. “오셨네요!” 몇 초 후, 두 사람이 팔짱을 낀 모습을 본 소희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두 분... 화해하신 거예요?” 이서는 지엽의 반응을 슬쩍 살피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됐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엽이 떠난 뒤에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희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하나 언니는 아직 모르죠? 지금 바로 알려줘야겠어요!” 이서는 다급하게 소희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으며 말했다. “잠깐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소희 씨 얘기부터 하자. 지엽아, 얼른 조사한 결과부터 소희 씨한테 보여줘.”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이 함께 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고, 이서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소희에게 조사 결과를 건넸다. “소희 씨에게 누명을 씌운 건 심태윤이었어요. 소희 씨가 여태 친동생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이요.”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 쪽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안에 다 적혀 있으니까 잘 읽어보면 돼요...” 지엽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서야, 잠깐 나랑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서는 지환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서가 지환의 팔에서 손을 빼내려 하자, 지환은 더욱 강하게 이서의 손을 잡았다. 이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지환을 올려다보며 눈빛으로 놓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 대표님, 제가 이서랑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면
이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같이 먹고, 같이 잔다고요?”지환은 그 말에 이서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지만,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응, 어쩔 수 없잖아. 어둠의 호리병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당분간은 같이 지내야겠어요.” 지환의 미소는 더 깊어졌는데, 그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하도훈은 언제 처리할 수 있어요? 설마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죠?” 지환은 깊은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이 다크 웹의 1위와 2위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하도훈과 정면 승부를 가릴 수 있을 텐데 말이지...”“어둠의 호리병은 그 둘의 위치를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둠의 호리병도 순위에 올라 있는 킬러일 뿐, 그 사람들과 친구는 아니거든.” “단서도 전혀 없어요?” 지환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없어.” 이서는 실망이라기보다는 하도훈이라는 골칫거리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회사로.” 고개를 끄덕인 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서는 지엽의 전화를 받았다. “소희 씨에 대한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된 거야?”이서는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얼른 가서 소희 씨한테 알려줘. 분명히 엄청나게 기뻐할 거야.” 수화기 너머의 지엽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이서야, 난 소희 씨랑 이제 막 알게 된 사이라 조금 어색한데, 네가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이서는 곁눈으로 지환을 한 번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알았어.” 그 순간, 이서를 태우고 있던 지환은 잠시 핸들을 놓칠 뻔했
“고이서를 바로 내쫓으면 분명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내 손에 있는 윤씨 그룹의 자산 중 일부는 원래 윤씨 가문의 것이었어요.”“그 인간들의 만행이 제대로 폭로되지 않으면, 과거 윤씨 그룹에 몸담았던 몇몇 내부 인사들은 고이서와 손을 잡고 말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지 모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고이서를 회사의 대표 자리에 앉힌 거야? 그 여자가 빨리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려고?” “네.”짧게 대답한 이서는 무심코 거울 속 자신을 보았고, 활짝 웃고 있는 자기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 ‘하지환 씨 앞에 서면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서에게 더 난감한 것은 지환이 자신의 정체를 속였던 일조차 잊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내려오라고 한 거예요?”아래층으로 내려온 이서는 지환의 차에 올랐다. “하도훈이 이렇게 오랫동안 잠적한 이유가 뭔지 알아?”“자식을 만드느라 바쁜 거겠죠.” “맞아.”“그동안 꽤 많은 여자를 만났고, 그중 한 여자가 진짜로 임신했다더라.” 이서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그럼 이제 하도훈이 다시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는 거네요?” 지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는 지환의 표정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 “그 표정은 또 뭐예요? 설마... 예전에 내가 하도훈한테 여자를 붙여보라고 했던 그 작전을...”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임신했다는 여자, 하지환 씨가 보낸 사람이에요?” “아니었으면 한 번에 임신했을 리가 없잖아.” 이서는 입을 살짝 벌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그 아이는 하도훈의 아이가 아닌 거예요?” 지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훈은 그 사실을 알면 미쳐버릴 거예요.” “미치면 더 좋지 않아?” 지환은 담담하게
모두 반대의 목소리뿐이었지만, 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불만 있으면 사직서 쓰세요.” 이 한마디에, 회사 고위층들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오늘부터 고 팀장님이 아닌 고 대표님이 된 거예요.”‘고 대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이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나 큰 기쁨에,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으니 말이다.“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이서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고, 고이서는 문이 닫힌 후에도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5분이 지나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서의 책상으로 다가가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이제 이 모든 건 다 내 거야...!’ 고이서는 마치 꿈속을 걷는 사람처럼 대형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 순간, 마치 가죽 의자가 아니라 구름 위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만 차지하면... 다시 예전처럼 호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야. 원하는 대로 화려한 드레스를 사고, 반짝이는 보석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고... 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되겠지! 아, 내가 좋아하는 남자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고이서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던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이서는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김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팀장님, 회의 시간이 다 됐습니다.” ‘고 팀장’이라는 호칭에 고이서는 속으로 불쾌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김하늘’이라는 이름을 새겨 두었다.‘며칠만 지나면 내가 정식으로 대표가 될 텐데, 그때 가장 먼저 잘라버릴 사람은 바로 네가 될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김하
고이서는 이서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성지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윤이서는 사실 아주 멍청한 사람이야.”“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하은철처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두고, 굳이 가난한 남자를 택했겠니?” 고이서는 예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윤이서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면, 누구도 살리지 못했던 회사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H 국의 4대 가문 중 하나로 만들진 못했을 거야.’‘그것도 혼자만의 힘으로.’‘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윤이서는 정말 멍청한 것 같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니까?’‘이 회사의 대표가 된 것도 전부 운 덕분이었던 것 같아.’ “고 팀장님?”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이서는 정신을 차렸다. “네, 대표님.” 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큰 일이에요. 오늘은 제가 한 말을 잊어버린 정도로 끝났지만, 앞으로는 계약서 서명 같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고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일은 누구한테 맡겨야 할까요?”이서는 갑자기 고이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래요, 고 팀장님! 고 팀장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고이서는 당황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 팀장님이 꼭 저를 도와줘야 해요. 고 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회사에는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고이서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별거 아니에요.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운영만 도맡아주면 돼요. 저는 회복하는 대로 다시 돌아올게요.” 고이서는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렇게 큰 회사를 저한테 맡기셨다가 큰 문제라고 생기면 어떡하시려고요.”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고이서는 속으로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드
하지만 한 회사의 대표는 곧 하늘과도 같았다.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서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한 김하늘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 사무실에도 CCTV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당장 영상 자료를 가져와 보라고요!” 김하늘은 당황하며 말했다. “대표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굳이 대표님께서 무안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이 정도의 생각은 김하늘도 하고 있었으나, 이서는 아주 단호했다.“됐고, 당장 가져오세요.” 김하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서는 의아해졌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비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그럼 설마...’ ‘그 꽃차가 효과를 나타낸 건가?’이 가능성이 떠오르자 고이서는 속으로 흥분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대표님께서 CCTV를 보자고 하신다면 봐야죠. 만약 저희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대표님?”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김 비서가 잘못 전한 거라면 엄하게 처벌하고, 정말 내가 말해놓고 잊어버린 게 맞다면, 그땐 분명히 사과할게요.” 이쯤 되니 김하늘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김하늘은 결국 CCTV 영상을 가져왔고, 영상 속에는 이서가 몇 번이나 김하늘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고 팀장님을 불러주세요.”심지어 몇 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지시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서는 그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내가 한 말이 맞다고...? 그런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김 비서, 미안해요.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너무 미안해서 가방을 하나 선물로 주고 싶은데, 오늘 퇴근하기 전에 나한테 와서 받아 가요, 알겠죠?”김하늘은 이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하고 거절하기도
“진짜예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이서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환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이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단순히 의례적인 질문으로 하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담아 묻곤 했다. 지환은 한동안 말없이 이서를 바라보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야. 생각해 봐. 네가 너희 가족 이야기를 고이서와 나눈 거잖아. 고이서 입장에선 너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거야.” 이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이서는 진심으로 말했고, 지환은 잠시 이서를 응시하다가 짧게 대답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 이서는 문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서 내렸다. ...이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차를 들고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꽃차를 검사한 뒤 말했다. “지난번과 성분이 똑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양이 더 많네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겠어요.” 의사는 몇 번 더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고개를 들었다.“3일이에요. 이 차를 마시면 3일 후에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서, 생각보다 더 조급했구나?’ 이서는 병실로 돌아가 꽃차를 우린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고 팀장님이 주신 꽃차 덕분에 불면증이 해결됐어요. 요즘 정말 잘 자고 있답니다.]문구와 함께 사진을 올리자, 고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모든 걱정을 덜어냈다. 이제 남은 건 이서가 언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느냐였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고이서는 간절하게 속으로 외쳤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윤씨 그룹의 CEO 자리에 앉고 싶다고.’특히 이서가 회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목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이서의 질투심이 극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