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민씨 그룹을 인수한다고 쳐. 근데 네가 뭔데 윤씨 그룹 회수한다다 만다는 거야? 그럴 자격은 있고? 깜빡했나 본데 윤씨 그룹, 최고 결정권은 나한테 있거든.”이서의 말을 들은 윤수정은 갑자기 째려보았다.“그래? 두고 보자고. 민씨 그룹을 인수하고 나면 네 인생이 뒤바뀔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을 테니. 그때가 되면 하씨 집안은커녕 윤씨 가문도 너를 내칠 거야.”이서는 담담하게 말했다.“내 인생을 뒤바꾸는 일이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민씨 그룹을 내가 인수해야겠네.”윤수정은 피식 웃었다.“윤이서, 너 아직 잠에서 덜 깼구나? 은철오빠가 이미 나를 지지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너에게 기회가 있긴 할까?그리고, 너 대신 배서해 줄 사람은 있고? 설마 그 가난뱅이 남편은 아니겠지?”이서는 윤수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왜, 사람 치게? 잊지 마, 여기 CCTV가 있어!” 윤수정은 침을 삼켰다.이서의 눈빛은 살인을 저지를 만큼 섬뜩했다.굶주린 늑대가 고깃덩이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내가 왜 너를 때려?” 이서는 손을 들어 윤수정의 볼을 꼬집었다.“어우, 우리 동생, 이건 사랑의 터치예요.”“아아...” 윤수정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있었다. 나서야 할지 말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윤수정이 이서의 팔을 할퀴자 그제야 사람들은 진흙탕 싸움이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달려들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그러나 이미 윤수정의 볼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이서의 팔에도 여러 갈래의 긁힌 자국이 있었다.윤수정은 씩씩거리며 숨을 연신 들이마셨다.이서의 표정은 시종 냉담했다.“이렇게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윤수정, 오늘 내가 한 말 잘 기억해 둬.네가 뭐라고 떠들어도 난 상관없어. 내 눈에는 너는 바퀴벌레에 불과하거든. 사람이 어찌 바퀴벌레와 따지지 들겠니? 안 그래? 그런데 내 남편을 건들면, 나 가만 안 있어. 바퀴벌레를 제거하는 것처럼 너를 퇴치해
이서는 서류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뜻밖에도 지환은 집에 없었다.하지만 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회사를 그만뒀어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니, ‘집콕’하는 것보다 가끔 외출하는 게 더 나은 듯했다.마침 지환이 없으니, 장을 봐서 그에게 맛난 집밥을 해 줄 생각이다.그동안 할아버지 일로 지환에게 제대로 된 밥을 안 해준 지도 오래되었다.한다면 한다!이서는 바로 마트에 가서 고기와 생선, 야채 등을 사 왔다.지환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이서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그녀가 요리를 다 했을 때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그녀는 문 앞에 서서 문을 밀고 들어오는 지환을 미소로 맞이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입구에 서서 포악한 기운으로 가득한 지환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졌다.지환도 이서가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그는 재빨리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자기 어떻게 집에 있지?”“퇴근하고 바로 왔어요. 무슨 일이에요? 싸웠어요?”“아니, 현태 씨랑 복싱 연습하러 갔었어.”이서는 반신반의했지만, 더 묻지 않고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배고프죠? 어서 와서 식사해요.”지환은 이서를 따라 주방 쪽으로 향했다. 푸짐한 저녁상을 보고 이서의 이마에 뽀뽀했다.“여보야 고마워, 수고했어.”뭔가 말하려던 이서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지환의 몸에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지환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왜? 내가 밖에서 이 여자 저 여자 꼬시고 다닐까 봐?”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당신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요.”지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현태 씨랑 링에 올라가서 복싱해서 그런가 봐.”“임현태 씨랑요??” 이서의 눈동자는 밝아졌다.“누가 이겼어요?”“누가 이겼을까?”이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히 천하무적 우리 자기이지요.”지환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방금 나를 뭐라고 불렀어?”“자기요. 우리 남편.” 이서는 지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왜요, 이 호칭이
하이먼 스웨이의 전화였다.이서가 얼른 받았다.“선생님.”“에휴, 이서야, 미안해. 사과하려고 전화했어.”예전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사라지고, 피곤에 찌든 사람 같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그날 일은 가은이가 잘못했다.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건데.”“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 말씀 마세요.”“아니, 이서야,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아.”하이먼 스웨이는 억지로 웃음을 터뜨렸다.“이서야, 우리 착한 이서. 그날 많이 속상했지...”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수화기 너머의 하이먼 스웨이도 말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침묵하고 있었다.한때 친 모녀처럼 살갑던 두 사람, 이서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비록 아쉽긴 하지만, 이서는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이서는 모성애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다.“모레 가은이 데리고 돌아갈 거야.”하이먼 스웨이가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아마 M 국에 먼저 갈 거 같아. 이서야, 혹시 필요한 거 있어? 내가 사다 줄게.”“아니에요.” 이서도 말을 이었다.“선생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셨으니, 그걸로도 저는 이미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하이먼 스웨이는 가슴이 찌릿했다.‘이서... 너무 착해.’하지만 너무 착한 아이는 늘 손해를 보게 된다.하이먼 스웨이는 진지하게 고민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이서야, 내일 배역 오디션 있거든. 캐스팅 디렉터가 나랑 가까운 사이야. 그분의 문학 수준도 상당히 높거든. 절대 나보다 못하지 않아.앞으로 글을 쓰다 문제가 생기면 그분 찾아가.“네.” 이서는 침대에 천천히 앉아 무릎을 안았다. 왠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두 사람이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물론 나한테 물어봐도 되고. 다만 시차 때문에...” 하이먼 스웨이는 급히 설명을 덧붙였
“가은아.” 하이먼 스웨이는 심가은과 분명히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네가 왜 이서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서로 알아보고 만날 수 있었던 거, 다 이서 덕분이야. 사람은 은혜를 알아야지. 엄마는 네 취향도 존중하지만, 우릴 도와준 사람을 계속 이상한 사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심가은은 하이먼 스웨이가 정말 화가 난 걸 보고 얼른 앞으로 나가 그녀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엄마,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정말?”하이먼 스웨이는 의구심을 갖고 심가은을 바라보았다.“그럼요!”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착한 모습을 봐서는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하이먼 스웨이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그래야지. 역시 엄마의 착한 딸이다.”심가은도 하이먼 스웨이를 껴안았다. 차가운 눈빛은 눈동자 깊은 속으로 숨겼다....“왜 바닥에 앉아 있어?”문에 들어서자, 지환은 바닥에 앉아 있는 이서를 보았다.이서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의 심장이 목구멍으로 차올랐다.“자기야.” 그는 이서를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서의 눈동자는 점점 맑아졌다. 시선은 바닥 위의 흰 셔츠에 떨어졌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당신 옷에 왜 피가 묻어 있어요?”이서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이서의 시선을 따라 지환은 흰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그 위의 혈흔은 하은철의 것이었다.당시 하은철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한바탕 손을 봐줬다. 그때 피가 셔츠에 튄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현태 씨가 다치면서 내 셔츠에 피를 묻혔나 봐.”말을 마친 지환의 시선은 이서를 바짝 뒤쫓았다.이서는 흐리멍덩하게 답했다.“응.”“여보?”이서는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 있었어?”이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지환은 그녀가 또 발작했을까 봐 걱정되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스웨이 작가님이 전화 왔는데, 며칠 후면 떠난대요
아침에 하씨 그룹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두 개의 강력한 힘에 끌려 다른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도착해 보니 이곳이었다.처음에는 돈을 뜯어내려고 버린 납치 사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동하는 내내 말 한마디 없었고, 도착해서도 차에서 끌어내린 후 주먹질과 발길질만 가했다.몇 번이고 머리가 터져 죽는 줄 알았다.심지어 참지 못하고 기절하기도 했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지금 이 모습이 되어 있었다.고개를 돌린 하은철은 마침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핸드폰 불빛 같았다.그는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족히 3분 남짓이 걸려서야 휴대전화를 손에 넣었다.핸드폰을 켜서 하도훈에게 전화를 거는데 젖 먹던 힘까지 썼다.다행히 전화는 빨리 연결되었다.전화기 너머로 들으니 하도훈 쪽은 파티나 모임에 있는 듯했다. 사람소리로 북적였다.[여보세요, 은철아, 무슨 일이야?]“아빠... 살려주세요...”수화기 너머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하도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너 어디야?]하은철은 이미 혼신의 힘을 다했다.대답이 없자, 하도훈은 놀란 나머지 얼른 룸에서 나왔다.다행히 하은철의 핸드폰이 켜져 있어핸드폰 발신자 추적 기능을 통해 하은철을 찾았다.하도훈은 아들이 숨이 간들간들한 걸 보고 화가 나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그는 얼른 사람을 시켜 하은철을 병원에 데려갔다. 그러고는 사람을 남겨 상황을 조사하게 했다.이서는 이튿날 임하나의 입에서 하은철이 입원한 일을 알게 되었다.[이번에는 꽤 심각한 것 같아.]임하나는 장난기 없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하은철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에 대한 동정심은 잃지 않았다.[어제 응급실 난리 났나 봐. 밤새 정신없었다고 하더라고.오늘 아침에야 일반 병실로 옮겨졌대.어느 의인이신지는 모르겠는데 하은철한테 손대다니 용감도 하셔라.]이서는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 나서야 전화기 너머의 임하나에게 말했다.“이번에는 제대로 당했나 보네. 얼마 전에도 맞은 것 같
장희령이었다.“아, 재수 없어. 오늘 집을 나서자마자 가장 싫어하는 사람 얼굴을 보게 되다니.”장희령은 이서의 곁을 지나가면서 두세 걸음 가다가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이서를 흘겨보았다.“저기, 윤이서, 설마 하이먼 스웨이 님한테 들러붙지 못하니 추상화 작가님한테 달려온 거야?”추상화의 명성은 하이먼 스웨이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H 국에서는 손꼽히는 시나리오 작가였다.SY 쪽에서 이번 하이먼 스웨이의 작품에 추상희 작가 각색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것만 봐도 그녀의 위치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이서는 담담하게 장희령을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역시 여우주연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처음에 이서와 하이먼 스웨이와의 관계를 알았을 때는 친한 척 온갖 아양을 떨더니, 심가은이 하이먼 스웨이의 친딸인 걸 알고 심가은과 붙었다.정말 대단하다. 이익 앞에서 이렇게 현실적이라니.“하나야, 우리 저쪽 가서 추상화 선생님 기다리자.”말하면서 이서는 임하나를 끌고 한쪽으로 걸어갔다.이를 본 장희령은 매니저에게 눈짓했다.장희령 곁에서 오랫동안 일한 매니저는 그녀의 눈빛만 봐도 원하는 바를 척척 알아서 나섰다. 그는 이서와 임하나의 길을 막았다.이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장희령은 그제야 느릿느릿 하이힐을 밟으며 이서의 앞으로 걸어갔다.“윤이서, 가은이한테 듣자니 너 요즘 시나리오 쓴다며? 하하. 네가 무슨 하이먼 스웨이인 줄 알아? 요즘은 개나 돼지나 다 시나리오 쓰나 봐?”이서는 고개를 살짝 젖혔다.“저기요, 내가 뭘 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장희령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하나 할게. 잊지 마. 너 이제 하이먼 스웨이라는 뒷배가 없어. 연예계나 엔터 쪽에 발붙이려는 다부진 꿈은 애초에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솔직히 말이야, 난 너처럼 인맥 이용해서 크게 한 건 하려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이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비
그런데 하이먼 스웨이는 오히려 그녀에게 자기의 베프를 소개해 주었다.베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장 끈끈한 인맥이다.장희령은 이가 깨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선생님, 제가 알기로는 윤이서는 이쪽 관련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이전에 스웨이 선생님을 도와 딸을 찾아 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스웨이 선생님께서 개인적인 이유로 그녀를 높이 평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추상화은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장희령을 쳐다보았다.장희령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녀의 모든 신경은 이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윤이서, 내 말 맞지?”“...”추상화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문학은 기술이 아니에요. 오래 했다고 해서 능숙해지고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영감과 천부적인 재능이 중요합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도 이름을 떨칠 수 있고, 재능이 없는 사람은 평생 이 업종에 있어서 글쟁이라는 소리밖에 못 듣죠. 노가다가 따로 없어요. 희령 씨는 수많은 배역을 연기했고, 많은 대표작들도 탄생시켰으면서 아직 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모른다는 게 좀 의외이네요. 배역은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하는지 궁금하네요.”장희령의 얼굴색이 변했다.“그리고 이 말을 나한테 하는 진짜 속셈이 뭔가요?”추상화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스웨이 작가가 이서 씨를 칭찬하는 걸 개인적인 이유라고 하던데, 그 뜻인즉 스웨이 작가의 전문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얘기로 이해해도 될까요?”장희령의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다.“선생님,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아, 됐어요, 내가 그 변명을 들을 이유도 없고... 그만 가세요.”추상화는 귀찮은 듯 말했다.“저... 오늘 감독님과 계약하러 왔습니다.”추상화는 잠깐 생각하더니 마침내 생각난 듯 말했다.“아, 스웨이 작가가 서브 여주 배역을 주겠다고 했죠?이번에는 제대로 얘기한 것 같네요.희령 씨가 이 배역을 얻게 된 것도 완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죠?”장희령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당신의 이해 능력이
“안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요?”추상화는 바보를 보는 듯 장희령을 쳐다보았다.“얼마나 다행인데. 지금이라도 당신의 이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만약 촬영이 시작된 후에야 발견하였다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어휴, 스웨이는 평생 단 번도 누군가의 편의를 봐준 적 없는데, 유독 딸의 문제에서만은...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이라니까... 그렇다고 딸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함부로 주다니...”장희령은 또 뭔가 변명을 하고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추상화는 장희령과 계속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빨리 가요, 계속 여기에 있으면 경비원을 부를 겁니다.”장희령은 공인으로서 추한 모습으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추상화가 경비원을 부르겠다고 하자 얼른 자리를 떠났다.3층이 다시 조용해지자, 이서는 비로소 추상화를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생님, 방금 감사했습니다.”추상화는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내가 이서 씨 때문에 장희령의 서브 여주 역을 빼앗은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당연히 아닙니다.”이서는 빙그레 웃었다.“선생님께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추상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하지만...”이서는 추상화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선생님, 하지만 방금 한 말씀 중에 잘못된 얘기가 있습니다.”한쪽의 임하나는 깜짝 놀라 이서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제정신이야?’‘감히 추상화 이 대가 앞에서 구분의 잘못을 짚어 내다니.’추상화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어? 뭐가요?”“스웨이 작가님께서도 당연히 더 적합한 사람에게 배역을 맡기고 싶어 합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작가님이 힘들게 창작한 인물입니다. 모든 작품은 그분의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작품의 캐릭터와 인물에도 그분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히 많이 고민하고 슬퍼하면서 배역을 주기로 결정했을 겁니다. 고민하는 과정이 그분에게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