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이서의 말을 바로잡았다.“내가 아니라 자기가…”“내가요? 나 못 해요.”못 한다기보다는…아직 그럴만한 자질이 없다.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국내에서 민씨 그룹을 인수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 곳은 3대 가문뿐이다.윤씨 그룹은 현재 점차 회사에 궤도에 오르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대출을 할 수 없다.게다가 은행 또한 몇조, 몇십 조를 대출해 줄 리도 없고.“할 수 있어.”지환이 말했다.“사전 준비는 내가 이미 다 해 놓았어. 자기는 다음 달에 내가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대출만 받으면 돼.”이서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믿을 수 없었다.“당신이 다 했다고요?”“응.” 지환은 이서의 손을 꼭 잡았다.“자기야, 당신이 새 그룹 CEO가 되면 나 먹여 살려야 해.”이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설마 하은철 둘째 삼촌이 어음 배서하라고 시킨 거예요? 아닌데, 직장도 그만둔 판에 왜 당신을 돕는 거죠? 아, 그리고… 당신이랑 하은철 둘째 삼촌 이름이 똑같아요, 알고 있었어요?”이서는 지환의 옷깃을 잡았다.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었다.지금이야말로 제대로 기회를 잡은 셈이다.지환의 눈동자에 파도가 일렁이었다. 하지만 얼굴의 웃음기는 더욱 깊어졌다.“어떻게 알았어? 이름 같은 거…”“하은철이 얘기해줬어요, 나도 그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렇게 희한한 일이 있다니…”이서는 계속 말했다.“설마 지난번에 혼인신고 대신해 준 것도 두 사람 이름이 같기 때문인가요?”지환은 활짝 웃으며 이서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졌다.“역시 우리 와이프 똑똑하네.”“이렇게 중요한 일은 내게 얘기해줬어야죠.”“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지환은 이서를 안았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무언가를 깨달은 듯 이서는 눈을 크게 뜨고 일어서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지환의 큰 손은 그녀의 허리를 안정되게 누르며 그녀의 몸이 아래로 눕게 했다. 이서는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
목욕을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이서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윤재하로부터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그녀는 의구심을 갖고 핸드폰을 들었다.윤재하와 연락이 끊긴 지 꽤 되었다. 지난번 연락한 게 지난 세기의 일인 것 같았다.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이서는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를 막 끊으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윤재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많이 컸다. 이렇게 전화를 많이 걸어서야 받다니.]“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하세요. 핸드폰은 내 손 안에 있으니 언제든지 끊을 수 있습니다.”이서가 차갑게 말했다.윤재하는 이서가 전화를 끊을까 봐 겁이 났는지 바로 말을 꺼냈다.“지금 당장 경찰서에 가서 수정이 빼내.”‘장난해?’지금 민씨 그룹을 인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데…윤수정이 이 타이밍에 잡혀갔으니, 그들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더욱 놀란 것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이서였다.윤재하는 이게 이서가 그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일부러 윤수정을 감방에 넣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윤수정이 지금 경찰서에 있어요?”‘경찰 들의 수사가 이렇게도 빠르다니. 내일 당장이라고 감사편지 보내야 하나?’“네가 잡아넣었잖아. 왜 모르는 척이야. 내가 말해두는데 지금 당장 가서 수정이 빼내지 않으면 내가 널 가진 것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로 만들 거야. 못 믿겠으면 기대해 봐!”이서는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그녀는 앉아서 한가로이 물었다.“얘기나 들어봅시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날 알거지 만들겠다는 건지…”“나!” 윤재하는 윤수정을 견제하기 위해 했던 얘기가 이제는 그를 견제하는 장애물이 될 줄은 몰랐다.“어쨌든 네 동생이잖아. 어떻게 가족을 경찰서에 넣을 생각을 하니? 넌 그곳이 어떤 곳인 줄 알기나 하니? 여자애인데…”이서는 윤재하의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을 끊었다.“내 앞에서 쉴드 치지 마세요. 되게 안 어울리는 거 알아요? 그리고 수정이를 꺼낼 생각도 없어요. 걔가 그녀가
“조용히 해!” 성지영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재하는 그녀의 말을 잘라 버렸다.“그걸 좀 더 못 기다려? 수정이 민씨 그룹을 인수하면 윤씨 그룹도 다시 4대 가문의 대열로 올라가게 되고, 그때가 되면 더는 이서 그년에게 끌려다닐 필요 없잖아.”성지영은 붉은 입술을 벌렸다.“그럼, 수정이는 어떡해요?”“그냥 두는 거지, 하지만 절대로 은철에게 알게 해서는 안 돼. 내가 보니까 요즘 은철이 수정이에게 옛날처럼 살갑지 않더라. 지금 이 결정적인 순간에 굳이 일을 만들 필요는 없어.”“혹시라도 은철이가 수정이랑 결혼할 마음이 없다면?”이번 하경철 장례식에서도 이서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참여했다. 반면 윤수정은 초대되지도 않았다. 외부에서는 이미 하은철과 윤수정의 관계가 끝났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었다.“나도 그게 걱정이 되어서 수정이에게 민씨 그룹을 인수하게 한 거네. 만약 인수한다면 은철이 마음속에 아직 수정이가 있다는 걸 의미하고 만약 아니라면…”성지영은 긴장한 나머지 윤재하를 보았다.윤재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아니라면 다시 이서 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그러니까 기억해. 참아야 해. 일이 진행되는 거 보고 그때 가서 이서의 출생 비밀을 밝히든가 하자고.”“알겠어요.”이서가 전화를 끊자마자 지환이 위층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쉬려고?” 이서가 물었다.“응, 방금 신청 서류와 어음 배서한 거 자기 메일로 보냈어.”지환은 이서를 안고 말했다.“일찍 쉬어.”요 며칠 너무 피곤했는지 이서는 누운 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 잠이 들었다.지환은 잠든 이서의 얼굴을 보며 그녀를 애틋하게 껴안았다.기껏 십여일 밖에 수감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말 짜증이 났다.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윤수정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작정이다. 설사 하은철과 사이가 철저히 틀어진다고 하더라도.이서는 지환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잤다. 밤새 악몽도 꾸지 않았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보고 놀란 이서는 침대에서 벌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말씀도 안 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합니까? 흐흐흐.”하이먼 스웨이도 따라 웃었다. 목소리도 다소 진정되었다.[있잖아. 사설탐정 말로는 심씨 가문의 심가은이 내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아가씨가 요 며칠 집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있대. 탐정들이 DNA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데 말이야.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래서 말인데 이서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을까?]“심가은이요?” 이서는 왠지 이 이름이 귀에 익었다. 한참을 생각해서야 드디어 기억났다. 이전에 소지엽과 맞선을 본 그 여자…“그분이 엄마 따님이었군요.” 이서는 놀랐다.[아는 사이야?]“아는 사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친구의 친구예요.”이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혹시 가은 씨 모발이나 침 등으로 DNA 검사 의뢰하시려는 거죠?”[맞아, 맞아, 하지만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손을 쓸 수가 없네.]이서는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방법 있어요.”[벌써? 빨리 말해봐.] 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나머지 평소의 차갑고 시크함을 잃었다.“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내가 그녀와 약속 잡을게요. 카페를 찾든 레스토랑을 찾든 사전에 가게의 종업원에게 컵이나 식기 챙겨 놓으라고 하면 되죠.”하이먼 스웨이도 즉시 이 방법에 동의했다.[좋아, 이 방법이 좋아, 이서야, 괜히 너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아니예요. 엄마.”이서는 바로 말을 이었다.“그럼, 지금 약속 잡을게요.”[그래,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이서뿐이야. 우리 모녀가 상봉하게 되면 그땐 내가 톡톡히 한 턱 쏠게.]“엄마, 그런 말씀 마세요. 약속 잡고 연락드릴게요.”이서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심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심가은은 한참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엄청 피곤한 목소리였다. 큰 충격을 받았거나.“가은 씨, 나 윤이서인데. 나 기억해… 요?”심가은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응, 무슨 일인데?
심가은도 이서의 의견이 필요 없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억눌렸던 감정을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내가 좋아하는 거 맞아. 정말 많이 좋아해.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거든. 비록 다들 그 사람이 사생아라고 가문의 천덕꾸러기라고 얘기해도 난 그래도 그 사람이 너무 좋았어. 맞선 자리에 나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데 글쎄… 그 사람 마음속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어.]심가은은 또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계속 말을 아끼던 이서는 심가은이 지친 기색을 표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한잠 푹 자. 아마 내일 자고 일어나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거야.” [정말 그럴까?] 심가은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이서는 계속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가 그곳에서 숨소리가 들려와서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 이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환은 2층에 올라가 일을 보았는데 글쎄 한시간이 넘도록 이서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실연당했으니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나 봐요.”전화기 너머에서 심가은의 울부짖음만 들어도 이서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사랑으로 상처받은 모든 영혼들을 동정했다.그녀와 지환은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비록 지금은 악몽을 꾸지 않지만, 매번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양심이 있긴 한거니?!]“자기야…”“응?” 이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그래?”지환은 이서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이서의 시선을 막아섰다.“우리 당분간 아파트로 가서 살까?”“왜 갑자기 이사가요?”“작은 집에 살면 더 아늑하고…”그는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자기야, 아파트 가서 살자. 난 자기와 더 많은 프라이버시를 가지고 싶어.”이서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요.”그녀는 지환이 왜 이사를 하자고 하는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하경철이 여기서 다쳐서 돌아가셨으니 이서에게 안 좋은 기억
심씨 본가.심가은은 1층 거실로 내려오자마자 찰싹 붙어 있는 심동과 장희령을 보았다.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기척을 냈다.그제야 두 사람은 떨어져 고개를 들어 심가은의 방향을 바라보았다.심가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심동은 일어섰다.“가은아, 드디어 방에서 나왔구나.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말만 해 봐. 오빠가 다 사줄게.”“됐어, 약속 있어.”심가은은 장희령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바깥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다.둘은 확실히 사이가 좋지 않다.그 이유도 간단했다.장희령이 원래는 소지엽을 좋아했는데, 후에 왠지 모르게 그녀의 오빠와 사귀게 되었다.‘말끝마다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래 봤자 오빠의 돈을 사랑하는 거다.’‘그렇지 않으면 지갑에 소지엽 대학 시절 졸업사진을 소장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누구 만난다고?” 심동은 다정하게 물었다.장희령도 가식적으로 입을 열었다“가은아, 오빠가 데려다 줄까?”“아니야.”심가은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정말이지 장희령과 같이 연기할 마음은 없었다.“이서랑 만나기로 했어. 좀 늦을 거야.”이서를 만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장희령은 황급히 심가은의 팔을 잡아당겼다.“이서 만난다고? 둘이 친하니? 이전에 왜 네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지?”듣다 못한 심가은은 폭발하고 말았다.“저기,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당신 지금 우리 오빠 여자 친구일 뿐이거든.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진 장희령은 아무 말 않고 잠자코 있다가 기분을 가라 앉히고 평온한 말투로 얘기했다.“가은아, 너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 괜찮아. 그래도 너 혼자 보내는 건 마음이 안 놓인다. 이렇게 하자, 내가 같이 가줄게.”“맘대로 하든가.”말을 마치고는 휙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더는 장희령과 말 섞고 싶지 않았다.차에 오른 심가은은 창밖만 뚫어지게 내다보았다.장희령은 이서를 만나기 위해 말없이 참았다.차가 출발하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가
점원이 싱글벌글하며 말했다. “네, 손님, 잠시만요.”말하면서 점원은 수십 개의 넥타이를 모두 꺼내 장희령의 앞에 놓았다.“고객님, 어떤 것이 마음에 드세요. 말씀해 주시면 예쁘게 포장해 드릴게요!”장희령은 점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이서에게 물었다.“이서 씨, 어느 게 좋을까?”“…”점원은 그제야 이서에게 시선을 돌렸다.“이분은?”이름이 귀에 익었지만, 얼굴을 봐서는 어느 집 대가규수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심가은은 이서를 잡아당겼다.“내가 사줄게. 다른 매장 가보자.”“…”‘아니, 지금 이 둘 뭐하는 거야?’“있잖아.” 이서는 입을 열려고 했다.“두 사람 호의는 마음으로 받을 테니 선물은 그래도 내가 사는 걸로…”“안돼!”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우리 둘 중 누구야? 한 명만 골라 봐.”이서는 난처한 듯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앞다투어 대신 결제하겠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점원도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지 옆에 멍하니 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먼저 진정들 하시고.”“우리가 어때서?” 두 사람은 다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이서 씨, 얼른 정해.”이서는 정말 두사람에게 소리라고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할 일 없는지, 왜들 이리 유치한지?!하지만 오늘 나온 목적을 생각하고는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그럼 가은 씨 부탁해. 고마워.”장희령을 화나게 해도 상관없다. 심가은이 홧김에 집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오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테니.역시나 장희령의 안색이 달라졌다.“이서 씨, 정말 가은 씨로 정한 거야?”이서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네.”사실 그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고르고 싶지도 않았다.승리한 심가은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들었지, 이서 씨가 나를 택했어, 당신이 졌다고!”장희령은 손을 꽉 잡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네가 이겼어.”장희령의 말에 심가은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빨리 패배를 인정할 줄은 생각지도
이렇게 된 이상 이서도 장희령과 계속 얽히고 싶지 않았다.“희령 씨가 나랑 갑자기 친한 척하는 거, 그 이유를 난 잘 알고 있어요.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확답을 듣고 싶다면 해드리죠. 우린 힘들 거 같아요!”장희령은 안색이 변했다.“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나랑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그건 그들 사정이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말을 마치고 이서는 옆에서 좋은 구경거리 감상하고 있는 심가은에게 말했다.“우리 가자.”심가은은 앞으로 나가 득의양양하게 이서의 팔을 잡고 뒤돌아서서 장희령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속이 정말 시원했다.장희령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빌딩을 나서자마자 심가은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서 씨, 방금 너무 멋졌어! 장희령은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 줄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자기밖에 몰라!”이서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굳이 두 사람의 원한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레스토랑은 이미 예약해 뒀으니, 거기로 가자.”“그래, 출발!”심가은은 완전히 흥분된 상태였다.장희령이 다른 사람 앞에서 코가 납작해진 걸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너무 통쾌했다. 이따가 축하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나?’ 장희령이 생각했다.레스토랑에 도착한 이서는 화장실에 가는 틈을 타 하이먼 스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우리 레스토랑에 도착했어요.”[알았어, 사람은 다 섭외했으니, 넌 밥 먹고 자연스럽게 가면 되.]이서는 ‘응’ 하고 전화를 끊었다.밖으로 나간 지 몇 걸음 안 되어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확인해 보니, 낯선 번호였다. 게다가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머뭇거리며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는 조용했다.“여보세요?” 이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여전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안 들리세요? 말씀 없으시면 전화 끊겠습니다…”이서가 전화를 끊으려 했다.저쪽에서 깨끗하고 맑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야, 나야.]이서는 소지엽의 목소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