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누군가에 의해 이하영의 턱이 들어올려졌다.이하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통증이 아래턱뼈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기 때문이다.뒤틀림 속에서 이하영은 마침내 지환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당신, 대체 누구야?”이하영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당신, 내가 누군지, 내 남편이 누군지 알아? 빨리 나를 풀어주지 않으면 당신이 죽어 묻힐 곳이 없게 할 거야.”이하영의 옆에 앉아 있던 조용환이 공포에 질려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이내 날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내 옆에 앉으신 분들은 민씨 가문의 사모님과 하씨 가문의 안주인이시다. 하씨 가문 알지? H 국 제1의 명문가.”“게다가 이 여자분은 하은철 도련님의 부인도 아닌, 하은철 도련님의 작은 아버지의 부인이시지.”“외국에 계신 그 하은철 도련님의 작은 아버지.”“당신, 하은철 도련님의 작은 아버지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 줄 알아?”“그분께서는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불과 몇 년 만에 그곳 제일의 YS 그룹을 설립하셨어!”“이 사람들 중 당신의 미움을 살만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지.”“그러니, 빨리 우리를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으면…….”지환의 시선이 조용환에게 떨어졌다.지환의 시선은 음산하고 무서웠다.조용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별장에 들어선 상언은 조용환의 반복적인 고함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지환아, 빨리 너가 누군지 알려주고, 저들이 눈 감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어.”“우…… 우릴 죽일 건가?”이하영이 창백해진 얼굴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내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가만히 있어!”이천이 이하영의 의자를 밟았다.“아직도 민씨 가문이 예전과 같은 줄 알아? 더 이상 H국 4대 가문에 민씨 가문은 없을 거야.”“뭐라고?”이천이 이하영을 향해 말했다.“오늘 하 대표님께서 민씨 가문의 잔치에 참석하셔서 앞으로 민씨 가문과의 모든 협력을 끊겠다고 하셨어. 또, 민씨 가문과 협력하려는
이하영 역시 자세를 고쳐잡고 송구스러워하며 말했다.“하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전에 뵌 적이 없다 보니 하 대표님이신 줄 몰라뵀습니다. 모든 게 다 오해입니다. 저희 좀 풀어주시죠.”지환이 차갑게 웃었다.“당신들은 이서를 죽일 뻔했어. 내가 당신들을 살아서 나가게 둘 것 같아?”이하영은 마음속에 한기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하영은 왜 지환이 이서를 이토록 아끼는 것인지 이해하지는 못했다.‘어르신께서 중시하시는 손자며느리가 아니던가?’“하 대표님,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하 어르신, 즉 대표님의 작은 아버지께서 윤이서를 대단히 아끼실지라도, 그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하씨 가문과 아무런 관련도 없지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닥터 이에게 물어보시죠. 닥터 이, 그렇죠? 윤이서는 이미 결혼했잖아요.”상언은 이하영의 무식한 모습에 크게 웃고 싶었다.“이서정이 아직도 윤 대표님의 남편이 누군지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군요.”이하영이 이서정을 바라보았고 이서정이 몸을 심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서정아, 윤이서의 남편이 누군지 알아?”이서정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얼른 말해!” 이하영이 목소리를 높였다.“이렇게 중요한걸, 왜 진작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이서정은 죽도록 입술을 깨문 탓에 비릿한 피비린내가 목구멍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하영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서정!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이천과 상언이 소리 없이 눈을 마주쳤다.잠시 후 이천은 시선을 돌려 이하영을 향해 말했다.“이서정 씨가 입을 열지 않으니, 제가 알려드리죠.”이하영과 조용환의 시선이 일제히 이천에게 떨어졌다.“윤 대표님의 남편분은 바로…… 하 대표님이십니다.”이천의 말을 들은 세 세사람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머리가 새하얘해졌다.이하영과 조용환은 완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사실, 이서정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었었다.
이 광경에 놀란 이하영이 비명을 질렀다.지환은 냉담하게 바닥에 떨어진 닭털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천천히 별장을 빠져나왔다.상언 또한 지환을 따라 별장을 나섰다.별장의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공기가 맑아졌다.상언이 지환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네주었다.“이제, 저 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지환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담배를 코끝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경찰서에 보내야 할 것은 경찰서에 보내고, 묻어야 할 것은 묻고, 이서정은…… 이서정은 남겨두자.”“왜, 아까워?” 상언이 지환에게 농담을 던졌다.지환이 골치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늙은 여우가 내가 이서의 남편이라고 의심하고 있어.”‘어르신?'“응.”상언이 긴장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만약 어르신께서 일의 진상을 알게 되신다면, 이서에게 네가 누군지 밝히실 게 분명해. 그때는…….”이제 겨우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갔을 뿐이었다.“그러니까 이서정은 남겨둬야지.”지환이 말했다.“이서정을 남겨둬서 뭘 하려고?”“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지환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뒷일은 너한테 맡길게. 나 먼저 간다.”“너, 정말 쏜살같구나?”상언이 지환을 놀렸다.지환은 상언을 향해 담배를 던진 후, 차에 올랐다.그렇게 차량은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같은 시각, 병원 내부.눈을 뜬 이서는 지환이 곁을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서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은 뜻밖에도…….“공주님, 공주님 곁을 지킨 게 저희라서 영 실망하신 것 같네요?”하나가 말했다. 이서가 나나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여기가 어디야?”“어쭈, 방금 네 두 눈에서 실망감을 봤어.”하나가 이서의 곁으로 다가갔다.“첫눈에 본 사람이 형부가 아니라서 그런 거지?”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으니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이서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하나가 즉시 긴장하며 물었다.“왜? 어디 불편해? 의
“어쨌든 지환 씨는 하은철의 작은 아버지도 아니잖아.”“그렇지?”이서가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내 불안하다는 듯 다시 일어서려 했다.다행히도 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기뻐하며 말했다.“봐, 곧 돌아오실 거라고 했지?”하나는 문을 향해 말했다.“노크만 하지 마시고 얼른 들어오세요. 이서가 형부를 보고 싶어 안달이에요.”문을 밀고 들어온 은철은 하나의 말에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하지만 동시에, 이서를 본 은철의 볼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이서를 찾아온 사람이 지환이 아닌 은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왜 당신이죠?”하나는 어이가 없었다.은철은 하나의 말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이서만을 바라보았다.오랜 시간 이서를 만나지 못했던 은철이었다.은철은 오래간만에 마주한 이서의 모습에 다시금 반할 것만 같았다.나른해 보이는 이서였지만 결코 기운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병약한 여인의 아름다움까지 느껴졌다.‘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아.’이런 이서의 모습은 은철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이하영이 사람을 시켜 널 죽이려 했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은철은 자신도 모르게 이서의 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은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던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하씨 가문 때문이 아니었다.하나가 이서와 은철을 번갈아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하은철 도련님, 안 보이세요? 이서는 대표님을 전혀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은철은 하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은철이 고개를 들어 하나와 나나를 향해 말했다.“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이서랑 둘이서 대화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하나가 막 입을 떼려던 찰나, 이서가 말했다.“하나야, 나나야, 너희들 일도 해야 하잖아. 이만 돌아가 봐. 난 괜찮아.”이서는 특히 나나가 걱정이 되었다.나나는 하루 온종일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대스타였다. ‘나나가 나를 만나느라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큰
이서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야, 아님, 신분도 지위도 너보다 못한 나한테 졌다는 게 분한 거야?”은철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 “그만해, 윤이서! 난 오늘 그저 좋은 마음으로 널 보러 온 거야. 교훈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봤으니 그만 돌아가.”평소의 은철이었다면 곧바로 병실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그러나 오늘은 두 다리가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한 걸음도 떼지 않았다.몇 차례 숨을 깊게 들이마신 은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너한테 진 건 확실한 사실이야. 근데, 서로 칼까지 겨눌 필요는 없잖아? 우리는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어.”이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은철은 이를 보고 매섭게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친구 단계를 건너뛰고 부부가 될 생각이야?”“…….”“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은철이 눈썹을 비틀며 흥정했다.“수정이 일 먼저 해결해야 해.”이서가 눈을 떴다.“하은철,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무슨 뜻이야?” 은철이 화가 나서 물었다.“난 내 남편하고 사이가 아주 좋아. 이혼할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이지.”“그러니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난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너랑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어.”은철이 오랫동안 눈썹을 비틀다가 풀었다.“윤이서, 이제 그만 네 결혼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해. 부끄러워 말고.”“네 남편이 쓸모없는 병신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네 남편이 병신이 아니었다면, 네가 지금 여기에 누워 있었을까?”이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나가줘.”이서가 문을 가리켰다.은철은 아예 침대 옆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눈썹을 찡그린 채 이서를 빤히 바라보았다.“이서야, 네 인생은 너 자신의 것이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네 인생을 멋대로 휘두르게 두지 마.”“네 남편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이서가 되받아쳤다.“그러는 너는, 너는 어울려?”은철이
말을 마친 이서가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높게 치켜든 채 은철을 바라보았다.“이제 알겠니? 내 남편은 내 마음속의 영웅이야.”“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사이는 너무도 좋아, 이렇게 좋은 건, 너 같은 사람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야.”“그러니 부탁 하나만 하자. 앞으로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이간질하지 마.”“네 입만 아플 뿐이야.”은철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한참 후에야 은철이 한숨을 내쉬었다.“이서야, 내가 말한 건 다 너를 위해서야.”“어쨌든, 네가 똑바로 생각해서 집착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은철이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았다.“맞다, 뭐 하나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네.”이서가 물었다.“무슨 말이야?”“요즘 할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셔. 시간이 있으면 많이 뵈러 가.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니, 오늘 일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붉은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이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어르신 뵈러 갈게.”은철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이서의 말이 달갑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몸을 돌려 병실을 떠나는 은철이었다.은철이 엘리베이터 입구에 다다르자, 복도 반대편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지환이 보였다.지환을 본 은철은 매우 놀랐다.“작은 아빠, 왜 여기 계세요?”“이서 보러 왔어.”지환의 말투와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 오직 두 눈만이 숨김이 없었다.기분이 가라앉은 은철이 지환에게 말했다.“작은 아빠, 저랑 좀 걸으실래요?”지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읊조리듯 대답했다.“응.”두 사람은 함께 화원에 도착했다.은철이 혼란스럽다는 듯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말했다. “작은 아빠, 저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이서와 함께하라고 하셨을 때는 제가 뜻이 없었어요.”“그런데 지금은 이서가 다른 남자와 함께한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너무도 불편해요.”지환이 말했다.“사람은 항상
병원을 떠난 후에도 은철의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은철은 중요한 것이라도 잃어버린 듯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으나,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감을 도저히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같은 시각, 병실.“여보.”지환이 병실의 문을 열었다.인기척을 들은 이서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왔어? 어디 갔었어? 다치지는 않았지?”이서의 연이은 세 가지 질문에 지환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지환은 침대 옆에 앉아 한 손으로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겨우 잠깐 못 봤을 뿐인데, 그렇게 보고 싶었어?”환자복이 얇았던 탓에 지환의 뜨거운 손바닥이 곧바로 이서의 허리에 닿는 듯했다.지환의 뜨겁고 큰 손바닥이 이서를 화끈거리게 했다.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이서가 고개를 숙인 채 수줍어하며 말했다.“누가 보고 싶었다고 그래?”“아직도 우기는 거야? 누가 그러던데, 우리 두 사람의 사이는 너무도 좋아. 어떻게 해도 갈라놓을 수 없어.”이서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마치 저녁노을이 이서의 볼에 뜬 듯했다. 발그레한 것이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지환이 참지 못하고 이서의 볼을 살짝 깨물었다.화가 난 이서가 주먹을 들어 지환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다 들었어?”“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지환이 이서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우리 마누라한테 내가 그런 의미인 줄은 몰랐네.”“까불지 마.”이서가 지환의 입맞춤을 피했다.“지난번 일, 아직 용서하지는 않았어. 확실히…… 지환 씨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슬프게 했으니, 나도 쉽게 풀지는 않을 거야.”지환은 두 손을 이서의 양 볼에 올린 채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코끝을 이서의 코 끝에 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벌 줄 생각이야?”지환의 입에서 나온 벌이라는 한 글자가 이서에게는 형용할 수조차 없을 만큼 온화하게 들렸다. 이서가 침을 삼켰다. “여보…….” 지환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이서의 붉은 입
“항상 여기 있을게.”은철의 말에 스르륵 잠이 든 이서였다. 꿈속에서 이서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세 아이는 모두 대단히 예쁘고 잘생겨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세 아이들이 이서를 에워싼 채 말했다.“엄마.”이서는 자신을 엄마라고 칭하는 세 아이의 부름 속에서 차츰차츰 자신을 잃어갔다.이서가 행복에 젖어 있던 바로 그때, 순식간에 자라난 세 아이들의 손에는 칼이 한 자루씩 들려있었다. 칼끝은 모두 이서를 향해 있었으며, 귀엽던 세 아이의 얼굴 또한 악귀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 악귀들은 하나둘씩 떠들어댔다.“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잘못이야.”“엄마가 우리를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지.”“빨리 돈이나 주세요, 할머니!”이서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이서의 격렬한 동작을 느낀 지환 역시 눈을 뜨고 이서를 바라보았다.“여보, 왜 그래?”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냥 악몽을 좀 꿨어.”“물 한잔 떠 줄게.”지환이 말했다.“괜찮아.” 이서가 다급하게 지환의 손을 잡은 채 몸을 웅크려 지환의 품에서 자신을 녹이려 했다. 이렇게 해야만 몸 안의 한기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지환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여보, 나랑 하고 싶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이서가 무언가를 말을 하려던 찰나, 이서의 전화가 울렸다.낯선 번호인데다가,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이서가 머뭇거리며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 씨? 내가 막 새 작품을 다 썼는데, 한번 읽어보지 않을래요?”2초간 멍하니 있던 이서는 이내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하이먼 스웨이 여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계를 본 이서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있는 곳은 아직 낮이었다. 그래서 H국이 늦은 밤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성격은 대단히 시원시원했다.“물론이죠, 지금 바로 보내주시겠
같은 시각.호텔에 있던 이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그녀는 지환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일이 위험하다는 것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환이 그녀를 속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엎치락뒤치락하고도 잠이 오지 않자, 이서는 아예 일어나 물 한 잔을 따랐다. 물을 들이켜고 나니, 졸음은 완전히 달아났다. 그녀는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지환 씨가 외출할 때 따라갈걸 그랬나?’ ‘그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말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녀가 따라가는 것은 짐만 될 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한 이서의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다. 엉뚱한 생각의 폭을 넓혀가던 그녀는 갑자기 하경철을 떠올렸다.‘그러고 보니, 기억을 잃은 후로는 한 번도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 ‘할아버지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실까?’‘몸은 예전처럼 건강하실까?’ 이서는 아직도 하경철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하경철은 그녀가 하씨 가문으로 시집오기를 바라는 유일한 하씨 가문의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가장 잘해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하씨 가문에 시집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반목하여 원수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속상하셨을 거야.’‘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찾지 않으실 리 없어.’ 갑자기 이서의 머릿속에는 고택에 가서 하경철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싹텄다.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편, 병원에 있던 지환은 세 번째 상대를 만났다.괴력왕은 그를 속인 것이 아니었는데, 뒤의 상대는 확실히 갈수록 강력해졌다.“하지호 사장님의 수하입니다!”이천은 단번에 맞은편에 있는 네 사람을 알아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하지호의 수하였다. “고작 네 명만 보내다니, 우리 어둠의 세력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이 다소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천은 바로 설명했다.“절대 저 네 사람을 얕봐선 안 됩니다. 저 사람들은
큰 소리와 함께 목에 꽂힌 칼 두 자루가 ‘우지끈’ 소리를 냈고, 반동으로 인해 목에서 빠져나왔다.이천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지환은 일찍이 대책이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칼을 단단히 붙들었고, 칼끝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바닥에 단단히 꽂아 내렸다. 그 칼을 바닥에 깊은 흔적을 만든 후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모처럼 낭패한 지환을 보며, 괴력왕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하 대표님, 사업 수완은 뛰어나실지 몰라도, 힘으로는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 모두를 부른다고 해도 저를 이길 순 없죠.” “하지만 지금은 열댓 명만 있을 뿐이고요.” “비록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와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지인으로서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를 이기지 못하신다면, 제 뒤에 남은 사람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겁니다.”그 순간, 눈을 부릅뜬 괴력왕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뒤통수를 눌렀다. 엄청난 통증을 느낀 그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끈적끈적한 느낌은 현기증을 불러왔다. 그는 희미한 눈으로 어둠의 세력 조직원 몇 명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이 지환과 이야기하는 그를 기습한 것이었다.괴력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환을 보았고, ‘쿵’하는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제... 제 약점이 뒤통수라는 걸 어떻게 아셨죠?” 이 비밀은 그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이었다. 지환이 천천히 일어섰다.“벌써 잊은 겁니까? 난 몇 번이고 당신을 찾아가 산에서 나오라고 부탁했었는데요.” 괴력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환을 보며 말했다.“그 몇 번의 짧은 만남으로 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까?” 지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괴력왕이 고개를 들어 ‘하하’ 웃었다.“하하하, 역시 하 대표님이군요. 저는 온몸에서 힘이 넘치지만, 머리는 좋지 않아요.” “오늘밤, 전력을 다해야만 했던 것처럼요.” 괴력왕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