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가 인터넷 검색창의 열어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그러고는 인터넷에 게시되어 있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한 기사에 따르면, 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젊었을 적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딸이 유괴된 이후,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였다. 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유명인이 되어 자신을 알아본 딸이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 계속해서 여러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이서의 눈을 사로잡는 기사의 제목이 있었다. [하이먼 스웨이, 일찍이 아이를 잃은 것도 모자라 다른 여자와 눈이 맞은 남편에게 버림받다.]옷을 걷고 기사를 보던 이서의 마음속에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를 향한 안타까움이 솟아났다. ‘날카롭게만 보였던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께 이런 비참한 과거가 있었다니…….’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경험과 하이먼 스웨이 여사를 함께 연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죄송합니다.]이서가 타이핑을 망설였다. [제가 작가님의 아픔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한참 후에야 답장을 보내왔는데, 아마 감정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괜찮아요, 제가 오랫동안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던 탓인걸요.]이서는 다시 한번 문자로 사과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답장을 보내왔다.[방금 시간을 찾아보니, H국은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더군요. 왜 아직도 깨어 있는 거예요? 혹시, 제가 방해한 건가요?] 악마라고 불리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가 이리도 친절한 인사를 건네다니.이서는 괜스레 웃음이 났다.이 거물이 소문처럼 무서운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서를 대할 때만큼은 매우 친절하고 부드러웠다.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처럼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시차를 알아차렸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사실, 이서는 하이먼 스웨이 여사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지환은 이서를 손쉽게 들어올렸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누르는 지환의 힘때문에 결국 이서는 지환에게 징징거리며 앙탈을 부렸다.이서의 어떠한 저항도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저항은 지환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두 사람은 엎치락 뒤치락 쉴새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다가 다음날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이서는 지환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들었다.……이서는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어 금방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축하 겸 몸보신을 위해 임하나는 이서에게 함께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이서는 서나나, 자신의 비서인 심소희, 기사인 임현태까지 그 자리에 초대했다.일곱 명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은 큰 룸에 모였다.메뉴를 고르고 주문할 때 이서는 임하나가 술을 열 두병씩이나 주문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도수가 상당히 높은 소주로.이서는 하나를 보며 물었다.“하나 너 이거 잘못 주문한 거 아니야?”하나가 이서에게 눈을 살짝 흘기며 말했다.“아니거든?”“이렇게 많이 주문해서 마시면, 내가 알코올 중독 될까봐 그래?”하나는 이서의 목을 팔로 껴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같이 기쁜 날, 맘 편히 마시자. 내 평소 주량 넘기지는 않을게.”술을 많이 마시지 않겠다는 하나의 말이 썩 미덥지는 않았지만 이서는 그냥 나머지 음식을 마저 주문했다. 음식 주문이 끝나자 지환의 친구 이상언이 문을 밀고 느릿느릿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러 사람들이 이미 와있는 것을 보고 상언은 멋쩍게 사과했다.“늦어서 죄송합니다. 막 나오려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으며 상언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했다.상언은 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한사람씩 눈인사를 건네다 지환을 발견했다. 지환 옆에는 임현태가 앉아있었다.상언은 현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현태 씨, 이 자리는…….”현태는 그닥 눈치가 없는 편이라 상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상언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네, 이 선생님, 하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한쪽에서는 소희가 나나의 곁에 앉아 내내 자기가 궁금했던 연예계의 이런 저런 뒷담화를 꼬치꼬치 캐물어보고 있었다.나나는 소희의 계속되는 질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면서 다른 연예인들의 스캔들보다는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 위주로 대화했다.하나는 옆에 앉은 현태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현태는 술이 센 편이라 똑같이 마시더라도 하나의 얼굴에 먼저 취기가 벌겋게 올라왔다.이서는 상언이 하나와 현태의 대화에 끼려다 몇 번이나 멈칫멈칫 주저하는 것을 눈치챘다.이서가 지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이 선생님이 하나에게 여전히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안 그런 척 숨기고 계시네, 참 안타깝다.”지환이 이서에게 샤브샤브 국물 속 양고기 한 점을 집어 건넸다.“그냥 내버려둬.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 일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지환씨는 뭐 나이가 얼마나 많다고 아주 어른처럼 그렇게 말해?”“저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이가 많다는 게 아니고, 성숙한 거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잖아.”“에효, 또 시작이네. 칭찬은 남이 해주는 거야. 겸손하세요, 하지환 씨!”이서와 지환이 서로 속삭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가 다가왔다.“정다운 두 분이 정답게 대화 다 하셨으면 이제 이서는 제가 좀 빌려갈…….”누가 봐도 만취상태인 임하나는 혀까지 꼬여 무슨 말 하는지도 알아듣기 힘든 상태였다.“하나, 너 벌써 많이 취했다.”“아니거든? 한병밖에 안마셨는데 설마 벌써 취하겠어?”임하나는 이서의 팔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나 화장실 좀 같이 가줘.”“그래.”이서 역시 하나를 화장실에 혼자 보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이서는 소희를 불렀다.“소희 씨, 이리 와서 같이 하나 좀 부축해줘. 화장실 같이 다녀오자.”“그래요.”소희가 곧바로 와서 함께 하나의 다른 쪽 팔을 잡았다.이서와 소희는 비틀거리며 힘겹게 하나를 부축하여 화장실로 걸어
“이 선생님 때문은 아니야.”소희는 놀라워하며 말했다.“그럼 하나 언니가…… 이 선생님을 찬 거예요?”“그런 거 아니라니깐.”이서는 소희에게 하나의 집안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소희랑 아무리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해도 다른 친구의 비밀까지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아니면 왜 그러는 건데요?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왜 함께 할 수 없는 거죠”소희는 의아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만약 현태오빠도 나를 좋아했다면 나는 아마 이 선생님 대신 현태 오빠를 선택했을 거야.’이서는 소희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으이구, 이 바보야. 너도 나중에 현태 씨랑 사귀게 되면 사랑이 동화 속 이야기같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될거야.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일들이 있을 거고,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소희는 이서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연애하기 겁나요.”“하하하, 정말? 너 현태 씨랑 사귀고 싶은 거 아니야?”“언니도 참!”소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을 붉혔다.“진짜로 말해봐. 두 사람 지금 어떻게 된 건데?”소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뭐가 어떻게 될 것도 없어요. 현태 오빠 뇌구조는 보통 사람과 차원이 달라요. 매일 우리집에 와서 같이 밥 먹고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이 내 새 남친인 줄 알았대요. 근데 그 때마다 사람들한테 굳이 오빠 동생 사이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다들 나한테 덩치 좋은 오빠가 있는 줄 안다니까요. 내 손가락 하나 안건드려요.”여기까지 말하면서 소희는 심지어 자랑스러운 표정까지 지었다.“그런 건 좋은 거 아니야?”이서가 말하자 소희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얼굴이 빨개져서 푸념을 늘어놓았다.“좋긴 뭐가 좋아요. 널린 게 오빤데. 고향집에 가면 오빠가 열댓명이예요. 오빠 하나 더해서 뭐에 쓰게요.”“그럼, 내가 너 도와줄 테니까 현태씨 좀 테스트해보자.” “어떤 테스트요?”소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너는 그냥 지켜보기만 해. 근데 미리 약속해야돼. 만약에
화장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상언은 조금도 망설임없이 바로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었다.“무슨 일이예요?”화장실 안쪽에 쓰러져 있는 하나를 보고 상언은 잔뜩 긴장한 채 하나 쪽으로 다가갔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척도 없어서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하나가 이미 기절했더라고요. 너무 취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상언은 하나를 제 등에 업고 말했다.“아무래도 제가 하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요.”“저도 같이 갈게요.”이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언은 하나를 업고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이서는 눈이 휘둥그레진 소희를 붙잡고 부탁했다.“나는 이 선생님이랑 함께 하나 데리고 병원에 갈거니까 네가 나 대신 다른 사람들 배웅 좀 해줘.”“그럴게요.”소희가 대답했다.이서는 상언의 빠른 걸음에 맞춰 뒤따라 빠르게 움직였다.건물 1층 입구에 도착하자 이서가 말했다.“제가 운전할게요.”상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는 차를 몰고 상언의 곁에 도착했다.이서는 자기 차를 몰고 와서 상언의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얼른 타세요.”상언이 뒷좌석 차문을 열고 하나를 내려놓고 자신도 곧바로 옆좌석에 올라탔다.차에 시동이 걸렸다.상언은 뒷좌석에서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하나의 손과 발을 계속해서 주물렀다.이서가 백미러로 상언과 하나의 모습을 흘끔 보고는 안심하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상언이 의사이기 때문에 이서는 상언을 100% 믿고 맡길 수 있었다.병원 이름이 저 멀리서 보였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 뒷좌석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내가 왜 차에 타고 있어? 나는 지금 식당에서 샤브샤브 먹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서가 뒤돌아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하나야, 깨어났구나!”하나는 일어나 앉았지만 아직 정신이 덜 든 얼굴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이서야, 나 왜 차에 있는 거야?”하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기 옆에 상언이 앉아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선생님…… 이제 더 이상 제 일에 신경쓰지 않기로 하셨잖아요.”하나는 고개를 들어 상언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근데 왜 제가 기절했을 때 …….”상언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우리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친구 아닌가요? 친구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당연히 도와주는 거죠.”“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친구인 거네요.”하나는 상언의 눈을 보며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말했다.상언은 하나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그렇죠.”하나는 기운내서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확실히 하는 게 저도 좋아요. 연인사이보다는 친구사이가 더 오래 가기 마련이거든요.”“나도 같은 생각입니다.”상언이 창밖을 보면서 대답했다.“그럼 이제 우리 다시 돌아가도 되는 거죠?”“이서씨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물어봅시다.”상언은 통화를 끝내고 온 이서를 돌아보며 말했다.이서는 차에 오르며 하나와 상언에게 말했다.“지환씨가 좀 있다가 저 픽업하러 올거래요. 두 사람 중 누가 이 차 운전해서 돌아갈 사람?”하나와 상언은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도 이번에는 곧장 피하지는 않았다.“내가 할게. 이번 일은 다 나 때문인 것 같으니까.”“하나 너는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놓고 운전까지 하겠다고? 내 생각에 너는 한번 병원 들어가서 이것 저것 검사 좀 받아봐야 할 것 같다.”하나는 이서의 팩트로 때리는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러면 운전할 사람 저네요.”상언이 마치 학생인 듯한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이서는 하나를 돌아보며 물었다.“어떻게 갈거야? 너 정 불편하면 나랑 지환씨가 차로 너 데려다 줄 수도 있어.”“됐어. 내가 그 자리에 왜 끼냐? 커플 사이에서 들러리 안합니다요. 있다가 나 혼자 택시로 가면 돼.”하나는 뒷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말하자 이서가 대답했다.“이 동네 택시 잘 안잡혀.”“내가 가는 길에 하나씨 내려줄게요.”이서가 눈을 흘기며 웃었다.“그러면 되겠다. 이 선생님이 하나를 데려다 주시면 저도 마음이 놓이
“콰당!”상언의 품으로 넘어진 하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잠시 후 하나가 입을 열었다.“이런 건…… 친구가 해줄 만한 일은 아닌데…….”“그럼요.”상언은 하나의 여우 같은 눈매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친구는 다른 친구의 옷 속에 손 넣는 일 따위도 하지 않죠.”하나는 피식 웃으며 상언의 몸에 지탱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두 팔은 여전히 상언의 목에 두르고 있는 상태였다.“라면 먹고 갈래요?”하나가 몸을 밀착해오자 상언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상언과 하나의 관계는 바로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지나간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다만, 지난번에 먼저 질문한 사람은 상언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나가 질문했다.“그래요.”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상언의 입이 먼저 하나의 제안을 승낙해 버렸다.하나가 자신의 입술을 상언의 입에 갖다 대자 뜨거운 입김을 느끼기 시작했다.“그럼 같이 올라가요.”두 사람은 함께 하나의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상언은 하나의 허리를 깊게 껴안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하나의 붉은 입술에 마침내 키스하기 시작했다.하나의 달콤한 입술에 상언은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자신을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하나는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들고 열정적으로 상언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하나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상언과 하나는 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집 문 앞까지 왔다.하나가 한 손으로는 상언을 끌어안은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현관 열쇠를 꺼내 바로 문을 열었다.집 안에 들어서자 상언이 벽을 더듬어 불을 켜려고 했지만 하나가 상언의 손을 잡았다.“불 켜지 마세요.”상언은 하나의 입술에 계속 키스를 퍼부으며 말했다.“알았어요.”어둠은 늘 모든 이들에게 사랑 앞에서 무모해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두 사람은 이 어둠 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예솔은 지호의 손을 인정사정 없이 뿌리쳤다.“오빠 같은 괴물을 도울 순 없어요.”지호의 얼굴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하지만 금새 표정을 바꿔 봄바람처럼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생각할 시간을 줄게. 나랑 힘을 합칠 것인지 아니면 쭉 저런 비뚤어진 인간들 편에 설건지.”예솔은 파르르 떨릴 정도로 두 주먹을 단단히 쥐고 CCTV 속에서 울고 있는 이서정을 보며 심란해했다.이서정은 민씨 집안의 도움으로 이서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서정의 행동은 이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서에게 조금도 타격을 입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덕분에 지환과 이서의 감정이 급속도로 깊어지게 되었다.예솔은 이서와 지환이 오늘 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파티하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분통을 터뜨리며 자신이 직접 가서 이서를 죽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예솔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지환는 예솔에게 도저히 어길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예솔이 화영에 나타난다면 아마 박씨 집안과 하씨 집안의 관계는 그대로 끝나버릴 것이다.‘그렇게 되면 지환 씨와는 이대로 끝인 거잖아.’예솔은 몇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지호를 비웃듯 바라보았다.“맘 접으세요. 저는 앞으로도 오빠랑 같이 편먹을 생각 없으니까요.”이 말을 남기고 예솔은 밖으로 나갔다.지호는 밖으로 나가는 예솔의 뒷모습을 보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웃기 시작했다.“예솔이 너 혼자 힘으로는 윤이서를 상대할 수 없는데 그걸 모르네.”지호가 서류 위에 놓인 이서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지호는 이를 더 악 물었다.‘평소에는 여자에 별 관심도 없던 네가 지금 이 사진 속 여자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다는 거지? 그럼 그게 네 약점이 되는 거고, 나는 그걸 이용할 수 있는 거고.’꿈 속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이서가 갑자기 눈을 떴다. 밖은 여전히 날이 새기 전이었다.“무슨 일이야?”이서가 눈을 뜨자마자 지환이 함께 잠에서 깨며 물었다.“별일 아니에요.”그녀는 꿈 속에서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