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환은 냉정하게 분석했다.“전에도 말했지만, 너랑 나는 상황이 달라. 이서와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과감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지만, 하나 씨는 그렇지 않아.”“어렸을 때 가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사랑을 믿지 않아. 그런 사람이 어떻게 네 사랑을 받아줄 수 있겠어?”“너도 예전에는 사랑을 믿지 않았잖아.”“난 이서가 믿게 만들었지.”“어떻게 믿게 했는데?”지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자신과 이서는 많은 것을 겪으며, 일련의 사건들이 사슬로 묶인 듯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줬다. 하지만 그에게 언제부터 사랑을 믿었느냐고 물으면, 지환은 대답할 수 없었다.“방법을 똑같이 해도 소용없어. 정말 하나 씨를 믿게 만들고 싶다면, 심리치료를 받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밖에 없어. 하지만 치료할 수 있는지, 언제 나을지 알 수 없어. 그러니 친구로서 포기하라는 거야.”이상언의 두 눈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정말 포기하는 것만이 최선일까?”지환은 침묵했다.그는 조언만 해줬을 뿐, 나머지 길은 스스로 걸어가야 했다.상언은 소파에 앉아 말을 이어갔다.“근데 포기가 안 돼.”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의학 공부보다 더 좋아했다.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상언을 바라보았다.……이서정의 아파트.문밖에서 초인종이 울렸을 때, 서정은 무아지경에 빠져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며칠 전 이천이 집에 데려다준 이후로는 문이 잠겨서 외출하지 못하고 있었다.매니저가 한 번 보러 왔다가 서둘러 떠난 적이 있었다.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초인종이 한참 동안 계속 울리고 나서야, 문득 밖에 있는 사람이 이하영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정은 그 정체불명의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한 후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당시 하영은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기를 잃었던 서정의 눈동
이하영은 눈을 매섭게 떴다. “나라고 걔가 죽기를 바라지 않겠어? 두 번이나 연속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걔가 전부 피해 갔어.”그 일을 떠올리니 이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사모님, 이걸 제가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얘기해.”“전에 그 여자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모님이 보낸 사람들이 무능했기 때문이에요.”“너…….”“사모님, 일단 화내지 말고 진정하세요.”이서정이 말했다.“만약 민씨 가문 사람들을 보냈다면 실수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을 겁니다.”이하영이 몸을 비틀거렸다.“민씨 집안의 힘을 빌리라는 말이니?”“네, 사모님. 따님의 원수를 갚고 싶지 않으세요?”이하영은 소파에 앉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히 우리 딸 원수를 갚고 싶지만, 그 양반이 이미 네 남편과 계약을 맺었어. 두 집안이 손을 잡은 이상 다시는 윤이서를 괴롭힐 수 없어.”서정은 가슴이 철렁했다.하지환이 민씨 집안과 손잡은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주먹을 꽉 쥔 서정의 마음속에 씁쓸함이 밀려왔다.하지환은 윤이서를 정말 사랑했다!서정은 한참을 애쓰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끝내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괜찮지 않나요? 게다가 저희 남편 곁에는 저도 있으니까, 설령 일이 들통나더라도 우리가 함께 감당하면 되지 않겠어요?”“그런가?” 이하영은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사실 그녀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서정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이제 서정이 감당하겠다고 했으니 당장 윤이서를 처리하고 싶었다.“물론이죠.” 이하영이 동요하는 것을 본 서정은 더더욱 밀어붙였다.“게다가 이번엔 제가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웠으니까 꼭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알았으니까 빨리 말해봐.” 이하영은 조급하게 재촉했다.그 시각, 윤이서의 집.드디어 이상언과 임하나가 돌아갔다.윤이서가 뒤돌아서는 순간 하지환이 그녀를 껴안았다.“이거 놔요…….” 이서는 수줍게 지환
긴장한 그의 표정을 보며, 윤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죠. 우리 다 어른이잖아요,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하지.”하지환의 표정은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는 이서의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그런 생각 하지 마, 알겠어?” “앗…….” 이서는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무슨 사람이 개도 아니고, 왜 물어요?”하지만 지환의 눈빛은 여전히 이서를 향해 불타오르고 있었다.“약속해, 이서야.”이서는 그의 진지한 모습에 멈칫하다, 입꼬리를 올리며 지환의 목을 두 팔로 감쌌다. “지환 씨, 당신이 날 제일 잘 알지 않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아닌지, 지환 씨가 제일 잘 알 텐데.”지환은 여전히 이서를 노려보았고, 그 강렬한 기운에 이서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여보!”이를 본 이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놀린 거지.”그제야 지환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그는 이서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그제야 포식한 짐승처럼 만족스러운 듯 이서를 놓아주었다.“잘 자.”이서가 투덜거렸다.“잘 자라니, 어이가 없네.”하지만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몇 달 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이었다.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지환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지환 쪽으로 기울어졌다.남자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이서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젠장, 늦었어!”시간을 보고 당황한 이서가 얼른 침대에서 뛰어내려 옷을 찾으려는데, 그대로 덥석 손목이 잡혔다.지환은 이불 속에서 두 눈을 번뜩였다.“오늘은 그냥 쉬어.”“안 돼요, 이미 조씨 그룹 인수 건에 대해 지시했단…….”이서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고개를 들자 환하게 웃고 있는 지환이 보였다.말하지 않아도 이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지환이 먼저 말했다.“여보, 싸웠을 때도 당신 마음속
윤이서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지환은 이천으로부터 민호일이 자신을 만나러 회사에 찾아왔다는 전화를 받았다.지환은 어제 전해 받은 정보를 떠올리며 두 눈이 차갑게 식었다.정보에 따르면 전에 튀어나와 이서를 겁탈하려 했던 사람들은 이하영 측에서 보낸 자들이며, 그동안 이하영과 이서정은 번갈아 윤이서를 자주 괴롭혀왔다.이는 애초에 민호일과 맺은 계약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동이었다.“지금 바로 갈게.”“네.”지환의 명확한 대답을 들은 이천은 전화를 끊고 대기실로 향했다.“민 대표님, 도련님께서 조금 있다가 오신답니다.”민호일은 기뻐하며 얼굴이 환해졌다.“잘됐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겠네.”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약 30분 후, 지환이 드디어 도착했다.큰 보폭으로 응접실에 들어선 지환은 민호일을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다가오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민호일이 지환에게 초대장을 건넸다. “하 대표님, 모레가 제 아내의 생일인데, 생일 파티에 대표님이 참석해 주시면 어떨까 하고 찾아왔습니다.”“생일이요?” 지환은 눈앞에 놓인 초대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초대장을 건네받아 몇 번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모레가 아내 분 생일이라고요?”“네, 그렇습니다.” 민호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기대에 찬 얼굴로 지환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참석하실 수 있으시죠?”“물론이죠.” 지환은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제가 특별히 아주 큰 선물도 준비하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민호일은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오시는 것만으로 저희 민씨 가문의 큰 영광입니다!”지환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파티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 기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워낙 겸손하신 분이라, 사람들 앞에 진짜 얼굴을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파티 당일
“아니거든요?” 소희는 이서의 손을 잡은 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저한테만 살짝 말해보세요. 사랑 없는 제가 질투 좀 해보게.”“현태 씨랑은 어떻게 돼 가?”이서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에이, 말도 마세요.” 임현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저를 여전히 여동생쯤으로 생각한다니까요.”“그런 강철 같은 남자라면, 공개만이 답일지도 몰라.”“됐어요.” “만약 현태 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데 제가 고백하는 거라면, 앞으로 회사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요?” 소희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아니면, 내가 언제 한번 현태 씨의 속마음 좀 알아봐 줄까?”“그거…… 별론데요?”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희가 대답했다.이서는 그런 소희가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럼 말고.” “언니!”“도대체, 알아봐달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이서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소희는 수줍게 이서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언니는 너무 짓궂어요.”“어서 일이나 하러 가자. 법률부가 가능한 한 빨리 인수 방안을 내놓게 해야 해. 내일 당장 조씨 그룹과 인수 건에 대해 논해야 하거든.”“그렇게 빨리요?”“질질 끌면 안 돼.”이서는 하루라도 빨리 지환이 하씨 가문과의 관계를 끊어내기를 바라고 있었다.‘이대로 가다가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지환 씨에게 또 무슨 일을 시킬지 몰라.’“네, 알겠어요.”소희가 자리를 떠나자 이서의 핸드폰이 울렸다.조용환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인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잠시 망설이던 이서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윤 대표님?]수화기 너머, 조용환의 목소리는 유난히 공손했다.“무슨 일이세요?”[저희 조씨 그룹을 인수하고 싶으시다는 말씀, 아직 유효한가요?]이서는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요.”[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 바로 인수
머지않아 조용환이 이서에게 시간과 장소를 보내왔다.[내일 오전 9시, 북쪽 교외의 찻집에서 뵙죠.]‘9시라…… 조금 이른데.’이는 늦어도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인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저녁 야근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이서는 내선전화를 들어 소희를 불러들였다.“소희 씨, 오늘 법률부가 고생 좀 해줘야겠어. 내일 오전 9시 전까지 인수 방안을 마련해야 해.”“이렇게 급하게요?”“응, 방금 조진명 씨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당장 내일 인수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셔. ““우리 쪽에서 먼저 인수 방안을 준비해 가면 걱정할 게 없을 거야.”“네, 법률부에는 제가 공지할게요.”소희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아냐, 내가 직접 갈게. 마침 전할 말도 있고 …… 시간 아끼자.”그렇게 이서는 법률부로 향했다.소희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정말…… 한가할 틈이 없네.’‘이제 막 화해했는데 또 일에 집중해야 한다니…….’ 이서는 법률부와 3시간이 넘는 토론하고서야 인수 방안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서는 마침내 기지개를 켰다.“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내일부터 이틀간 휴가를 드리죠. 푹 쉬세요.”“감사합니다. 대표님!”이서의 말에 모두가 약간의 활력을 되찾은 듯했다. 이서는 직원들 모두가 집으로 떠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이서가 사무실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 있는 지환이 보였다.이서는 멍하니 지환을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환은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퀭한 눈으로 이서를 향해 팔을 벌렸다.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지환을 지나쳤다.지환이 이서를 끌어안았다.“끝났어?”지환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를 오래 기다렸음이 틀림없었다.이서는 지환의 허벅지에 걸터 앉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언제 왔어?”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하지환이 걸어 들어왔다.“깼어?”“어디 갔었어?” 이서는 그제야 지환의 손에 들린 칫솔과 컵을 알아차렸다.하지환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왜 더 안 자?”“7시 넘었잖아. 곧 출발해야지.”지환은 이서에게 칫솔과 컵을 건네며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그저 짧은 입맞춤에 불과했다. 그러나 곧 지환의 입맞춤은 격해지기 시작했고, 이서는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지환은 한참이 흐른 후에야, 이서를 놓아주었다.이서는 부끄러워하며 지환의 가슴을 두드렸다.“뽀뽀 귀신이라도 들렸어?”“응.” 지환이 웃으며 답했다. 이서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싶었는지, 급히 칫솔과 컵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고 세면대로 향했다.이서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지환은 의자에 앉아 인수 방안을 훑고 있었다.이서는 그런 지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바로 이때, 지환이 차갑게 입을 뗐다. “당신 사무실 너무 작아. 쉴 곳도 잘 곳도 없잖아.”만두를 먹던 이서는 지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 내가 아직 전과 같은 줄 알아? 다시 여기 발붙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야.”“당신…… 윤 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이서는 만두를 내려놓고 뾰로통하게 입을 열었다.“지금의 윤 씨 가문이 예전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거, 잘 알아.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아직 멀었어.”“아냐,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위로할 필요없어.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니까.”지환은 미소를 띈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후, 이서는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다행히 회사에 갈아입을 옷이 있었던지라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문제는…….“당신 먼저 나가 있으면 안 돼?”이서는 갈아입을 옷을 손에 든 채,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지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지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여보, 난 이미 당신의 피부 결 하나하나를 다 알잖아.” “…….”재빨리
“정말 신경 안 써도 돼?”이서가 지환의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여전히 지환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응.”“그런데 왜 계속 전화가 와? 무슨 급한 일 생긴 거 아닐까?”“아니야.”지환의 말투는 너무도 담담했다.이서의 시선이 지환의 주머니로 향했다.주머니 속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내가 받을게.” 이서가 말했다.지환은 이서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이내 이서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외국에서 온 전화였다. 하지만 위에는 비고가 없었다.“여보세요?”이서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부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단번에 쎄함이 밀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지환이 녀석, 드디어 전화를 받는구나.]“안녕하세요, 저는 하지환 씨의 아내입니다.”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수씨구나, 반가워요.”‘제수씨?’이서가 지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지환 씨한테 형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야?’‘왜 여태 뵌 적이 없지?’ “안녕하세요. 아주버님.”[제수씨, 지환이 좀 바꿔주실래요?]이서가 망설이며 지환을 바라보자, 지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서의 손에 있는 전화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이야?” 지환이 눈살을 찌푸린 채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너, 내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서프라이즈 선물을 좀 보냈어. 지금…… 가고 있을 거야. 한 20분쯤 걸릴걸? 너의 사람들이 그걸 뜯는 순간 펑-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하하하…….]지환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네가 내 얼마 남지 않은 비즈니스까지 다 빼앗아 갔잖아. 나, 할 일이 없어. 너희들한테 서프라이즈 좀 주고 즐기는 수밖에.”지환은 앞쪽 길목을 살핀 후, 차갑게 말했다.“차 세우세요.”지환은 전화를 끊었다.이서는 이토록 사색이 된 지환의 모습은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