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거든요?” 소희는 이서의 손을 잡은 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저한테만 살짝 말해보세요. 사랑 없는 제가 질투 좀 해보게.”“현태 씨랑은 어떻게 돼 가?”이서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에이, 말도 마세요.” 임현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저를 여전히 여동생쯤으로 생각한다니까요.”“그런 강철 같은 남자라면, 공개만이 답일지도 몰라.”“됐어요.” “만약 현태 씨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데 제가 고백하는 거라면, 앞으로 회사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요?” 소희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아니면, 내가 언제 한번 현태 씨의 속마음 좀 알아봐 줄까?”“그거…… 별론데요?”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희가 대답했다.이서는 그런 소희가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럼 말고.” “언니!”“도대체, 알아봐달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이서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소희는 수줍게 이서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언니는 너무 짓궂어요.”“어서 일이나 하러 가자. 법률부가 가능한 한 빨리 인수 방안을 내놓게 해야 해. 내일 당장 조씨 그룹과 인수 건에 대해 논해야 하거든.”“그렇게 빨리요?”“질질 끌면 안 돼.”이서는 하루라도 빨리 지환이 하씨 가문과의 관계를 끊어내기를 바라고 있었다.‘이대로 가다가는 하은철의 둘째 삼촌이 지환 씨에게 또 무슨 일을 시킬지 몰라.’“네, 알겠어요.”소희가 자리를 떠나자 이서의 핸드폰이 울렸다.조용환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인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잠시 망설이던 이서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윤 대표님?]수화기 너머, 조용환의 목소리는 유난히 공손했다.“무슨 일이세요?”[저희 조씨 그룹을 인수하고 싶으시다는 말씀, 아직 유효한가요?]이서는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요.”[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 바로 인수
머지않아 조용환이 이서에게 시간과 장소를 보내왔다.[내일 오전 9시, 북쪽 교외의 찻집에서 뵙죠.]‘9시라…… 조금 이른데.’이는 늦어도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인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저녁 야근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이서는 내선전화를 들어 소희를 불러들였다.“소희 씨, 오늘 법률부가 고생 좀 해줘야겠어. 내일 오전 9시 전까지 인수 방안을 마련해야 해.”“이렇게 급하게요?”“응, 방금 조진명 씨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당장 내일 인수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셔. ““우리 쪽에서 먼저 인수 방안을 준비해 가면 걱정할 게 없을 거야.”“네, 법률부에는 제가 공지할게요.”소희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아냐, 내가 직접 갈게. 마침 전할 말도 있고 …… 시간 아끼자.”그렇게 이서는 법률부로 향했다.소희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정말…… 한가할 틈이 없네.’‘이제 막 화해했는데 또 일에 집중해야 한다니…….’ 이서는 법률부와 3시간이 넘는 토론하고서야 인수 방안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서는 마침내 기지개를 켰다.“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내일부터 이틀간 휴가를 드리죠. 푹 쉬세요.”“감사합니다. 대표님!”이서의 말에 모두가 약간의 활력을 되찾은 듯했다. 이서는 직원들 모두가 집으로 떠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이서가 사무실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 있는 지환이 보였다.이서는 멍하니 지환을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환은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퀭한 눈으로 이서를 향해 팔을 벌렸다.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지환을 지나쳤다.지환이 이서를 끌어안았다.“끝났어?”지환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를 오래 기다렸음이 틀림없었다.이서는 지환의 허벅지에 걸터 앉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언제 왔어?”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하지환이 걸어 들어왔다.“깼어?”“어디 갔었어?” 이서는 그제야 지환의 손에 들린 칫솔과 컵을 알아차렸다.하지환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왜 더 안 자?”“7시 넘었잖아. 곧 출발해야지.”지환은 이서에게 칫솔과 컵을 건네며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그저 짧은 입맞춤에 불과했다. 그러나 곧 지환의 입맞춤은 격해지기 시작했고, 이서는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지환은 한참이 흐른 후에야, 이서를 놓아주었다.이서는 부끄러워하며 지환의 가슴을 두드렸다.“뽀뽀 귀신이라도 들렸어?”“응.” 지환이 웃으며 답했다. 이서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싶었는지, 급히 칫솔과 컵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고 세면대로 향했다.이서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지환은 의자에 앉아 인수 방안을 훑고 있었다.이서는 그런 지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바로 이때, 지환이 차갑게 입을 뗐다. “당신 사무실 너무 작아. 쉴 곳도 잘 곳도 없잖아.”만두를 먹던 이서는 지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 내가 아직 전과 같은 줄 알아? 다시 여기 발붙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야.”“당신…… 윤 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이서는 만두를 내려놓고 뾰로통하게 입을 열었다.“지금의 윤 씨 가문이 예전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거, 잘 알아.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아직 멀었어.”“아냐,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위로할 필요없어.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니까.”지환은 미소를 띈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후, 이서는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다행히 회사에 갈아입을 옷이 있었던지라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문제는…….“당신 먼저 나가 있으면 안 돼?”이서는 갈아입을 옷을 손에 든 채,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지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지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여보, 난 이미 당신의 피부 결 하나하나를 다 알잖아.” “…….”재빨리
“정말 신경 안 써도 돼?”이서가 지환의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여전히 지환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응.”“그런데 왜 계속 전화가 와? 무슨 급한 일 생긴 거 아닐까?”“아니야.”지환의 말투는 너무도 담담했다.이서의 시선이 지환의 주머니로 향했다.주머니 속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내가 받을게.” 이서가 말했다.지환은 이서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이내 이서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외국에서 온 전화였다. 하지만 위에는 비고가 없었다.“여보세요?”이서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부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단번에 쎄함이 밀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지환이 녀석, 드디어 전화를 받는구나.]“안녕하세요, 저는 하지환 씨의 아내입니다.”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수씨구나, 반가워요.”‘제수씨?’이서가 지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지환 씨한테 형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야?’‘왜 여태 뵌 적이 없지?’ “안녕하세요. 아주버님.”[제수씨, 지환이 좀 바꿔주실래요?]이서가 망설이며 지환을 바라보자, 지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서의 손에 있는 전화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이야?” 지환이 눈살을 찌푸린 채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너, 내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서프라이즈 선물을 좀 보냈어. 지금…… 가고 있을 거야. 한 20분쯤 걸릴걸? 너의 사람들이 그걸 뜯는 순간 펑-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하하하…….]지환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네가 내 얼마 남지 않은 비즈니스까지 다 빼앗아 갔잖아. 나, 할 일이 없어. 너희들한테 서프라이즈 좀 주고 즐기는 수밖에.”지환은 앞쪽 길목을 살핀 후, 차갑게 말했다.“차 세우세요.”지환은 전화를 끊었다.이서는 이토록 사색이 된 지환의 모습은 처
“아닙니다.”조용환이 이서에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아직 주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표님 원하시는 거 시키시죠.”이서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한 후, 메뉴판을 조용환에게 건넸다.조용환 역시 이서를 따라 몇 가지의 요리를 주문했다.종업원이 떠난 후에야, 조용환이 현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임현태 씨에요. 제 비서입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조용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윤 대표님께서 어떤 가격을 제시하실지 기대가 됩니다.”이서가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그러자 조용환의 낮빛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2억, 말씀이십니까?”이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되나요?” 조용환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식탁보를 꽉 쥐었다.“처음에는 시장가격보다 높게 매수하신다더니, 지금은 시장가격의 3분의 2보다 낮은 가격을 부르시는군요. 윤 대표님, 이게 좋은 장사입니까?”이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차 한 모금을 마셨다.그러고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 나갔다.“확실히 하시죠, 조 대표님께서 저를 지지하시면 시장보다 높은 가격으로 조씨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그런데, 대표님께서는 중요한 순간에 윤수정을 지지하셨죠.”이서의 말에 조용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조용환은 큰 분노가 밀려오는 듯했다.그러나, 분노보다는 후회가 더 컸다. 윤수정이 이토록 쓸모없는 인간인 것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때려죽인다 해도 이서의 편에 섰을 조용환이었다.조용환은 주식을 반환하지 않는 우기광과 우기동을 호구라 비웃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두고 전세 역전이라 하던가.현재 조용환은 졸부가 된 그들의 모습에 밤 잠을 설치던 참이었다.“조 대표님.”조용환이 줄곧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자 이서가 입을 열었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올려드리죠.”조용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얼마, 말씀이십니까?”이서가 검지를 세워 보였다.조용환은 기가 차다는 듯 이서에게 물었다.“1억이요?”“천만.
YS그룹 화영 지사, 사무동.하지환이 성큼성큼 빌딩으로 걸어 들어갔다.건물 안은 개미 한 마리조차 없는 듯 고요했다.마지막 방에도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천이 지환에게 말했다.“대표님,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직원이 떠났어요.”“택배는?”지환이 이천을 따라 프런트로 발길을 옮겼다.“이게 바로 그 택배입니다.”지환은 어두운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대표님, 이 안에 정말 폭…… 탄…….” 이천은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지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뚫어져라 상자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지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다.‘조심하는 게 좋겠어.’“사람들은 도착했어?”“후문에서 대기 중입니다.”이천은 감히 나설 수 없었다.‘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들어오라고 해.”이천은 고개를 끄덕인 후 건물의 후문으로 향했고, 대기 중이던 직원들을 데려왔다. 지환을 마주한 직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지환은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열어봐, 도대체 안에 뭐가 들었는지.”“예.”직원들은 각종 도구와 보호 장비를 든 채 상자로 향했고, 조심스레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몇 분 후, 상자 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상자 안에 있는 것은 …… 정말 폭탄이었다!“이게 어떻게 H국까지 왔을까요?”직원들은 굳은 얼굴로 각종 도구를 꺼내어 상자 안의 폭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직원들의 낮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입니까?”“아마…… 아닌 것 같아요.”“아닌 것 같다뇨?” 이천이 따지 듯 물었다.“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닌 거 같은 건 뭡니까?”“진짜처럼은 보이지만 …… 폭발 물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럼 가짜라는 겁니까?” 이천이 급히 지환의 표정을 살폈다.직원들의 시선 역시 지환에게로 향했다.지환이 심히 난감해하며 말했다. “뜯어봐야 알겠군.”“대표님!”지환은 인상을 찡그린 채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표님, 대표님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이서를 보호하는 것이 현태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서를 두고 혼자 탈출하라니. 이는 현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대표님을 두고 가라고……?’“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이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된 거예요.”“대표님…….”“제 걱정은 마세요…….”이서는 현태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놓았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노려보았다.그러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세게 물었다.“빨리 뛰어요……!”이 말을 외친 이서는 다시 한번 세차게 남자의 팔을 물었다.고통에 고함을 치던 남자가 이내 이서의 아랫배를 발로 걷어찼다.이서는 벽으로 내쳐졌고, 눈살을 찌푸린 채 신음했다.그러나 곧바로 남자의 허벅지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이 모든 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죽어라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다른 이가 현태를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의 격차는 이미 벌어진 후였다.그 사람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도망가지 못하게 잡아!”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경호원이 현태를 둘러쌌다.그러나 현태는 UFC의 상승 챔피언이지 않은가.비록 약에 의해 움직임이 느려진 현태였으나, 세 사람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내 세 사람이 땅에 나뒹굴었다.현태는 더욱 힘차게 내달렸고, 마침내 차에 오를 수 있었다.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보였다.현태는 이서가 너무도 걱정되었지만, 굳게 마음을 먹고 차를 몰았다.그 시각, 조용환은 현태를 놓친 경호원들을 불러들였다.“됐어, 걘 우리의 목표가 아니야. 도망가면 그만이야.”용호는 이서를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현태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서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이서는 조용환을 향해 온갖 조롱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에 화가 단단히 난 조용환은 이서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웃음이 나와? 내가 웃겨
지환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너 지금 어디야?”[북쪽 교외 쪽입니다. 납치범들을 미행 중입니다. 하지만 약을 탄 음식을 먹어서 오래 못 버틸 듯합니다. 빨리 사람 보내주세요.]임현태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행여라도 놓칠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놈들이 사모님의 소지품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추적당할까 봐 그런 듯합니다. 일 처리가 깔끔한 것을 보니 훈련받은 프로들입니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뒤돌아 지하실로 갔다.“당장 임현태 차량 위치 추적해.”이천은 종종걸음으로 지환의 발자취를 따라갔다.“예.”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다.지환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이천도 꾸물거리지 않고 얼른 차에 올랐다.지환이 날뛰며 폭주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침착했다.이천은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회장님.”지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말해.”갑자기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납치되셨는데 걱정 안 되세요?”지환은 이천을 흘겨보았다.이천은 곧 자신이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설마 사모님이 납치당할 줄 알고 계셨어요?”“내가 무슨 점쟁이인 줄 아나?” 지환의 말투는 차가웠다.이천의 입꼬리가 경직되었다.‘그럼, 대체 어떻게 이렇듯 침착할 수 있지?’이천은 궁금해 미칠 거 같았지만 묻기도 뭐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사실 현재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다만 이전에는 미친 듯이 밟았기 때문에 오늘은 그전보다는 정상으로 보였다.……이서를 납치한 차량은 야산으로 향했다.황폐된 곳이라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납치범들은 이서를 산으로 끌고 올라갔다.거기에는 이서정과 이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서가 납치된 것을 본 두 사람은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드러났다.“사모님, 서정 씨!”조용환은 공손하게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윤이서 데려왔습니다.”이하영은 건초 더미 위에 던져진 이서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