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대표님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이서를 보호하는 것이 현태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서를 두고 혼자 탈출하라니. 이는 현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대표님을 두고 가라고……?’“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이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된 거예요.”“대표님…….”“제 걱정은 마세요…….”이서는 현태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놓았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노려보았다.그러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세게 물었다.“빨리 뛰어요……!”이 말을 외친 이서는 다시 한번 세차게 남자의 팔을 물었다.고통에 고함을 치던 남자가 이내 이서의 아랫배를 발로 걷어찼다.이서는 벽으로 내쳐졌고, 눈살을 찌푸린 채 신음했다.그러나 곧바로 남자의 허벅지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이 모든 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죽어라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다른 이가 현태를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의 격차는 이미 벌어진 후였다.그 사람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도망가지 못하게 잡아!”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경호원이 현태를 둘러쌌다.그러나 현태는 UFC의 상승 챔피언이지 않은가.비록 약에 의해 움직임이 느려진 현태였으나, 세 사람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내 세 사람이 땅에 나뒹굴었다.현태는 더욱 힘차게 내달렸고, 마침내 차에 오를 수 있었다.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보였다.현태는 이서가 너무도 걱정되었지만, 굳게 마음을 먹고 차를 몰았다.그 시각, 조용환은 현태를 놓친 경호원들을 불러들였다.“됐어, 걘 우리의 목표가 아니야. 도망가면 그만이야.”용호는 이서를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현태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서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이서는 조용환을 향해 온갖 조롱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에 화가 단단히 난 조용환은 이서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웃음이 나와? 내가 웃겨
지환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너 지금 어디야?”[북쪽 교외 쪽입니다. 납치범들을 미행 중입니다. 하지만 약을 탄 음식을 먹어서 오래 못 버틸 듯합니다. 빨리 사람 보내주세요.]임현태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행여라도 놓칠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놈들이 사모님의 소지품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추적당할까 봐 그런 듯합니다. 일 처리가 깔끔한 것을 보니 훈련받은 프로들입니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뒤돌아 지하실로 갔다.“당장 임현태 차량 위치 추적해.”이천은 종종걸음으로 지환의 발자취를 따라갔다.“예.”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다.지환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이천도 꾸물거리지 않고 얼른 차에 올랐다.지환이 날뛰며 폭주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침착했다.이천은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회장님.”지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말해.”갑자기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납치되셨는데 걱정 안 되세요?”지환은 이천을 흘겨보았다.이천은 곧 자신이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설마 사모님이 납치당할 줄 알고 계셨어요?”“내가 무슨 점쟁이인 줄 아나?” 지환의 말투는 차가웠다.이천의 입꼬리가 경직되었다.‘그럼, 대체 어떻게 이렇듯 침착할 수 있지?’이천은 궁금해 미칠 거 같았지만 묻기도 뭐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사실 현재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다만 이전에는 미친 듯이 밟았기 때문에 오늘은 그전보다는 정상으로 보였다.……이서를 납치한 차량은 야산으로 향했다.황폐된 곳이라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납치범들은 이서를 산으로 끌고 올라갔다.거기에는 이서정과 이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서가 납치된 것을 본 두 사람은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드러났다.“사모님, 서정 씨!”조용환은 공손하게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윤이서 데려왔습니다.”이하영은 건초 더미 위에 던져진 이서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잘했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빨리 윤이서 처리합시다. 괜한 일 생기지 않게요.”“아니야.” 이하영은 자신감이 넘쳤다.“내가 그년에게 물어볼 게 좀 있거든.”이서정은 다급해졌다.“사모님, 그러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면…….”“서정 씨 정말 겁이 많구나.” 이하영은 고개를 살짝 쳐들고 하늘가의 찬란한 햇빛을 바라보았다.“들킨다고 해도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할 거야. 하씨 가문과 민씨 가문에게 밉보이는 게 어떤 기분인지 맛보고 싶다면…….”“사모님…….”“이봐!” 이하영은 더 이상 이서정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년 깨워.”“예.”경호원들은 미리 준비한 물을 이서의 얼굴에 뿌렸다.갑자기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이서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곧 안색이 변했다.“이하영?!”이하영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몸을 낮춰 이서의 턱을 쥐고 음험한 눈빛을 보였다.“어 맞아, 나야.”이서는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하하하.” 이하영은 고개를 들어 웃었다. 손에 힘은 더욱 거세졌다.“왜 그러냐고? 네년 때문에 내 딸이 미쳤어! 내 딸을 망쳐 놓고, 너는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좋은 일은 다 네 차지고, 우리 딸은…… 우리 딸은 저 지경이고,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민예지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 자신에게 덮어씌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하영이 이렇게까지 파렴치할 줄은 몰랐다.“예지가 저렇게 된 건 자업자득이지…….”“닥쳐, 묻는 말에나 제대로 대답해!” 이하영은 갑자기 이서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꼿꼿이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우리 예지 왜 저렇게 된 거야? 대체 뭔 짓을 했냐고?”“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나중에야 예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세상은 공평한 가봐. 그게 예지 업보일 지도 모르죠. 민예지가
“밀어!”이하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서는 떨린 몸으로 고개를 돌려 반항하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경호원이 이서를 노려보며 손을 뻗어 이서를 밀어내려고 하는 찰나 머리 위에서 갑자기 두두두두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자, 헬리콥터 한 대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곧 주위의 나무와 풀들이 강한 바람에 흔들렸다.이하영 등 일행은 손으로 이마를 막고서야 고개를 들어 헬리콥터를 볼 수 있었다.바람이 너무 세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렴풋이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사다리 줄에서 잽싸게 뛰어내린 것을 보았다.헬리콥터가 멀어지고 주위가 다시 평온해지자 사람들은 마침내 온 사람을 똑똑히 보았다.“지환 씨…….”지환을 확인한 이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서정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그러나 지환을 본 적이 없는 이하영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자기 남편이 아부하는 상대라는 것을 몰랐다. 그녀는 오만방자하게 지환 앞으로 걸어갔다.“자네 누구야?”지환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이서 쪽으로 향했다.이서를 납치한 경호원은 지환의 몸에서 풍기는 강한 카리스마에 놀라 얼빠져 있었다. 지환이 이서를 안았을 때야 손을 들어 지환의 어깨 쪽을 쳤다.“조심…….”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환은 이미 번개처럼 다리를 들어 상대방의 종아리를 호되게 찼다.경호원이 아파서 숨을 연거푸 들이마셨다.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가 지환을 포위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정은 그제야 황급히 이하영의 팔을 잡아당겼다.“사모님, 저 사람…… 저 사람이…….”“그가 누구든…….” 이하영은 냉소하며 말했다.“흑기사를 자처하다니…… 허허, 무슨 영화 찍는 줄 아나? 여긴 현실이라고. 저 두 연놈을 산 아래로 내던져.”말이 끝나기 바쁘게 산기슭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조용환의 안색이 변했다.“사모님, 경찰입니다.”“나도 들었네!” 이하영은 화가 났다.“빨리 밀어버려. 우린 갑시다
경찰의 목소리를 들은 몇 사람은 경찰의 목소리라 이토록 친절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즉시 손을 들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았다.“…….”지환은 그들을 흘겨보고는 허리를 굽혀 이서를 안았다.그러고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이서는 지환의 품에 안겨 볼이 살짝 뜨거웠다.“지환 씨.”“음.”“방금 정말 멋있었어요.”지환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이서를 보았다.“뭐라고?”이서의 얼굴은 이미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아니에요.”지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 들었는데?!”“들었으면서 왜 물어요?”“다시 듣고 싶어서.”이서는 입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지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이서를 안고 한걸음에 산에서 내려왔다.산 아래에 도착하니 구급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지환은 이서를 안고 구급차에 올랐다.의사는 즉시 이서의 상태를 살폈다.의사에게 시야가 가려져 지환이 눈에 안 보이자, 이서는 당황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다.“지환 씨…….”“음, 나 여깄어.”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는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위아래 눈꺼풀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저기요, 아가씨, 뭐라고요?”이서의 입술이 또 움직였다.환자의 얘기를 듣고자, 의사는 몸을 숙여 이서의 입술 옆으로 다가갔다.그는 드디어 똑똑히 들었다.‘당신 정말 멋있어요.’천천히 몸을 일으킨 의사는 이서의 입술에 번진 미소를 보며 의아한 듯 머리가 훤히 벗겨진 정수리를 만졌다.……이때, 이서정과 조용환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온 이하영은 산기슭에 도착할 무렵 눈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막아섰다.앞장서 있는 사람은 바로 이천이었다.이천을 보자 이서정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낯이 뜨거웠다.이서정을 본 이천도 눈빛이 차가워지며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 잡아.”“예.”사람들이 앞으로
병원.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 이천은 눈감고 침상에 누워있는 이서와 하루 밤낮을 꼬박 밤새운 지환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이상언과 눈을 마주쳤다.“쟤 밤새 한숨 안 자고 이렇게 이서 씨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네.” 이천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하지만 주치의 얘기 들어보니, 신경안정제 성분의 약을 써서 내일이나 되어야 이서 씨 깨어난다고 들었는데?굳이 이렇게 지키고 있을 필요 있나요?”“누가 아니래요?” 이천이 계속 말을 이었다.“하지만 소용없어요. 사모님 곁을 지키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모님이 깨어났을 때 첫눈에 자기가 보여야 한다고…….”이상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이해가 되긴 합니다. 잃어버렸다가 어렵게 되찾았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으니…….”“그런데, 오늘 저녁에 회장님이 민씨 집안 초대에 참여하겠다고 응하셨는데……. 조금 전에도 민호일이 회장님 언제 출발하셨는지 물어보던데…… 어떡하죠? 거절해야 할까요?”이상언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병실에 허스키한 목소리를 울려 퍼졌다.“파티 몇 시?”이천이 놀란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그는 지환이 그들의 대화를 전혀 안 듣고 있는 줄 알았다.“7시입니다.”“지금 몇 시?”“5시 좀 넘었습니다.”“준비해.”이천은 제자리에 서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마침내 반응했다.“예.”그러나 두 발은 제자리에 묶인 듯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그는 상언을 보며 아직 충격에서 가시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상언은 가볍게 웃으며 이천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가서 준비해요.”말하면서 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해서야 이천은 마침내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았다.“이 선생님, 방금 보셨죠?”상언은 눈썹을 찌푸리며 일부러 물었다.“뭘 말인가요?”“회장님…… 회장님이…….”이천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상언은 웃으며 말했다.“뭐가 달라진 거 같아요?”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처럼 이성적인 모습으로
그제야 불안했던 두 사람의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저희 좀 빨리 이서한테 데려다주세요.”하나가 상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상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슬며시 하나의 손을 빼냈다.“이 비서님께서 데려다 드릴 겁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상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나는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 느꼈다.“두 분, 제가 모시겠습니다.”하나는 이천의 말에 어렴풋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천의 뒤를 따르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왜인지는 하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하나와 나나가 병실로 들어서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지환의 모습이 보였다. 밤새 이서의 곁을 지키느라 한숨도 못 잔 것이 틀림없었다.하나는 차마 그런 지환에게 원망 섞인 말들을 쏟아낼 수 없었다. “왔구나.” 지환이 고개를 들어 하나와 나나, 그리고 이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이천이 막 설명하려던 찰나, 지환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서 좀 부탁할게.”“어디 가세요?” 하나가 불쑥 물었다.“결판내러.”‘결판? 민씨 그룹과의 결판?’하나는 그제야 이서를 납치한 이들이 민씨 그룹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지환은 하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병실을 나섰다.하나 역시 지환을 따라 병실을 나서려 하자, 나나가 하나를 붙잡았다. “하나 언니.” 나나는 멀어져 가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버려 두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다가는 여기 틀어박혀 죽어버리실지도 몰라요.”“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뿐이잖아. 아무리 형부가 하은철의 둘째 삼촌의 직원이라 해도 민씨 그룹에 맞설 수 있을까? 난 정말…….”“하나 언니.” 나나가 하나를 의자에 앉혔다.“형부도 형부 나름의 해결책이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경찰도 그 사람들을 체포했다 하니,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배후가 이하영이라고 자백만 해준다면 이하영이 감옥에 가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민씨 그룹의 기세가 이
문이 열리자, 하은철과 하도훈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뒤를 하경철이 이었다.차가 떠날 때까지도 지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의 시선은 민호일에게서 멀어져 갔다.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민호일 역시 심히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빠르게 걸음을 옮겨 하경철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어르신.”하경철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늦은 건 아니겠지?”“아닙니다.”민호일은 정중히 하경철을 대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하경철의 뒤를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지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민호일은 참지 못하고 하경철에게 물었다. “하 대표님께서는 같이 오지 않으신 건가요?”하경철이 민호일의 말을 듣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지환이라…… 날 비웃을까 두렵군. 나 역시 그 아이를 본지 아주 오래되었어. 오늘 자네 덕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아이를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야.”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오늘도 베일에 감춰진 지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비웃음마저 터져 나왔다.“아버지, 지환이 녀석을 탓할 수는 없으세요.” 하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국내 일로도 모자라 외국 일로 아주 바쁠 테니까요. 한 사람의 몸으로 두 사람의 일을 겨우 쳐내는 중인데, 아버지를 만나러 올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확실히.” 하경철이 민호일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앉았다.“지환이 녀석이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노력하려 했고, 또 대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지.”“맞습니다.” 심씨 가문의 가주인 심근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후대가 하 대표님의 절반이라도 따라간다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심근영이 소씨 가문의 가주인 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아드님을 외국에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YS 그룹과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있으신 모양이더군요.”소태성이 심근영을 흘겨보았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늙은 여우들이 아니던가.‘YS 그룹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