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경 안 써도 돼?”이서가 지환의 팔을 건드리며 물었다.여전히 지환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응.”“그런데 왜 계속 전화가 와? 무슨 급한 일 생긴 거 아닐까?”“아니야.”지환의 말투는 너무도 담담했다.이서의 시선이 지환의 주머니로 향했다.주머니 속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내가 받을게.” 이서가 말했다.지환은 이서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이내 이서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외국에서 온 전화였다. 하지만 위에는 비고가 없었다.“여보세요?”이서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부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단번에 쎄함이 밀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지환이 녀석, 드디어 전화를 받는구나.]“안녕하세요, 저는 하지환 씨의 아내입니다.”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수씨구나, 반가워요.”‘제수씨?’이서가 지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지환 씨한테 형이 한 명 더 있다는 거야?’‘왜 여태 뵌 적이 없지?’ “안녕하세요. 아주버님.”[제수씨, 지환이 좀 바꿔주실래요?]이서가 망설이며 지환을 바라보자, 지환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서의 손에 있는 전화를 건네받았다. “무슨 일이야?” 지환이 눈살을 찌푸린 채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너, 내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서프라이즈 선물을 좀 보냈어. 지금…… 가고 있을 거야. 한 20분쯤 걸릴걸? 너의 사람들이 그걸 뜯는 순간 펑-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하하하…….]지환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또 무슨 미친 짓이야?”“네가 내 얼마 남지 않은 비즈니스까지 다 빼앗아 갔잖아. 나, 할 일이 없어. 너희들한테 서프라이즈 좀 주고 즐기는 수밖에.”지환은 앞쪽 길목을 살핀 후, 차갑게 말했다.“차 세우세요.”지환은 전화를 끊었다.이서는 이토록 사색이 된 지환의 모습은 처
“아닙니다.”조용환이 이서에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아직 주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표님 원하시는 거 시키시죠.”이서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한 후, 메뉴판을 조용환에게 건넸다.조용환 역시 이서를 따라 몇 가지의 요리를 주문했다.종업원이 떠난 후에야, 조용환이 현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임현태 씨에요. 제 비서입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조용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윤 대표님께서 어떤 가격을 제시하실지 기대가 됩니다.”이서가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그러자 조용환의 낮빛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2억, 말씀이십니까?”이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되나요?” 조용환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식탁보를 꽉 쥐었다.“처음에는 시장가격보다 높게 매수하신다더니, 지금은 시장가격의 3분의 2보다 낮은 가격을 부르시는군요. 윤 대표님, 이게 좋은 장사입니까?”이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차 한 모금을 마셨다.그러고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 나갔다.“확실히 하시죠, 조 대표님께서 저를 지지하시면 시장보다 높은 가격으로 조씨 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그런데, 대표님께서는 중요한 순간에 윤수정을 지지하셨죠.”이서의 말에 조용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조용환은 큰 분노가 밀려오는 듯했다.그러나, 분노보다는 후회가 더 컸다. 윤수정이 이토록 쓸모없는 인간인 것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때려죽인다 해도 이서의 편에 섰을 조용환이었다.조용환은 주식을 반환하지 않는 우기광과 우기동을 호구라 비웃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두고 전세 역전이라 하던가.현재 조용환은 졸부가 된 그들의 모습에 밤 잠을 설치던 참이었다.“조 대표님.”조용환이 줄곧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자 이서가 입을 열었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올려드리죠.”조용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얼마, 말씀이십니까?”이서가 검지를 세워 보였다.조용환은 기가 차다는 듯 이서에게 물었다.“1억이요?”“천만.
YS그룹 화영 지사, 사무동.하지환이 성큼성큼 빌딩으로 걸어 들어갔다.건물 안은 개미 한 마리조차 없는 듯 고요했다.마지막 방에도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천이 지환에게 말했다.“대표님,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직원이 떠났어요.”“택배는?”지환이 이천을 따라 프런트로 발길을 옮겼다.“이게 바로 그 택배입니다.”지환은 어두운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대표님, 이 안에 정말 폭…… 탄…….” 이천은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지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뚫어져라 상자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지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다.‘조심하는 게 좋겠어.’“사람들은 도착했어?”“후문에서 대기 중입니다.”이천은 감히 나설 수 없었다.‘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들어오라고 해.”이천은 고개를 끄덕인 후 건물의 후문으로 향했고, 대기 중이던 직원들을 데려왔다. 지환을 마주한 직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지환은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열어봐, 도대체 안에 뭐가 들었는지.”“예.”직원들은 각종 도구와 보호 장비를 든 채 상자로 향했고, 조심스레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몇 분 후, 상자 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상자 안에 있는 것은 …… 정말 폭탄이었다!“이게 어떻게 H국까지 왔을까요?”직원들은 굳은 얼굴로 각종 도구를 꺼내어 상자 안의 폭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직원들의 낮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입니까?”“아마…… 아닌 것 같아요.”“아닌 것 같다뇨?” 이천이 따지 듯 물었다.“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닌 거 같은 건 뭡니까?”“진짜처럼은 보이지만 …… 폭발 물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그럼 가짜라는 겁니까?” 이천이 급히 지환의 표정을 살폈다.직원들의 시선 역시 지환에게로 향했다.지환이 심히 난감해하며 말했다. “뜯어봐야 알겠군.”“대표님!”지환은 인상을 찡그린 채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표님, 대표님을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이서를 보호하는 것이 현태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서를 두고 혼자 탈출하라니. 이는 현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대표님을 두고 가라고……?’“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이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된 거예요.”“대표님…….”“제 걱정은 마세요…….”이서는 현태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놓았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노려보았다.그러고는 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세게 물었다.“빨리 뛰어요……!”이 말을 외친 이서는 다시 한번 세차게 남자의 팔을 물었다.고통에 고함을 치던 남자가 이내 이서의 아랫배를 발로 걷어찼다.이서는 벽으로 내쳐졌고, 눈살을 찌푸린 채 신음했다.그러나 곧바로 남자의 허벅지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이 모든 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죽어라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다른 이가 현태를 발견했을 때, 두 사람의 격차는 이미 벌어진 후였다.그 사람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도망가지 못하게 잡아!”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경호원이 현태를 둘러쌌다.그러나 현태는 UFC의 상승 챔피언이지 않은가.비록 약에 의해 움직임이 느려진 현태였으나, 세 사람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내 세 사람이 땅에 나뒹굴었다.현태는 더욱 힘차게 내달렸고, 마침내 차에 오를 수 있었다.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보였다.현태는 이서가 너무도 걱정되었지만, 굳게 마음을 먹고 차를 몰았다.그 시각, 조용환은 현태를 놓친 경호원들을 불러들였다.“됐어, 걘 우리의 목표가 아니야. 도망가면 그만이야.”용호는 이서를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현태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서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이서는 조용환을 향해 온갖 조롱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에 화가 단단히 난 조용환은 이서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웃음이 나와? 내가 웃겨
지환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너 지금 어디야?”[북쪽 교외 쪽입니다. 납치범들을 미행 중입니다. 하지만 약을 탄 음식을 먹어서 오래 못 버틸 듯합니다. 빨리 사람 보내주세요.]임현태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행여라도 놓칠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놈들이 사모님의 소지품도 모두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추적당할까 봐 그런 듯합니다. 일 처리가 깔끔한 것을 보니 훈련받은 프로들입니다.]지환은 전화를 끊고 뒤돌아 지하실로 갔다.“당장 임현태 차량 위치 추적해.”이천은 종종걸음으로 지환의 발자취를 따라갔다.“예.”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주차장에 도착했다.지환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이천도 꾸물거리지 않고 얼른 차에 올랐다.지환이 날뛰며 폭주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침착했다.이천은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회장님.”지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말해.”갑자기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납치되셨는데 걱정 안 되세요?”지환은 이천을 흘겨보았다.이천은 곧 자신이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설마 사모님이 납치당할 줄 알고 계셨어요?”“내가 무슨 점쟁이인 줄 아나?” 지환의 말투는 차가웠다.이천의 입꼬리가 경직되었다.‘그럼, 대체 어떻게 이렇듯 침착할 수 있지?’이천은 궁금해 미칠 거 같았지만 묻기도 뭐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사실 현재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다만 이전에는 미친 듯이 밟았기 때문에 오늘은 그전보다는 정상으로 보였다.……이서를 납치한 차량은 야산으로 향했다.황폐된 곳이라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납치범들은 이서를 산으로 끌고 올라갔다.거기에는 이서정과 이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서가 납치된 것을 본 두 사람은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드러났다.“사모님, 서정 씨!”조용환은 공손하게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윤이서 데려왔습니다.”이하영은 건초 더미 위에 던져진 이서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잘했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빨리 윤이서 처리합시다. 괜한 일 생기지 않게요.”“아니야.” 이하영은 자신감이 넘쳤다.“내가 그년에게 물어볼 게 좀 있거든.”이서정은 다급해졌다.“사모님, 그러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면…….”“서정 씨 정말 겁이 많구나.” 이하영은 고개를 살짝 쳐들고 하늘가의 찬란한 햇빛을 바라보았다.“들킨다고 해도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할 거야. 하씨 가문과 민씨 가문에게 밉보이는 게 어떤 기분인지 맛보고 싶다면…….”“사모님…….”“이봐!” 이하영은 더 이상 이서정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년 깨워.”“예.”경호원들은 미리 준비한 물을 이서의 얼굴에 뿌렸다.갑자기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이서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곧 안색이 변했다.“이하영?!”이하영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몸을 낮춰 이서의 턱을 쥐고 음험한 눈빛을 보였다.“어 맞아, 나야.”이서는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하하하.” 이하영은 고개를 들어 웃었다. 손에 힘은 더욱 거세졌다.“왜 그러냐고? 네년 때문에 내 딸이 미쳤어! 내 딸을 망쳐 놓고, 너는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좋은 일은 다 네 차지고, 우리 딸은…… 우리 딸은 저 지경이고,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민예지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 자신에게 덮어씌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하영이 이렇게까지 파렴치할 줄은 몰랐다.“예지가 저렇게 된 건 자업자득이지…….”“닥쳐, 묻는 말에나 제대로 대답해!” 이하영은 갑자기 이서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꼿꼿이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우리 예지 왜 저렇게 된 거야? 대체 뭔 짓을 했냐고?”“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나중에야 예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세상은 공평한 가봐. 그게 예지 업보일 지도 모르죠. 민예지가
“밀어!”이하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서는 떨린 몸으로 고개를 돌려 반항하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경호원이 이서를 노려보며 손을 뻗어 이서를 밀어내려고 하는 찰나 머리 위에서 갑자기 두두두두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자, 헬리콥터 한 대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곧 주위의 나무와 풀들이 강한 바람에 흔들렸다.이하영 등 일행은 손으로 이마를 막고서야 고개를 들어 헬리콥터를 볼 수 있었다.바람이 너무 세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렴풋이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사다리 줄에서 잽싸게 뛰어내린 것을 보았다.헬리콥터가 멀어지고 주위가 다시 평온해지자 사람들은 마침내 온 사람을 똑똑히 보았다.“지환 씨…….”지환을 확인한 이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서정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그러나 지환을 본 적이 없는 이하영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자기 남편이 아부하는 상대라는 것을 몰랐다. 그녀는 오만방자하게 지환 앞으로 걸어갔다.“자네 누구야?”지환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이서 쪽으로 향했다.이서를 납치한 경호원은 지환의 몸에서 풍기는 강한 카리스마에 놀라 얼빠져 있었다. 지환이 이서를 안았을 때야 손을 들어 지환의 어깨 쪽을 쳤다.“조심…….”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환은 이미 번개처럼 다리를 들어 상대방의 종아리를 호되게 찼다.경호원이 아파서 숨을 연거푸 들이마셨다.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가 지환을 포위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정은 그제야 황급히 이하영의 팔을 잡아당겼다.“사모님, 저 사람…… 저 사람이…….”“그가 누구든…….” 이하영은 냉소하며 말했다.“흑기사를 자처하다니…… 허허, 무슨 영화 찍는 줄 아나? 여긴 현실이라고. 저 두 연놈을 산 아래로 내던져.”말이 끝나기 바쁘게 산기슭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조용환의 안색이 변했다.“사모님, 경찰입니다.”“나도 들었네!” 이하영은 화가 났다.“빨리 밀어버려. 우린 갑시다
경찰의 목소리를 들은 몇 사람은 경찰의 목소리라 이토록 친절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즉시 손을 들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았다.“…….”지환은 그들을 흘겨보고는 허리를 굽혀 이서를 안았다.그러고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이서는 지환의 품에 안겨 볼이 살짝 뜨거웠다.“지환 씨.”“음.”“방금 정말 멋있었어요.”지환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이서를 보았다.“뭐라고?”이서의 얼굴은 이미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아니에요.”지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 들었는데?!”“들었으면서 왜 물어요?”“다시 듣고 싶어서.”이서는 입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지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이서를 안고 한걸음에 산에서 내려왔다.산 아래에 도착하니 구급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지환은 이서를 안고 구급차에 올랐다.의사는 즉시 이서의 상태를 살폈다.의사에게 시야가 가려져 지환이 눈에 안 보이자, 이서는 당황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었다.“지환 씨…….”“음, 나 여깄어.”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는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위아래 눈꺼풀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저기요, 아가씨, 뭐라고요?”이서의 입술이 또 움직였다.환자의 얘기를 듣고자, 의사는 몸을 숙여 이서의 입술 옆으로 다가갔다.그는 드디어 똑똑히 들었다.‘당신 정말 멋있어요.’천천히 몸을 일으킨 의사는 이서의 입술에 번진 미소를 보며 의아한 듯 머리가 훤히 벗겨진 정수리를 만졌다.……이때, 이서정과 조용환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온 이하영은 산기슭에 도착할 무렵 눈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막아섰다.앞장서 있는 사람은 바로 이천이었다.이천을 보자 이서정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낯이 뜨거웠다.이서정을 본 이천도 눈빛이 차가워지며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 잡아.”“예.”사람들이 앞으로
같은 시각.호텔에 있던 이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그녀는 지환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일이 위험하다는 것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환이 그녀를 속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엎치락뒤치락하고도 잠이 오지 않자, 이서는 아예 일어나 물 한 잔을 따랐다. 물을 들이켜고 나니, 졸음은 완전히 달아났다. 그녀는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지환 씨가 외출할 때 따라갈걸 그랬나?’ ‘그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말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녀가 따라가는 것은 짐만 될 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한 이서의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다. 엉뚱한 생각의 폭을 넓혀가던 그녀는 갑자기 하경철을 떠올렸다.‘그러고 보니, 기억을 잃은 후로는 한 번도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 ‘할아버지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실까?’‘몸은 예전처럼 건강하실까?’ 이서는 아직도 하경철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하경철은 그녀가 하씨 가문으로 시집오기를 바라는 유일한 하씨 가문의 사람이었고, 그녀에게 가장 잘해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하씨 가문에 시집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반목하여 원수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속상하셨을 거야.’‘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찾지 않으실 리 없어.’ 갑자기 이서의 머릿속에는 고택에 가서 하경철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싹텄다.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편, 병원에 있던 지환은 세 번째 상대를 만났다.괴력왕은 그를 속인 것이 아니었는데, 뒤의 상대는 확실히 갈수록 강력해졌다.“하지호 사장님의 수하입니다!”이천은 단번에 맞은편에 있는 네 사람을 알아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하지호의 수하였다. “고작 네 명만 보내다니, 우리 어둠의 세력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이 다소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천은 바로 설명했다.“절대 저 네 사람을 얕봐선 안 됩니다. 저 사람들은
큰 소리와 함께 목에 꽂힌 칼 두 자루가 ‘우지끈’ 소리를 냈고, 반동으로 인해 목에서 빠져나왔다.이천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지환은 일찍이 대책이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칼을 단단히 붙들었고, 칼끝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바닥에 단단히 꽂아 내렸다. 그 칼을 바닥에 깊은 흔적을 만든 후에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모처럼 낭패한 지환을 보며, 괴력왕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하 대표님, 사업 수완은 뛰어나실지 몰라도, 힘으로는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 모두를 부른다고 해도 저를 이길 순 없죠.” “하지만 지금은 열댓 명만 있을 뿐이고요.” “비록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와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지인으로서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를 이기지 못하신다면, 제 뒤에 남은 사람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겁니다.”그 순간, 눈을 부릅뜬 괴력왕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뒤통수를 눌렀다. 엄청난 통증을 느낀 그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끈적끈적한 느낌은 현기증을 불러왔다. 그는 희미한 눈으로 어둠의 세력 조직원 몇 명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이 지환과 이야기하는 그를 기습한 것이었다.괴력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환을 보았고, ‘쿵’하는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제... 제 약점이 뒤통수라는 걸 어떻게 아셨죠?” 이 비밀은 그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이었다. 지환이 천천히 일어섰다.“벌써 잊은 겁니까? 난 몇 번이고 당신을 찾아가 산에서 나오라고 부탁했었는데요.” 괴력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환을 보며 말했다.“그 몇 번의 짧은 만남으로 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까?” 지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괴력왕이 고개를 들어 ‘하하’ 웃었다.“하하하, 역시 하 대표님이군요. 저는 온몸에서 힘이 넘치지만, 머리는 좋지 않아요.” “오늘밤, 전력을 다해야만 했던 것처럼요.” 괴력왕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