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책상 위의 시가 케이스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 묻힌 얼굴은,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평소 이서가 옆에 있을 때 그는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첫째는, 이서가 간접흡연 하는 게 싫었고, 둘째는 비싼 시가가 그의 신분을 드러낼까 봐 우려했던 거였다.그렇다고 값싼 담배를 피우는 건 또 적응되지 않았다.앞으로 더 이상 마음 졸일 필요 없다고 생각하자, 지환은 더욱 음울했다. 지환의 어두운 표정에 이천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이천은 애처롭게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 “회장님,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전 매일 회장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모님과 개별적으로 접촉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회장님의 신분을 폭로할 수 있겠습니까?”지환은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네가 아니라면, 누굴까?” 이천은 말을 듣자마자, 지환이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몰래 숨을 고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이천의 눈동자가 밝았다. “사모님과 그동안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지환이 아무 얘기가 없자, 이천은 바삐 사무실을 떠나 기술팀을 찾아갔다.천천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지환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자신의 몸을 소파에 맡겼다.그는 복기를 시작했다. 기억은 다시 ML 국에 있을 때로 돌아갔다.처음에는 모든 게 좋았다. 그날 병원에서 돌아온 후, 이서가 밤늦게 집에 들어온 그날부터, 모든 게 변했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지환은 미간을 꾹꾹 강하게 눌렀다.이쪽 일은 이미 거의 다 처리되었다.예전이었다면, 그는 벌써 이서 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서 곁으로 날아가고 싶지만, 지금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조사하기 전까지는.그는 이서와의 결혼 생활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지환은 핸드폰을 들고 이서의 사진을 보
이서는 조용히 앞으로 다가갔다.“무슨 일이야?”그녀의 말소리가 떨어지자, 윤수정과 대치 중이던 심소희는 곧 이서에게 다가갔다. “언니, 위층에서 개업 선물을 나눠 준다고……. 필요 없다는데 계속 안으로 들어가려고…….”심소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도 윤수정과 이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개업선물은 핑계이고, 회사원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수법이었다.윤수정 뒤에는 윤아영이 서있었다. 100 여 명을 윤씨 그룹을 빼낸 ‘공로’로 윤수정의 회사에 입사했다.빌붙을 곳을 찾았다고 생각한 윤아영은 이서를 보자마자 또 날뛰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무슨 도둑이니 대문을 지키고 있게? 이웃 사촌끼리 개업 선물 돌리자는 건데, 설마 여기 직원들, 다 우리 회사로 이직할 까봐 두렵나? 그런 거야?”이서는 선물이 놓인 곳으로 가서 힐끗 보았다.모두 수입 간식이었다.“윤 대표, 고마워.”“뭐 이런 걸 가지고.”윤수정이 웃으며 말했다.“언니도 먹어봐, 다른 사람들은 아영이 보고 나눠 주라고 할게.”이서는 굳이 막지 않았다. 윤아영은 거드름을 피우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간식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그 모습을 지켜본 심소희는 다급히 말했다.“언니.”이서는 그녀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뒤, 윤아영이 방글방글 웃으며 나왔다. “직원들이 뭘 물어보던가?”윤아영은 득의양양했다. “별 얘기 안 했어. 우리 쪽 대우가 좋다고, 선물까지 최고급으로 준비했다고…… 뭐 이 정도만…….”“그래?”이서가 미소를 머금었다.“너를 따라간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어?”윤아영의 얼굴에 웃음기가 굳었다.이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경쟁을 통해서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거라면, 난 이의 없어. 하지만 지금처럼 유치한 수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건 너무 비열해. 여기는 소꿉놀이 하는 곳 아니야. 너희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윤수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것을 본 윤아영은 이서가 프런트에 올려 놓은 포르쉐 차 키를 발견하고 이서의
윤아영은 먼저 몇 초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 경련이 일었다.“가짜인 걸, 내가 왜 먹어?!”“네 눈으로 직접 봐야 믿겠구나. 그래. 어차피 나도 지금 시간이 되니 가보자. 확인시켜 줄게.”이서는 말하면서 차 키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윤아영은 의아해하며 윤수정을 바라보았다.이서의 속셈을 알 수 없는 윤수정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윤아영을 보고는, 그녀더러 따라가 볼 것을 암시했다.윤아영은 이서의 보조를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앞서 몇 걸음 걷던 이서는 심소희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소희야, 너도 가자, 증인이 있어야지.”심소희도 이서의 보폭에 맞춰 바삐 따라갔다.이서의 담담한 옆 모습을 본 심소희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왔다.고급차에 대해 잘 모르지만 포르쉐 911은 베스트 셀링카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차라는 정도는 심소희도 알고 있다.하지만 이서의 침착한 모습을 보니 왠지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두 가지 모순된 생각으로 심소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심소희의 찌푸린 표정을 본 윤아영은 이서가 그들을 속이려고 술수를 쓰고 있다고 확신했다.그러자 더이상 긴장하지 않았다.심지어 여유롭게 윤수정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그녀는 일부러 이서가 들으라고 말했다.“언니, 언니도 911이 좋아?”윤수정이 빙그레 웃었다.“물론 좋아하지. 외형적 디자인이나 내부 옵션이나 말해 뭐해, 모두 최고지.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들도 그 매력에 벗어날 수 없지.”“그럼 하 대표에게 선물해 달라고 해. 하 대표가 언니 많이 사랑하잖아. 언니가 말만 꺼내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바로 대령할 걸?” 윤아영은 윤수정의 어깨를 슬쩍 치며, 한편으로 슬그머니 이서를 쳐다보았다.윤수정은 그녀의 뜻을 바로 캐치했다.이서 앞에서 하은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자랑하라는 것이었다.그녀는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연인이긴
윤아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이게 네 거라고? 누구한테 빌린 거야?”동시에, 전화기 너머에서 하은철이 초조하게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무슨 일이야?]“오빠, 오빠 소유의 포르쉐 대리점에 911이 아직 한 대가 남아 있다며? 그 차 구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나한테 남겨주면 안 돼?”윤수정과 하은철은 통화 중이었고, 윤아영은 포르쉐를 훑어보며 쉴 새 없이 지껄였다. “빌린 게 아니라면, 짝퉁이겠지. 쯧쯧쯧, 윤이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너 정말 별 짓 다하는 구나. 수정 언니를 봐봐, 좋은 남자 찾으니 원하는 건 다 들어주잖아. 네 남편 은…….”“찰싹…….”“뭐라고?!”날카로운 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윤아영은 화가 나서 뜨거운 뺨을 감싸 쥐고 달려들어 이서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려 했다. 하지만 이서는 민첩하게 그녀를 힘껏 밀려났다.윤아영의 몸이 포르쉐에 부딪혔다. 그녀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하지만 입은 여전히 가만 있지 않았다. “윤이서, 네가 감히 나를 때려?”“네가 나한테 똥물을 퍼붓는데, 난 널 한 대 치면 안 되니?”이서는 차분하게 윤아영을 바라보았다.윤아영이 남편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이서는 뒷말을 더 듣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악담을 퍼부을지 상상이 되었다. 비록 지환과 냉전 중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하루라도 부부인 이상 그녀는 지환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윤아영은 윤수정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정언니.”여러 번 불렀지만, 아무 응답도 없자, 고개를 돌려 윤수정을 바라보았다. 윤수정은 힘 없이 기가 죽어 멍하니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잠시 뒤, 이쪽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충혈된 눈으로 이서를 노려보며 휴대폰을 손에 꽉 쥐고 물었다. “이 포르쉐, 설마 은철 오빠가 준 거야?!”하은철이 직접 말하지 않았더라면, 윤수정은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윤이서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차를 줄 수 있지.’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윤수
윤아영은 놀라서 엎드러지고 곱드러지며 엘리베이터로 도망갔다. 마치 좀비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이서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그림자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는 몸을 돌려 심소희를 보며 말했다. “가자.”“네.”심소희는 말꼬리를 올리며 윤수정을 힐끗 보고는 의기양양하게 이서 곁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언니, 역시는 역시네요. 911 대박 예술이네요.”이서는 그녀가 일부러 윤수정을 약 올리기 위한 수법인 걸 알고 살짝 웃었다.사무실로 돌아온 후 심소희가 말했다. “언니, 오늘부로 위층에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죠?”이서는 윤수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 회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트집 잡고 말썽부릴 거야.”“아, 레알 싫어.”심소희가 눈살을 찌푸렸다.“언니, 윤수정 혼꾸멍내줄 방법 없을까요?”이서는 미소를 지었다. 하은철이 윤수정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있는 한, 윤수정은 이 도시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99%보다 더 나은 상위 1%의 삶을 누리면서 말이다.“응, 있지.”이서는 멀지 않은 곳의 초록색 화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내가 우리 회사를 하씨 그룹보다 더 잘나가는 회사로 키우는 그날이, 윤수정 제삿날이야.”심소희는 놀란 눈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일찍이 이서가 야심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야망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이서는 시선을 거두었다.“가서 일 봐.”“네.”심소희가 물러갔다.이서는 대표이사 자리에 서류를 펼쳤다.명함 한 장이 떨어졌다.주워 보니, 이서정이 준 명함이었다.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그녀는 갑자기 이서정이 한 말이 생각났다.‘아마 제 남편도 참석할 거예요.’‘그녀의 남편이라면…….’‘하은철 둘째 삼촌이잖아?’이서의 속눈썹이 두 번 깜박였다.하은철 삼촌으로 인해, 지난번 지환과 다툰 이후로, 이서는 오랫동안 이 재계의 천재에 대
하지만 이 방법도 약발이 거의 다 떨어졌다. 그녀는 수시로 지환이 떠올랐다. 글자 하나, 풀 한 포기, 머리를 시키는 짧은 휴식 타임에도 계속 그가 불쑥불쑥 생각났다.이서도 모르는 사이에, 지환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바로 이 이유때문에 그녀는 두려웠다.예전에 하은철도 종종 외국에 출장을 갔었다. 심지어 출장이 몇 달 동안 지속되어도 하은철이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하은철이 출장 간다고 하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직장인이 되어서야 그게 무슨 기분인지 깨달았다.휴가를 맞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지환과 헤어진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그가 미치도록 그리워졌다.이서는 일어나 통유리 창문으로 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들을 내려다보며 고통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지환이 정말 외국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 감정에 직면해야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바로 이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뒤돌아서 확인해 보니 지환이 걸려 온 영상 전화였다.잠시 망설이던 거절을 누르려고 했지만, 손은 뇌의 제어를 벗어난 듯 무의식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손의 만행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서둘러 카메라를 껐다. 전화기 너머에서 지환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이서의 심장이 찌릿했다. 순간 화면을 뚫고 지환을 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이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비린내가 혀끝에서 퍼졌다. 그제야 떨리는 몸이 서서히 안정되었다.“무슨 일 있어요?”[오랫동안 자기 못 봤잖아, 자기 얼굴 좀 보여줘.]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하였으며 고혹적인 매력을 띠고 있었다.긴장해서 팽팽했던 심금이 그의 말 한마디에 끊어질 것 같았다.그녀는 바삐 팔을 물며, 목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흐느낌을 피부에 파묻었다.한참 뒤 그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차갑게 말했다. “볼 거 없어요.”지환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핸드폰 마이크
하윤회사 내부.윤수정이 사무실 내 부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부순 후, 기진맥진해서 의자에 주저앉았다.윤아영은 난장판인 사무실에 무릎 꿇고 있었다. 이마, 손, 무릎 등에는 전부 상처 자국이었다. 모두 윤수정으로 낸 상처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숨소리조차 크게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문 열고 들어온 비서는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보고 황급히 물러나려고 했다. 윤수정이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야?”비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양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양전호가 왔다는 얘기를 들은 윤수정은 그제야 얼굴에 난폭한 기운이 조금 누그러졌다.“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해. 사람들 시켜 여기 깨끗이 치워 놓고.”“네.”비서가 바쁘게 사무실을 나갔다.그러고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윤아영을 보며 단호하게 일렀다.“앞으로 이런 어리석은 짓을 다시 벌였다가는…… 내 회사에서 꺼져!” “응……, 네.” 윤아영은 바들바들 떨면서 답했다.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윤수정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양 사장님, 어쩐 일로 회사까지 행차하셨어요?”양전호는 윤수정을 보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굿뉴스를 전하러 왔지…….”“오, 무슨 좋은 소식인데요?”“아래층에서 십이지 컨셉으로 의상을 디자인했는데, 중저가 전략으로 패션시장을 공략할 건 가봐…….”“어떻게 아셨어요?”윤수정은 금세 흥미가 생겼다.“그래도 내가 한 때는 아랫집 주주였잖아. 이 정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이지. 윤 사장, 뭔 계획 없어?”윤수정은 곧 웃었다. “십이지 컨셉이라고요? 그까짓 거 우리도 하나 하죠 뭐, 중저가 전략을 펼친다고 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중저가 전략으로 가는 걸로…….”“최고의 디자이너를 초빙하고, 유명 스타를 광고 홍보 모델로 써서…….” 여기까지 말하고는, 윤수정의 얼굴에 웃음이 귀에까지 걸렸다.“두 회사의 경쟁 구도를 통해 인지도를 높여
사람들이 잇달아 이천을 훔쳐보았다.이천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지환이 왜 이리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그도 별수가 없었다.‘결자해지…….’‘그럼 사모님이 화를 풀어야 하는데…….’‘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남한테 속는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이 침묵 속에서 연구개발팀 직원이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그는 이천을 보았다.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이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회장님, 잠깐 다녀오겠습니다.”말을 마치고,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몸에 부적을 붙인 사람처럼.사람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왔다.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이천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에야 물었다. “어때? 뭐 나온 게 있어?”연구개발팀 직원은 프린트한 사진 몇 장을 이천에게 건넸다.사진 속 사람은 이상언과 이서, 임하나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민호일의 아내 이하영이고, 다른 하나는 이서정이었다.사진으로 봐서는 웨딩드레스 샵 안이었다.엔지니어가 말했다. “사모님과 접촉한 적이 있고, 회장님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번 훑어봤는데, 이 사람을 발견했습니다.”그는 사진 속 이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회장님의 신분을 누설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천은 흥분했다. “확실해?”“100% 확실할 수는 없습니다. 이서정이 사모님이 이서 아가씨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이천은 급히 재촉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바로 해.”“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이서정 말고는 다른 가능성은 없습니다.”“알았어.”이천이 엔지니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수고했어. 자네가 우릴 살렸네.”엔지니어가 눈을 깜빡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천은 곁들어 설명하지 않았다. 문을 밀고 곧장 회의실로 들어가 지환의 귓가에 귓속말로 속삭였다. 지환의 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