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외로 이서는 아주 쉽게 조진명과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는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다.유람선 안은 난장판이었다. 남녀가 부둥켜안고 거리낌 없이 찐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백주대낮부터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이서는 이런 눈꼴 사나운 광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조진명을 만나러 갔다. 그는 여러 명의 여자 모델과 뒤섞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기분이 한창 업 된 걸 보니 꽤 많이 취한 것 같았다.직원이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조 사장님, 윤이서 씨 왔습니다.”여러 번 말하고서야 조진명은 고개를 돌려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기 보다는 오히려…….그녀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테이블 위에는 작은 봉지가 몇 개 있었고, 봉지 안에는 흰 분말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는 철렁 했으나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조 사장님, 윤씨 그룹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러 왔습니다.”술냄새를 푹 풍기며 조진명이 다가와서는 손가락을 치켜들어 이서를 가리키며 말했다.“너……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이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조 사장님 저희 나중에 다시 얘기하시죠. 현재 상태로는 일 이야기하기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말했다.“물 한 잔 주시겠어요?”직원은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가지러 갔다.이서는 몰래 휴대전화를 꺼내 조진명을 등지고 유람선의 상황을 녹화했다.조진명은 바로 그녀의 곁에 서서, 초롱초롱한 큰 두 눈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정신이 말짱한 것 같기도 했다.그러나 시뻘건 눈동자에 초점이 흐린 눈빛은 지나치게 흥분된 상태임을 설명한다.그녀는 입을 열었다. “조 사장님, 제가 무슨 말하는지 들려요?”조진명은 바보같이 웃으며 손을 뻗어 이서의 볼을 만지려 했다.“너무 예뻐.”이서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하며 다시 뒤로 물러섰다.
회사에서 회의 중이던 조용환은, 이서의 연락을 받고 즉시 만나기로 약속 잡았다.이서가 조씨 그룹에 도착했을 때, 조용환은 마침 회의를 마쳤다.“이서 양, 반갑네요.” 조용환은 이서를 데리고 사무실로 갔다. “오늘 어인 일로 우리 사무실까지 왔을까?”이서는 테이블 옆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별일은 아니고요. 윤씨 그룹이 이번 주총 때 신임 CEO를 선출할 예정입니다. 저는 조 회장님의 소중한 한 표를 받고 싶습니다.”말투가 담담한 것이 부탁을 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다.조용환은 멍하니 있다가 곧 하하 웃었다.“이서 양이 윤씨 그룹 CEO에 출마한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전에 하은철 대표만 따라다니는 여자애가, 지금은 여왕이 되려나 봅니다.”그의 이 말은 풍자인지 조롱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이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조용환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치켜올렸다.조용환은 어색하게 기침을 했다.“허허, 윤씨 그룹의 CEO를 선출 건은 그룹 내부 일입니다. 난 윤씨 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니 날 찾아와도 소용없어요.”“하지만 아드님은 주주 중 한 명입니다.”“그럼 그를 찾아가야지.”“찾아갔었죠.”그녀는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대표님께서도 아드님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조진명 사장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일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말로 하면 개성 있는 거고, 나쁜 말로 하면 시한폭탄인 셈이죠. 저는 시한폭탄과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습니다.”이서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자 조용환은 멋쩍었다.“그 녀석 일을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기 어렵네만…….”이서도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제가 조사해 봤는데, 요 몇 년 동안 조진명 사장이 투자한 프로젝트는 거의 다 손실을 본 상태입니다. 대표님께서 회사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도 혹시 물러나면 조씨 그룹이 이사회에 의해 분해될까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 아닌가요? 대표님도 아드님이 실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비서는 긴장한 듯 물었다.“회장님, 윤이서 씨, 이게 무슨 뜻일까요?”조용환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그는 이전에 이서와 접촉한 적이 없었다. 이서에 대해서는, 남자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생각 없는 여자,하씨 집안의 손주 며느리로 하경철이 점 찍었지만, 자기 손으로 그 기회를 날려버린 멍청한 여자로만 알고 있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윤수정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며 비서에게 손을 흔들었다.비서는 바로 물러났다.문이 닫히고, 윤수정의 전화도 연결되었다.“수정 씨, 역시 예상한 대로였어. 윤이서가 날 찾아왔지 뭐야?”윤수정은 네일을 하고 있었다. 조용환의 얘기를 듣고는 득의양양하게 입을 열었다.[어, 윤이서가 뭐라고 하던가요?]“반년 내에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했네.”윤수정이 피식 웃었다.함께 간 친구들이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왜, 뭔 좋은 일 있어?”윤수정은 웃었다.“아니, 아주 웃긴 농담을 들어서.”마침 네일도 다 말라서 그녀는 네입 샵 밖으로 나왔다.[왜요? 마음이 흔들리던가요?]그녀가 조용환에게 물었다.조용환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확실히 흔들리긴 하더라. 다만 좀 아쉬웠어…….”[뭐가 아쉬워요?]“그럴 능력이 안 되는 게 안타까운 거지. 그림의 떡은 큰데, 자기 주제를 파악 못하고 분수를 알지 못하니…….”윤수정의 웃음이 온 얼굴에 퍼졌다.[아셔서 다행이네요. 조진명 사장이 내 편에 서준다면, 앞으로 하원철 대표에게 조씨 그룹의 좀 많이 도와주라고 얘기해 둘게요. 그때는 몇 백억의 수익이 아닐 겁니다.]“응, 응, 그러지.” 조용환이 승낙하였다. “그런데 수정 양이 날 도와줄 일이 하나 있네.”[말씀하세요.]“그게 말이야. 윤이서가 좀 전에 나한테 문자를 하나 보냈는데, 아들을 잘 단속하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말하는 사이에 조용환은 이미 이서의 문자를 윤수정에게 전송했다.윤수정은 대충 한 번
김청용은 놀란 나머지 멍해졌다.“네? 장지완 씨를 추천하겠다고요?”“꼭 그런 건 아니에요.”이서는 또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디자인 업무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다만 질투심이 너무 강한 게 단점입니다. 만약 당장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먼저 임시로 부장직을 대행해도 될 듯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중요한 자리인 만큼 되도록 빨리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김청용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서 씨가 CEO 직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오늘 얘기 들으니, 기우였어요. 앞으로 이서 씨 앞날이 창창할 거 같네요. 잘 할 거라고 믿습니다.”이서는 공과 사가 분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호불호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여러 차례 시비를 걸고 말썽을 피운 장지완에 대해서도 이렇게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사장님 과찬이십니다. 그럼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네, 그래요.”사무실로 돌아온 이서는 눈시울이 빨개진 심소희를 보았다.“왜, 또 누구한테 괴롭힘 당했어?” 이서가 친절하게 물었다.심소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이서를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이서는 눈썹을 비틀었다.“대체 왜 그래?”“언니, 언니 정말 이직할 거예요?” 심소희는 목이 메어 흐느꼈다.오늘 아침부터 이서가 이직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녀는 줄곧 믿지 않았다. 오후에 인사팀에서 낸 초빙 공지를 보고서야 소문이 사실인 걸 알았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응.”심소희는 더욱 괴로웠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실패한 비서라고 생각했다. 직속상사가 사직한다는 걸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으니.“언니, 나처럼 멍청한 비서가 들어와서,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거 아니에요?”“…….”‘아이고, 대체 이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아니야,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 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이라 대충 얼버무렸다.심소희는 한편으로 틀림없이 장지완 때문에 이서가 그만두는
요 며칠 윤씨 그룹 쪽 일을 거의 다 끝낸 이서는 간만에 한가해졌다.마침 할 일 없어 심심하던 차에 임하나의 전화를 받았다.[자기, 나 내일 월차 쓸 건데 같이 웨딩드레스 고르러 갈래?]웨딩드레스를 사는 일에 관하여 임하나는 그녀보다 더 적극적이었다.이서는 웃으며 답했다.“그래.”[니들 ML국에 가서 웨딩 사진을 찍을 거잖아, 거긴 일년 내내 눈이 온다고 들었는데, 혹시 스키용품도 같이 준비하는 건 어때?]이서는 뭐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것 같은데.”임하나는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하긴……, 근데 나도 같이 가고 싶다.]이서는 농담처럼 물었다.“가고 싶어?”[음.]“그럼 빨리 상언 씨 수습기간 끝내줘.”임하나는 ‘칫’하며 뽀로통해서 말했다.[얘기 안 할 거야. 난 왜 요즘 네가 자꾸 상언 씨 편드는 거 같지? 설마 친구 배신하고 넘어간 거야?]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전화를 끊고 퇴근했다.오늘 일찍 돌아온 지환이 저녁 준비를 다 했다.지환이 부엌에서 분주히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서는 온 몸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문 앞에 서서 뭐 해?” 지환은 이서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내 잘생긴 모습에 반한 거야? 만찢남 보고 얼음 됐나?”“요즘 당신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 알아요……?”이서는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지환은 그녀에게 젓가락을 주었다.“이게 내 본성인데.”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그래요? 으흠, 그러고 보니 당신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와 비슷한 거 같기는 하네요.”지환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반달눈이 되었다.“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 어땠어?”“시니컬하고, 딱 봐도 감정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거 같은 사람?”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입술 끝에 붙은 밥알을 떼어내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이튿날, 이서와 임하나는 만나서 곧장 메리 컬러로 달려갔다. 반면 이상언과 지환은 집에 버려졌다.이상언의 말을 빌리자면, ‘방치소년’이 되었다.이서와 임하나는 메리 컬러에 도착했다.이서를 본 새 점장은 곧장 친절하게 말했다.“이상언 씨 아내이시죠? 하은철 대표께서 마음에 드시는 드레스가 있다면 마음껏 가져가시라고 특별히 당부했습니다.”눈을 마주치자, 이서와 하나는 서로 쳐다보며 죽이 잘 맞게 웃었다.새 점장은 그들이 왜 웃었는지 몰라 같이 호호 웃으며 이서와 임하나에게 웨딩드레스를 보여주러 갔다.중도에 새 점장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임하나는 이서 앞에 다가갔다.“하하, 하은철 말이야, 이상언 ‘아내’가 너인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척 궁금하네.”이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만, 곧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하나야, 다음에는 상언 씨 내 남편인 척 못하게 해.”“왜?” 임하나는 이서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우리 사이 감정은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고. 게다가 난 널 100% 믿잖아. 내가 마음에 든 남자를 네가 마음에 두지 않을 거라는 걸.”임하나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찐친은 상대방의 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자기 친구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서는 웃으며 임하나의 손을 잡았다.“가끔은 말야, 난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해. 비록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주었잖아.”임하나도 미소를 지으며 이서를 보면서 말했다.“혹시, 연애 중인 여자들은…… 다 이렇게 느끼한가?”“사돈 남 얘기하네. 너도 열애 중이잖아. 넌 잘 모르겠지?”임하나는 웃으며 이서의 팔을 꼬집었다.두 사람의 장난치는 사이에 점장이 돌아왔다.하은철이 계산한다고 하니, 이서와 임하나는 굳이 남의 지갑사정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쿡이 준 리스트에 적힌 드레스를 몽땅 골랐다.계산할 때 보니 총 30여 억원이었다.점장은 하은철의 비서에게
이서가 ‘응’ 하고 말했다.“맙소사, 정말 상상불가다. 이서야, 너 완전 멋있어.”하지만 이서는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솔직히 나도 자신 없어. 너무 띄워주지 마.”“아니야, 네가 회사를 인수할 용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대부분 사람들은, 사장직을 내어줘도 할 엄두를 못 내. 그 생생한 예가 바로 나야. 나는 못 해. 회사에 자질구레한 일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회사를 경영하려면 신경 써야 할 거도 많고 게다가 난 경험도 별로 없잖아. 그래서 걱정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할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가 망해가는 걸 잠자코 볼 수가 없어.”비록 그녀는 할아버지에 대해 인상이 전혀 없지만, 어쨌던 그녀도 결국은 윤씨 집안 사람이니까.“그건 그래.” 예전의 윤씨 가문 얘기를 꺼내자, 임하나도 탄식했다.그때 그녀는 비록 어렸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윤씨 가문은, 어른들에게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그야말로 천양지차다.“에이,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서점에 잠깐 들렸다 가자.”이서는 휴대전화를 꺼냈다.“나오기 전에 지환 씨에 회사 경영 관련 책 목록을 받았어.”임하나가 슬쩍 훑어보았더니 대부분 영어서적이었다.그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부러웠다.“쯧쯧, 이 책 목록들을 정리한다고 지환 씨도 신경 많이 썼지? 부부가 같이 자기개발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긴 한데, 난 왜 괜히 찔리지……?”이서는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이 보폭을 맞춰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밝은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다만 애석하게도 아직 아이 방면의 문제에서는 두 사람이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아이 생각이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가자, 이서는 미간을 누르며 아이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임하나와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서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히 경영 관리 쪽 분야는 더욱 한산했다.
머리가 부시시하고 다크서클이 심한 걸 보니,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소지엽이 그를 슬쩍 끌어당겼다.그는 그제야 이서를 알아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근육이 경직되었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안되겠다, 나 피곤해 뒤지겠어, 나 먼저 자러 가야겠다. 이서 씨 다음에 봐요. 먼저 갈…….”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지엽 옆에 축 처지면서 땅에 주저앉았다.구태우의 이런 모습을 본 임하나와 이상한 듯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소지엽은 죽은 듯이 자는 구태우를 발로 툭 한 번 차고는 직원을 불러 3층 사무실로 옮기라고 했다.“최근 뭐 좀 찾아본다고 3일 밤낮을 잠을 안 잤어. 지금 잠을 보충해야 해. 니들은……?”소지엽은 이서의 쇼핑 바구니를 훑어보았다.“더 필요한 거 있어?”“『경영 관리학의 진수』 라는 책 한 권이 더 필요해.”임하나가 물어보기 바쁘게 대답했다.소지엽은 큰집 드나들 듯 바로 C구역에 가서 붉은색 표지의 책을 꺼내 이서에게 주었다.이서와 임하나가 눈여겨보니 바로 『경영 관리학의 진수』 였다.임하나는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보지도 않고,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다 알지?”소지엽은 살짝 웃었다.“여기 내 서점이니까. 당연히 무슨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야겠지? 그나저나, 이서는……?”그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경영 관리학의 진수』라는 책을 보며 물었다.“이 책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당연히 남편이 알려준 거지.”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사위 자랑하는 장모의 태세를 취하며 ‘사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여기 이 책들, 다 이서남편이 추천한 거야.”소지엽은 눈썹을 숙이고 쇼핑 바구니에 담긴 책을 보고는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오우, 전문가인데? 혹시 어느 회사 대표인지 물어봐도 되?”임하나와 이서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여전히 임하나가 입을 열었다.“사장은 무슨, 평범한 직장인입니다.”소지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