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용은 놀란 나머지 멍해졌다.“네? 장지완 씨를 추천하겠다고요?”“꼭 그런 건 아니에요.”이서는 또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디자인 업무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다만 질투심이 너무 강한 게 단점입니다. 만약 당장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먼저 임시로 부장직을 대행해도 될 듯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중요한 자리인 만큼 되도록 빨리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김청용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서 씨가 CEO 직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오늘 얘기 들으니, 기우였어요. 앞으로 이서 씨 앞날이 창창할 거 같네요. 잘 할 거라고 믿습니다.”이서는 공과 사가 분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호불호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여러 차례 시비를 걸고 말썽을 피운 장지완에 대해서도 이렇게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사장님 과찬이십니다. 그럼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네, 그래요.”사무실로 돌아온 이서는 눈시울이 빨개진 심소희를 보았다.“왜, 또 누구한테 괴롭힘 당했어?” 이서가 친절하게 물었다.심소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이서를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이서는 눈썹을 비틀었다.“대체 왜 그래?”“언니, 언니 정말 이직할 거예요?” 심소희는 목이 메어 흐느꼈다.오늘 아침부터 이서가 이직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녀는 줄곧 믿지 않았다. 오후에 인사팀에서 낸 초빙 공지를 보고서야 소문이 사실인 걸 알았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응.”심소희는 더욱 괴로웠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실패한 비서라고 생각했다. 직속상사가 사직한다는 걸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으니.“언니, 나처럼 멍청한 비서가 들어와서,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거 아니에요?”“…….”‘아이고, 대체 이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아니야,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 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이라 대충 얼버무렸다.심소희는 한편으로 틀림없이 장지완 때문에 이서가 그만두는
요 며칠 윤씨 그룹 쪽 일을 거의 다 끝낸 이서는 간만에 한가해졌다.마침 할 일 없어 심심하던 차에 임하나의 전화를 받았다.[자기, 나 내일 월차 쓸 건데 같이 웨딩드레스 고르러 갈래?]웨딩드레스를 사는 일에 관하여 임하나는 그녀보다 더 적극적이었다.이서는 웃으며 답했다.“그래.”[니들 ML국에 가서 웨딩 사진을 찍을 거잖아, 거긴 일년 내내 눈이 온다고 들었는데, 혹시 스키용품도 같이 준비하는 건 어때?]이서는 뭐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것 같은데.”임하나는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하긴……, 근데 나도 같이 가고 싶다.]이서는 농담처럼 물었다.“가고 싶어?”[음.]“그럼 빨리 상언 씨 수습기간 끝내줘.”임하나는 ‘칫’하며 뽀로통해서 말했다.[얘기 안 할 거야. 난 왜 요즘 네가 자꾸 상언 씨 편드는 거 같지? 설마 친구 배신하고 넘어간 거야?]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전화를 끊고 퇴근했다.오늘 일찍 돌아온 지환이 저녁 준비를 다 했다.지환이 부엌에서 분주히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서는 온 몸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문 앞에 서서 뭐 해?” 지환은 이서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내 잘생긴 모습에 반한 거야? 만찢남 보고 얼음 됐나?”“요즘 당신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 알아요……?”이서는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지환은 그녀에게 젓가락을 주었다.“이게 내 본성인데.”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그래요? 으흠, 그러고 보니 당신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와 비슷한 거 같기는 하네요.”지환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반달눈이 되었다.“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 어땠어?”“시니컬하고, 딱 봐도 감정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거 같은 사람?”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입술 끝에 붙은 밥알을 떼어내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이튿날, 이서와 임하나는 만나서 곧장 메리 컬러로 달려갔다. 반면 이상언과 지환은 집에 버려졌다.이상언의 말을 빌리자면, ‘방치소년’이 되었다.이서와 임하나는 메리 컬러에 도착했다.이서를 본 새 점장은 곧장 친절하게 말했다.“이상언 씨 아내이시죠? 하은철 대표께서 마음에 드시는 드레스가 있다면 마음껏 가져가시라고 특별히 당부했습니다.”눈을 마주치자, 이서와 하나는 서로 쳐다보며 죽이 잘 맞게 웃었다.새 점장은 그들이 왜 웃었는지 몰라 같이 호호 웃으며 이서와 임하나에게 웨딩드레스를 보여주러 갔다.중도에 새 점장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임하나는 이서 앞에 다가갔다.“하하, 하은철 말이야, 이상언 ‘아내’가 너인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척 궁금하네.”이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만, 곧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하나야, 다음에는 상언 씨 내 남편인 척 못하게 해.”“왜?” 임하나는 이서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우리 사이 감정은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고. 게다가 난 널 100% 믿잖아. 내가 마음에 든 남자를 네가 마음에 두지 않을 거라는 걸.”임하나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찐친은 상대방의 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자기 친구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서는 웃으며 임하나의 손을 잡았다.“가끔은 말야, 난 내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해. 비록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주었잖아.”임하나도 미소를 지으며 이서를 보면서 말했다.“혹시, 연애 중인 여자들은…… 다 이렇게 느끼한가?”“사돈 남 얘기하네. 너도 열애 중이잖아. 넌 잘 모르겠지?”임하나는 웃으며 이서의 팔을 꼬집었다.두 사람의 장난치는 사이에 점장이 돌아왔다.하은철이 계산한다고 하니, 이서와 임하나는 굳이 남의 지갑사정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쿡이 준 리스트에 적힌 드레스를 몽땅 골랐다.계산할 때 보니 총 30여 억원이었다.점장은 하은철의 비서에게
이서가 ‘응’ 하고 말했다.“맙소사, 정말 상상불가다. 이서야, 너 완전 멋있어.”하지만 이서는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솔직히 나도 자신 없어. 너무 띄워주지 마.”“아니야, 네가 회사를 인수할 용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대부분 사람들은, 사장직을 내어줘도 할 엄두를 못 내. 그 생생한 예가 바로 나야. 나는 못 해. 회사에 자질구레한 일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회사를 경영하려면 신경 써야 할 거도 많고 게다가 난 경험도 별로 없잖아. 그래서 걱정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할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가 망해가는 걸 잠자코 볼 수가 없어.”비록 그녀는 할아버지에 대해 인상이 전혀 없지만, 어쨌던 그녀도 결국은 윤씨 집안 사람이니까.“그건 그래.” 예전의 윤씨 가문 얘기를 꺼내자, 임하나도 탄식했다.그때 그녀는 비록 어렸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윤씨 가문은, 어른들에게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그야말로 천양지차다.“에이,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서점에 잠깐 들렸다 가자.”이서는 휴대전화를 꺼냈다.“나오기 전에 지환 씨에 회사 경영 관련 책 목록을 받았어.”임하나가 슬쩍 훑어보았더니 대부분 영어서적이었다.그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부러웠다.“쯧쯧, 이 책 목록들을 정리한다고 지환 씨도 신경 많이 썼지? 부부가 같이 자기개발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긴 한데, 난 왜 괜히 찔리지……?”이서는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이 보폭을 맞춰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밝은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다만 애석하게도 아직 아이 방면의 문제에서는 두 사람이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아이 생각이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가자, 이서는 미간을 누르며 아이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임하나와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서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히 경영 관리 쪽 분야는 더욱 한산했다.
머리가 부시시하고 다크서클이 심한 걸 보니,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소지엽이 그를 슬쩍 끌어당겼다.그는 그제야 이서를 알아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근육이 경직되었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안되겠다, 나 피곤해 뒤지겠어, 나 먼저 자러 가야겠다. 이서 씨 다음에 봐요. 먼저 갈…….”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지엽 옆에 축 처지면서 땅에 주저앉았다.구태우의 이런 모습을 본 임하나와 이상한 듯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소지엽은 죽은 듯이 자는 구태우를 발로 툭 한 번 차고는 직원을 불러 3층 사무실로 옮기라고 했다.“최근 뭐 좀 찾아본다고 3일 밤낮을 잠을 안 잤어. 지금 잠을 보충해야 해. 니들은……?”소지엽은 이서의 쇼핑 바구니를 훑어보았다.“더 필요한 거 있어?”“『경영 관리학의 진수』 라는 책 한 권이 더 필요해.”임하나가 물어보기 바쁘게 대답했다.소지엽은 큰집 드나들 듯 바로 C구역에 가서 붉은색 표지의 책을 꺼내 이서에게 주었다.이서와 임하나가 눈여겨보니 바로 『경영 관리학의 진수』 였다.임하나는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보지도 않고,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다 알지?”소지엽은 살짝 웃었다.“여기 내 서점이니까. 당연히 무슨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야겠지? 그나저나, 이서는……?”그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경영 관리학의 진수』라는 책을 보며 물었다.“이 책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당연히 남편이 알려준 거지.”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사위 자랑하는 장모의 태세를 취하며 ‘사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여기 이 책들, 다 이서남편이 추천한 거야.”소지엽은 눈썹을 숙이고 쇼핑 바구니에 담긴 책을 보고는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오우, 전문가인데? 혹시 어느 회사 대표인지 물어봐도 되?”임하나와 이서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여전히 임하나가 입을 열었다.“사장은 무슨, 평범한 직장인입니다.”소지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정말?”“
시간은 어느덧 CEO 선출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서는 오히려 갈수록 침착해졌다.그리고 서우 쪽 업무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다만 인사처에서는 마땅한 새 부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김청용 또한 줄곧 이서의 사직서에 사인하지 않았다.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그동안 윤수정은 하은철을 따라 다양한 자리에 참석했다.눈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은철이 이서를 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석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윤수정이 CEO로 선출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윤수정이 신임 사장이 되면 윤씨 그룹에 투자하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걸 김청용도 알게 있었다.주주들도 이러한 소문을 들으면, 틀림없이 윤수정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그래서 김청용은 이서가 윤씨 그룹의 CEO가 선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하은철은 윤수정한테 마음이 있다.그의 직속 상사인 하 회장도 팔이 안으로 굽어 더 이상 이서를 챙기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이서의 사직서를 정말 수리했다가 나중에 CEO 안 되고 직장도 잃게 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격이니.이서는 오히려 별 생각없이 퇴근하는 대로 마트에 가서 장을 잔뜩 봐왔다. 그녀는 오늘 저녁 맛있게 먹고 내일의 격전을 맞이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장지완을 만났다.장지완은 이서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어머나, 이거 우리 윤 총괄 아니야? 직업 정신도 투철하셔라, 오늘이 마지막 출근한 건가?”그녀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이 몇 사람은 모두 장지완의 사람들이었다.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사람들 지난번에 강수지를 내보낸 후에는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서가 곧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고지병이 또 도진 것이었다.이서는 이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사장님이 아직 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난 아직 서우의 총괄 디렉터입니다.”장지완은 시계를 꺼내 보았다.“아쉽게도
지금 한껏 들떠 있는 윤수정은 장지완을 나무라지 않았다.[괜찮아요, 내일 되면 좋은 구경할 수 있을 거예요.]눈치 빠른 장지완은 바로 이 얘기의 뜻을 포착하고 바로 아부성 멘트를 날렸다.“그럼, 윤 사장님 축하인사 먼저 받아야겠네. 축하해.”윤 사장이라는 말에, 윤수정의 기분은 더욱 업 되었다.[걱정마요, 그쪽 공로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요.]“그리고…….” 장지완은 하던 말을 잠깐 멈추었다.“마침 상의드릴 얘기가 있는데…….”[말해봐요.]“회사 쪽에서 날 신임 디자인 팀장으로 확정했어.” 장지완은 윤수정 앞에서도 팀장 대행이라는 거에 대해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그래요? 그럼 원하는 게……?]똑똑한 사람과 일하면 이런 게 좋다. 굳이 구구절절 얘기 안 해도 척하면 척이니.장지완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내 생각에는…… 윤씨 그룹에서 패션 사업도 같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디자인 쪽은 내가 또…….”말을 절반만 했을 때 윤수정은 장지원이 원하는 바를 알았다. 그녀는 웃으면서 CEO 명패를 가지고 놀며 말했다.[네 알았어요.]‘장지완에게 일거리 몇 개 주는 것쯤이야…….’[이렇게 하죠, 내일 아침 주주총회가 끝나고 나면, 대략 오후 2, 3시쯤 될 거예요. 그 때 사무실로 오세요. 일거리 부탁할 게 있어요.]“네!”장지완은 바쁘게 계속 말했다.“윤 사장, 고마워.”윤수정은 손을 흔들었다.[나만 잘 따라오면, 앞으로 일거리는 많을 거예요. 서우에서 받는 월급보다 결코 적지 않을 거라는 걸 보장합니다.]장지완은 또 황급히 여러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이때 집으러 향하던 이서는 갑자기 윤수정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의 괴상한 병도 떠올라 휴대전화를 꺼내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상언 씨, 전에 내가 윤수정 관련 조사 부탁했던 거, 혹시 지금 진전이 있나요?”이상언은 의자에 묶인 남자를 보았다.[윤수정의 병상에 대해 말하는 거죠?]남자는 이상언의 말을 듣고 벌벌 떨었다.[걱정 마요, 이미
이서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지환도 이미 퇴근했다.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주방에서 요리를 하지 않고 이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내가 우곡에 예약해 놨어.”우곡은 최근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 레스토랑이었다.해산물 전문 식당으로, 새우만으로도 대략 50여 가지의 요리를 할 수 있으며, 게다가 요리마다 맛이 끝내준다고 했다.유일한 단점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지난번에 어떤 사람이 레스토랑 영수증을 인스타에 올린 적 있는데, 세 가지 요리를 주문했을 뿐인데, 족히 몇 백 만 원이 들었다.그래서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거기 너무 비싸요.”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거기서 밥을……?”지환은 이서의 턱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그건 당연히 내 와이프가 곧 윤씨 그룹의 신임 CEO의 선출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서?”“미리 축하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만약 떨어지기라도 한다면?”“그럴 리가?”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 “자기야, 난 자기 믿거든.”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무조건적인 신뢰는 장난이 아니었다.누군가에서 신뢰를 받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이서는 제대로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지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막 발꿈치를 내리려고 할 때, 갑자기 허리에 힘이 들어가더니, 몸자체가 위로 들렸다.지환이 손을 놓자 그녀는 그제야 얼른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마치 저녁노을 같았다.지환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호흡을 가다듬도록 도왔다.“자기야, 체력 훈련 좀 해야겠어.”이서는 잠시 후에야 허리를 곧게 폈다.“장난 그만 쳐요. 얼른 우곡에 전화해서 예약 취소해요.”“축하파티 안 하고?”“축하는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그녀는 여전히 수 백만원을 한끼 식사에 소비하는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이서의 마음을 간파한 듯, 지환은 이서의 이마에 키스했다.“자꾸 날 위해 돈을 절약할 생각하지 마.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