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가 ‘응’ 하고 말했다.“맙소사, 정말 상상불가다. 이서야, 너 완전 멋있어.”하지만 이서는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솔직히 나도 자신 없어. 너무 띄워주지 마.”“아니야, 네가 회사를 인수할 용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대부분 사람들은, 사장직을 내어줘도 할 엄두를 못 내. 그 생생한 예가 바로 나야. 나는 못 해. 회사에 자질구레한 일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회사를 경영하려면 신경 써야 할 거도 많고 게다가 난 경험도 별로 없잖아. 그래서 걱정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할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가 망해가는 걸 잠자코 볼 수가 없어.”비록 그녀는 할아버지에 대해 인상이 전혀 없지만, 어쨌던 그녀도 결국은 윤씨 집안 사람이니까.“그건 그래.” 예전의 윤씨 가문 얘기를 꺼내자, 임하나도 탄식했다.그때 그녀는 비록 어렸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윤씨 가문은, 어른들에게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그야말로 천양지차다.“에이,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서점에 잠깐 들렸다 가자.”이서는 휴대전화를 꺼냈다.“나오기 전에 지환 씨에 회사 경영 관련 책 목록을 받았어.”임하나가 슬쩍 훑어보았더니 대부분 영어서적이었다.그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부러웠다.“쯧쯧, 이 책 목록들을 정리한다고 지환 씨도 신경 많이 썼지? 부부가 같이 자기개발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긴 한데, 난 왜 괜히 찔리지……?”이서는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이 보폭을 맞춰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밝은 내일과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다만 애석하게도 아직 아이 방면의 문제에서는 두 사람이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아이 생각이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가자, 이서는 미간을 누르며 아이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임하나와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서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히 경영 관리 쪽 분야는 더욱 한산했다.
머리가 부시시하고 다크서클이 심한 걸 보니,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소지엽이 그를 슬쩍 끌어당겼다.그는 그제야 이서를 알아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근육이 경직되었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안되겠다, 나 피곤해 뒤지겠어, 나 먼저 자러 가야겠다. 이서 씨 다음에 봐요. 먼저 갈…….”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지엽 옆에 축 처지면서 땅에 주저앉았다.구태우의 이런 모습을 본 임하나와 이상한 듯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소지엽은 죽은 듯이 자는 구태우를 발로 툭 한 번 차고는 직원을 불러 3층 사무실로 옮기라고 했다.“최근 뭐 좀 찾아본다고 3일 밤낮을 잠을 안 잤어. 지금 잠을 보충해야 해. 니들은……?”소지엽은 이서의 쇼핑 바구니를 훑어보았다.“더 필요한 거 있어?”“『경영 관리학의 진수』 라는 책 한 권이 더 필요해.”임하나가 물어보기 바쁘게 대답했다.소지엽은 큰집 드나들 듯 바로 C구역에 가서 붉은색 표지의 책을 꺼내 이서에게 주었다.이서와 임하나가 눈여겨보니 바로 『경영 관리학의 진수』 였다.임하나는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보지도 않고,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다 알지?”소지엽은 살짝 웃었다.“여기 내 서점이니까. 당연히 무슨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야겠지? 그나저나, 이서는……?”그는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경영 관리학의 진수』라는 책을 보며 물었다.“이 책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당연히 남편이 알려준 거지.”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사위 자랑하는 장모의 태세를 취하며 ‘사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여기 이 책들, 다 이서남편이 추천한 거야.”소지엽은 눈썹을 숙이고 쇼핑 바구니에 담긴 책을 보고는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오우, 전문가인데? 혹시 어느 회사 대표인지 물어봐도 되?”임하나와 이서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여전히 임하나가 입을 열었다.“사장은 무슨, 평범한 직장인입니다.”소지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정말?”“
시간은 어느덧 CEO 선출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서는 오히려 갈수록 침착해졌다.그리고 서우 쪽 업무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다만 인사처에서는 마땅한 새 부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김청용 또한 줄곧 이서의 사직서에 사인하지 않았다.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그동안 윤수정은 하은철을 따라 다양한 자리에 참석했다.눈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은철이 이서를 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석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윤수정이 CEO로 선출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윤수정이 신임 사장이 되면 윤씨 그룹에 투자하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걸 김청용도 알게 있었다.주주들도 이러한 소문을 들으면, 틀림없이 윤수정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그래서 김청용은 이서가 윤씨 그룹의 CEO가 선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하은철은 윤수정한테 마음이 있다.그의 직속 상사인 하 회장도 팔이 안으로 굽어 더 이상 이서를 챙기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이서의 사직서를 정말 수리했다가 나중에 CEO 안 되고 직장도 잃게 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격이니.이서는 오히려 별 생각없이 퇴근하는 대로 마트에 가서 장을 잔뜩 봐왔다. 그녀는 오늘 저녁 맛있게 먹고 내일의 격전을 맞이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장지완을 만났다.장지완은 이서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어머나, 이거 우리 윤 총괄 아니야? 직업 정신도 투철하셔라, 오늘이 마지막 출근한 건가?”그녀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웃었다.이 몇 사람은 모두 장지완의 사람들이었다.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사람들 지난번에 강수지를 내보낸 후에는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서가 곧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고지병이 또 도진 것이었다.이서는 이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사장님이 아직 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난 아직 서우의 총괄 디렉터입니다.”장지완은 시계를 꺼내 보았다.“아쉽게도
지금 한껏 들떠 있는 윤수정은 장지완을 나무라지 않았다.[괜찮아요, 내일 되면 좋은 구경할 수 있을 거예요.]눈치 빠른 장지완은 바로 이 얘기의 뜻을 포착하고 바로 아부성 멘트를 날렸다.“그럼, 윤 사장님 축하인사 먼저 받아야겠네. 축하해.”윤 사장이라는 말에, 윤수정의 기분은 더욱 업 되었다.[걱정마요, 그쪽 공로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요.]“그리고…….” 장지완은 하던 말을 잠깐 멈추었다.“마침 상의드릴 얘기가 있는데…….”[말해봐요.]“회사 쪽에서 날 신임 디자인 팀장으로 확정했어.” 장지완은 윤수정 앞에서도 팀장 대행이라는 거에 대해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그래요? 그럼 원하는 게……?]똑똑한 사람과 일하면 이런 게 좋다. 굳이 구구절절 얘기 안 해도 척하면 척이니.장지완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내 생각에는…… 윤씨 그룹에서 패션 사업도 같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디자인 쪽은 내가 또…….”말을 절반만 했을 때 윤수정은 장지원이 원하는 바를 알았다. 그녀는 웃으면서 CEO 명패를 가지고 놀며 말했다.[네 알았어요.]‘장지완에게 일거리 몇 개 주는 것쯤이야…….’[이렇게 하죠, 내일 아침 주주총회가 끝나고 나면, 대략 오후 2, 3시쯤 될 거예요. 그 때 사무실로 오세요. 일거리 부탁할 게 있어요.]“네!”장지완은 바쁘게 계속 말했다.“윤 사장, 고마워.”윤수정은 손을 흔들었다.[나만 잘 따라오면, 앞으로 일거리는 많을 거예요. 서우에서 받는 월급보다 결코 적지 않을 거라는 걸 보장합니다.]장지완은 또 황급히 여러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이때 집으러 향하던 이서는 갑자기 윤수정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의 괴상한 병도 떠올라 휴대전화를 꺼내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상언 씨, 전에 내가 윤수정 관련 조사 부탁했던 거, 혹시 지금 진전이 있나요?”이상언은 의자에 묶인 남자를 보았다.[윤수정의 병상에 대해 말하는 거죠?]남자는 이상언의 말을 듣고 벌벌 떨었다.[걱정 마요, 이미
이서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지환도 이미 퇴근했다.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주방에서 요리를 하지 않고 이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내가 우곡에 예약해 놨어.”우곡은 최근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 레스토랑이었다.해산물 전문 식당으로, 새우만으로도 대략 50여 가지의 요리를 할 수 있으며, 게다가 요리마다 맛이 끝내준다고 했다.유일한 단점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지난번에 어떤 사람이 레스토랑 영수증을 인스타에 올린 적 있는데, 세 가지 요리를 주문했을 뿐인데, 족히 몇 백 만 원이 들었다.그래서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거기 너무 비싸요.”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거기서 밥을……?”지환은 이서의 턱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그건 당연히 내 와이프가 곧 윤씨 그룹의 신임 CEO의 선출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서?”“미리 축하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만약 떨어지기라도 한다면?”“그럴 리가?”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껴안았다. “자기야, 난 자기 믿거든.”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무조건적인 신뢰는 장난이 아니었다.누군가에서 신뢰를 받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이서는 제대로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지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막 발꿈치를 내리려고 할 때, 갑자기 허리에 힘이 들어가더니, 몸자체가 위로 들렸다.지환이 손을 놓자 그녀는 그제야 얼른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마치 저녁노을 같았다.지환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호흡을 가다듬도록 도왔다.“자기야, 체력 훈련 좀 해야겠어.”이서는 잠시 후에야 허리를 곧게 폈다.“장난 그만 쳐요. 얼른 우곡에 전화해서 예약 취소해요.”“축하파티 안 하고?”“축하는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그녀는 여전히 수 백만원을 한끼 식사에 소비하는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이서의 마음을 간파한 듯, 지환은 이서의 이마에 키스했다.“자꾸 날 위해 돈을 절약할 생각하지 마.
고개를 돌려 이서를 확인한 소지엽도 의외인 마찬가지였다.“친구랑?” 그는 밤에도, 햇살 같은 따뜻한 미소를 선사했다.이서도 따라서 웃었다.“아니, 남편이랑.”소지엽의 눈동자 속에 햇살이 반쯤 사라졌다.“부부가 금슬이 참 좋구나.”이서는 겸연쩍게 고개를 숙이고 웃더니, 곧 고개를 들었다.“너는? 친구랑 왔어?”소지엽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 그런 셈이지.”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잠시 화제가 없어 침묵하고 서 있었다. 잠시 뒤 소지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네 남편 좀 소개해줄 수 있어?”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서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는 지 알고 싶었다.이서는 웃으며 눈살을 구부렸다.“당근이지. 잠깐 기다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프론트를 보았다.“나 계산하고…….”소지엽은 황급히 말했다.“내가 할게, 내가 사는 걸로 하자.”“아니야, 아니야.” 이서는 손을 흔들었다.“어떻게 네가 돈을 쓰게 할 수 있겠니?”두 사람이 앞다투어 계산하려고 하자, 프론트에서 방 번호를 요구했다. 직원은 컴퓨터 모니터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는 곧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분, 죄송합니다. 201호실은 이미 계산 완료했습니다.”“…….”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이서는 어색하게 관자놀이를 비볐다.“남편이 계산했나 보네. 물어보고 나온다는 걸 깜빡했다.”소지엽도 따라 웃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그럼 이제 네 남편을 만나러 가도 되겠네?”이서는 ‘응’ 하고 소지엽을 데리고 룸 쪽으로 갔다.두 사람이 두 걸음 걸었을 때, 뒤에서 갑자기 애교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엽 씨.”이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지엽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예쁘고 얌전하게 생긴 여자애가 지엽에게 손을 흔들었다. 딱 봐도 대갓집 규수였다.소지엽의 안색이 부자연스러워졌다.그 여자는 다가와서 이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보조개가 소용돌이 쳤다.“윤이서?!”이서는 눈앞의 여자가 누군지 알
지환은 비몽사몽인 이서를 안고 별장으로 돌아와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혀서 침대에 눕히고서야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그윽한 푸른색 빛이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지환은 구태우가 손에 넣은 임현태의 자료를 쳐다보았다. 잠시 뒤, 그는 손을 들어 키보드를 눌렀다.같은 시각, 도시의 다른 한쪽.구태우는 건반을 두드리며 그의 뒤에서 자작자음하는 소지엽을 흘겨보았다.“야, 술 사준다며? 난 왜 네가 먹으려고 산 것 같지?”소지엽은 아무 말없이 계속 묵묵히 술만 마셨다.구태우는 마우스를 놓고, 컴퓨터가 스스로 검색하도록 세팅해 두었다.그러고는 소지엽 옆으로 가서 앉았다.“왜? 그 여자가 널 마음에 안 들어하디?”소씨 집안이 소지엽에게 맞선을 주선한 걸 구태우도 잘 알고 있었다.소지엽은 답답한 듯 술을 한 모금 마셨다.“나, 이서 만났어.”구태우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두 번 찼다.소지엽은 또 한 모금 들이켰다.“남편과 함께 식당에 왔더라고. 매번 남편 언급할 때마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모습을 지어서 정말 대체 어떤 남자길래 이서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는지 궁금했어.”구태우는 소지엽이 괴로워하는 걸 처음 보았다. 그는 소지엽의 얘기에 한참이나 멍해있다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거두었다.“친구야, 우리 안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왜 네 입에서 지금까지 그녀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지?”“얘기할 게 뭐 있어?”소지엽은 쓴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하은철의 약혼녀였고, 그녀가 하은철과 파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또 이미 결혼했는데. 우리 둘은 인연이 없나 봐.”아마도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긴 다리를 마음대로 벌리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은 평소의 밝고 긍정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오히려 여려 보였다.구태우는 묵묵히 그와 함께 한 잔을 들이켰다.“다른 사람과 시작해볼 수도 있잖아?”“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맞선을 보러 간건데……, 거기서 심가은이 친구얘기, 새로 산 가방 얘기, 그리고 유학 시절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데……
다섯 명의 주주뿐만 아니라 윤씨 그룹의 고위층 관리자들도 속속 회의실로 들어왔다.쭉 훑어보니, 거의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모두 윤씨 집안의 친인척들이었다.현재의 윤씨 그룹은 회사라기보다는 가족 공동 작업장 같았다.모두 연줄로 회사에 들어왔으니 회사에 관심도 없고, 성지영과 윤재하의 배임 횡령을 적발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이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아직 정식 선출이 시작되기 전이라 회의실 안은 시끌벅적했다.모두 이서와 윤수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그리 크지 않은 회의실이라,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렸다.“윤이서 왜 온 거야? 굴욕을 자초하려고?”“흥, 윤 사장 넘어뜨리면 지가 사장 올라갈 줄 아나 봐? 회사가 정말 윤이서 손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 진짜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내가 뭐랬어? 윤씨 집안의 많은 후배들 중에서 가장 나은 게 윤수정이야.”“그래, 그리고 하은철 대표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수정이가 회사를 맡아야 우리 그룹도 해 뜰 날이 있을 텐데.”“…….”이서는 그들의 말을 들고서도 시종 무표정했다.맞은편의 윤수정은 의기양양하여 입꼬리가 이마까지 올라갔다.그녀는 입을 오므리고는 말했다.“언니, 언니가 이번 경선에 참가하는 건 여러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언니 용기는 가상해. 웃음거리가 될 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거, 이 한 가지만으로도 내 경쟁상대인 언니에게 엄지척을 내밀겠어.”말하면서 그녀는 손에 든 물잔으로 이서의 잔을 부딪치려 했다.이서는 귀찮은 듯 눈꺼풀을 젖히며 말했다.“고맙지만, 너는 내 경쟁상대가 될 자격이 없어.”윤수정의 입꼬리가 경직되었다.바로 이때 그녀 책상 위에 놓은 핸드폰이 화면이 켜졌다.핸드폰을 확인한 윤수정의 입가에 찬란한 웃음이 어렸다.“원철이 오빠 왔네. 마중 나가야겠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빛으로 윤수정을 쳐다보았다.마음속으로도 이 CEO의 자리는 무조건 윤수정이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많은 얘기들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