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갖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임현태지만, 지환의 말을 듣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회장님,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지환은 차량 시트에 가볍게 기대었다.“아니다. 오늘 이후, 민호일이 더는 이서 뒷조사를 안 할 테니, 본래 자리로 복귀하면 된다.”임현태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네.”“그동안 수고했어. 복귀하면 보너스 두둑하게 챙겨 줄게. 하지만 명심해.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구해야 해.”“넵, 회장님, 감사합니다. 안심하세요. 비밀 꼭 지키겠습니다.”지환은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집에 돌아온 이서는 컴퓨터를 켰다.“이렇게 늦었는데 자야지? 뭘 하려고?” 지환은 의자 팔걸이에 앉아 이서의 뒷목을 매만지며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이서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윤씨 그룹의 재무제표를 보고 있어요.”회사의 재무제표는 공시되어 있어 인터넷에 바로 확인 가능하다.지환은 입술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이걸 왜 봐?”“좀 이상해서요……. 하씨 그룹에서 매년 거액을 투자하고, 하씨 그룹의 안면을 봐서 편의를 봐주는 업체나 기관도 엄청 많은데, 왜 윤씨 그룹은 매년 심한 적자를 겪는 건지 궁금해요.”지환은 손으로 이서의 턱을 살짝 들었다.“자기는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전에 당신이 나한테 회사를 경영해보라고 했던 거 기억 나요?”“응.”“전에는, 내가 회사를 경영했다간 쫄딱 망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원래부터 적자 상태였던 윤씨 그룹을 내가 직접 경영해도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서요.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어요.”지환은 웃으며 말했다.“일리 있네.”“그래서 이번에 윤씨 그룹 차기 CEO 자리에 출마할 생각이에요.”비록 윤재하 부부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끊었지만, 이서 역시 윤씨 가문의 일원이다. 게다가 하씨 그룹이 지금까지 윤씨 그룹을 지원한 것도 이서 때문이다. 따라서 출마 자격이 충
시간이 1분 1초가 지나면서, 초조해진 민호일은 이마에 식은땀까지 줄줄 흘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지환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듣자니 민 회장 쪽 사람들이 줄곧 윤이서를 미행했다고 들었네만…….”화제가 갑자기 이서에게 옮겨지자, 민호일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지환의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라 아리송했다.지환은 눈동자를 치켜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왜? 일은 해 놓고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겁니까?”“그게 아니라…….”민호일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윤이서를 미행한 건, 다름이 아니라 제 딸 때문입니다. ……딸이 조금 아픈 데, 딸이 그렇게 된 데는 윤이서 남편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지환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거꾸로 엎었다.“나 오늘 민 회장 가정사 들으러 온 거 아니에요. 이서는 하씨 집안 어르신이 아끼는 사람입니다. 윤이서를 계속 귀찮게 했다간 뒷감당도 생각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민호일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이 말은 뜻은 매우 명백했다.하지환도 윤이서를 감싸고 있다는 거!“네, 앞으로…… 더 이상 그럴 일 없을 겁니다.”“꼽사리 껴서 돈 벌고 싶다면, 그래야죠. 명심하세요. 앞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안 건드리는 게 좋습니다.”“네.”오늘의 목적을 달성한 지환은 소파에서 일어섰다.“이천, 계약서 보여드려.”“네.”이천은 민호일에게 계약서를 건네주었다.민호일은 한 번 슬쩍 훑어보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50%나요? 제…… 제가 이윤의 절반을 배당 받는다고요?”민호일이 상상도 못했던 조건이었다.지환은 무관심하게 계약서에 사인하고 인감을 찍고 훌쩍 떠났다.차가 멀어지자 민호일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하하 웃었다.집사가 옆에서 말했다.“회장님 감축 드립니다. 이번에 하씨 가문 큰집 도련님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회장님은 범이 날개를 단 격이 된 겁니다. 곧 H국의 두 번째 가문으로 거듭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민호일은 호탕하게 웃었다.“이서
이상언은 조급해졌다.[아니에요, 내가 갈게요. 이 밤에 여자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해요.]“저도 집에 있어도…….”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얼른 베란다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지환의 차였다. 이서는 드디어 걱정하던 마음을 쓸어내렸다.“지환 씨 돌아왔어요. 이만 끊을 게요. 고마워요. 상언 씨.”수화기 너머의 이상언도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간 이서는 들어오는 지환을 보자마자 그의 품에 뛰어들어 와락 안겼다.“어디 갔었어요?”이서의 품에 안겨 1초 동안 멍해 있던 지환은 이서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회사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왔어. 왜? 악몽 꿨어?”이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코를 들이마셨다.“왜 나가면서 메모도 메시지도 안 남겼어요?”이서의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지환은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놀랐어?”“전화해도 안 받고, 메시지도 없고, 걱정 안 할 수 있겠어요?”이서의 목소리가 떨렸다.지환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미안해.”이서는 고개를 들어 달빛 아래 비친 지환을 바라보다가 지환의 셔츠에 코로 문질렀다.지환은 쓴웃음을 지었다.“자기야, 이러면 나…….”이서는 고개를 들고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뭐요……?”“자기 갖고 싶잖아.” 지환은 몸을 숙여 이서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잔잔한 부드러움이 그녀의 살결에 스며들면서 이서도 점차 두려움을 잊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동적으로 지환의 목을 껴안았다. 달빛이 두사람의 그림자를 영원히 간직해 주길 바라며.한참 뒤에야 지환은 이서를 놓아주었다.“아기야, 너무 늦었어. 가서 자자.”이서는 지환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지환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웃었다.“알았어. 앞으로 안 그럴 게.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안 나갈 거야.”“그럼 잘리면 어떡해요? 괜찮아요?” 이서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지환은
망설이며 사무실로 들어온 심소희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언니, 나 방금 휴게실에서 강수지가, 이번 핑크리본 공모전에 언니가 제출한 작품과 부총괄님의 작품이 똑같다는 얘기 들었어요!”이서는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정말 그렇게 얘기했어?”“네.” 심소희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아니죠?”“강수지 말이 맞아. 사실이야.” 이서는 두 손을 맞잡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다른 말은 없었어?”심소희는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잊었다.“언니, 언니가 어떻게…….”이서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할 때, 강수지가 씩씩거리며 화난 모습으로 사무실로 쳐들어와 삿대질하며 막말을 퍼부었다. “윤이서,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지완언니 작품으로 핑크 리본 공모전에 참가하다니, 이는 지완언니 인생을 훔치는 것과 뭐가 달라?”그녀의 뒤에는 바로 능구렁이 장지완이 서있었다.“수지야, 그만해. 서로 아이디어가 비슷했나 보지. 윤 총괄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예전 공모전에 참가했을 때도, 작품을 도둑 맞아 마음 고생했잖아. 그 심정이 어떤 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절대 그럴 리 없을 거야.”“언니, 언니는 왜 이렇게 착해 빠졌어요? 디자인 도둑맞았는데 왜 아직도 윤이서 편들어 주냐고?!”강수지의 큰 목소리 덕분에 주위 사람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잇달아 좋은 구경하러 몰려 들었다.어제에 비해 상황이 180도 역전되었다.“무슨 일이야? 내 기억으로는 ‘뷰티 페이스’ 공모전 때 윤 총괄 작품이 여동생한테 도둑 맞았었거든. 그때 본인도 속앓이 꽤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녀가 똑 같은 짓을 한다고?!”“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아직 회사에서 입지가 확고하지 않으니, 핑크 리본 공모전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그건 그래.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근데 출발점이 어떻든 다른 사람의 시안을 훔쳐 공모전에 참석하는 건 잘못된 거지. 입상 소식에 지완언니가 축하까지 해줬는데 이게 뭐야? 완전 재수
구경꾼들도 강수지와 장지완의 안색이 변하는 걸 보았다.“이럴 수가. 설마 부총괄이 윤 총괄에게 표절 혐의를 덮어 씌우려고 일부러 자기 작품을 윤 총괄 이메일로 보낸 건 아니겠지?”“쯧쯧쯧, 무섭다, 온몸에 소름 돋았잖아.”“그러니까, 그동안 윤 총괄이 경험이 없는 신인이라고 엄청 무시하더니……. 그러면서 왜 더러운 짓거리 했대?”“…….”장지완은 부하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 못했다.그녀는 손톱이 살에 푹 패일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난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그냥 단순하게 서류 갖다 주러 간거라니까요. 믿지 못하겠으면 CCTV 확인해봐. 난 CCTV에서 다 나와 있다고 보는데…….”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강수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부총괄이 아니라면 그럼…….”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강수지에게 쏠리자, 그녀는 얼른 뒤돌아서 장지원에게 도움을 눈빛을 보냈다.장지완은 본체만체하며 말했다.“거야 모르죠.”“언니, 이 일…….”장지완은 냉소하며 경고하듯 강수지를 째려보았다.“강수지, 네가 말해봐? 네가 한 짓 아니야?”장지완의 곁에서 여러 해 동안 따라다닌 강수진은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상을 밝혔다가는 그녀가 절대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그래…… 내가 했다.”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인정했다.이서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강수지는 그녀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가 아니니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배후에서 사주한 것은 틀림없이 장지완일 것이다.“그래요, 그럼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될까요?”강수지는 한순간 말문이 막혀 한참이 지나서야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나……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지완언니를 위해서야. 나는 누군가가 언니를 괴롭히는 꼴을 볼 수 없거든.”이서는 빙그레 웃었다.“그래서 날 모함했다고?”강수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줄게요. 잘 생각해서 질문에 대답해요. 이 일 정말 강수지 씨가 한 거 맞아요?”강수지는 이를 악물고
해고된 것 자체가 업계에서 이미 오점으로 남는데,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면, 앞으로 사회생활은 여기서 끝일 것이다.몸을 웅크린 장지완은 강수지를 끌어올렸다. 얼굴에는 동정의 표정을 띠었지만 눈빛은 음독했다. 그녀는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안에서 잘 버티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아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여기까지 말하고서야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수지야, 너 오래 동안 날 따라다녔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바보 같은 짓 했어? 괜찮아, 들어가서 정신 차리고 나와. 출소하면 내가 꼭 새 직장을 찾아줄 테니까 그때 다시 시작하도록 하자.”당근과 채찍을 같이 준 셈이다.강수지는 뒤이어 출동한 경찰에게 끌려갔다.떠들썩하던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구경꾼들은 더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이서는 가려는 장지완을 불렀다.“부총괄님, 잠깐만요.”장지완은 주먹을 꽉 쥐고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나서야 느릿느릿 몸을 돌려 미소를 지었다.“윤 총괄님, 또 무슨 일이죠?”“강수지는 당신의 수하에요. 당신의 명령 없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예요.”“무슨 뜻이야?”“우리 서로 잘 알고 있잖아요? 강수지는 누명 쓴 거라는 걸.”“어? 왜 나까지 자르려고?”이서는 빙그레 웃었다.“그러고는 싶은데……, 난 증거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절대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목적을 달성하지 않을 거니까.”장지완의 눈동자에서 불이 뿜을 것 같았다. 그녀는 여러 번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에야 음흉하게 웃었다.“나를 자를 테면 잘라 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서우가 아니면 갈 데 없을까 봐?”그녀는 정말 두렵지 않다.이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렇겠죠? 서우가 아니여도 많은 회사들이 당신한테 스카우트 제의하겠죠?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충고 하나 할 게요.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요!”“너…….”한참 어린 후배에게 혼 나다니……, 장지완은 열이 받아 머리가 충혈된 것 같았다.
김청용은 어리둥절했다.“네? 가업을 물려 받는다고요?”‘윤씨 그룹…… 망한 거 아니었나?’‘지금 그 윤씨 그룹은 자산의 가치도 없을 텐데…….’“네.”“아니, 윤 총괄님, 절대 충동적인 결정 내리지 마세요. 장지완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저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인즉,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자기의 직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물론 장지완 씨와 전혀 관계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합니다.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윤씨 그룹이 다음 달에 새로운 CEO를 선출하기 때문입니다. 저…… 윤씨 그룹을 살리고 싶거든요.”할아버지 세대처럼 찬란한 업적을 내진 못하겠지만, 파산 직전의 윤씨 그룹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매우 만족할 것이다.김청용은 멈칫했다.“그나저나 최근 몇 년 윤씨 그룹은 줄곧 적자 상태에 처해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겠어요?”“네, 저 이미 마음 굳혔습니다.”이서는 사직서를 김청용의 앞에 건네주었다.“사장님께서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김청용은 눈앞의 편지봉투를 보면서 난처했다.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말했다.“이렇게 하죠. 사직서는 먼저 받아 두겠습니다. 만약 이서 씨가 윤씨 그룹의 새 CEO로 선출된다면 그 때 정식으로 사직 처리하는 걸로 합시다. 어떻게 생각해요?”“이해해주시고 편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임 부장이 오시면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 그 때까지는 계속 출근할 겁니다.”“윤 총괄의 얘기를 들어보니, 차기 CEO에 선출에 자신만만 한 거 같은데요??”이서가 웃었다.“그럼 먼저 축하드립니다.”“감사합니다.”김청용은 이서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지체없이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비서님, 큰일났습니다. 윤 총괄이 사직서를…….”윤이서는 배후 보스의 조카며느리다.이렇게 큰 일을 김청용 혼자서 결정
지환은 일어서서 낙지창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에 차량과 인파로 붐볐다. 윤씨 그룹에 투자하는 건 지환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다.이서가 윤씨 그룹을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지환은 그녀를 도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이천은 이제야 왜 지환이 얼마 전부터 윤씨 그룹 자료를 보기 시작했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회장님께서 힘을 실어주신다면, 윤씨 그룹도 분명히 기사 회생할 수 있습니다.”이천을 등진 지환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서 가볍게 흔들었다.“아니, 우리 와이프 혼자서도 충분히 윤씨 그룹을 살릴 수 있어.”지환의 비지니스적 판단은 늘 정확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지환의 판단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이서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윤씨 그룹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었다.윤씨 그룹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이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했을 것이다.윤씨 그룹을 떠맡는 순간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니, 차라리 새 회사를 창업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게 이천의 판단이었다.“못 믿겠어?” 지환은 이천을 쳐다보며 물었다.이천은 깜짝 놀라며, 차마 그의 얘기에 동조 못한다는 할 수 없었다.‘회장님은 지금 사랑에 눈이 멀었어. 내가 못 믿는다고 하면 틀림없이 화내겠지?’지환은 이천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별다른 말없이 화제를 돌렸다.“수집한 자료를 이서한테 줄 방법 생각해봐. 이서가 눈치채지 않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해.”“네.”……퇴근할 때쯤 이서는 소지엽의 전화를 받았다.[나 이미 아래층에 와있어.]이서는 시간을 한 번 보았다.“벌써?”소지엽은 웃으며 말했다.“여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건 신사의 품격이 아니지.”“곧 내려 갈테니…….” 이서는 물건을 정리하고 말했다.“몇 분만 기다려.”[응, 그래. 있다 봐.]전화를 끊은 소지엽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층에서 이서를 기다렸다.오늘 고급 세단 차량을 타고 온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야, 저 사람 식당 메인 쉐프 아니야?”“그래, 맞아, 대박! 부잣집 자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