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고개를 돌려 하은철이 따라오는 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북서 제1가문의 하은철을 보고도, 소지엽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은철아.”“언제 들어왔어?”'하은철은 손을 내밀어 이서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려 했지만 이서는 그의 손을 무자비하게 뿌리쳤다.그리고 소지엽 뒤에 섰다.분명히 하은철과 함께 서고 싶지 않다는 시그널이었다.이 자그마한 행동으로 하은철은 화가 났다. 그는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경고의 눈빛으로 이서를 째려보았다.소지엽은 무언가 눈치챈 듯 무의식중에 몸을 약간 움직여 이서를 가렸다.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에서 그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어. 시간 날 때 한 번 모이자.”“그래.” 하은철은 주먹을 꽉 쥐고, 소지엽 뒤에 있는 이서에게 말했다.“이리 와.”이서는 소지엽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소지엽 뒤에서 나왔다.“하은철, 너 또 깜빡한 거 같은데…… 우리 이미 파혼했거든.”그녀는 소지엽의 옆에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하은철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그는 소지엽을 보면서 말했다.“미안……. 둘이 좀 싸웠거든. 나중에 시간 날 때 또 연락하자.”얘기 즉슨 소지엽은 자리를 떠도 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소지엽은 갈 생각 없이 이서를 그의 몸 뒤로 숨겼다. 한 눈에 봐도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 수 있었다.하은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소지엽, 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둘이 좀 다퉜다며?”소지엽은 밝고 해맑게 웃었다.“듣자니 이서 결혼했다 던데? 물론 남편은 네가 아니고…….”하은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일이야.”“하지만 딱 봐도 이서가 너랑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하은철의 이마에 핏줄이 펄쩍 뛰었다.“소지엽, 하씨와 소시 가문의 우애가 좋다고 내가 널 한 대 못 칠거란 생각 하지 마!”소지엽은 여전히 침했다. 웃음기가 눈가에서 미간까지 조금씩 퍼졌다.“은철아, 그
이서는 감기약과 해열제를 사서 집으로 달려갔다.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즉시 위층으로 올라가 지환을 살펴보았다.“체온 재 봤어요?”침대에 누워있는 지환을 보니 안색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그제야 이서의 얼굴에도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른 손을 내밀어 지환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이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으잉? 열 안 나는데?”“그래?” 지환은 그 틈을 이용해 이서를 품에 껴안았다.“방금 체온을 측정했을 때는 분명 38도였는데. 약 먹고 열이 내렸나 봐.”이서는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그럼 체온계를 갖고 올 테니 다시 한번 측정해봐요.”“아니야…….”지환은 이서 목덜미에 머리를 틀어박았다.“자기가 나의 약이야. 자기 돌아오니까 아픈 데가 다 나은 거 같아.”“정말 열이 났나 봐요.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거 보니…….”이서는 화난 척하며 그를 밀었다.“급하게 돌아오느라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도 깜빡 했단 말이예요. 먼저 할아버지께 메시지를 보내야겠어요.”지환은 그녀를 품에 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그럼 여기서 보내. 나 자기 많이 보고 싶었단 말이야.”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약한 척하자, 이서의 마음은 단번에 사르르 녹았다.그녀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는 하경철에게 문자를 보냈다.지환은 턱의 무게로 이서의 어깨에 눌렀다. 그녀의 둥글고 예쁜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보자 또 한 번 심쿵했다. 그는 얇은 입술로 이서의 귓불을 가볍게 물며 어물쩍 얘기했다.“어르신이 왜 자기를 불렀대? 무슨 일이야?”“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만 했어요.”이서는 지환의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하고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문자를 적었다.“할아버지에게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도중에 온천 리조트 사장이랑 얘기 나누러 가셨어요.”지환의 손가락은 이서의 짤록한 허리를 매만지며 못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서의 휴대전화 스크린을 슬쩍 쳐다보면서 한 손
이서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직원들이 평소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모든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모두 변했다.이서는 손에 든 펜을 가지고 놀면서 머릿속에서 임현태의 일을 생각했다.‘임현태는 정직하고 성실해 보이는 것이 전혀 나쁜 사람 같지 않은데…….’‘그는 분명히 회사에서 파견한 사람이 아닌데 왜 거짓말을 했을까?’아침 출근 길에 이서는 몇 번이나 입을 열어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임현태가 이렇게 오래 속인 이상, 그녀에게 쉽게 털어 놓지 않을 테니까.괜히 얘기 꺼냈다가 상대방이 경계심을 갖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나중에 소지엽 쪽에서 소개한 사설 탐정업체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이서가 물을 마시는 있는 사이, 소지엽이 문자를 보내왔다.[사설탐정은 찾았어. 내일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을까?][응. 시간 돼.][내일 봐.]이서는 답장을 계속하지 않고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그리고 핸드폰 너머 이쪽. 소지엽은 핸드폰을 여러 번 꺼내 확인했다.측근이 웃으며 물었다.“쉐프님, 여자친구 문자 기다리고 있죠?”소지엽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고, 해맑고 잘생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넌 아는 게 많아서 참 좋겠다.”“정말 여자 친구네? 누구에요? 나 아는 사람이에요? 어때요, 예뻐요……?”소지엽은 문을 ‘쾅’ 닫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더듬어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또 한번 휴대전화를 꺼냈다.여전히 답장이 없었다.……이서가 한창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김청용이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었다. “윤 총괄님, 축하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하여튼 사람 놀래 키는 재간이 있다니까!”이서는 아리송한 눈빛으로 김청용을 바라보았다.“사장님, 무슨 말씀이세요?”“이쯤 됐는데 나한테 모르는 척할 거야? 심소희, 들어와.”트로피를 들고 들어오는 심소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지완은 턱을 약간 들며 떨떠름하게 한 마디 했다.“축하해요, 윤 총괄님.”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턱이 빠질 뻔했다.장지완이 한 말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다들 그녀가 평소에 이서를 얼마나 무시하고 업신여겼는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이서도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장지완을 바라보았다.장지완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는 확실히 윤 총괄한테 불복했어요. 그러나 이제 핑크리본 디자인 대상까지 휩쓸었으니 업계의 인정을 받은 셈이죠. 만약 지금도 윤 총괄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 업계와 등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그녀는 나름 진정성 있게 말했지만, 이서는 믿지 않았다. 왜냐면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가장 이상한 점은 핑크 리본 공모전에 작품을 낸 적이 없는데 어떻게 1위를 했느냐는 것이다.“감사합니다만……”“오늘은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네요.”장지완은 이서의 말을 끊었다.“윤 총괄님 이번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는데, 한 턱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장지완이 옆에서 바람을 잡자 이서는 해명할 기회가 놓쳐버렸다. 이서는 그들의 말에 따라 밥을 사겠다고 했다.사람들이 흩어진 후에야 이서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서 핑크 리본 디자인 공모전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인터넷에는 투고 메일만 있고 전화번호는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핑크 리본 공모전 주최측에 메일을 보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다.그러나 메일함을 열자마자 오른쪽 표시줄의 보낸 메일함에 낯익은 메일주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재차 확인해보니 핑크 리본의 메일 주소였다.안색이 어두워진 이서는 보낸 메일함을 클릭하였다.글쎄 며칠 전, 그녀의 이메일에서 보낸 투고 기록이 남아있었다.같은 시각, 옆 사무실.강수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장지완에게 말했다.“언니, 언니 방법이 정말 죽여주네요. 윤이서의 이메일로 언니 디자인 시안 핑크 리본 주최측에게 보내
이상언은 먼저 지환의 눈치를 살폈다.지환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한 손으로 이서의 어깨를 감싸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 속에 칼을 품은 듯 오싹하게 느껴졌다.“나를 왜 봐? 네 마누라가 묻잖아?”“누가 마누라에요?”임하나가 지환을 노려보고는 또 고개를 돌려 이상언을 째려보았다.“이게 그렇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가요?”“그래.” 이상언은 난처한듯 지환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친구야, 미안타. 아내를 위해서 너를 팔 수밖에 없었다.”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이상언을 바라보았다.이상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사실, 지환은…… 이서 씨 만나기 전까지 숫총각이었어요…….”마침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이서는 이상언의 말을 듣고 ‘푸’하고 음료수를 내 뿜었다. 이서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이상언은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분수쇼’를 정면으로 맞았다.억울하게 봉변을 당한 그는 우울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는 황급히 티슈를 꺼내 이상언에게 건네주었다.“미안해요, 미안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해서…….”말을 마치고는 지환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물었다.“당신…… 정말이에요?”지환은 안색이 새파랗고 질려서 억지웃음을 지었다.“이상언, 너…… 배신쟁이. 두고 봐!”이상언은 손을 들었다.“나 억울해. 나도 얘기 안 하고 싶었는데 하나 씨가 기어코 얘기하라잖아.”식당 안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주문한 요리도 금방 나왔다.음식을 먹으며 임하나가 오늘 들은 가십거리가 생각나 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하은철 삼촌말이야, 이서정과 결혼했다는데, 그거 정말일까?”이서는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고, 이상언은 재빨리 지환을 한 번 보았다.이상언도 이 일을 알고 있다.“진짜야, 할아버지가 직접 말해줬어.”“젠장!”임하나는 참지 못하고 막말했다.“아니, 어찌 하씨 집안 남자들은 하나같이 안목이 그 따위야. 하은철은 윤수정 그 엉큼한 년 좋아하고, 삼촌은 또 성괴를 좋아하고……. 재벌들 안목은 다들 이렇게 구린 거야?”안목이
이서정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민 회장님, 과찬이십니다. 아래 사람들이 회장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불찰이겠죠.”민호일은 이 얘기를 계속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하 부인, 최근 우리 집사람이 신상 가방을 많이 샀는데, 내가 몇개 보내 드려도 될까요?”“아이고, 회장님, 제가 어찌 회장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어요?”“받아주십시오, 이것은 사례입니다. 받지 않으시면 하 대표님을 뵈러 가기가 쑥스러울 것 같습니다.”“정 그러시다면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이서정과 민호일은 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굴렀다.‘대박, 대박, 드디어 이서정의 봄날이 왔어!’……밥을 먹고 이서와 지환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길에서 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환의 몸에 기대었다.“하나와 상언 씨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허리를 매만졌다.“그것만 느꼈어?”이서는 고개를 들어 긴장하고 불안한 표정을 했다.“설마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죠?”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옅게 웃으며 이서의 이마에 그의 이마를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밤새 내가 굶은 건 못 느꼈어……?”“우리 방금…….”이서는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지환을 밀어내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환의 큰 손은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이서는 어이없는듯 말했다.“지환 씨…….”지환은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유혹했다.“아이, 착하지, 나 뽀뽀해줘. 내 갈증을 풀어줘…….”이서는 그가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그의 키스는 절제되고 부드러웠다. 나비가 날갯짓하듯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그녀는 갑자기 이상언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며, 대단한 스킬을 선보이는 지환이 지금껏 여자친구가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그녀는 지환의 옷자락을 잡고 물었다.“당신 설마 정말…
지금까지 갖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임현태지만, 지환의 말을 듣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회장님,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지환은 차량 시트에 가볍게 기대었다.“아니다. 오늘 이후, 민호일이 더는 이서 뒷조사를 안 할 테니, 본래 자리로 복귀하면 된다.”임현태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네.”“그동안 수고했어. 복귀하면 보너스 두둑하게 챙겨 줄게. 하지만 명심해.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구해야 해.”“넵, 회장님, 감사합니다. 안심하세요. 비밀 꼭 지키겠습니다.”지환은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집에 돌아온 이서는 컴퓨터를 켰다.“이렇게 늦었는데 자야지? 뭘 하려고?” 지환은 의자 팔걸이에 앉아 이서의 뒷목을 매만지며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이서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윤씨 그룹의 재무제표를 보고 있어요.”회사의 재무제표는 공시되어 있어 인터넷에 바로 확인 가능하다.지환은 입술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이걸 왜 봐?”“좀 이상해서요……. 하씨 그룹에서 매년 거액을 투자하고, 하씨 그룹의 안면을 봐서 편의를 봐주는 업체나 기관도 엄청 많은데, 왜 윤씨 그룹은 매년 심한 적자를 겪는 건지 궁금해요.”지환은 손으로 이서의 턱을 살짝 들었다.“자기는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전에 당신이 나한테 회사를 경영해보라고 했던 거 기억 나요?”“응.”“전에는, 내가 회사를 경영했다간 쫄딱 망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원래부터 적자 상태였던 윤씨 그룹을 내가 직접 경영해도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서요.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어요.”지환은 웃으며 말했다.“일리 있네.”“그래서 이번에 윤씨 그룹 차기 CEO 자리에 출마할 생각이에요.”비록 윤재하 부부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끊었지만, 이서 역시 윤씨 가문의 일원이다. 게다가 하씨 그룹이 지금까지 윤씨 그룹을 지원한 것도 이서 때문이다. 따라서 출마 자격이 충
시간이 1분 1초가 지나면서, 초조해진 민호일은 이마에 식은땀까지 줄줄 흘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지환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듣자니 민 회장 쪽 사람들이 줄곧 윤이서를 미행했다고 들었네만…….”화제가 갑자기 이서에게 옮겨지자, 민호일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지환의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라 아리송했다.지환은 눈동자를 치켜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왜? 일은 해 놓고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겁니까?”“그게 아니라…….”민호일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윤이서를 미행한 건, 다름이 아니라 제 딸 때문입니다. ……딸이 조금 아픈 데, 딸이 그렇게 된 데는 윤이서 남편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지환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거꾸로 엎었다.“나 오늘 민 회장 가정사 들으러 온 거 아니에요. 이서는 하씨 집안 어르신이 아끼는 사람입니다. 윤이서를 계속 귀찮게 했다간 뒷감당도 생각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민호일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이 말은 뜻은 매우 명백했다.하지환도 윤이서를 감싸고 있다는 거!“네, 앞으로…… 더 이상 그럴 일 없을 겁니다.”“꼽사리 껴서 돈 벌고 싶다면, 그래야죠. 명심하세요. 앞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안 건드리는 게 좋습니다.”“네.”오늘의 목적을 달성한 지환은 소파에서 일어섰다.“이천, 계약서 보여드려.”“네.”이천은 민호일에게 계약서를 건네주었다.민호일은 한 번 슬쩍 훑어보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50%나요? 제…… 제가 이윤의 절반을 배당 받는다고요?”민호일이 상상도 못했던 조건이었다.지환은 무관심하게 계약서에 사인하고 인감을 찍고 훌쩍 떠났다.차가 멀어지자 민호일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하하 웃었다.집사가 옆에서 말했다.“회장님 감축 드립니다. 이번에 하씨 가문 큰집 도련님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회장님은 범이 날개를 단 격이 된 겁니다. 곧 H국의 두 번째 가문으로 거듭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민호일은 호탕하게 웃었다.“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