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장거리 비행을 한 이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목욕을 마치고 나온 지환은 이서가 귀여운 붉은 입술을 내밀고, 달콤하게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남자의 본능적 충동 인자가 단번에 깨어났다.그는 차마 이서를 깨울 수 없어 이서를 안는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은혜도 모르는 녀석.” 그는 이서의 붉은 입술에 다정하게 키스하며 몸의 열기를 식히려 했다.밤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서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 아침이었다.그녀는 지환의 품에 안겨 움직거렸다.지환은 곧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뜨거운 손바닥으로 이서의 아랫배를 슬슬 문질렀다.이서의 볼은 뜨거웠다.“지환 씨…….”방금 깨어난 목소리는 나른하고 섹시했다.지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뜨고 이서의 콧날개를 문지르며 그녀를 놀렸다.“응, 이제 ‘여보’라고 불러봐.”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얼굴이 빨개진 이서는 주먹으로 지환의 튼튼한 가슴을 밀어내며, 속 따로 겉 따로 말을 뱉었다.“싫어요.”지환은 상반신을 기댄 채 눈썹을 들어 이서를 쳐다보았다.눈꼬리의 점이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빛 속에서 매우 매혹적으로 느껴졌다.“왜, 싫어?” 그는 이서의 허리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누구한테 여보라고 부르려고?”허리가 예민한 이서는 지환이 손에 닿자마자 간지러워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그만, 그만이요.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세요.”지환은 또 한 번 허리를 간지럽히고 나서야 말했다.“우리 아버지한테는 입에 착착 붙게 잘 부르면서, 왜 나한테는 안 된다는 거야?”이서는 떼쓰는 지환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틈을 타서 지환의 품에서 도망쳤다.“빨리 가서 씻어요.”지환은 누워서 꼼짝하지 않았다.“뽀뽀해 주면 바로 씻을게.”손으로 이마를 받친 이서는, 애처럼 장난스럽게 떼쓰는 지환의 모습을 어이없어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다가갔다.그녀는 눈을 감고 지환의 입술에 키스했다.“이제…….”말
박예솔에게 파티에 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나니, 걱정이 생겼다.수영복이 없다.사자고 하니, 낯설고 물선 곳에서 어디에 가야 살 수 있는지도 몰라 난감했다.한창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환이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외출할 거예요?”“응, 시내에 다녀와야 해.” 지환이 말했다.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회사 일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왕복하며 업무를 봤었다. 이 방대한 회사의 회장 자리를 너무 오랜 기간 비워 두는 건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장악하는 데 불리했다.하경수가 방금 그를 부른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그럼 같이 가도 될까요?”지환이가 갸우뚱했다.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을 웅크렸다.“나…… 나 수영복이 필요해요.”눈썹을 높이 치켜 뜬 지환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 \했다.“그럼, 같이 가.”“시내에 일 보러 가는 거 아니에요?”“오후에 처리해도 괜찮아.” 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감싸고 외출했다.이서가 수영복을 입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조수석에 앉은 이서는 마음이 불안했다.“정말 저 때문에 일 그르치는 거 아니죠?”“아니야.” 지환은 시동을 걸며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수영복이야?”‘설마 내 어린 아내가 자극적인 컨셉을 좋아하나?’“예솔 씨가 수영장 파티에 가자고 해서요…….”지환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러니까 파티에 가려고 수영복 산다는 거야?”이서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네.”지환은 기가 찬 듯 입을 한 번 크게 벌려 ‘허’하고 소리를 내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이서도 차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지환이 왜 화가 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얌전히 조수석에 움츠리고 앉아 자기 존재감을 최소화하려고 했다.시내에 도착한 뒤, 지환은 여러 길을 돌아서 마침내 하씨 집안에서 투자한 백화점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이서에게 휘파람을 불며 희롱하는 남자
지환은 침대에 누워 욕실 문이 열리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이서가 들어간 지 30분이나 지났다.그는 입을 열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자기야, 이제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이미 수영복을 갈아입은 이서는 지환의 말에 다리가 나른해졌다.그녀는 문짝을 붙잡고 얘기했다. “아니요, 금방 나갈게요.”말을 마친 이서는 눈을 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고 그녀는 상체의 얇은 옷감을 두 손으로 감싸고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지환의 눈동자에 빨간색이 점차 들었다.이서는 빨간색 비키니를 골랐다.본래부터 하얀 피부에 빨간색을 더하니, 피부가 백옥같이 빛났다.특히 하얀 피부 곳곳에 생긴 얼룩덜룩한 붉은 반점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딸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지환의 폭발할 것 같은 욕망을 더는 억누를 수 없었다.그는 손을 뻗어 이서를 품에 안고는 어깨끈을 스르륵 풀었다.이서는 얼굴을 붉히고 위태로운 수영복을 붙잡았다.“지환 씨…….”석양의 잔광이 창문 앞에 떨어지고서야 이서는 맥없이 일어났다.“이제 어떡해요?”이서는 허리를 짚고 말을 계속했다.“오늘 저녁 파티에 가야 하는데, 어떡해요?”지환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안 가면 되겠네.” 이서는 그를 째려보면서 화난 척 물었다.“설마 일부러 그런 거 아녀요?”지환이가 입술꼬리를 치켜 올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인인 셈이다.그는 이서의 머리에 가볍게 키스했다.“집에 데려다 줄까?”“아니요!” 이서는 지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수영복을 파티장으로 보내주면 거기 가서 갈아입을 게요.”그녀는 몸에 생긴 키스 마크를 가려야 방법도 생각해야 했다.지환은 기분이 좋았다.“그래, 그럼 수영복을 보내라고 할 테니, 여기서 기다려. 나 일 처리하고 올게.”“지환 씨는 오늘 밤 파티에 안 가요?”“가지.” 지환은 옷을 입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하지만 좀 늦게 갈 거야. 혼자 가는 게 싫으면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가도
수영복을 갈아입은 이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수영장으로 향했다.비교적 보수적인 비키니를 입었지만 매끈하고 은은한 광택을 풍기긴 긴 다리는 남성 호르몬이 물씬 넘치는 수영장에서 곧 뭇사람의 초점이 되었다.여러 남자들이 다가와 이서에게 술을 건넸다.이런 지나치게 친밀한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 이서는,애써 피하고 있었다.그러나 다가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점차 포위 공격의 기세가 되었다.당황한 이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익숙한 그림자를 찾았다.그러나 여러 번 둘러보았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지금 박예솔은 별장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한 걸음 한 걸음 수영장 쪽으로 밀려오는 이서의 얼굴에 더 이상 상냥한 미소는 찾아볼 수 없고, 대신 긴장된 차가운 표정이 더해졌다.아래층.한 걸음 한 걸음 좁혀 오는 남자들을 마주한 이서는 숨을 여러 번 들이마시고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했다.“나 이미 결혼했어요. 유부녀예요.”술잔을 든 한 남자가 히죽거리며 웃었다.“놀러 나와서 이런 얘기는 재미없지…… 나랑 한 잔 마셔요.”말을 마친 그 남자는 노골적으로 이서의 몸을 위아래도 훑었다.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불편한 이서는 눈살을 찌푸렸다.왠지 이 수영장 파티의 분위기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았다.“나 마시고 싶지 않아요.”이서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거절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번 보았다.뒤에는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수영장이었다.수영장에 있던 미남 미녀들이 이쪽의 동정을 살피고, 모두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다시 한번 수영장을 뒤돌아보고 고개를 돌린 이서는 이미 무수히 많은 튼튼한 가슴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듣기 거북한 욕설과 함께.이서는 이를 악물고 아예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바로 건너편으로 헤엄쳐 올라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그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환의 친구라는 생각에, 교양이 있는 사람들일 거로 생각했
수영복을 입은 이서는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다.하지만 현재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은 전혀 신경 쓸거리가 아니었다. 눈에는 우뚝 솟은 궁전 같은 별장만 보였다.‘안에 있는 지환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억지로 들어가긴 힘들 거야.’이럴 때 하경수랑 연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핸드폰과 옷도 모두 별장 안에 있다는 게 떠올랐다.이서는 개미 한 마리 없는 한적한 도로를 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땅이 넓고 인적이 드문 미국에서 핸드폰을 빌려 쓰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그녀를 픽업해 준 그 호텔이 생각났다.아마도 호텔 쪽 사람들이 그녀를 도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게다가 그 호텔은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았다.차로 약 십여 분 거리…….걸으면 아마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이서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마음을 정하고 기억을 더듬어 호텔 쪽으로 걸어갔다.별장이 조금 한적한 곳에 있다 보니 한참을 걸어서야 가로등 하나가 보였다.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 시간, 집집마다 문을 닫고 불 끄고,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녀는 마치 황량한 사막 속에서 쓸쓸히 홀로 걷는 방랑자 같았다.신발도 신지 않은 이서의 연약한 하얀 발자국이 도로에 한 줄 또 한 줄 외로운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호텔까지 가는데 약 한 시간 넘게 걸렸다.오늘 야근을 서는 사람은 낮에 이서에게 수영복을 전달했던 호텔 매니저 이동호였다.이서를 본 이동호는 깜짝 놀랐다.수영복을 입고 있는 이서의 볼은 빨갛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은 땀인지 수영장 물인지 알 수 없었다.그는 몇 걸음 다가가서 물었다.“사…… 아가씨, 이게…… 어떻게…….”말을 마치고는, 호텔직원에게 담요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이서는 눈앞의 사람을 알아보고 숨을 헐떡였다.“저기…… 전화 좀 해 주실 수 있어요?”“물론입니다. 어디로 전화하시겠습니까?”“음…….”이서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이동호는 관심 어린 눈길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왜 그래요
예솔은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한참이 지나서야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여자는 네가 기절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도망쳤어.”지환은 입술 꼬리를 씨익 올리며 일어나 입구로 걸어갔다.“이서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박예솔은 화가 나서 이성을 완전히 잃고, 뒤에서 지환을 껴안았다.“지환아, 너는 왜 내가 한 말을 믿지 않아? 너와 그 여자, 알고 지낸 지 고작 며칠이니? 너와 난 27년이야, 넌 나나 못 믿니? 조금이라도?”지환은 차가운 얼굴로 박예솔의 껴안은 손을 떼면서 말했다.“예솔아, 나 이미 결혼했어. 너, 선 넘지 말아.”“그래, 나 선 넘을 거야!”박예솔은 다시 지환을 안으며 말했다.“나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어. 사랑해, 지환아, 나는 여자가 고백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줄곧 네가 고백해 주기를 기다렸지. 근데 지금은 기다리고 싶지 않아.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너를 잃는 것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지환은 박예솔의 손을 풀며 다시 한번 경고했다.“나 결혼했다고!”“이혼하면 되지. 난 개의치 않아. 어차피 둘은 위장 결혼이잖아.”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박예솔을 바라보며 소외감을 드러냈다.“마지막으로 얘기할게. 나, 이서랑 진짜로 결혼했어. 나, 이서랑 평생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박예솔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처럼 비틀거리며 입으로 계속 중얼거렸다.“아냐, 아냐, 너, 날 속이고 있어…… 날 속이고 있다고…….”눈썹을 한껏 찌푸린 지환은 박예솔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궁전 같은 별장 앞에 도착한 이서는, 마침 걸어 나오는 지환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익숙한 냄새를 맡으면서,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다.“지환 씨.”지환은 이서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괜찮아?”이서는 코가 시큰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왜 갑자기 기절한 거예요?”지환은 이서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서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지환은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한 손으로 문을 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이동호는 전후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였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는 진환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회장님, 제가 괜한 짓 한 거 아니죠?”“아주 잘했어.”지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일부터 호텔 사장직을 맡아.”이동호는 눈을 크게 뜨고,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반나절이나 미동도 없이.‘일개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하루 사이에 사장이 되지?’로얄 스위트룸 안.지환은 조심스럽게 이서의 신발을 벗겼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과 긁힌 상처를 본 지환의 동공이 움츠러들었다.그는 연고를 짜서 부드럽게 이서에게 약을 발라주고는 이서의 뺨을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일어나.”세상모르고 잠을 자던 이서는 몸을 뒤척이려다가 지환에게 잡힌 두 다리를 보았다.“빨리 일어나서 생강차 마셔. 감기 걸리면 안 돼.”이서는 그제야 붉은 입술을 내밀고 입을 벌려 얘기했다.“나 안 마시지 싶어요. 너무 졸려. 나 잘래.”“착하지, 자.” 지환은 아기를 달래듯 허리를 받쳐 앉혔고, 발에 바른 약이 닦이지 않도록 발에도 신경을 썼다.이서는 바로 앉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멍했다. 무의식중에 붉은 입술을 벌리고 생강차를 한 모금씩 오므리며 마셨다. 그 모습이 토끼처럼 귀여웠다.생각차를 마시고 난 뒤, 그녀는 다시 침대로 쓰러져 어눌한 말투로 얘기했다.“나 잘래요……. 지환 씨도…… 얼른 자요.”지환은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이불을 덮어주고서야 일어나 베란다로 가서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수영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어.”30분 뒤.지환은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다.파티는 끝났고 사람들도 모두 다 돌아갔다.수영장의 물결만 불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났다.박예솔은 차가운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지환을 쳐다보았다.그가 말하지 않자, 박예솔의 심장은 더욱 긴장되었다.지환과 함께 자란 그녀는 지금, 이 모습이 지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추웠지만 박예솔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했다.“지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 사이에 말을 빙빙 돌릴 필요 없잖아.”“난 너에게 이미 기회를 줬어.”지환은 목소리를 낮추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아저씨와 아주머니 안면을 봐서, 내가 지금 여기서 너랑 이러고 얘기하고 있는 줄 알아.”“알았어.” 박예솔은 이야기하며 씁쓸하게 웃었다.“넌, 내가 쟤네 둘을 사주한 거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지?”지환은 박예솔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아니야?”‘하하’ 크게 웃는 박예솔의 목소리는 더욱 씁쓸해 보였다.“지환아, 난 네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그래, 나 너 좋아해. 그렇다고 내가 왜 이서 씨를 다치게 하지? 그녀에게 정말 뭔 일이 있다고 해도 네가 나한테 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하물며 너도 잘 알잖아. 천성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종속들이 있다는 거. 아무 이유 없이! 나와 쟤네들, 단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그런데 쟤네들이 한 짓을 나한테 덮어씌우면 안 되지. 굳이 내 잘잘못을 따지고 싶다면……, 그래 내 유일한 잘못은 이서를 이곳으로 초대한 거? 이서를 여기로 초대 안 했으면 이렇게 큰 사고도 없었을 거고, 너를 죽일 뻔하지 않았을 테고…….”그녀는 구구절절 이치에 맞으면서도 진실성 있는 얘기를 해댔다. 어느 한 곳 흠잡을 데가 없게.“그럼 왜 내가 쓰러진 뒤에 이서를 쫓아냈어?”“난 네가 그녀 때문에 쓰러진 걸 보고,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 게 잘못이라면, 나…… 기꺼이 사과할게.”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니까 오늘 밤 일은 너와 무관하다는 거네?”“만약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날 신고해.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어.”지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오늘 한 말 잘 기억 해둬. 만약 이서에게 불리한 짓 한 게 발각되면, 우리 옛정 같은 거 안 봐준다. 가만 안 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