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어리둥절해졌다.임하나의 얘기에 깃든 정보량이 너무 많다. 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반나절이 지나서야 어눌하게 말했다.“프러포즈…… 이벤트 준비했다고?”“응.”임하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지금쯤 아마 모두 사라졌을걸? 자기 레스토랑도 아닌데 어떻게 계속 두겠어?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 너무 아쉽다.”제일 아쉬운 건 프러포즈 주인공인 이서이다.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속 물었다.“그날 지환 씨가 도착한 뒤 난 기절했어.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나는 따라가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일었는지는 모르겠어.”이서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밖에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거 없어?”지환이 그녀를 데리고 빠져나왔으니, 민예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아니야…….” 이서의 손을 잡은 임하나가 말을 이었다.“이서야, 걱정하지 마. 민예지가 다시 문제 일으킨다면 그땐 그냥 어르신께 찔러버리자.”“제발 그러지 마.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고, 건강도 안 좋으시잖아.” 이서는 계속 말했다.“괜히 나 때문에 할아버지 신경 쓰시게 하기 싫어.”임하나는 가슴이 아팠다.“넌 어찌 맨날 다른 사람 생각만 하니?”말하면서 또 유유히 한숨을 쉬었다.“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내 자신이 참 싫다.”임씨 집안은 일반 가정이었다.임하나 엄마가 하씨 그룹 산하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서의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나 괜찮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 내가 자리 잡기 전까지 민예지를 피해 다니면 돼. 언젠가는 나도 윤씨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테니까 그때 꼭 되갚아 주면 돼.”임하나도 따라 웃었다.“그래, 너만 믿는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지환이 안 보이는 걸 보고 임하나가 물었다.“지환 씨는?”“티켓팅 하러 갔어……. 며칠 뒤 퇴원하면 미국에 다녀오려고.”“이렇게 빨리? 머리 다친 거 아직
하은철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임하나!”임하나는 하은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왜? 이서를 메리아트 호텔로 납치할 때는 이런 꼴 당할 줄 몰랐나 보지?”“무슨 소리야?” 하은철은 얼떨떨해졌다.이서는 전후 사정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와 따지고 드는 하은철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저기, 도련님, 다음번에는 범인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나 와서 따지든지 하세요. 민예지가 다 죽게 생겼다는데, 그걸 내가 어찌 알아? 내가 했다는 증거라도 있으면 경찰에 신고해.”“들었지?” 하은철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본 임하나는 속이 고소했다.“그리고 이서…… 이미 결혼했거든…….”임하나는 이서의 손에 있는 큰 다이아몬드반지를 흔들어 보여줬다.“부탁인데, 앞으로 이렇게 불쑥불쑥 이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괜한 오해 살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난 다른 사람들이 이서를, 쓰레기 분리 수거함으로 오해하는 것도 싫어.”하은철의 안색이 극도로 보기 흉해졌다.“이서, 너 정말 야박해졌구나. 민예지 저렇게 된 거, 너와 상관없다고 해도 네 남편이 연관되지 않았다는 거를 어찌 장담해?”이서는 속눈썹을 살짝 떨며 미소를 지었다.“관련 있건 없건, 그건 우리 부부 두 사람의 문제야. 너랑 뭔 상관이야? 다른 볼일 없으면 그만 가봐. 난 쉬어야겠어.”하은철은 화가 뭉클뭉클 치밀어 올라오는 걸 꾹 참았다.‘내가 힘이 남아 돌아 쓸데없는 짓 했구나.’‘이서가 입원한 걸 알고, 밥도 먹지 않고 달려왔는데…….’‘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문전박대를 당하다니…….’‘앞으로 다시 네 일에 관여하면, 내가 성을 간다.’하은철은 화가 나서 인사말도 없이 획 하니 나가버렸다이때, 병원 1층.지환은 빠른 걸음을 내디디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핸드폰을 귓가에 댄 그의 얼굴은 숙연했다. 요 며칠 이서 앞에서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대표님, 항공권은 이미 예약 마쳤습니다.]이천은 태블릿을 켜고 계속 말했다.[며칠 전에 데려온 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은철은 이서에 대한 불만을 한껏 늘어놓았다.“호의를 개떡으로 받아들인다니……. 이서 남편이 민씨 집안을 건드려 엄청난 큰 사고를 쳤길래 내가 조심하라고 알려주려고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절친까지 합세해서 저한테 난리 치더라고요. 이서 남편이 준 반지를 들고 자랑질하면서…….”반지 얘기를 꺼내자, 다시 흥분한 하은철은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잘난 반지 하나 가지고 난리야. 그런 반지, 난 한 트럭도 산다.”‘이서 남편이 뭐라고, 그딴 반지 뭐가 좋다고 자랑질하고 난리야?’지환은 미간을 치켜세우고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하은철도 지환이 맞장구를 쳐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계속 혼자서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았다.“뭐,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자랑질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근데 정말 웃긴 건 내가 병실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남편이란 놈,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사랑한다면 병실을 지켜야지 아픈 마누라 두고 어디 싸돌아 다니는 건지……?”하은철은 왠지 모르게 속이 쓰라렸고, 살짝 짜증도 났다.“기다려 봐요. 조만간 저희 할아버지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빌고 애원할 텐데…… 그때도 내 앞에서 콧대 빳빳이 들고 있는지 봐야겠어요…….”지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왜?”“생각해 보세요.”하은철은 눈썹이 휘날리며 장황하게 얘기를 해갔다.“민예지는 민호일이 가장 아끼는 딸이잖아요. 그래서 딸에 대한 기대가 엄청 크거든요. 그런데 그런 딸이 지금 거의 폐인이 되었으니…… 이 일을 정년 이서남편이 한 게 아니라고 해도, 민 회장이 진짜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희생양을 찾을 텐데…… 그럼 그 1위 후보는 이서 남편이 될 테니까요.”지환은 입꼬리를 더욱 치켜올렸다.“넌 이서가 네 할아버지한테 가서 애원하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하은철은 웃으며 말했다.“삼촌,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서가 고개 숙이는 모습 보고 싶어요.”그는 이서가 그의 앞에서 굽실거리는 모습을 못 본 지 오래되었다.지환은 옅
얼굴의 홍조가 사라지자, 이서는 고개를 돌려 지환에게 물었다.“혹시 민예지 얘기 들었어요?”이서는 민예지가 반송장이 된 건 지환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그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응.” 지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누가 그랬을까요?”“글쎄…….”지환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아, 그런데 그날 어떻게 호텔을 빠져나온 거예요?”민예지 곁에 경호원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환이 다친 데 없이 무사하게 빠져 나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을 터.“내가 들어갔을 때 경호원들은 이미 다 쓰러져 있던데?”지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이서는 턱을 매만지며 뭔가 생각난 듯 얘기했다.“그렇다면 그때 우리 말고, 다른 무리들이 있었던 거네요. 민예지가 저 지경이 된 건 그 사람들과 분명 연관이 있을 거예요.”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남 신경 그만 쓰시고…….”“나는 당신이……”이서가 물안개가 자욱한 눈을 들어 지환을 쳐다보았다.마음이 나긋나긋해진 지환은 이서를 품에 안고 낮은 소리로 달랬다.“민씨 집안에서 범인을 못 찾으면, 괜히 나한테 화풀이할까 봐?”이서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지환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그런 걱정하지 마. 그 사람들 날 어쩌지 못해.”이서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번졌다.“하긴, 민예지가 그렇게 된 거랑 당신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데, 민호일이 미치지 않고서야 애먼 당신한테 분풀이하겠어요?”지환은 웃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이틀 뒤, 이서가 퇴원하는 날, 지환은 병원에서 이서를 픽업하여 바로 공항으로 직행했다.임하나도 반차를 내서 공항에 이서를 배웅하러 갔다.“자기, 보고 싶을 거야.”이서도 하나와 떨어지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운을 내서 씩씩하게 하나를 위로했다.“보름이면 돌아오는데 뭐, 그리고 우리 틈 날 때마다 영상통화 하면 되지…….”“응. 알았어.” 임하나는 코를 훌쩍이며 이서를 안았다.이상언과 지환은 두 여인을 지켜보며, 굳이 방
마침 귀가한 하은철은 분노해서 나가는 민호일을 보고는 하경철에서 물었다.“할아버지, 무슨 일이에요?”하경철은 한숨을 내쉬었다.“민예지 일은 단서가 좀 있느냐?”“아니요, 메리아트 호텔의 모든 CCTV는 모두 파손되었습니다.”“대체 누구 짓이야? 겁도 없이 민씨 집안 외동딸을 이렇게 만들다니…….”하은철은 눈썹을 찌푸리고 서성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할아버지, 저도 이서 남편이 한 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메리아트 호텔 사건이요, 제가 지난번 이서 남편 조사했을 때 상황이랑 비슷하거든요. CCTV가 모두 파손되었고, 목격자는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고…… 만약 정말 그 사람 소행이라면, 그 사람 신분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하경철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민씨 집안 사람을 건드렸다는 건 그쪽 실력이 민씨네 보다는 위에 있다는 건데……. 그러나 대한민국 내에서…….”하경철이 갑자기 멈칫했다.하경철을 살피던 하은철은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할아버지?”하경철의 탁한 눈빛이 점점 맑아졌다.“왜 걔를 생각 못 했지?”“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하은철은 영문도 모른 채 얼떨떨했다.하경철은 손자 하은철을 보고 엄숙하게 물었다.“네 삼촌은?”하은철은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벌써 잊으셨어요? 삼촌이, 아니 작은 아빠가 숙모 데리고 큰할아버지 뵈러 간다고 며칠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벌써 잊으셨어요?”“그럼, 이서는?”하은철은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모르겠어요.”병원에서 돌아온 후, 하은철은 이서의 일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하경철의 눈동자가 약간 어두워졌다.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 왔다.“가서 이서 데려와라.”……기내.이서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이천은 이코노미석을 예약했다.지환은 처음 타본다.이코노미석은 좌석이 좁아, 팔다리는 긴 그가 앉자 순식간에 묶인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빳빳한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어 있으려니 더욱 괴로웠다.이서는 지
지환은 받은 명함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아니.”“거짓말.” 이서가 말하면서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지환은 곁눈질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이서는 얼른 얼굴의 웃음을 거두었다.“왜요?”“질투하는 거야?” 지환은 장난 섞인 표정으로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이서은 애써 아닌 척하며 반박했다.“아니거든요.” 바로 이때 검은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지환을 향해 몸을 굽히며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했다.8살 되던 해부터, 해외를 자주 다닌 이서는 스페인어를 나름 유창하게 했다. 그러나 억양이 다소 강한 이 아저씨의 말은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서 집에서 픽업하러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차는 바로 공항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이서는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차를 보고는 살짝 놀랐다.‘롤스로이스?’지환의 안색도 살짝 바뀌었다.두 사람은 아저씨를 따라 차 옆으로 갔고, 이서는 그제야 확인차 물었다.“설마, 지환 씨네 차인가요?”지환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둘러댔다.“아니, 렌트한 거야. 우리 집 영감이 며느리 온다고 가오 좀 잡았나 보네. 오늘 첫 만남이니 며느리한테 점수를 따고 싶었나 봐.”이서는 그제야 안심하고 차에 올랐다.시동을 걸었다.창밖의 풍경이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지환은 갑자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미국에 오기 전에 임대해 놓은 아파트로 가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 하경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아파트 가는 거 아니에요?]하경수가 곧 답장을 보냈다.[넌 상관하지 마라, 나한테 계획이 다 있단다.]지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뭔 일이에요?” 이서는 어두워진 지환의 안색을 이상한 듯 살펴보았다.‘아까는 분명 멀쩡했는데?’“아냐, 별일 아니야.”지환은 답답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말을 이었다.“눈 좀 더 붙여.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이서는 익살을 부리며 놀려댔다.“에이, 자기 집에 가면서 얼마나 걸리는지
하경수는 친절하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여기는 환이 어릴 때부터 놀던 소꿉친구들이네. 오늘 환이가 돌아온 걸 알고 특별히 달려왔네. 예솔아, 예담아, 자, 여기는 지환이 안사람이다.”젊은 남자가 반갑게 인사했다.“형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박예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 누나 박예솔입니다.”이서는 손을 내밀어 박예담과 가볍게 악수하고, 박예솔을 바라보았다.박예솔은 1초간 망설이다가 곧 활짝 웃으며 이서의 손을 잡았다.“지환이 정말 결혼했네. 난 또…….”그녀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정숙하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졌다. 그녀는 이서를 찬찬히 쳐다보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예쁘네요. 어쩐지 지환이 빨리 결혼하려고 안달 나하더니…….”분명 듣기 좋은 말인데, 이서는 왠지 귀에 거슬렸다.그녀가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은 가볍게 두 사람과 고개를 끄덕인 걸로 인사를 대신한 셈이다.“너희들 배고프지?” 하경수의 모든 관심은 이서한테 있었다.“이서야, 자, 우리 밥 먹으러 가자.”이서는 하경수에게 이끌려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식탁 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한 상 차려 있었다.“이서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지환이가 준비하라고 했어. 어여 먹어봐, 네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다…….”이서는 코끝이 좀 시큰시큰했다. 지환을 한 번 보고는 곧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네.”상황을 지켜본 하경수는 희색이 만면했다.“기분 좋으면 된 거야. 자, 어여들 앉아서 먹자. 우리 집…….”지환은 갑자기 크게 헛기침했다.하경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내가…… 요리…… 했지? 허허허.”“아…… 아버님이 직접 요리하셨어요?”이서는 감동했다.“이렇게 많은 요리를…… 많이 힘드셨죠?”“한 식구인데 인사치레 이런 거 다 빼고 편하게 하거라. 어여 먹어 봐, 입맛에 맞으면 앞으로 매일 해 줄게.”하경수의 지나친 열정에 이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지환은 하경수와 위층으로 올라가서 얘기를 나누었다. 이서는 그제야 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예솔이 말을 끊었다.“예담아, 가서 과일 좀 갖고 와.”뭔가 눈치챈 예담도 입을 다물고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이서는 박예담의 뒷모습을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예담 씨 방금 뭐라고 얘기한 거 같은데…….”“아무것도 아니에요.”박예솔은 쿠션 밑에 숨겨진 주먹을 꽉 쥐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쟤, 신경 쓰지 말아요.”그녀는 이서의 손을 잡고,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반지 정말 예쁘네요.”‘원래는 내 손에 있어야 하는 건데…….’“네.” 이서도 반지를 보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같은 시간 위층.하경수의 말을 다 듣고 지환은 눈썹을 찌푸렸다.“왜 굳이 박예솔한테까지 얘기하신 거예요? 우리 집에 별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하경수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허허 웃었다.“우리 집 별장들 다 수백억, 수천 억짜리인데, 괜찮겠어? 게다가, 예솔이도 괜찮다는데, 뭐가 문제야?”미간을 짚고 있던 지환은 하경수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아버지는 내가 이서와 위장 결혼이라도 한 줄 알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떠보려고 한 거고…….”자기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하경수는 멋쩍게 헤헤 웃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내가 어찌 너를 의심하겠어? 게다가 이서, 그 아이도 참하게 생긴 게, 딱 봐도 좋은 아가씨더라. 이서한테 잘해라.”지환은 하경수의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다.“아버지, 좀 그만 해요! 그러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 되지 마시고, 그러면 손주는 영영 물 건너가는 겁니다.”손주 얘기를 들은 하경수는 기뻐서 눈썹을 치켜세웠다.“너희들 아이를 가지기로 했냐?”지환은 하경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서재의 문을 열고 아래층 거실에 있는 이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서야, 올라와.”이서는 고개를 들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네.”그러고는 또 박예솔과 예담에게 말했다.“아무쪼록 감사해요. 저는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