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은 그 누구도 이서에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현태는 의아할 뿐이었다.“어쨌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누구도 이서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세요!” 현태는 지환의 말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 애썼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현태는 지환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직접 묻는 것.지환이 인상을 지푸렸다.“하은철이 알아차렸어요.” ‘뭘 알아차렸다는 거지?’현태가 마음속으로 물었다.“하은철이 알아차렸다고요...”지환의 목소리가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이서가 아직 내 신분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현태가 곧 반응했다.[윤 대표님께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병세가 심해질까 봐 걱정되시는 겁니까?]“맞아요.” [설마요... 하씨 그룹에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윤 대표님을 겨냥하기보다는 하씨 그룹의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정말 하씨 그룹을 포기하려는 걸까요?]지환이 인상을 찌푸렸다.그도, 하은철도 미친 X이었다. 하지만 미친X이라고 해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포기하든 말든, 하은철이 이서에게 접근하는 것만큼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은 얼마든지 동원해도 되니까, 그것만큼은 명심하세요.” 현태가 말했다.[예, 대표님, 안심하세요! 제가 반드시 윤 대표님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현태는 곧바로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에게 연락했다. YS그룹을 매각한 지환은 어둠의 세력 모든 역량을 국내로 옮겼다.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이다니, 정말 M국의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작정인 것 같았다. 현태는 어둠의 세력 우두머리인 앤서니와 만났을 때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옛일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게 되었다. 정말 윤씨 그룹의 아래층에 있는 하은철은 봤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곧장 그 차로 향했다. 같은 시각.사무실에서
“심 사장님.”이서가 입을 열었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에야 심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 대표,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줘.] 이서가 의아하다는 듯 소희를 바라보았다.핸드폰은 스피커로 설정되어 있었기에 소희도 통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소희는 알 수 있었다.‘심씨 가문은 이제야 이서 언니와 대립하는 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래서 먼저 화해를 요청해 오는 거지.’ ‘역시 저들한테 YS그룹의 대표는 두려운 존재구나.’“심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윤 대표.]심동은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있는지 한탄하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부터 윤씨 그룹의 화물이 우리 심씨 가문 산하의 항구를 지날 수 있게 할 거야. 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해. 소희가 돌아올 때 정중히 사과할게.] 이 말을 마친 심동은 전화를 끊었다. 이서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심씨 가문이 윤씨 그룹에 대한 압박을 풀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꿈에서 깨기도 전에 부하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윤 대표님, 방금 심씨 그룹 쪽 책임자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우리 화물이 심씨 가문의 항구를 지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혹시... 덫은 아니겠죠?] 그는 심씨 그룹의 책임자가 고의로 그들에게 덫을 놓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서둘러 움직인다고?’ “덫인지 아닌지는 한번 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부하 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난 일이 증명하듯, 심동은 덫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윤씨 그룹의 화물은 막힘없이 이동했으며, H시의 그 누구도 화물을 막지 않았다. 화물이 마침내 운송된다는 사실은 회사의 고위층을 기쁘게 했다. 비바람이 걷히고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니 말이다.일이 해결되자, 누가 한 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희는 이번 일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하 사장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현태가 차 안에 앉은 남자를 엄숙하게 바라보았다.하은철이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겁도 없이 막아보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현태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하 사장님, 윤 대표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희가 전해드리겠습니다.” 하은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대체 뭘 어쩌라는 겁니까? 언제는 이서한테 고개 숙여 사과하라더니, 이서를 만나지는 못하게 한다? 허, 하지환은 이서가 본인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될까 봐 정말 두려운가 보네요.” 현태는 대답하지 않고 직무에 충실하게 말했다.“돌아가 주십시오!” 차에서 내린 하은철이 걸음을 내딛자, 현태가 굵은 팔로 무자비하게 막았다.“하 사장님, 사람의 이목을 끌고 싶진 않으시죠?” 사실, 하은철은 이곳에 오랫동안 정차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서 똑똑히 물어보세요, 하지환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뭔지! 시키는 대로 이서한테 사과하려는데,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니. 나는 어린애가 좋아할 법한 장난질에는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현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은철을 바라보았고, 이내 핸드폰을 꺼내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그가 하은철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하은철은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을 가져갔다.“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그윽한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은철, 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떠나!] “그렇게 무섭니? 네가 내 작은 아빠라는 사실을 이서한테 폭로할까 봐?”[하은철, 하씨 그룹이 몰락하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이 한마디는 하은철의 기를 곧장 꺾이게 했다.“미친X, 하씨 그룹이 몰락하면, 20%라는 네 지분도 물거품이 될 거야!” 지환이 차갑게 말했다.[하은철, 똑똑히 기억해 둬. 나는 이서에 관한 일에 농담 따먹기나 하는 사람이 아니야.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너나 나나 같이
이서는 회사 사람들 외에도 상언과 하나를 불렀다.저녁 8시, 호텔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하나는 상언을 통해 하은철이 윤씨 그룹을 상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과 심씨 가문이 하씨 그룹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윤씨 그룹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정말 잘됐네요.”하나가 상언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그동안 하은철 일 때문에 이서가 눈에 띄게 말라갔거든요. 심씨 그룹이 더 이상 하씨 그룹과 협력하지 않는다니, 이서가 숨을 좀 돌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환이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어요.”상언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요. 소희한테 들었는데, 이서가 의심하지 않도록 모든 공을 소희가 떠안았다고 했어요. 이서는 소희를 믿으니까 주동적으로 이 일을 조사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서가 형부의 신분을 떠올린다고 해도, 이제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말을 마친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회사 고위층과 술잔을 주고받는 이서를 한 번 보았다. 그녀가 매우 자신 있게 말했다.“우리가 이서를 믿어줘야죠. 형부랑 다시 가까워진 순간부터 형부의 진짜 모습을 본 순간까지... 매 순간이 힘들긴 했지만, 이서는 결국 이겨냈잖아요!” “그래서 나는 이서가 형부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전의 고통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고통을 느끼겠죠...”여기까지 생각한 하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상언이 애틋하게 손을 잡고 말했다.“맞아요, 좋은 결과를 맞이하려면 그 고통을 감내해야죠. 가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거니까요...” 하나는 하마터면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이서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코를 들이마셨다. “이서가 오고 있어요. 우선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또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내가 오자마자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이서가 술잔을 들고 하나의 곁에 와서 앉았다.“오늘 온 사람들은 다 회사 사
그리고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지환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단지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심이 서려 있었다. “이 번역가님, 윤 대표님을 처음 뵙는 건 아니죠?”같은 테이블에 있던 한 사람이 계속해서 이서의 방향을 보는 이유찬을 조롱하기 시작했다.“윤 대표님이 확실히 타고난 미인이긴 하죠. 그런 게 아니라면, 윤 대표님께 거절당한 하 사장님이 그렇게 미친 듯이 행동하진 않았을 테니까요.”“저는 윤 대표님이 아니라, 윤 대표님의 곁에 있는 남자를 보는 겁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졌다.고개를 돌려 그 사람들을 마주한 이유찬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단지 저 남자분이 좀 낯익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요.”한 사람이 꽤 독실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 윤 대표님의 남편분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었겠어요.” 이유찬이 말했다.“저 남자분이 윤 대표님의 남편이라는 거군요...” “맞아요, 돈이 없긴 하지만, 얼굴은 아주 잘생겼죠. 요즘 부잣집 아가씨들은 다 그런 걸 좋아하잖아요?”같은 테이블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시큰둥하게 말했다.“단순히 얼굴만 잘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저 기질을 좀 보세요. 저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모습을 아무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허허, 남자 꽃뱀을 본 적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군요. 여자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남자 꽃뱀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두 사람이 곧 싸우려 할 때, 이유찬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생각났습니다, 저 사람을 어디서 만났는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유찬에게 떨어졌다.“민 대표님을 따라 해외 출장을 갔던 그해, M국에서 열린 우수 청년 대회에서 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아직도 기억하신다는 겁니까? 사람들은 의심을 표하기 시작했는데, 이유찬이 그와
소희는 아직 심씨 가문의 가족이 아니었음에도 감격스러워하며 말했다.“형부, 정말 감사합니다.” 심씨 가문이 이서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지환은 YS그룹까지 매각하면서 모든 정력을 화영에 집중시켰다. 그런 그가 심씨 가문을 무너뜨리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심씨 가문은 살길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심씨 가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번 일로 심씨 가문을 겨냥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서의 체면을 위한 것이었다. 소희는 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심씨 가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심근영 부부는 결국 그녀의 친부모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같은 시각.화장실을 나서던 이서는 긴장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직접 하지는 않았다. 이서가 두 걸음 정도 내디디며 그 남자의 곁을 지나려던 찰나, 그가 갑자기 대담하게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누구세요?”이서는 보고 또 보았으나,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유찬의 땀방울은 하염없이 흘러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내가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었다니!’이유찬은 마음속 깊은 곳에 맴도는 충격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 남자가... YS그룹의 대표였다니!’‘이럴 수가!’ ‘외부에서는 윤 대표님의 남편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량배라는 소문이 도는데, 어떻게 YS그룹의 대표님일 수 있는 거지?’ 이 사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유찬은 어떻게든 이서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윤 대표님, 저는 번역팀의 직원입니다. 대표님께서 저를 모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전에 민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MH그룹이 이서의 손에 넘어간 후, 배척을 당해 일개 직원이 되었고, 회사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저한테 무슨
“궁금한 게 있다면 저한테 직접 물어보시죠.”이유찬은 지환의 얼굴을 보면서 무서운 기운을 느꼈다. 그런데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별거 아닌 질문이라면, 우리 두 사람은 이만 가보겠습니다.”이 말을 마친 지환은 이서를 끌고 파티장으로 갔다. 이유찬은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벌벌 떨었다. 왠지 더는 윤씨 그룹에 머물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찬은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하지만 막 아래층에 다다른 찰나, 한 사람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이유찬 씨, 맞으십니까?” “무슨 일이시죠?”이유찬이 불안에 떨며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나는 단지 하 대표님의 신분을 알아봤을 뿐이야. 설마 나를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할 작정이겠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이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단지 저희 대표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을 뿐이니까요.”이천은 이유찬의 멱살을 잡고 차로 데리고 갔다. 그가 울부짖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위층.상언이 잔을 들고 지환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우울해 보이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방금 누군가가 나를 알아봤어.”지환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긴장한 상언이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이서도 알아?” 그는 곧장 이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조하며 웃었다. “내가 너무 성급했네. 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지환이 고개를 돌려 이서의 방향을 바라보았다.“이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그게 무슨 말이야?”“방금 그 사람은 내 과거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서는 그 사람의 말을 들은 후에도 내 과거를 추궁하지 않았지. 오히려... 전혀 알고 싶지 않은 눈치였어. 그 이유가 뭐였을 것 같아?” 상언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자신이 기억을 잃은 진짜 원인을 알고 있다는 거야?” 고개를 살짝 끄덕인 지환이 고개를 들어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달이 이서
“하지만 하은철을 죽이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거야. 일단, 하은철은 하씨 가문의 권력자잖아. 그런 사람의 죽음은 분명히 큰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야. 혹시라도 네가 한 짓인 게 알려지면...” “설령 네가 한 짓인 걸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은철은 얼마 전까지 이서와 미친 듯이 대립했잖아. 이런 상황에서 하은철이 죽으면, 모두가 이서를 의심할 거야.” 지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상언이 계속해서 말했다.“그리고, 하도훈이 네 손에 소중한 아들이 죽어가는 꼴을 지켜만 볼까?” “그 사람은 하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을 동원해서라도 하은철은 보호하려 할 거야.” “그리고 네가 이미 모든 어둠의 세력 조직원을 H국으로 파견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즉, 단기간에 하은철을 죽이려는 건 헛된 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지.”“그렇긴 하지.”지환도 이 점을 똑똑히 생각할 수 있었다.“하지만 첫 번째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진짜 큰 문제는 두 번째 문제인데, 하은철을 죽이려면 확실히 모든 정력을 쏟아야 할 거야. 하지만 나한테는 기회가 부족해.”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죽여버릴 텐데!” “네가 이미 마음을 굳힌 거라면, 나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겠네. 그냥... 하루빨리 네 계획이 성공하기를 바랄게.”“고맙다, 상언아.” 파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지환은 마침내 이서의 곁으로 돌아왔다. 부하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의 말을 하던 그녀는 그제야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이 사람들, 말을 정말 잘해요. 왜 이전에 회의할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요?” 이서가 지환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원래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돌아오자마자 회사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미 소희 씨가 잡힌 것 같으니까, 우리는 이만 가보자.” 지환이 이서에게 기대며 낮게 속삭였다. “기분이 좋은 것 같네요?”이서가 지환을 보며 궁금해했다.‘왜 기분이 좋은 거지?’ 본래 잘생긴 얼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