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이 작가님!”이서가 웃으며 하이먼 스웨이를 껴안았다.“그건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보세요, 저는 지금도 멀쩡하잖아요.” 하이먼 스웨이는 환하게 웃는 이서를 바라보며 코를 훌쩍였고 눈물을 흘리려 했다. “얘야...”“괜찮아요, 스웨이 작가님.”이서가 하이먼 스웨이의 눈물을 살며시 닦아주었다.“이번에 작가님의 딸을 찾아드릴 때는 더 신중하게 행동할게요.”“저를 믿으세요, 작가님은 꼭 따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이먼 스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제는 조급해하지 않을 거야. 찾을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바치겠지만, 찾을 수 없다면 우리 모녀의 운명을 탓해야겠지. 이번 생에는 인연이 아닌 거니까.” “스웨이 작가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이서가 하이먼 스웨이의 손을 꼭 잡았다.“저는 강하게 느낄 수 있어요. 작가님이 따님을 찾을 수 있다는걸요!” “그래요.”배미희도 거들었다.“스웨이 여사, 그렇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잖아요?” “한 번에 찾을 수 없으면 계속 시도하면 돼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사람 하나 못 찾을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하이먼 스웨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고, 이서를 안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를 놓아주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왜 여태 보이지도 않는 거니?” “아, 아래층에 산책하러 갔어요. 이 비서님이 같이 있을 거예요.”몸을 일으킨 이서가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의 화단을 바라보았으나, 지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곧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과일 깎아드릴게요.” 하이먼 스웨이와 배미희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이서는 이내 병실을 나섰다. 이서가 떠나자 하이먼 스웨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왜 이렇게 복이 없을까요?” “무슨 복이요?”배미희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나도 이전에 이서를 수양딸 삼았는데, 그깟 심가은 때문에 저렇게 좋은 딸을 잃게 된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또 가라앉았다. 지환은 말수가 적었고,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도 그와 공통된 화제가 없었다. 그래서 병실의 분위기는 곧 냉랭해졌다. 머리를 쥐어짠 하이먼 스웨이는 마침내 한 가지 화제를 생각해 냈다. “이서는 아직 하 서방의 신분을 모르는 것 같던데, 언제쯤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야?” 이서를 언급하자, 지환은 곧바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상황으로 볼 때, 아직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배미희가 칭찬했다.“이서는 지금 상태가 가장 좋아. 하 어르신이 본인을 위해 죽은 것도, 하 서방의 신분도 잊었으니까.” “하 서방의 신분을 알게 되면, 하 어르신이 본인을 위해 죽었다는 것도 떠올리게 될 거야.” “맞아요, 내 생각도 그래요.”하이먼 스웨이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때가 되면,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갈 거예요.” “지금이 가장 좋은 셈이죠.”세 사람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문밖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세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이서는 들어서자마자 괴이함을 느꼈다.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그녀가 탁자 위에 과일을 놓으며 농담이 섞인 어투로 물었다.“혹시, 제 험담하고 있던 건 아니죠? 그래서 제가 오자마자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거 아니냐고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살짝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우리가 왜 네 험담을 하겠어? 좋은 말만 해도 입이 아플 지경인데. 아이고, 이 방해꾼 두 명은 이만 나가보마.” “두 젊은이에게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줘야지.” 두 사람은 이내 병실을 떠났다. 이서가 말했다.“방금 막 과일을 씻어 왔는데, 왜 가버리신 걸까요?” “말씀하셨잖아, 우리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지환이 손을 내밀어 이서가 그의 옆에 안게 했다.“오늘은 왜 아직도 회사에 안 갔어?” “회사에는 소희 씨가 있어서 제가 필요 없어요. 그런데... 심씨 가
지환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그는 긴장한 눈빛으로 불안하다는 듯 이서를 주시하고 있었다.“이서야,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뜻은 없어요.”이서가 눈을 깜박였는데, 아마 충격의 강도가 옅어진 듯했다.“그냥 대단한 지환 씨가 무슨 일이든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은철이 지환 씨를 겨냥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지환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정말 다른 뜻은 없어?” 그의 눈빛은 시종일관 이서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그래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을 뿐인데, 엄청나게 긴장한 것 같아요. 지환 씨, 나를 속이는 게 있는 건 아니죠?” 이서는 하은철이 그토록 지환을 겨냥했을 때 이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환의 반응을 마주한 그녀는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거야.’ 미소를 지은 채 이서의 손을 잡은 지환은 그녀가 울먹거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니야, 그런 거 없어.” “그럼 다행이네요.”이서가 지환의 목을 껴안았다.“지환 씨,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면 숨기지 말고 꼭 말해줘요, 알겠죠?” 지환은 이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며 참고 또 참았다.“응,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알려줄게.” “꼭이요.”이서가 지환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과일을 이렇게 많이 썰었는데, 좀 먹을래요? 하나도 안 먹으면 아깝잖아요.” “여보가 자른 거니까 당연히 먹어야지.” 지환은 이서를 바짝 쫓다가 그녀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하은철의 사무실.하은철은 자신의 앞에 앉아 몸을 떨고 있는 심동을 보며 담배로 재떨이를 툭툭 건드렸다.“생각은 좀 해 봤어? 정말 하씨 그룹과 계속 협력할 생각이 없는 거야?” 심동의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뛰고 있었으나, 간신히 두려움을 억누르며 말했다.“하 사장,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야. 심씨 가문과 하씨 가문은 협력을 중단하는 게
그래서 심동은 고민을 거듭한 뒤에 분쟁을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하은철이 냉담하게 심동을 바라보았다.“활은 당기면 되돌릴 수 없는 법이야. 심 사장, 나랑 협력하기로 한 이상, 후퇴는 있을 수 없단 말이지.” “하지만 하 사장, 우... 우리 심씨 가문은 계속해서 윤씨 그룹을 상대할 자금이나 능력이 없어. 윤씨 가문이 손실을 보는 동안, 우리 심씨 가문도 막대한 손실을 봤다고.” “이대로라면 심씨 가문과 윤씨 그룹이 서로를 물고 늘어지는 꼴이 될 거야. “하씨 그룹이 심 사장의 뒤를 봐주는데, 뭐가 두려운 거야?” 하은철을 바라보던 심동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하지만 윤씨 그룹에게는 YS그룹이라는 배후가 있잖아.” 하은철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다.“그건 어떻게 안 거야?” 고개를 숙인 심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허...”하은철은 잠시 분노한 뒤 냉랭한 모습을 되찾았다.“그래, 윤씨 그룹의 뒤에는 YS그룹이 있어. 하지만 심 사장이 잊지 말아야 할 게 뭔지 알아? 우리 작은 아빠의 눈에 심 사장은 이미 내 편이라는 사실이야.” “이제 와서 나와의 협력을 그만둔다고 한들, 우리 작은 아빠가 심 사장을 놓아줄 것 같아?” 심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도 이 문제를 고려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참을 망설이며 하은철을 찾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어떤 길은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법이거든.” 하은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서가 황급히 들어왔다. 그는 심동이 아직 있는 것을 보고는 꽤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후에야 하은철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하은철은 갑자기 안색을 굳었지만, 이내 방 안에 손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평정을 되찾았다. 그가 아주 침착하게 심동에게 말했다.“우선 돌아가 봐. 일이 좀 생겼어.” 잠시 망설이던 심동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떠날 즈음, 질서 정연했던
‘하지환...’‘하지환!’ ‘분명히 그 자식이 한 짓이야!그를 제외하고, 하은철은 다른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 이래서 주 집사님이 하지환이 주식 사는 건 두렵지 않다고 하신 거구나. 진짜 무서운 건 그걸 기회로 삼아서 틈을 만드는 거였어.’ ‘그리고 결국... 하씨 그룹에 큰 틈을 만들어버린 거라고!’ 하은철은 즉시 핸드폰을 들어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걸 줄 알았던 것일까. 지환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너지?!”하은철이 노호하며 말했다. 지환의 앞에서 그는 절대 차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환은 그와 다르게 절대 격노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직 이서의 일에만 통제력을 잃는 사람이었으니... 지환은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는 하은철을 더욱 미치게 했다.“네가 한 짓인 거 다 알아, 하지환! 이건 적을 해치려다가 스스로를 망치는 꼴이라고!” “회사 주식의 20%가 아직 네 소유라는 걸 잊지 마.” 지환이 낮게 웃었다. 그 가벼운 웃음은 하은철의 천진함을 비웃는 것 같았다. [내가 그까짓 걸 신경 쓸 것 같아?] 순간, 하은철의 몸이 굳어졌다.[YS그룹, 이미 매각했어.] 간단명료한 이 한마디가 하은철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YS그룹을 매각했다고?!”하은철은 믿을 수 없었다.“말도 안 돼!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YS그룹은 네 삶의 근본이잖아!” [말도 안 된다니, 뭐가?] 지환의 말투는 아주 가벼웠다.[하은철, 네가 몇 번이고 이서를 해치는데, 내가 아쉬울 게 있을까?] 지환이 말하는 동안, 하은철은 정보망을 열었는데, 방금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와 있었다. 그 내용을 본 그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그곳에는 지환이 하지호에게 YS그룹을 매각했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아는 그 하지호...?!’ 그는 하씨 가문을 떠난 후에도 늘 하씨 가문과 날카롭게 대립해 왔다. 즉, 지환이 가장 싫어하는 적수라는 것.‘고작 나를 상대하기 위해서 적수한테 회사를 넘겼다고?’ ‘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하 사장님, 큰일입니다.”“또 무슨 일입니까?!”하은철은 자신이 불길 위를 걷는 것 같다고 느꼈다.“회사 협력 계약이 몇 개 유출되었는데, 대략 추산해도 손실이 몇억원은 훌쩍 넘습니다.” 하은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조금 전 한 발언을 겨냥한 지환이 보복하는 것이었다. “쓸모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깟 자료 유출도 못 막는 겁니까?” 비서가 압력을 무릅쓰고 대답했다.“사장님, 컴퓨터가 해킹되는 바람에 상대는 투명 인간처럼 원하는 데이터를 맘껏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전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비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재훈이 들어왔다.그는 아주 당황한 나머지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하 사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한재훈이 노트북 한 대를 하은철의 앞에 놓았다. 시커먼 화면에서는 두 글자만이 계속해서 반짝이고 있었다. [멈춰!]하은철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서를 겨냥하는 걸 멈추라는 뜻.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서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그가 이런 압박을 달가워할 리 있겠는가! ‘윤이서는 내 것이야!’ 하은철이 기억을 갖기 시작한 이후, 그의 할아버지는 이서가 그의 미래 아내라고 말했으며, 반드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확고한 말씀이 왜 이렇게까지 된 거지?’ 계속해서 깜박이는 화면 속의 두 글자를 보던 한재훈이 물었다. “하 사장님,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하은철은 냉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또 10여 명이 뛰어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발생한 손실 때문에 하은철을 찾아온 것이었다. 겨우 한 시간도 안 돼서 회사의 손실은 이미 20억에 이르렀다.하지만 하은철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여러 가지 징후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과의 협상. 그러나 하은철은 이렇게 결정적
하도훈은 하은철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답했다.그는 퇴락한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네, 제가 하지환보다 못하다는 의미인 거네요. 어쩐지, 윤이서도 제가 아닌 그 사람을 선택하더라고요.]“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하도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작은 회사를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만 해도, 경영 능력을 충분히 입증한 셈이지.” “그런 천부적인 능력은 하늘이 주신 거야.”“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 즉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랑 비교하는 건 스스로를 모욕하는 거란다.”[그래서 H국에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절대 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라고요.]이 말을 뱉은 하은철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그래서... 그 교통사고를 낸 게야?”하도훈의 말투에는 아무런 기복이 없었다.[맞아요, 비록 하지환은 하씨 가문이 H국 내에서 가진 특별한 권력 때문에 제가 벌인 짓인 줄 모르지만요.] [하지만 이제 알든 말든 상관없어요.]하은철이 말했다. 하도훈이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아들아, 그만 포기해라. 이 세상에는 이서보다 훌륭한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어.” “그리고, 이서를 포기하고 네 작은 아버지와 잘 이야기하기만 하면, 우리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게다, 응?” [아버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하은철의 말에는 절망이 배어 있었다.[하지환은... 이미 YS그룹을 매각했다고요!] 하도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뭐라고?” [많이 놀라셨죠?]하은철이 피식 웃었다.[저도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주 놀랐어요.][고작 우리를 상대하려고 YS그룹까지 매각했으니까요.][아버지, 이제 정말 생사존망의 때가 온 거예요. 타협의 여지? 그런 건 없어요.] “그렇지 않아.”냉장하게 생각한 하도훈이 입을 열었다.“너, 최근에 윤씨 그룹을 압박하려고 심씨 가문과 연합해서 윤씨 그룹 화물이 지나는 해양 통로를 막았었다며?” “네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이서와 화해하기만 하면, 네 작은
“낯선 사람은 그 누구도 이서에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현태는 의아할 뿐이었다.“어쨌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누구도 이서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세요!” 현태는 지환의 말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 애썼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현태는 지환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직접 묻는 것.지환이 인상을 지푸렸다.“하은철이 알아차렸어요.” ‘뭘 알아차렸다는 거지?’현태가 마음속으로 물었다.“하은철이 알아차렸다고요...”지환의 목소리가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이서가 아직 내 신분을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현태가 곧 반응했다.[윤 대표님께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병세가 심해질까 봐 걱정되시는 겁니까?]“맞아요.” [설마요... 하씨 그룹에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윤 대표님을 겨냥하기보다는 하씨 그룹의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정말 하씨 그룹을 포기하려는 걸까요?]지환이 인상을 찌푸렸다.그도, 하은철도 미친 X이었다. 하지만 미친X이라고 해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포기하든 말든, 하은철이 이서에게 접근하는 것만큼은 절대 막아야 합니다. 어둠의 세력은 얼마든지 동원해도 되니까, 그것만큼은 명심하세요.” 현태가 말했다.[예, 대표님, 안심하세요! 제가 반드시 윤 대표님의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현태는 곧바로 어둠의 세력 조직원들에게 연락했다. YS그룹을 매각한 지환은 어둠의 세력 모든 역량을 국내로 옮겼다.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이다니, 정말 M국의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작정인 것 같았다. 현태는 어둠의 세력 우두머리인 앤서니와 만났을 때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옛일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게 되었다. 정말 윤씨 그룹의 아래층에 있는 하은철은 봤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곧장 그 차로 향했다. 같은 시각.사무실에서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