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와 소희는 모두 괴물을 본 것처럼 정인화를 바라보았다. 정인화의 입에서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듣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지 않은가.“엄마가 잘못했어, 진심이야.” 두 사람이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소희를 바라보던 정인화가 얼른 다시 말했다. 그녀의 어투에는 약간의 비위를 맞추려는 속셈도 숨겨져 있는 듯했다. “맞다, 다음에 누가 엄마가 너한테 사과했냐고 물으면, 이미 했다고 말해야 해, 알았지?” 이 말을 들은 이서는 더욱 옳지 않다고 느꼈다.그녀가 정인화를 덥석 잡았다.“누가 어머니더러 사과하라고 시킨 거예요?”정인화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서가 소희를 한번 보고 말했다.“소희 씨, 난 이 사과가 조금의 성의도 없다고 생각해. 이만 가자.” 소희는 곧 이서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말을 따라 말했다.“네, 이서 언니.” 소희는 냉정하게 몸을 돌렸고, 자리를 떠났다. 이 장면을 본 정인화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황급히 소희를 가로막고 말했다.“안 돼, 너는 반드시 나를 용서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연거푸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말을 뱉었으나, 끝내 까닭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서가 말했다.“어머니, 소희 씨의 체면을 생각해서 경비원을 부르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주지 않으신다면, 경비원한테 어머니를 끌어내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어요.” 이서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경비원을 힐끗 보았다. 이서가 이렇게 모질다는 것을 본 정인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래요, 말하면 되잖아요. 며칠 전에 어떤 부부가 찾아와서 반드시 소희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고요.”“처음에는 그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튿날 소희 아버지로부터 실직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이유 따위는 없는 갑작스러운 통보
최근에 겪은 일들을 떠올린 정인화가 이 가능성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부부는 돈이 꽤 많은 것 같지?’ 정인화는 2억 원이라는 큰돈을 쉽게 꺼내는 장희령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쾌해했고, 사과할 마음이 사라진 듯 돌아섰다.소희는 뒤늦게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이상하네요, 엄마가 왜 그냥 가셨을까요?” 이서는 사실 진작 눈치챘다. 정인화가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떠났다는 것을.그 모습은 마치 2억이라는 돈을 놓친 것처럼 보였다.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시게 내버려둬. 어머니만 가시면 소희 씨도 며칠 동안 쉴 수 있잖아.”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거야 그렇죠.” 그동안 그녀는 정인화 때문에 짜증이 났다. “이제 들어가자.”이 말을 마친 이서는 회사 안으로 들어갔고, 소희는 얼른 뒤를 따랐다.이서가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은 갈라섰다.사무실에 들어선 이서는 머릿속에서 이상한 전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심 회장님 부부가 왜 소희 씨를 도우려 하는 걸까?’ ‘그리고 왜 갑자기 장희령과 심동의 결혼을 허락하신 걸까?’ 스크린을 주시하던 그녀의 머릿속을 대담하게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소희 씨가... 심 회장님 부부가 찾던 딸은 아니겠지?’ 그녀는 지난번 심씨 가문의 고택에 갔을 때, 심근영 부부가 소희를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렸다. 게다가 심근영 부부는 외지에서 돌아온 후로 딸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그렇다면...’이서는 생각할수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곧장 홍보팀 팀장 최미영을 찾아갔다.“심 회장님 부부가 외지에 딸을 찾으러 갔을 때,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최미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 이 말을 마친 이서는 별다른 분부 없이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은 전화로 지시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굳이 여기까지 오신 거지?’홍보팀을 떠난 후에도 이서의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는 그 직원에게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임원에게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녀가 임원에게 말했다.“우선 거기서 기다려주세요. 저는 방법을 강구해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거예요.”이 말을 마친 그녀는 임원이 뭐라고 하든 그냥 전화를 끊었다. ‘말할 필요도 없어. 분명 하은철이 뒤에서 음모를 꾸민 걸 거야.’ 하지만 윤씨 그룹의 수출을 막는 것은 심씨 가문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일은 심동이 한 짓임이 틀림없었다.이서는 곧 소희를 떠올렸다. ‘소희 씨를 나서게 하면...’이서는 곧바로 이 생각을 부결시켰다.‘아마 소희 씨는 정인화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야.’ ‘내가 이 사실을 소희 씨한테 말한다면, 겨우 진정된 소희 씨는 엄청나게 괴로워하겠지?’ ‘게다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소희 씨가 심동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소희 씨의 체면을 생각한 심동이 나에게 맞서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어.’ 이렇게 생각한 이서는 소희의 출생에 관한 일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심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일이 심동이 한 일이라면,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심동은 망설이지 않고 이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윤 대표가 웬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한 거지?] “저희 화물의 수출을 막은 사람, 심 사장님이죠?”이서는 심동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심동이 웃으며 말했다.[윤 대표, 생사람 잡는 거 아니야? 나는 그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떻게 윤씨 그룹의 화물을 압류할 수 있겠어?]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심 사장님, 하은철과 협력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그게 무슨 일이든, 심 사장님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것도요. 물론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심 사장님이 사업가고, 이익만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저희도 협력하는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심 사장님이 저희 화물이 잘 수출되도록 도와만 주신다면요.”[그래, 생각해 볼게.]심동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든 채 입꼬리를 올렸다.심동이 하은철과 협력한 것은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이서의 관찰에 따르면, 심동은 전력을 다해 그녀를 상대했지만,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큰 유인책을 제시하여 심동이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포기하도록 한 이유였다. 다만 이서는 심동이 쉽게 승낙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반드시 외부 압력이 있어야 해.’‘하은철과 협력해 봤자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지만 내 제안을 승낙할 테니까.’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어디서 외부 압력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방법이 없었던 이서는 우선 임원에게 화물을 정리한 뒤, 어디든 기사들과 함께 쉴 만한 곳을 찾으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은 H시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나만의 항구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지 않아도 될 텐데.’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는 또 한 번 각 도시의 항구 분포도를 꺼냈다. 하씨, 소씨, 심씨 가문은 모두 자신만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모두 대형 항구였으며, 나머지 몇 개의 작은 항구도 다른 자그마한 가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가문들은 손씨 가문처럼 손문덕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문이 연합하여 점령한 항구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항구를 차지하려면 틀림없이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고, 그때쯤이면 밀도 모두 익어버릴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녀에게 항구를 내어주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서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계속해서 각 가문의 정보를 뒤적거렸다. 그녀는 결국 심씨 가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심씨 가문의 오양 항구를 얻어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어.’ 오양 항구는 도시 전체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
차갑고도 뜨거운 입맞춤, 이 두 가지 다른 감각이 끊임없이 이서의 마음을 휘감았다. 지환은 이서를 놓아주었을 때야 그녀가 이슬에 젖은 듯한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본 지환은 덩달아 마음이 조이는 듯했고, 특정한 감정이 더욱 심하게 들끓는 것 같았다. 이서가 지환을 바라보며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 저랑 함께 있어 줄래요?” 이 말을 마친 이서는 지환의 반응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지환은 그녀의 불그스름한 뺨을 보고 있었는데, ‘좋아’라는 말이 입술 사이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성을 붙잡아야만 했다.“안 돼.” 이서의 얼굴에 만연했던 수줍음이 굳어졌다. 그녀가 이내 초조하다는 듯 그의 몸에 기대었다.“왜요?” 깊은숨을 내쉬는 지환의 이마에서는 이미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서의 두 눈과 자신 위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곡선을 보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왜냐면...”다행히도 그는 이성이 완전히 붕괴될 무렵에 이천의 전화를 받았다. 지환의 이성이 다시금 그를 끌어온 것이었다. “전화, 전화 받아야 해!” 그가 이서를 밀치며 말했다.침대에 주저앉은 이서는 도망가는 지환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불쾌하다는 듯 붉은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가면을 벗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줬는데, 왜 나랑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는 거지?’ ‘내가 귀신이나 맹수도 아닌데!’ 반대쪽에서는 지환이 난감하다는 듯 이천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지환의 거친 숨결을 듣고 깜짝 놀란 이천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대표님, 하씨 가문 쪽이었어요.] [저희는 이미 하씨 가문과 시장 가격보다 5%로 높은 가격에 그들이 가진 지분을 인수하기로 협상했어요. 하지만 방금 하나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화를 걸어와서는 저희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잠옷을 입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매를 특별히 한 번 살펴보았다. ‘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없는데, 이런 내가 왜 싫다는 걸까...?’ 이서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지환을 땅굴에 묻고 싶어질 정도였다.더 이상 환각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지환은 그녀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이서야, 난 너한테 불만 없어.”“그럼 왜 저랑... 저랑...” 이서는 생각할수록 억울했고, 곧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백화점에서 하은철에게 겨냥당했을 때도,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하지만 지금은...지환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이서가 눈물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서가 울자, 모든 것을 잊은 그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안아주었다.“울지 마, 울지 마, 네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나쁜 거야!” 울음을 뚝 그친 이서가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얼굴을 붉혔다.“그럼, 설마...” 지환의 이마에 붉어진 핏줄이 더욱 선명해졌다. 의심을 받은 그는 화가 나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이서를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서야, 그만하고 얼른 네 방으로 돌아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선 그녀가 말했다.“안 갈래요. 오늘 저녁에는 여기서 잘 거라고요.” “선생님이 제 방에 안 오실 거면, 제가 여기서 잘 거예요, 괜찮죠?”하연이 이마를 문질렀다. ‘기억을 잃은 내 와이프가 왜 이렇게 무대포로 변한 거지?’ 지환이 몸을 돌려 옆방으로 가려고 하자, 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침대에 앉았다.“매니저님께 부탁해서 그 방 예약을 취소해 뒀어요.”발걸음을 멈춘 지환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상관없어, 방이야 다시 얻으면 되는 거니까.” “...”문이 천천히 닫히는 것을 본 이서는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져버렸다. ‘바보, 바보, 바보!’ 지환은 곧바로 매니저를 불러 옆방을 예약했다.매니저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가 옆방으로 옮기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부간의 감정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이서가 아주 부자연스럽게 말했다.“그냥 간단한 일이야.” 소희의 의심은 더욱 짙어져 갔다.‘형부가 간단한 일을 승낙하지 않았을 리 없는데...’“이서 언니, 쉬운 일이라는 게 어떤 건데요?” 소희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서도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소희 씨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각방을 쓰고 있잖아?”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그녀가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난 더 이상 각방을 쓰고 싶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지?” 소희의 얼굴이 살며시 빨개졌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았다.“엄청 간단한 일이었네요. 그런데 왜 하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언니와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요...” 소희는 말할수록 더욱 얼굴을 붉혔다.그녀와 현태는 이미 함께였지만, 두 사람의 가장 친밀한 동작은 손을 잡는 것이 전부였다. 이서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누가 알겠어?” 그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하 선생님의 마음은 나를 향해 움직였어.’‘다만 매번 참고 있을 뿐이라고.’ 정말이지 이서는 그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침한 소희가 부자연스럽게 말했다.“이서 언니, 사실 저는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 선생님은 언니를 정말 아끼시잖아요. 언니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실 거란 말이죠.” “그 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안 된다고 하더라고...”이서는 소희에게 숨길 것이 없었다.“소희 씨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구슬렸는지 모를 거야. 그런데 죽어도 나랑 자기 싫대.”“내가 기억을 잃지 않았을 때도 이랬을까?” 안색이 변한 소희는 이서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서가 소희를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됐어, 됐어. 소희 씨한테 묻는 게 아니었어. 그러니까 소희 씨도 대답할 필요 없어.” 그녀는
이서가 곁에 서 있는 소희를 힐끗 보았다.소희의 안색은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서 언니,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 ‘우리 회사의 맞은편 백화점에서 쇼핑하는데, 장희령을 만난다고?’‘이게 무슨 거지 같은 상황이야?’ 이서가 침착하게 쇼윈도에 있는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걸로 포장해 주세요.” 직원들은 그녀가 윤씨 그룹의 대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시계를 포장했고, 소희에게 건네주었다. 소희가 이서에게 시계를 건네며 말했다.“이서 언니, 이제 갈까요?”“응.”이서가 소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매장을 나섰다. 시계 매장의 바로 옆은 액세서리 매장이었다.그리고 두 사람이 시계 매장을 나가려면 그곳을 지나야만 했다. 이서는 정말이지 장희령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희령이 일부러 백화점에서 이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서가 나오는 것을 본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내려놓은 채,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액세서리 매장을 나섰다. “윤 대표님,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공교롭네요.” 이서는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장희령의 곁을 지나쳤다.그 순간, 장희령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하며 분노를 억눌렀고, 이서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빨리 가요? 혹시,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장희령,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네가 결혼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계속 길이 막힌 이서가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장희령 씨,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본 장희령이 득의양양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무슨 말이요?” “착한 개는 길을 막지 않는 법이에요.” 장희령은 목이 메어 말하지 못하다가 한참 만에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윤 대표님, 내가 곧 심씨 가문에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