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철이 심동을 흘겨보았다.“왜, 이대로 물러나고 싶어?” 사실 심동은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난다면, 윤이서와 하은철의 미움을 동시에 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연합해서 나를 상대하면 어쩌지?’ 그는 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서둘러 말했다.“하 사장,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는 단지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을 뿐이야. 손문덕 어르신 같은 분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예사롭지 않은 사람인 게 분명해.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심 사장은 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윤이서나 잘 상대하면 된다고.” 하은철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하나만 묻자, 윤이서가 H시의 항구를 사용하는 걸 막을 방법이 전혀 없을까?”잠시 침묵하던 심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있긴 하지만... 위험부담이 꽤 클 거야.” “무슨 방법이길래 그래?”하은철이 물었다. “윤 대표의 화물이 지나는 길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거야. 그러면 화물이 제대로 수출될 수 없지 않을까?”심동이 대답했다. 잠시 침묵하던 심동이 계속해서 말했다.“그런데 이 방법은 너무 모험적이야. 우리 심씨 가문의 자원을 이용하면 윤 대표의 화물이 지나는 걸 막을 수는 있겠지만, 윤 대표가 이 일을 폭로하는 순간, 하 사장이랑 나한테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게 될 거야.”심동은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일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윤이서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잖아?’ ‘어쨌든 윤이서는 여자인 데다가 막강한 가족이라는 버팀목도 없으니까.’ 하지만 찌푸렸던 인상을 편 하은철은 심동이 말한 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했다.심사숙고한 그는 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이 방법이 통한다면...’ ‘만약에 통하지 않는다면...’하은철은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을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심 사장이 말한 대로 하자. 지금 당장 고속도로의 책임자
‘가장 큰 항구를 윤씨 그룹에게 임대해 주다니, 상대는 정말 대범한 것 같아.’ 이서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하은철이 여전히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소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없는 기간 동안, 장희령이 왜 일부러 소희 씨를 겨냥했는지는 알아냈어?” 소희가 고개를 저었다.“똑똑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이상한 점?” “장희령이랑 심동이 곧 결혼한대요.” “그게 뭐가 이상해?” “이서 언니, 언니가 몰라서 그래요. 장희령이랑 심동은 이미 꽤 오랫동안 사귀었잖아요. 하지만 심씨 가문은 여전히 미래 후계자의 배우자가 연기자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을 계속 동의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동의하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이서는 잠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깨닫지 못하고 물었다.“두 번째 이상한 점은 뭔데?”“최근에 누군가가 몰래 저를 미행하고 있어요.” 이 순간, 이서의 안색이 변했다.“어떤 사람인지 알아?” 고개를 숙인 소희가 땅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알아요.” “누군데?”“심 회장님 부부예요.”이서는 깜짝 놀랐다.“그분들이 왜 소희 씨를 미행하겠어?”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제가 잘못 안 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저를 미행하던 차가 심 회장님 부부의 차량이더라고요.” “게다가 최근에는 제가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셨어요.” 이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내가 소희 씨랑 사이가 좋다는 걸 알아서 소희 씨에게도 손을 쓸 작정인 건가?’“그래, 알았어. 내가 한번 알아볼게. 소희 씨도 그동안 조심해.”이 말을 마친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현태 씨랑은 어떻게 돼 가?”“아주 잘 지내요.”현태 이야기를 꺼내자,
이서와 소희는 모두 괴물을 본 것처럼 정인화를 바라보았다. 정인화의 입에서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듣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지 않은가.“엄마가 잘못했어, 진심이야.” 두 사람이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소희를 바라보던 정인화가 얼른 다시 말했다. 그녀의 어투에는 약간의 비위를 맞추려는 속셈도 숨겨져 있는 듯했다. “맞다, 다음에 누가 엄마가 너한테 사과했냐고 물으면, 이미 했다고 말해야 해, 알았지?” 이 말을 들은 이서는 더욱 옳지 않다고 느꼈다.그녀가 정인화를 덥석 잡았다.“누가 어머니더러 사과하라고 시킨 거예요?”정인화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서가 소희를 한번 보고 말했다.“소희 씨, 난 이 사과가 조금의 성의도 없다고 생각해. 이만 가자.” 소희는 곧 이서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말을 따라 말했다.“네, 이서 언니.” 소희는 냉정하게 몸을 돌렸고, 자리를 떠났다. 이 장면을 본 정인화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황급히 소희를 가로막고 말했다.“안 돼, 너는 반드시 나를 용서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연거푸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말을 뱉었으나, 끝내 까닭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서가 말했다.“어머니, 소희 씨의 체면을 생각해서 경비원을 부르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주지 않으신다면, 경비원한테 어머니를 끌어내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어요.” 이서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경비원을 힐끗 보았다. 이서가 이렇게 모질다는 것을 본 정인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래요, 말하면 되잖아요. 며칠 전에 어떤 부부가 찾아와서 반드시 소희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고요.”“처음에는 그 말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튿날 소희 아버지로부터 실직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이유 따위는 없는 갑작스러운 통보
최근에 겪은 일들을 떠올린 정인화가 이 가능성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부부는 돈이 꽤 많은 것 같지?’ 정인화는 2억 원이라는 큰돈을 쉽게 꺼내는 장희령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쾌해했고, 사과할 마음이 사라진 듯 돌아섰다.소희는 뒤늦게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이상하네요, 엄마가 왜 그냥 가셨을까요?” 이서는 사실 진작 눈치챘다. 정인화가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떠났다는 것을.그 모습은 마치 2억이라는 돈을 놓친 것처럼 보였다.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시게 내버려둬. 어머니만 가시면 소희 씨도 며칠 동안 쉴 수 있잖아.”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거야 그렇죠.” 그동안 그녀는 정인화 때문에 짜증이 났다. “이제 들어가자.”이 말을 마친 이서는 회사 안으로 들어갔고, 소희는 얼른 뒤를 따랐다.이서가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두 사람은 갈라섰다.사무실에 들어선 이서는 머릿속에서 이상한 전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심 회장님 부부가 왜 소희 씨를 도우려 하는 걸까?’ ‘그리고 왜 갑자기 장희령과 심동의 결혼을 허락하신 걸까?’ 스크린을 주시하던 그녀의 머릿속을 대담하게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소희 씨가... 심 회장님 부부가 찾던 딸은 아니겠지?’ 그녀는 지난번 심씨 가문의 고택에 갔을 때, 심근영 부부가 소희를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렸다. 게다가 심근영 부부는 외지에서 돌아온 후로 딸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그렇다면...’이서는 생각할수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곧장 홍보팀 팀장 최미영을 찾아갔다.“심 회장님 부부가 외지에 딸을 찾으러 갔을 때,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최미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 이 말을 마친 이서는 별다른 분부 없이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은 전화로 지시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굳이 여기까지 오신 거지?’홍보팀을 떠난 후에도 이서의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는 그 직원에게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임원에게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녀가 임원에게 말했다.“우선 거기서 기다려주세요. 저는 방법을 강구해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거예요.”이 말을 마친 그녀는 임원이 뭐라고 하든 그냥 전화를 끊었다. ‘말할 필요도 없어. 분명 하은철이 뒤에서 음모를 꾸민 걸 거야.’ 하지만 윤씨 그룹의 수출을 막는 것은 심씨 가문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일은 심동이 한 짓임이 틀림없었다.이서는 곧 소희를 떠올렸다. ‘소희 씨를 나서게 하면...’이서는 곧바로 이 생각을 부결시켰다.‘아마 소희 씨는 정인화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야.’ ‘내가 이 사실을 소희 씨한테 말한다면, 겨우 진정된 소희 씨는 엄청나게 괴로워하겠지?’ ‘게다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소희 씨가 심동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소희 씨의 체면을 생각한 심동이 나에게 맞서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어.’ 이렇게 생각한 이서는 소희의 출생에 관한 일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심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일이 심동이 한 일이라면,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심동은 망설이지 않고 이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윤 대표가 웬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한 거지?] “저희 화물의 수출을 막은 사람, 심 사장님이죠?”이서는 심동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심동이 웃으며 말했다.[윤 대표, 생사람 잡는 거 아니야? 나는 그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떻게 윤씨 그룹의 화물을 압류할 수 있겠어?]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심 사장님, 하은철과 협력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그게 무슨 일이든, 심 사장님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것도요. 물론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심 사장님이 사업가고, 이익만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저희도 협력하는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심 사장님이 저희 화물이 잘 수출되도록 도와만 주신다면요.”[그래, 생각해 볼게.]심동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든 채 입꼬리를 올렸다.심동이 하은철과 협력한 것은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이서의 관찰에 따르면, 심동은 전력을 다해 그녀를 상대했지만,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큰 유인책을 제시하여 심동이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포기하도록 한 이유였다. 다만 이서는 심동이 쉽게 승낙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반드시 외부 압력이 있어야 해.’‘하은철과 협력해 봤자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지만 내 제안을 승낙할 테니까.’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어디서 외부 압력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방법이 없었던 이서는 우선 임원에게 화물을 정리한 뒤, 어디든 기사들과 함께 쉴 만한 곳을 찾으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은 H시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나만의 항구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지 않아도 될 텐데.’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는 또 한 번 각 도시의 항구 분포도를 꺼냈다. 하씨, 소씨, 심씨 가문은 모두 자신만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모두 대형 항구였으며, 나머지 몇 개의 작은 항구도 다른 자그마한 가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가문들은 손씨 가문처럼 손문덕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문이 연합하여 점령한 항구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항구를 차지하려면 틀림없이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고, 그때쯤이면 밀도 모두 익어버릴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녀에게 항구를 내어주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서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계속해서 각 가문의 정보를 뒤적거렸다. 그녀는 결국 심씨 가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심씨 가문의 오양 항구를 얻어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어.’ 오양 항구는 도시 전체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
차갑고도 뜨거운 입맞춤, 이 두 가지 다른 감각이 끊임없이 이서의 마음을 휘감았다. 지환은 이서를 놓아주었을 때야 그녀가 이슬에 젖은 듯한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본 지환은 덩달아 마음이 조이는 듯했고, 특정한 감정이 더욱 심하게 들끓는 것 같았다. 이서가 지환을 바라보며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 저랑 함께 있어 줄래요?” 이 말을 마친 이서는 지환의 반응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지환은 그녀의 불그스름한 뺨을 보고 있었는데, ‘좋아’라는 말이 입술 사이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성을 붙잡아야만 했다.“안 돼.” 이서의 얼굴에 만연했던 수줍음이 굳어졌다. 그녀가 이내 초조하다는 듯 그의 몸에 기대었다.“왜요?” 깊은숨을 내쉬는 지환의 이마에서는 이미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서의 두 눈과 자신 위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곡선을 보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왜냐면...”다행히도 그는 이성이 완전히 붕괴될 무렵에 이천의 전화를 받았다. 지환의 이성이 다시금 그를 끌어온 것이었다. “전화, 전화 받아야 해!” 그가 이서를 밀치며 말했다.침대에 주저앉은 이서는 도망가는 지환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불쾌하다는 듯 붉은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가면을 벗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줬는데, 왜 나랑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는 거지?’ ‘내가 귀신이나 맹수도 아닌데!’ 반대쪽에서는 지환이 난감하다는 듯 이천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지환의 거친 숨결을 듣고 깜짝 놀란 이천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대표님, 하씨 가문 쪽이었어요.] [저희는 이미 하씨 가문과 시장 가격보다 5%로 높은 가격에 그들이 가진 지분을 인수하기로 협상했어요. 하지만 방금 하나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화를 걸어와서는 저희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잠옷을 입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매를 특별히 한 번 살펴보았다. ‘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없는데, 이런 내가 왜 싫다는 걸까...?’ 이서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지환을 땅굴에 묻고 싶어질 정도였다.더 이상 환각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지환은 그녀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이서야, 난 너한테 불만 없어.”“그럼 왜 저랑... 저랑...” 이서는 생각할수록 억울했고, 곧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백화점에서 하은철에게 겨냥당했을 때도,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하지만 지금은...지환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이서가 눈물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서가 울자, 모든 것을 잊은 그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안아주었다.“울지 마, 울지 마, 네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나쁜 거야!” 울음을 뚝 그친 이서가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얼굴을 붉혔다.“그럼, 설마...” 지환의 이마에 붉어진 핏줄이 더욱 선명해졌다. 의심을 받은 그는 화가 나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이서를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서야, 그만하고 얼른 네 방으로 돌아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선 그녀가 말했다.“안 갈래요. 오늘 저녁에는 여기서 잘 거라고요.” “선생님이 제 방에 안 오실 거면, 제가 여기서 잘 거예요, 괜찮죠?”하연이 이마를 문질렀다. ‘기억을 잃은 내 와이프가 왜 이렇게 무대포로 변한 거지?’ 지환이 몸을 돌려 옆방으로 가려고 하자, 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침대에 앉았다.“매니저님께 부탁해서 그 방 예약을 취소해 뒀어요.”발걸음을 멈춘 지환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상관없어, 방이야 다시 얻으면 되는 거니까.” “...”문이 천천히 닫히는 것을 본 이서는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져버렸다. ‘바보, 바보, 바보!’ 지환은 곧바로 매니저를 불러 옆방을 예약했다.매니저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가 옆방으로 옮기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부간의 감정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