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하은철에 맞먹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니까.’‘하지만 두렵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늦었어.’ ‘이미 윤이서와 지독하게 엮인 상황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윤이서 쪽도, 하은철 쪽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한 장희령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두렵긴요...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윤이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다니...” “하지만, 저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하은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다른 일은 없는 겁니까?] 최근에 발생한 일을 재빨리 한 번 되새긴 장희령이 곧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네, 하 사장님, 이 문제는 제가 깔끔하게 해결할게요. 절대 사장님께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예요.” 하은철도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요.][심 사장한테 전하세요, 또 문제가 생긴다면 두 가문 간의 협력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요!] 안색이 변한 장희령이 즉각 대답했다.“하 사장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하은철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장희령은 창가에 서 있는 심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심동이 평소처럼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하은철과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제야 마음을 놓은 장희령이 심동을 향해 손을 흔들자, 격앙된 채 다가온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셨어!” 장희령은 아주 기뻤다. “그런데 소희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 후에 우리의 결혼 날짜를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심동이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간단하지 않겠지만...”이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떠올린 장희령은 마음이 연처럼 날아오르는 듯했다.“나만 믿어, 곧 해결할게.” “정말?”심동의 눈동자에 불신의 기색이 떠올랐다. “응.” “그나저나 방금 네 표정을 보니까 화가 난 것 같던데, 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이 퍼지자, 정인화가 직접 나서서 해명 영상을 올렸다. “소희는 우리 부부에게 아주 잘하는 효심이 지극한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우리를 때리고 동생을 죽이려 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소희는 동생과의 관계도 아주 좋아요.” “대체 왜 그런 기사가 났는지 알 수가 없네요.” “아마 제 표현이 서툴러서 기사를 쓰신 기자님이 오해한 모양이에요.” 그녀는 모든 잘못을 기자에게 뒤집어씌울 기세였다. 하지만 그 기사를 발표한 기자는 정인화의 배후가 장희령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비난은 소희에게서 정인화로, 다시 기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얼마 가지 않아 연예계에서 터진 스타들의 불륜 뉴스로 묻혀버렸다. 어쨌든 소희의 위기는 이렇게 넘어간 셈이었다. 아래층에 있던 기자들은 더 이상 보도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아래층을 바라보던 하나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기자들이 있을 때는 비집고 들어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매번 뒤로 돌아서 왔어.”소희는 오늘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하나 언니, 앞으로는 이러지 않을 거야.”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뭐가 이러지 않을 거라는 거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란 말이지.”“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하나가 이서를 힐끗 쳐다보았다.“이서야, 내가 부정적인 게 아니야. 소희의 어머니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더라도,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 “이번에는 소희의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나섰지만, 분명 장희령의 지시가 있었을 거야.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던 것 같아.”이서가 눈썹을 찡그리며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 씨, 장희령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야 해.” “나는 장희령이 아직도 소희 씨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이서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히 알아볼
“네, 알겠어요.”“자, 이제 됐다.”USB에 자료를 복사한 이서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소희에게 말했다.“소희 씨, 꼭 기억해. 회사를 잘 관리하는 것 외에도 장희령이 왜 소희 씨를 노리는 건지 분명히 알아내야 해.” “이번에는 장희령의 계획이 수포가 되었지만, 다음에 또 이런 문제를 일으킬까 봐서 걱정이야.” “그리고 장희령이랑 심동이 결혼을 약속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 일단 그 여자가 심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면, 우리를 상대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더 많아질 거야. 그래서 진정한 날개를 달기 전에, 모든 일을 똑똑히 조사해야 해.”이서가 말했다. “네.”이서가 이토록 이토록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본 소희는 또 한번 따스함을 느꼈다.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서는 하나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하나가 물었다.“어디로 갈 생각이야?”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하나야, 미안해. 그것도 비밀이야.” 하지만 하나는 별로 개의치 않고 말했다.“아, 그냥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어. 어쨌든 이번에는 하은철이 너무했어. 아니다, 매번 그랬었지? 그래도 이번에는 너를 너무 궁지로 몰았어.” 여기까지 말한 하나는 잠시 멈추고서야 계속 말했다.“이서야, 윤씨 그룹을 매각하고 외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이서가 고개를 기울여 하나를 바라보았다. “국내에서 계속 하은철의 타깃이 되느니, 그냥 해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 어쨌든 윤씨 그룹을 매각하면 적어도 200억 원은 받을 수 있을 거야. 그 정도 돈이면 네가 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서가 잠시 후에야 천천히 말했다.“사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애초에 국내로 돌아온 이유도 외국에서 누군가의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잖아. 내가 또 외국으로 나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하긴.”하나가 턱을 만지면 심란해했다.“외국에도 하은철 같은 적이
고집스러운 이서를 본 하나는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간 후, 그녀는 이서가 걱정되어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무래도 이서가 좀 이상해. 확인 좀 해줘.”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안에 있던 이서는 바다에 주저앉고 말았다. 극심한 두통을 느낀 그녀는 머릿속을 전부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파!’‘너무 아파!’게다가 통증과 함께 밀려온 것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하 선생님의 신분을 알게 되면, 세상에 종말이 올 것만 같아!’ 이서가 머리를 힘껏 감싸 쥐었다. 같은 시각.하나의 전화를 받은 소희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점점 올라가는 층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해당 층에 도착하자, 그녀가 찡그렸던 미간을 조금 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소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는 이서를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이서 언니...” ‘완전 괜찮아 보이는데?’“어?”이서는 소희를 보자마자 하나가 그녀를 여기서 기다리게 한 것을 알아차렸다.“중요한 서류를 깜빡해서 다시 왔어. 내려가려고?”“아니에요, 아니에요.”소희가 재빨리 이서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시종일관 반듯하고 침착한 것을 본 소희가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이서 언니, 무슨 중요한 자료길래 저를 시키지 않고 직접 온 거예요?” “중요한 서류는 내가 직접 챙겨야지.”이미 문 앞에 다다른 이서가 소희를 막으며 말했다.“자, 소희 씨는 이만 할 일 하러 가.” “네.”소희가 얼른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3, 4미터 정도 멀어진 것을 본 이서는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 눈을 거세게 감고, 전류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물러가기를 기다리고서야 서랍으로 가서 진통제 한 알을 꺼냈다. ‘하 선생님의 신분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구나.’‘앞으로는 하 선생님의 신분이 궁금해도 알려고 하면 안 되겠어.’‘그렇지 않으면... 하 선생님을 잃게 될지도 몰라.’ 근거 없는
“하지만 사람이라면 약점이 있기 마련이지.”이미 이서와 몇 번이고 맞붙었던 하은철은 더 이상 맹목적으로 자만하지 않았다. 심동이 말했다.“근데 그 어르신은 약점이 없는 것 같아.”“이전에 어르신의 손자가 납치된 적이 있었거든? 그 납치범은 몸값으로 20억을 요구했었는데, 결국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그 어르신은 최대 10억만 줄 수 있다고 쐐기를 박더라고.” “협상이 결렬된 납치범은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지만, 어르신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지.”“결국 그 납치범은 돈을 한 푼도 못 받고 인질을 돌려보내야 했어.” “그런 사람한테 윤 대표의 설득이 통할 것 같아? 정말 윤씨 그룹의 화물을 수출해 주겠냐는 말이야.” 찌푸려진 하은철의 미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뭐 하나만 묻자, 손씨 가문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어?” “당연하지, 윤 대표가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겠어?”“그럼 됐어. 그 사람들이 이미 협상을 마쳐서 윤이서가 계약을 체결하러 가는 거든, 아니면, 협상이 안 돼서 설득하러 가는 거든, 우리는 그 협력을 반드시 막아야 해!”심동은 아마 협상하러 간 것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하은철의 엄숙한 표정 때문에 이서가 손씨 가문의 어르신인 손문덕과 이미 합의를 마쳤다는 착각이 들어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던 심동이 말했다.“그럼 우리도 가야 할까?” “아니.”하은철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너는 이만 가봐.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심동은 이 말을 듣자마자 기뻐하며 손을 털고서 즐겁게 떠났다.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하은철은 그제야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와 다른 열정이 묻어 나왔다. 놀란 상대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하 사장님, 무슨 일이든 지시만 하십시오.]하은철은 그제야 얼굴에 만연하던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좋습니다. 뭐 하나만 물을게요.
손민우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음탕한 웃음을 지었다.[알겠습니다, 하 사장님.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윤 대표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음탕한 웃음은 불쾌함을 느낀 하은철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했던 하은철은 불쾌감을 억눌러야만 했다. ...같은 시각.이미 비행기에 오른 이서는 긴장한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손씨 가문에 대한 자료였다. 그것들은 모두 인터넷상의 정보였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손씨 가문은 그 지역에서 주도권을 쥔 존재라 불렸다. 그 가문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가문들이 그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하려 했지만, 결국 쫓겨나거나, 처참히 분할되어 쓸모없는 찌꺼기만 남는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이서는 자료를 보면 볼수록 심장이 뛰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하 선생님이 어떻게 손씨 가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거지?’ 이서는 이 문제를 떠올릴 때마다 지환의 신분을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환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않도록 주의를 돌리는 데 애써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효과가 미약했고, 지환은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금방 알아차리고 말았다. “어디 불편해? 곧 내릴 수 있을 거야!”“아니에요, 그냥 손문덕 어르신을 만나서 일을 해결하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이미 다 이야기해 뒀으니까 너는 사인만 하면 돼.”“그렇다면 다행이네요.”물을 한 모금 마신 이서는 창백한 안색을 누그러뜨리고서야 웃으며 말했다.“좀 쉬고 싶어요. 도착하면 알려주실래요?” “알겠어.”지환은 다정하게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눈을 감은 이서는 마음속으로 필사적인 자기 최면을 걸었다.‘하 선생님의 신분은 생각하지 말자... 절대 생각하지 말자.’ 최면이 통한 것일까, 아니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은 이내 경호원이 말했던 호텔에 다다랐다. 그 호텔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차에서 내린 이서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지만, 지환과 나란히 걸으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불안을 느낀 것일까. 지환이 이서의 손을 꽉 잡았다. 경호원의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드디어 H시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손씨 가문의 가주, 손문덕을 만날 수 있었다. 손문덕은 올해로 80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늠름한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심지어 80세가 아닌 60대처럼 보였으며, 막 노년기에 접어든 것 같았다. 지환과 이서를 본 그가 허허 웃으며 인사했다.“허허, 하 선생과 웬 아가씨가 왔군요.”그는 지환의 진짜 신분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 이미 그의 냉혹함을 목격한 바 있었다. 그날 밤, 그는 10여 명과 함께 함정으로 가득한 손씨 가문의 저택에 침입했으며, 손문덕의 목에 칼을 대고 윤씨 그룹의 화물이 손씨 가문의 항구를 지나게 하라고 협박했다.심지어 자신의 말 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의 골동품을 모두 태워버리겠다고도 했다. 하은철의 말이 맞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약점이 있는 법이다. 물론, 손문덕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는 그 골동품과 그림들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골동품과 그림을 모두 태워버리겠다는 지환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게다가 10여 명을 대동하고도 조용히 저택에 침입한 사람이라면, 목숨을 노릴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이것이 지환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 선택은 아주 굴욕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큰손자 손민우의 말을 들었을 때,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손민우는 곧 알게 될 거라며 뜸을 들였고, 단언컨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손문덕은 지환과 이서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만개한 웃음
이내 그 발걸음 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이서가 고개를 돌리자, 족히 120kg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너무 뚱뚱해서 저택의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릴 지경이었다. 이서가 지환을 바라보았는데, 그도 문 앞에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안색이 약간 변한 듯했다. 그 남자는 지환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아, 저 사람이 하은철이 전화로 말했던 그 남자구나!’지환의 옆에 선 약한 여자를 보니, 담력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이 사람들이 우리 항구를 쓰겠다던 사람들이죠?” “그래.”여전히 자리에 앉아있던 손문덕이 움직이지 않은 채 물었다.“준비는 다 된 게야?” “준비는 다 끝났어요.” 손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손문덕은 얼굴에 만연했던 선의를 거두었다.“그럼 준비도 됐겠다...” 지환을 바라보는 손문덕의 얼굴에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지만, 눈동자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독기뿐이었다. “하 선생, 하 선생의 앞에 서 있는 그 아이는 내 손자인 민우요. 그 아이가 윤씨 그룹에게 항구를 내주는 걸 동의하지 않더군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한순간에 마음을 바꾸는 것은 이서도 경험해 본 일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계약 직전에 마음을 바꾸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이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진심으로 항구를 빌려주려던 게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H시에서 그렇게 제멋대로 굴던 사람이 흔쾌히 항구를 빌려줄 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항구를 빌려주는 것은 손씨 가문이 수출 물량의 일부를 줄여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수출 물량은 이익과 이어진다. ‘애초에 하 선생님이 뭘 어쨌길래 승낙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지금은 물어볼 시간이 없어. 왜냐하면...’ 손문덕의 손자인 손민우가 거들먹거리며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그와 같은 덩치의 사람이 여럿이나 있었다. 그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