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라면 더한 일도 해결할 수 있으실 거야.’회사로 돌아온 이서는 곧바로 정인화가 7성급 호텔에 묵고 있는 사진을 최미영에게 건넸다. 사진을 본 최미영은 멍해졌고, 몇 초 후에야 반응했다.“윤 대표님, 이 사진...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이서가 물었다.“왜 그러세요? 사진에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사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호텔이요... 제 기억이 맞다면 심씨 가문의 소유일 거예요.” “심씨 가문의 호텔은 안전과 보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에요. 그래서 부유층 사람들이 애인을 데리고 가는 걸 즐긴다고 하더라고요.”“이 소문을 들은 파파라치 기자들이 호텔에 잠입해서 부유층이 불륜을 저지르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지난 십여 년 동안 그 계획을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들었어요.” “철저한 호텔의 보안성을 방증하는 결과인 거죠.”이서는 멍해졌다.‘고작 이 사진 한 장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이야!’ 그녀가 어제 전세를 냈던 지환을 떠올렸다. 이서가 손에 사진을 쥔 채 천천히 앉았다. 그녀는 M국에 있을 때부터 지환의 신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던 참이었다. 다만, 그때의 이서는 병세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귀국한 후에도 계속되는 압박에 시달리느라 이 문제를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한숨 돌리게 된 이서가 최미영의 말 한마디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윤 대표님?” 이서가 오랫동안 말이 없자, 말하기를 꺼린다고 생각한 최미영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 지금 바로 이 사진을 공개하겠습니다.” “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팀장님은 그저 사진만 공개해 주세요. 나머지는 집요한 네티즌들이 스스로 상상하게 내버려두자고요.” 이서가 말했다.“네.” 최미영이 몇 걸음 나아가려던 찰나, 무언가를 떠올린 이서가 그녀를 불렀다. 발걸음을 멈춘 최
최미영이 그 사진을 공개하자, 집요한 네티즌들은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집이 가난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딸이랑 사이도 멀어진 마당에 저렇게 좋은 호텔에 묵을 돈이 있다는 게 말이나 돼요?][제가 알기로 저 호텔은 심씨 가문의 소유예요. 가장 저렴한 방이라도 하룻밤을 묵는 데 몇백만원은 필요할 텐데, 그런 돈은 어디서 얻은 걸까요?] [설마 심소희 씨가 낸 돈은 아니겠지요?] [심소희 씨가 낸 돈이 맞다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던 주장은 설명이 불가능하잖아요!] 마지막 댓글은 소희가 돈을 지불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사람들은 한참이나 각자의 주장을 펼쳤으나 결론을 얻지는 못했다. 정인화는 인터넷 계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처음에 소희의 패륜을 폭로한 계정의 운영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계정의 운영자는 당연히 자초지종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의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느낀 운영자는 어쩔 수 없이 장희령에게 상황을 알려야 했다. 같은 시각.장희령은 심씨 가문의 고택에서 심근영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 사장님을 찾아뵀는데요, 보도를 철회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실 뿐이었어요.” 장희령의 이 말은 진실이었다.하은철은 이서와 지환이 헤어지도록 압박하기 위해서 이서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보도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이서가 자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곧바로 자신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그 보도를 철회할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다.그래서 심근영 부부와 소희를 충분히 골탕 먹였다고 생각한 장희령은 기사를 철회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준비하려던 찰나, 운영자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된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하 사장님의 명령 없이는 기사를 철회할 수 없어요.] 장희령은 하은철을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하은철의 비서에게 모욕당해야만
장희령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던 심근영 부부가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우리도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단다. 게다가 이런 일은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만약 그 여자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해도 헛수고일 뿐일 거야.” 장희령이 웃으며 말했다.“두 분, 벌써 잊으신 거예요? 저는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이에요.” 그녀는 일부러 ‘연예계’라는 세 글자를 강조했다.“저희 업계에서는 정보를 캐내는 사람들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제 매니저한테 부탁하면, 빠른 시일 내에 소희 씨의 양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순간, 장희령을 바라보는 심근영 부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 부탁 좀 하마.” 장희령이 막 입을 떼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운영자가 걸어온 전화였는데, 일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그녀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반쯤 말했을 때, 장희령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여전히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른 몸을 일으킨 장희령은 핸드폰을 가리키며 정원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지숙이 다소 걱정하며 말했다.“상황이 달라진 건 아니겠지?” 심동이 미소를 지으며 이지숙을 위로했다.“엄마, 걱정하실 거 없어요. 희령이가 소희의 양어머니를 찾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두 분이 보시기에는 희령이가 단지 연기만 하는 사람일 수 있지만, 나름의 방식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이지숙의 태도가 다소 부드러워졌다.“그래, 아무래도 우리가 고리타분한 생각을 했던 것 같구나. 희령이를 연예계에 있는 다른 여자들처럼 여기면서, 우리 집안을 탐낸다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 우리 집안일을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좀 바꿔보기로 했어. 내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잖니?”“네 여동생 일만 잘 해결되면, 결혼
이렇게 생각한 장희령은 곧바로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하은철의 비서였는데,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장희령이 말했다.“하 사장님이랑 급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하 사장님 좀 바꿔주세요!” 이 말을 들은 비서는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급히 하은철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피어오르는 의심을 느낀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장희령은 하은철과 자신 사이의 신분 차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하 사장님,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세요?”하은철은 그녀가 전화한 이유가 소희의 보도를 철회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이 회사의 주인은 나라고요...] “하 사장님 회사의 자원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허락을 구하지 않은 건 분명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모든 건 다 하 사장님을 위한 거였잖아요!” 장희령은 자신이 그런 일을 벌인 이유가 심씨 가문에 시집가기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심소희는 윤이서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윤이서처럼 정이 많은 사람은 심소희에 관한 일로 정신없이 바쁠 거라고요.” “하지만 하 사장님은 그까짓 하신 한 장으로 제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요, 하 사장님이 윤이서를 좋아하는 것도, 윤이서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제 노력을 이용해서 윤이서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장희령의 표정은 말할수록 더욱 일그러졌다. 그녀는 하은철이 이미 결혼한 이서를 왜 이토록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서의 곁에는 남편뿐만 아니라, 가면을 쓴 잘생긴 남자도 있지 않은가. ‘당신 같은 명문가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갈대 같은 여자를 가장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고!’ ‘대체 뭐 때문에 하은철까지 윤이서를 원하게 된 거지?’장희령이 쏟아내는 분노를 듣던 하은철이 냉소를 지었다.[이제야 알겠네요. 누군가가 어떤 사진을 유출했다는 거죠?] [어떤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아무래도 하은철에 맞먹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니까.’‘하지만 두렵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늦었어.’ ‘이미 윤이서와 지독하게 엮인 상황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윤이서 쪽도, 하은철 쪽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한 장희령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두렵긴요...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윤이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다니...” “하지만, 저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하은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다른 일은 없는 겁니까?] 최근에 발생한 일을 재빨리 한 번 되새긴 장희령이 곧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네, 하 사장님, 이 문제는 제가 깔끔하게 해결할게요. 절대 사장님께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예요.” 하은철도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요.][심 사장한테 전하세요, 또 문제가 생긴다면 두 가문 간의 협력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요!] 안색이 변한 장희령이 즉각 대답했다.“하 사장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하은철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린 장희령은 창가에 서 있는 심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심동이 평소처럼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하은철과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제야 마음을 놓은 장희령이 심동을 향해 손을 흔들자, 격앙된 채 다가온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셨어!” 장희령은 아주 기뻤다. “그런데 소희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 후에 우리의 결혼 날짜를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심동이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간단하지 않겠지만...”이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떠올린 장희령은 마음이 연처럼 날아오르는 듯했다.“나만 믿어, 곧 해결할게.” “정말?”심동의 눈동자에 불신의 기색이 떠올랐다. “응.” “그나저나 방금 네 표정을 보니까 화가 난 것 같던데, 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이 퍼지자, 정인화가 직접 나서서 해명 영상을 올렸다. “소희는 우리 부부에게 아주 잘하는 효심이 지극한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우리를 때리고 동생을 죽이려 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소희는 동생과의 관계도 아주 좋아요.” “대체 왜 그런 기사가 났는지 알 수가 없네요.” “아마 제 표현이 서툴러서 기사를 쓰신 기자님이 오해한 모양이에요.” 그녀는 모든 잘못을 기자에게 뒤집어씌울 기세였다. 하지만 그 기사를 발표한 기자는 정인화의 배후가 장희령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비난은 소희에게서 정인화로, 다시 기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얼마 가지 않아 연예계에서 터진 스타들의 불륜 뉴스로 묻혀버렸다. 어쨌든 소희의 위기는 이렇게 넘어간 셈이었다. 아래층에 있던 기자들은 더 이상 보도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아래층을 바라보던 하나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기자들이 있을 때는 비집고 들어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매번 뒤로 돌아서 왔어.”소희는 오늘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하나 언니, 앞으로는 이러지 않을 거야.”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뭐가 이러지 않을 거라는 거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란 말이지.”“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하나가 이서를 힐끗 쳐다보았다.“이서야, 내가 부정적인 게 아니야. 소희의 어머니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더라도,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래.” “이번에는 소희의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나섰지만, 분명 장희령의 지시가 있었을 거야.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던 것 같아.”이서가 눈썹을 찡그리며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 씨, 장희령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야 해.” “나는 장희령이 아직도 소희 씨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이서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히 알아볼
“네, 알겠어요.”“자, 이제 됐다.”USB에 자료를 복사한 이서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소희에게 말했다.“소희 씨, 꼭 기억해. 회사를 잘 관리하는 것 외에도 장희령이 왜 소희 씨를 노리는 건지 분명히 알아내야 해.” “이번에는 장희령의 계획이 수포가 되었지만, 다음에 또 이런 문제를 일으킬까 봐서 걱정이야.” “그리고 장희령이랑 심동이 결혼을 약속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 일단 그 여자가 심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다면, 우리를 상대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더 많아질 거야. 그래서 진정한 날개를 달기 전에, 모든 일을 똑똑히 조사해야 해.”이서가 말했다. “네.”이서가 이토록 이토록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본 소희는 또 한번 따스함을 느꼈다.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서는 하나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하나가 물었다.“어디로 갈 생각이야?” 이서가 웃으며 말했다.“하나야, 미안해. 그것도 비밀이야.” 하지만 하나는 별로 개의치 않고 말했다.“아, 그냥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어. 어쨌든 이번에는 하은철이 너무했어. 아니다, 매번 그랬었지? 그래도 이번에는 너를 너무 궁지로 몰았어.” 여기까지 말한 하나는 잠시 멈추고서야 계속 말했다.“이서야, 윤씨 그룹을 매각하고 외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이서가 고개를 기울여 하나를 바라보았다. “국내에서 계속 하은철의 타깃이 되느니, 그냥 해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 어쨌든 윤씨 그룹을 매각하면 적어도 200억 원은 받을 수 있을 거야. 그 정도 돈이면 네가 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서가 잠시 후에야 천천히 말했다.“사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애초에 국내로 돌아온 이유도 외국에서 누군가의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잖아. 내가 또 외국으로 나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하긴.”하나가 턱을 만지면 심란해했다.“외국에도 하은철 같은 적이
고집스러운 이서를 본 하나는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간 후, 그녀는 이서가 걱정되어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무래도 이서가 좀 이상해. 확인 좀 해줘.”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안에 있던 이서는 바다에 주저앉고 말았다. 극심한 두통을 느낀 그녀는 머릿속을 전부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파!’‘너무 아파!’게다가 통증과 함께 밀려온 것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하 선생님의 신분을 알게 되면, 세상에 종말이 올 것만 같아!’ 이서가 머리를 힘껏 감싸 쥐었다. 같은 시각.하나의 전화를 받은 소희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점점 올라가는 층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해당 층에 도착하자, 그녀가 찡그렸던 미간을 조금 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소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는 이서를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이서 언니...” ‘완전 괜찮아 보이는데?’“어?”이서는 소희를 보자마자 하나가 그녀를 여기서 기다리게 한 것을 알아차렸다.“중요한 서류를 깜빡해서 다시 왔어. 내려가려고?”“아니에요, 아니에요.”소희가 재빨리 이서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시종일관 반듯하고 침착한 것을 본 소희가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이서 언니, 무슨 중요한 자료길래 저를 시키지 않고 직접 온 거예요?” “중요한 서류는 내가 직접 챙겨야지.”이미 문 앞에 다다른 이서가 소희를 막으며 말했다.“자, 소희 씨는 이만 할 일 하러 가.” “네.”소희가 얼른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3, 4미터 정도 멀어진 것을 본 이서는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 눈을 거세게 감고, 전류가 흐르는 듯한 통증이 물러가기를 기다리고서야 서랍으로 가서 진통제 한 알을 꺼냈다. ‘하 선생님의 신분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구나.’‘앞으로는 하 선생님의 신분이 궁금해도 알려고 하면 안 되겠어.’‘그렇지 않으면... 하 선생님을 잃게 될지도 몰라.’ 근거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