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영이 말했다.[윤 대표님, 알겠습니다.] 이서는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최미영은 핸드폰을 든 채 감개무량해 했다.‘지난번 서나나 씨의 일로 윤 대표님이 정이 많고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느끼던 참이었어.’‘그런데 이번에 심 비서님의 일로 윤 대표님에 대한 생각이 굳어졌어. 나는 확실히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거야.’ 최미영은 이서와 친구가 아니었으나, 친구에게 이렇게 다정한 상사는 부하에게도 다정할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운전기사는 이서가 전화를 끊기를 한참이나 기다리고서야 입을 열었다.“윤 대표님.” 이서가 인상을 찌푸렸다.“전화 한 통만 더 할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환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하 선생님.”이서가 피곤하다는 듯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저랑 쇼핑하지 않으실래요?” 그녀는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던 찰나, 머릿속에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렸다. 지환은 금방 이서의 지친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좋아, 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 “저는...”이서가 차창 밖의 우뚝 솟은 건물을 한 번 보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데리러 갈게요. 어디세요?” 지환은 곧바로 주소를 알려줬고, 이서는 기사에게 주소를 전달해 주었다. 기사는 그제야 차를 몰고 지환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난 후,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이서는 가장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지환은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지친 기색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서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지환은 이미 이천을 통해서 소희와 항구에 관한 일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환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이서에게 말했다.“가자.” 이서가 그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쳐다보았다.“그 가면을 쓴 채로 쇼핑하시려고요?” “응.”지환이 대답했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잖아요. 사람들이 다 쳐다볼
백화점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지환이 말했다. “이제 내리자.” “그런데...”백화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이서가 망설이며 백화점 정문을 쳐다보았다. 정문 셔터는 이미 반쯤 내려온 상황이었다. ‘이미 영업을 끝낸 거 아닌가?’“내리자.”지환이 다시 말했다. 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환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백화점을 향해 걸어갔다.이때, 백화점 주변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가면을 쓴 지환과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백화점 앞에 다다를 때까지 말이다. 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은 채 정문 셔터를 향해 몸을 낮췄다. 정문 안에 있던 경비원은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쫓아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본 그는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를 끌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제야 백화점 영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일부로 모든 사람을 내보낸 것임을 깨달았다. ‘설마 우리가 방해받지 않고 쇼핑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내보낸 건가?’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지환이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다른 사람한테 방해받기 싫은 것 같아서 백화점을 전세 냈어.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전혀 눈치 볼 거 없어.”이서가 막 대답하려 했으나, 연이어 들려오는 ‘어서 오세요’라는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집어삼키고 말았다.그녀는 그들이 조용해진 후에야 작은 목소리로 지환에게 물었다.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윤씨 그룹 산하에도 백화점이 있었기에, 이서도 전세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세를 내는 것은 기업에 있어서 큰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백화점 전체를 전세 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지환이 이서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너만
지환이 그 미소를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괜찮아, 나는 너만 즐거우면 돼.”“이왕 이렇게 된 거, 뭐 먹고 싶은지 말씀해 주세요. 말씀해 주시면 저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지환이 가볍게 웃으며 이서의 곁에 앉았다.“내가 했던 말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거야?” 이서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하 선생님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선생님은 항상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지환이 또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이서의 새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지환이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억누른 후에야 말했다.“그래, 그럼... 우리 샤부샤부 먹으러 갈까?”“좋아요.”이서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11층에 다다른 두 사람은 곧 샤부샤부 식당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기 위하여 배경 음악을 꺼달라고 했다. 음식이 모두 나오자 종업원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환이 식탁 위에 놓인 일련의 맥주캔을 힐끗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술은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이서가 미소를 지었다.“마시고 싶어서요.” ‘사실은 마음이 답답해서 술을 좀 마시고 싶었어요.’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 한 캔을 땄다.“치이익.” 이서가 밝은 표정으로 맥주캔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몇 번 번뜩였는데, 아무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지환은 여전히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선생님, 맥주 좋아하세요?”“아니.” 그는 와인을 제외한 다른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서가 실망하며 대답했다.“아, 네...” “왜, 나도 같이 마셨으면 좋겠어?”지환은 이서의 사사로운 감정을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이서가 쑥스럽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사실 조금은 마셔.” “정말요?”
전에 지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 이서가 다시 한번 힘을 주려던 손을 망설였다.“제 곁에만 있어 주신다면, 절대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지 않을 거예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단지 마음속의 의문을 풀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고?’ 손을 천천히 움츠린 이서가 꽤 억울하다는 듯 지환의 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풀이 삼아 그의 턱을 세게 물었으나, 그것은 결국 키스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쉬워... 너무.’술에 취한 척하던 지환은 그제야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는 이서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호흡에 맞춰 술에 취한 척하며,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고, 지환이 피하려던 위기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위기로 변했다. 이서는 중독되기라도 한 듯 지환의 아래턱을 계속해서 문질렀다. 그녀는 서서히 턱 아래로 손길을 뻗었지만, 지환의 얼굴에 솟아오른 터질 듯한 핏줄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리 신경 쓰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는데, 지환이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빠져나가려는 충동을 억누르며 몸을 뒤척였고, 이 움직임은 마침내 겁 없는 이서를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서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술에 취한 모습은 이런가 보네요... 잠들었을 때랑 똑같네요.” 지환은 밀려오는 후회를 느끼기 시작했다.몸을 돌린 그는 잠시 숨을 돌릴 기회를 얻었으나, 이서가 온몸을 지환에게 기대어 밀착했기 때문이었다. 이서의 숨결에 완전히 메어버린 지환은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빠져나갈 길을 잃고야 말았다. 이러한 고문은 그를 사나운 늑대로 만들어 매섭게 물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다. 꿈틀거리는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지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아무
이튿날, 술에서 깬 이서가 침대 옆에 엎드려 잠든 지환을 보더니 안색을 굳혔다. ‘어젯밤에 술에 취한 나를... 하 선생님이 데려오신 거야?’ ‘뭐야, 그럼 취한 척하신 거였어?’ ‘마지막 순간에 가면을 벗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서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걸 보면... 화가 나지 않으신 건가?’ 한참 동안 안절부절못하던 이서가 매우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하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려고 하다니!’‘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나를 경계하실 게 분명해.’ 이서가 스스로를 나무라고 있을 때, 지환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후회막심한 표정의 이서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은 생기가 넘쳤는데, 햇빛처럼 아름답고 눈부셔서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이서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순간,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멍해진 그녀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지환을 바라보았다.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지환이 웃으며 말했다.“어제는 용기 내서 날 취하게 했으면서, 왜 오늘은 고양이를 본 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이서가 바삐 말했다.“가면 아래의 진짜 얼굴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어제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제발 믿어주세요.” 불안감을 느낀 이서가 지환의 손을 잡았다. ‘곧 내 눈앞에서 사라지실 것만 같아.’ “정말이에요,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 하 선생님, 화내지 마세요... 네?” 지환이 살포시 이서의 손을 마주 잡았는데,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부드럽고 다정했다.“이서야, 나는 화나지 않았어.” “그리고 사실... 어제 네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하지만 내 얼굴을 못 보게 한 이유는 내 얼굴을 마주한 네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사실 나의 두려움 때문이었던 거지.” 이 말을 들은 이서는
“하지만 제가 듣기로...”이서는 꽤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각 도시는 지역적인 이익을 아주 중요시한다고 했어요. 정말 이 도시에 있는 항구가 윤씨 그룹의 화물 수출을 허용해 줄까요?” 그녀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부근의 도시에 가서 수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런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이미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끝냈거든.” 이서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그 사람들이 허용해 주겠대요?” “응, 그래서 앞으로는 항구 문제로 심씨 가문의 압박을 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이서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정말 감사해요.” “너랑 나 사이에도 그런 말이 필요한 거야?”웃는 듯 마는 듯하던 지환이 또다시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윤씨 그룹도 이번 일에 대해서 경각심을 느껴야 할 필요는 있어. 남의 항구를 빌려서 수출하는 건 늘 안심할 수 없는 법이야. 상대가 수출을 허용하지 않는 한, 수출할 방법이 없는 거니까.”이서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4대 가문 중에서 몰락했다가 다시 재기한 윤씨 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3대 가문은 모두 기업 산하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항구들도 이미 하위 가문들에 의해 나누어진 상황이었다. 평소에 모두가 화목하게 지낼 때는 이 항구들로 인해 특별히 문제 생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기만 하면, 항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해외에서 사업을 펼치는 기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곤 했다. “3대 가문은 손에 쥔 항구를 절대 내놓지 않으려 할 거야. 하지만, 하위 가문들이 가지고 있는 항구는 빼앗을 수 있을지도 몰라.” 지환이 말했다. 이서가 쓴웃음을 지었다.“그럴 리가요. 그 기업들도 분명히 이번 일을 알고 있을 거예요. 심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윤씨 그룹을 겨냥하는 걸 아는 이상, 항구를 내놓지는 않을 거라고요.” “게다가 항구를 가지고 있는 가문들은 해외 시장을 노리고 있잖아요.”“그 사람들도 항구를 내놓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