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래요, 확실히 소희 씨의 어머니께 유리한 점으로 작용하겠네요.” “네, 그래서 저희가 해명한다고 해도 첫 번째만 해명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의 해명을 들은 집요한 네티즌들이 직접 심 비서님의 고향을 찾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네티즌들은 제가 들은 것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또다시 모든 여론은 정인화 씨에게 기울게 되겠죠. 그때가 되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거예요.” “해명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이서가 물었다. 최미영이 말했다.“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미영이 말을 다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서는 그녀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소희 역시 그녀의 뜻을 알 수 있었기에 일어서서 말했다. “이서 언니, 제 사적인 일 때문에 회사의 이미지에 타격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이서가 최미영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최미영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소희 씨,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어? 우선 이렇게 하자, 소희 씨는 며칠간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푹 쉬는 거야. 그동안 내가 꼭 방법을 강구해서 이 일을 해결해 볼게.” 소희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 언니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모든 게 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어서 저를 해고해주세요. 제가 회사를 떠나야만 저희 엄마가 소란을 피우지 않으실 거예요.” 안색이 변한 이서가 단호하게 말했다.“소희 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움츠러드는 건 좋은 대처가 아니야.” “지금은 당장 갈 길이 없어 보이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거라고 하더라도, 벽을 넘을 수도 있고, 사다리를 찾을 수도 있는 거잖아?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소희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자, 이서가 다소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소희 씨, 날 믿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소희가 이서의
기억을 잃은 이서에게 이 장면은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다.이서는 이전에 자신이 하씨 그룹을 방문할 때마다 하은철의 비서가 늘 거만한 태도를 보인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은철의 비서뿐만이 아니라 하씨 그룹의 직원들, 바닥을 쓸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조차도 그녀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였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하은철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선들이 꽤 재미있었단 말이지.’ “그때의 나는 왜 하은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제 이서를 보는 하씨 그룹 사람들의 눈빛에 예전의 오만함이 서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여왕의 귀환을 맞이하듯 이서를 대했다. “윤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하은철의 비서가 이서를 대신하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들은 모두 영리한 사람들이었다.‘겉보기에는 하 대표님이 윤이서를 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윤이서를 가질 생각이신 거야.’‘하 대표님의 성격이라면 갖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기어코 손에 넣으려고 애쓰시겠지? 윤이서는 아직 하씨 가문의 며느리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하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거란 말이지!’ ‘아직도 윤이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어떤 흉측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지 몰라.’ 비서의 인솔을 받은 이서는 이내 하은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만, 그녀는 하은철을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허세를 부리며 이서를 만나러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휴게실에서 어떤 옷을 입고 이서를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비서실을 통해 이서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하은철은 그때부터 사무실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비싼 옷들이 마음에 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어떻게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바깥의 동정을 들은 하은철은 이서가 왔음을 깨닫고 잠시 망설였다. 그의 시선은 여러 옷을 스치다가 결국 오늘 입은 옷에 멈췄다. ‘됐어, 내가 아무리 공
“소희 씨는 우리 사이의 싸움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이서는 가능한 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고, 하은철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그를 한 대 때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보도를 철회해,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래.”하은철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서는 그가 쉽게 넘어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건이 뭐야?” “우리의 결혼이지, 너도 알고 있었잖아?”하은철이 허리를 굽혔다. “결혼하면 기사를 철회할게.”이서는 하은철의 제안이 가소로울 뿐이었다.“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싫다면... 난 그 기사를 철회하지 않고 계속 게재해 둘 수밖에 없어. 어차피 웹사이트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쯤은 티끌보다 작은 돈이 들 뿐이니까.”1~2천만 원은 하은철에게 큰 의미가 아니었다.“하지만 네 비서는...” 하은철이 이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하은철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 조건이 아니라면 뭐든 승낙할게.” “그 조건 말고는 원하는 거 없어.”이서가 이를 악물었다. 하은철이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를 감상하며 말했다.“항구에 관련된 일 때문에 온 줄 알았는데, 비서를 위해서 온 거였어?”“이서야, 네 비서한테는 그렇게 잘해주면서, 나한테는 왜 그렇게 잔인하게 군 거야?” 이서가 차가운 눈동자로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내가 기억을 잃은 건 맞지만, 네가 나랑 결혼하려고 했던 그 일을 잊은 건 아니야.” “하은철, 넌 미쳤어...” 하은철이 이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래, 난 미쳤어. 하지만 날 미치게 한 사람은 너잖아? 이서야, 솔직히 말해볼까? 지난번 호텔에서 장희령이 하지환의 가면을 벗기려고 했던 거, 내가 시킨 거야.” “너, 하지환이랑 그 정도로 사이가 좋진 않았잖아?”“기억을 잃었어도 예전보다 더 잘 지내는 것 같던데...”“허, 그런데
최미영이 말했다.[윤 대표님, 알겠습니다.] 이서는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최미영은 핸드폰을 든 채 감개무량해 했다.‘지난번 서나나 씨의 일로 윤 대표님이 정이 많고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느끼던 참이었어.’‘그런데 이번에 심 비서님의 일로 윤 대표님에 대한 생각이 굳어졌어. 나는 확실히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거야.’ 최미영은 이서와 친구가 아니었으나, 친구에게 이렇게 다정한 상사는 부하에게도 다정할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운전기사는 이서가 전화를 끊기를 한참이나 기다리고서야 입을 열었다.“윤 대표님.” 이서가 인상을 찌푸렸다.“전화 한 통만 더 할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환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하 선생님.”이서가 피곤하다는 듯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저랑 쇼핑하지 않으실래요?” 그녀는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던 찰나, 머릿속에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렸다. 지환은 금방 이서의 지친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좋아, 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 “저는...”이서가 차창 밖의 우뚝 솟은 건물을 한 번 보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데리러 갈게요. 어디세요?” 지환은 곧바로 주소를 알려줬고, 이서는 기사에게 주소를 전달해 주었다. 기사는 그제야 차를 몰고 지환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난 후,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이서는 가장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지환은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지친 기색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서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지환은 이미 이천을 통해서 소희와 항구에 관한 일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환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며 이서에게 말했다.“가자.” 이서가 그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쳐다보았다.“그 가면을 쓴 채로 쇼핑하시려고요?” “응.”지환이 대답했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잖아요. 사람들이 다 쳐다볼
백화점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지환이 말했다. “이제 내리자.” “그런데...”백화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이서가 망설이며 백화점 정문을 쳐다보았다. 정문 셔터는 이미 반쯤 내려온 상황이었다. ‘이미 영업을 끝낸 거 아닌가?’“내리자.”지환이 다시 말했다. 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환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백화점을 향해 걸어갔다.이때, 백화점 주변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가면을 쓴 지환과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백화점 앞에 다다를 때까지 말이다. 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은 채 정문 셔터를 향해 몸을 낮췄다. 정문 안에 있던 경비원은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쫓아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본 그는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를 끌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그제야 백화점 영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일부로 모든 사람을 내보낸 것임을 깨달았다. ‘설마 우리가 방해받지 않고 쇼핑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내보낸 건가?’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지환이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다른 사람한테 방해받기 싫은 것 같아서 백화점을 전세 냈어.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전혀 눈치 볼 거 없어.”이서가 막 대답하려 했으나, 연이어 들려오는 ‘어서 오세요’라는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집어삼키고 말았다.그녀는 그들이 조용해진 후에야 작은 목소리로 지환에게 물었다.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윤씨 그룹 산하에도 백화점이 있었기에, 이서도 전세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세를 내는 것은 기업에 있어서 큰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백화점 전체를 전세 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지환이 이서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너만
지환이 그 미소를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괜찮아, 나는 너만 즐거우면 돼.”“이왕 이렇게 된 거, 뭐 먹고 싶은지 말씀해 주세요. 말씀해 주시면 저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지환이 가볍게 웃으며 이서의 곁에 앉았다.“내가 했던 말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거야?” 이서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하 선생님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선생님은 항상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지환이 또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이서의 새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지환이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억누른 후에야 말했다.“그래, 그럼... 우리 샤부샤부 먹으러 갈까?”“좋아요.”이서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11층에 다다른 두 사람은 곧 샤부샤부 식당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기 위하여 배경 음악을 꺼달라고 했다. 음식이 모두 나오자 종업원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환이 식탁 위에 놓인 일련의 맥주캔을 힐끗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술은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이서가 미소를 지었다.“마시고 싶어서요.” ‘사실은 마음이 답답해서 술을 좀 마시고 싶었어요.’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 한 캔을 땄다.“치이익.” 이서가 밝은 표정으로 맥주캔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몇 번 번뜩였는데, 아무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지환은 여전히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선생님, 맥주 좋아하세요?”“아니.” 그는 와인을 제외한 다른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서가 실망하며 대답했다.“아, 네...” “왜, 나도 같이 마셨으면 좋겠어?”지환은 이서의 사사로운 감정을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이서가 쑥스럽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사실 조금은 마셔.” “정말요?”
전에 지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 이서가 다시 한번 힘을 주려던 손을 망설였다.“제 곁에만 있어 주신다면, 절대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지 않을 거예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단지 마음속의 의문을 풀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고?’ 손을 천천히 움츠린 이서가 꽤 억울하다는 듯 지환의 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풀이 삼아 그의 턱을 세게 물었으나, 그것은 결국 키스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쉬워... 너무.’술에 취한 척하던 지환은 그제야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는 이서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호흡에 맞춰 술에 취한 척하며,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고, 지환이 피하려던 위기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위기로 변했다. 이서는 중독되기라도 한 듯 지환의 아래턱을 계속해서 문질렀다. 그녀는 서서히 턱 아래로 손길을 뻗었지만, 지환의 얼굴에 솟아오른 터질 듯한 핏줄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리 신경 쓰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는데, 지환이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는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빠져나가려는 충동을 억누르며 몸을 뒤척였고, 이 움직임은 마침내 겁 없는 이서를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서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술에 취한 모습은 이런가 보네요... 잠들었을 때랑 똑같네요.” 지환은 밀려오는 후회를 느끼기 시작했다.몸을 돌린 그는 잠시 숨을 돌릴 기회를 얻었으나, 이서가 온몸을 지환에게 기대어 밀착했기 때문이었다. 이서의 숨결에 완전히 메어버린 지환은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빠져나갈 길을 잃고야 말았다. 이러한 고문은 그를 사나운 늑대로 만들어 매섭게 물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다. 꿈틀거리는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지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아무
이튿날, 술에서 깬 이서가 침대 옆에 엎드려 잠든 지환을 보더니 안색을 굳혔다. ‘어젯밤에 술에 취한 나를... 하 선생님이 데려오신 거야?’ ‘뭐야, 그럼 취한 척하신 거였어?’ ‘마지막 순간에 가면을 벗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서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걸 보면... 화가 나지 않으신 건가?’ 한참 동안 안절부절못하던 이서가 매우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하 선생님의 가면을 벗기려고 하다니!’‘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나를 경계하실 게 분명해.’ 이서가 스스로를 나무라고 있을 때, 지환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후회막심한 표정의 이서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은 생기가 넘쳤는데, 햇빛처럼 아름답고 눈부셔서 시선을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이서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순간,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멍해진 그녀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지환을 바라보았다.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지환이 웃으며 말했다.“어제는 용기 내서 날 취하게 했으면서, 왜 오늘은 고양이를 본 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이서가 바삐 말했다.“가면 아래의 진짜 얼굴은 궁금해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어제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제발 믿어주세요.” 불안감을 느낀 이서가 지환의 손을 잡았다. ‘곧 내 눈앞에서 사라지실 것만 같아.’ “정말이에요,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 하 선생님, 화내지 마세요... 네?” 지환이 살포시 이서의 손을 마주 잡았는데,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부드럽고 다정했다.“이서야, 나는 화나지 않았어.” “그리고 사실... 어제 네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하지만 내 얼굴을 못 보게 한 이유는 내 얼굴을 마주한 네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까 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 “사실 나의 두려움 때문이었던 거지.” 이 말을 들은 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