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꼬박 고민을 한 무진은 결국 회사 내 불안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돌아가기로 결정했다.회사는 지금 뒤죽박죽 엉망인 상태로, 이전에 이미 잠복해 있던 세력이 튀어나와 회사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는 형세였다. 혼란한 틈을 타서 제 이익을 챙길 속셈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진은 절대 저들의 뜻대로 되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회사 일 때문에 무진과 함께 다시 국내로 돌아왔지만, 성연은 이런 상황 자체가 무진의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줄까 걱정이었다.할머니와 고모의 사고 소식을 들은 이후, 무진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음식도 제대로 잘 먹지 못했다.무진의 건강이 아직 괜찮다고 해도, 실제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만약 이런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무진의 몸이 망가질 게 틀림없었다.그래서 무진이 회사로 출근했을 때, 성연은 무진을 위해 몸에 좋은 약재들을 넣고 탕을 끓였다.그러나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을 성연은 잘 알고 있었다.푹 쉬고 규칙적으로 적당한 음식을 섭취한다면, 무진의 몸은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회사 일은 확실히 성연이 도와줄 수 없는 문제였다.그래서 무진이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뒷바라지나 하는 수밖에 없다.성연은 바쁜 무진을 방해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자신의 일을 해 나갔다.무진이 회사에 나가고 없을 때, 성연은 스카이 아이 시스템의 수색 상황을 지켜보며 서한기에게 지시한 수색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은 성연은 서한기에게 직접 처리하라고 지시했다.특히 스카이 아이 시스템에 관해서는 더욱 방심은 금물이었다.그러니 서한기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것이 가장 타당했다.다만 스카이 아이 시스템을 작동시켜 며칠이나 사고 인근 지역을 모두 스캔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소식이 없었다.성연은 순간 가슴이 덜컥하며 한기가 드는 기분을 느꼈다.스카이 아이 시스템의 위력은 성연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요 며칠 무진이 회사에 출근하자, 안금여 회장과 강운경 이사의 비행기 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주주들이 잇따라 찾아왔다.비록 무진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진이 황급히 출국을 한데다 또 국외에서 기사까지 나면서 이 일은 십중팔구 사실로 여겨졌다.무진의 사무실을 방문한 주주들이 무진을 위로하며 말했다.“강 대표. 회장님 연세를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게 사실이야. 단지 몇 년 앞당겨졌다고 생각하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맞네, 강 대표. 강 대표와 회장님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은 알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시게.”“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강 대표의 집안 어른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를 찾도록 해. 우리 중 몇몇은 강 대표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자식처럼 여기고 있네. 이런 뜻밖의 일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회사에는 강 대표가 필요해. 기운을 내시게.”주주 몇 명이 무진의 옆에 앉아 계속 쓸데없는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저들의 말 중에 얼마만큼 진심이고, 거짓인지 알 수는 없다.무진은 그저 그들을 향해 의례적인 웃음을 지었다.“여러분들의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할머니를 찾지 못했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기왕 그들이 알게 된 이상, 무진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었다.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었다.회사와 할머니 쪽 상황 모두 자신이 살필 것이다.무진이 할머니를 계속 찾겠다고 말하자, 주주 몇 명은 고개를 저었다.“사고 지역의 경찰 쪽에서는 이미 수색을 중단하지 않았나?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외국의 사고 지역이 꽤 넓다고 하던데, 어떻게 찾을 생각인가? 한 곳, 한 곳 다 뒤질 수는 없지 않나? 찾았다고 해도 유해만 찾게 될 것 같은데…….”이 말을 하던 주주가 거침없이 내뱉었을 때, 무진의 서릿발 같이 매서운 눈빛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말을 하던 주주는 순식간에 뒷목이 얼어붙는 듯했다.목을 움츠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강명수와 강명호도 안금여와 강운경의 비행기 사고 소식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아직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강씨 집안의 일원인 두 사람은 평소 외국에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지금 자신들의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가 구금되자 바로 귀국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루 종일 회사 내에서 어슬렁거렸다.자신은 너무도 편안하게 살면서 둘째, 셋째 일가는 힘들게 하는 강무진에게 본때를 보여줄 참이었다.자신들 둘째, 셋째 일가와 맞선 걸 강무진이 후회하게 만들 참이었다.강무진이 가까운 가족 두 명을 잃고, 마찬가지로 의지할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한 강명수와 강명호는 속으로 득의양양한 기분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은 절대 표시를 내지 않은 채 일부러 무진의 사무실을 찾아와 능청스럽게 위로했다.“무진아, 큰어머니와 운경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무척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래도 기운을 내라. 이 세상에 지나가지 못할 위기는 없어. 어찌되었든 너에게는 운영해야 할 큰 회사가 있지 않니?”“명호 삼촌 말이 맞아, 우리 둘은 지금 한가한 상태이니, 회사에 네가 관리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해라. 우리가 널 위해 분담해 줄 수 있어.” 강명수가 뒤에서 히죽거리며 말했다.강명수의 태도는 강명호보다 진중하지 못해 마음속의 기분을 아무리 해도 숨길 수 없었다.두 사람을 보며 무진은 속으로 혐오감이 일었다.역시 둘째, 셋째 할아버지의 자식들이었다. 똑같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할머니 사고가 난 위기를 틈타 자기 잇속을 챙기고 회사 권한을 원해?’‘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무진은 이들에게 어떤 기회도 줄 생각이 없었다.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에 무진은 마음 속 깊이 의심이 들었다.예전에 그에게 사고가 났을 때, 둘째, 셋째 할아버지도 이렇게 할머니를 몰아세웠었다.이제 할머니와 고모에게 사고가 나자, 구치소에 있는 둘째, 셋째 할아버지 대신 강명수, 강명호가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
강명수와 강명호는 무진이 뭔가 알아냈을까 겁이 나 무진의 사무실에 더 있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인사말을 몇 마디 하고 나서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주차장에 도착해서 차에 오른 뒤에 한참을 참고 있던 강명수가 마침내 폭발했다.“너도 봤지? 무진 저놈 태도. 우린 지 놈 삼촌뻘이라고.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대해?” 강명수는 분했다. 자기 아버지 강상철과 작은 아버지 강상규의 일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무진과 협상이 안되어도 그만이다.자신들 두 사람이 이곳에 온 지도 한참 되었건만, 무진 그 놈은 지금까지 두 사람에게 어떤 자리도 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늘 두 사람의 행동은 안금여와 강운경에게 사고가 생긴 기회를 틈타 무진에게 화해의 손짓을 한 셈이다. 무진이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들의 손을 잡길 바라면서.그런데 무진 그 놈은 자신들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나 지껄이다니.“나는 그 놈이 뭘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무진의 눈빛을 생각하자 강명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만약 이 일이 드러난다면 자신들의 말로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두 분과 마찬가지일 것이다.“모를 게 분명해. 알면 어떻게 지금까지 저러고 있겠어?” 잠시 사무실에서의 일을 되돌아보던 강명호는 무진이 알았다면 저렇게 침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양친을 모두 잃은 무진은 이제 가족이라고는 안금여와 강운경 두 사람뿐이었다.강무진에게 두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조금 전 무진의 반응은 일부러 자신들을 떠보려는 것이지, 진상을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강명수의 설명을 듣던 강명호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말은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진성이와 일헌이 쪽도 요즘 조심하라고 해야겠어요. 더 이상 약점을 잡혀서는 안됩니다. 만약 들켜서 우리도 교도소에 들어간다면 둘째, 셋째 일가는 완전히 끝장입니다.”강명호가 이것저것 걱정하는 게 강명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강명수가 손을 들어 강명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며칠을 억지로 버티더니, 결국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무진의 몸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성연은 먼저 무진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성연이 다가가 무진의 손목을 잡는 동작을 취하며 슬쩍 맥을 짚어 보았다.그러자 지금 무진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어떻게 된 거예요?” 성연이 관심 가득한 눈길로 물었다.“몸에 기운이 없어.” 무진 또한 자신이 아프다는 걸 자각했다.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좀 나은 게 그리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성연이 무진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자, 무진의 눈이 바로 감기며 몸에서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열이 났다.무진은 병이 날 때마다 열이 났다. 그건 한곳에 집중되어 있던 무진의 체내 병증이 확산되면서 화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결과였다.무진은 이미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 빠졌다.무진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는 성연이 얼굴 가득 아픈 표정을 지었다.할머니와 고모 일로 무진은 내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게다가 회사 문제와 할머니 양쪽을 모두 걱정하고 신경 쓰다 보니, 몸이 한계에 부딪힌 듯 팽팽하게 지탱하던 줄이 끊어지며 바로 엄청난 고통이 무진의 몸에 엄습한 것이다.그리고 무진의 몸에 나타난 병증들은 무진의 몸을 정상인들보다 더 나쁘게 했다.그러자 무진의 병증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입술을 꽉 오므린 성연은 은침 몇 개를 무진의 몸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을 때, 방으로 들어가 찬 물수건으로 무진의 몸을 닦아주며 물리적으로 체온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성연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던 집사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도 안 계시는 상황에, 주변에 좋은 의견을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한밤중이 되었는데도 집사는 성연의 곁에서 내내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무진을 돌봤다.물수건을 바꾸던 성연은 집사가 따끈따끈한 국수 그릇을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작은 사모님, 도련님 간병하느라 저녁도 못 드셨잖습니까?
다음날 열이 내려가면서 무진의 몸은 꽤 회복되었지만, 의식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비몽사몽 간에 죽을 좀 먹은 후, 무진은 다시 잠들었다.밤새 잠을 자지 못했던 성연은 무진이 호전을 보이자 고용인에게 대신 지켜보게 하고 다른 방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그런데 바로 그때, 서한기로부터 전화가 왔다.서한기의 번호를 확인한 성연은 바로 할머니와 고모의 소식을 떠올렸다.성연이 지체없이 전화를 받았다.“서한기, 어떻게 됐어?”성연의 절박한 음성을 들은 서한기가 즉시 말했다.“보스, 스카이 아이 시스템으로 비행기 사고 지역을 스캔했는데, 강씨 집안의 회장님 일행 모두 생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흔적을 발견한 순간, 서한기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씨 집안 가족들에 대해 성연이 얼마나 각별하게 여기는지, 예전의 여러 일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서한기였다.평소 아껴주던 두 어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성연은 바로 서한기에게 수색 작업을 맡겼다. 그때 서한기는 속으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혹여라도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고, 또 알아낸 소식이 불행히도 성연을 실망시킬까 봐 걱정했었다.다행히도 수하들과 몇 날 며칠을 고생한 결과, 희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마침내 더 이상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었던 서한기는 마음 놓고 성연에게 보고한 것이다.서한기의 말을 들은 성연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정말이야?”성연은 정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다행이야, 할머니와 고모가 모두 살아 계시다니.’평소 그처럼 선한 두 사람이 쉽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할머니와 고모 일행이 살아 있으니 이제 무진이 그처럼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무진의 고통을 보며 성연도 마음이 힘들었다.다행히도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서한기가 대답했다.“사실이 확실합니다.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비록 항로를 이탈하긴 했지만 기장이 비상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기장과
성연은 이 소식을 들었지만, 당연히 바로 무진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무진의 눈으로 볼 때, 자신에게는 사고를 조사하고 실종자를 수색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그리고 지금 무진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사실을 자신이 모두 알아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하지만 그래도 이 소식을 얼른 무진에게 알려야 했다.할머니와 그 일행은 이미 사고 현장에서 며칠이나 보낸 상태다.섬에는 각종 물자가 부족할 게 뻔한 일.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구출해서 고통에 벗어나게 해야 했다.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성연은 적절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그래서 이 문제를 서한기에게 던져주었다.“네가 방법을 강구해서, 무진 씨 쪽에서 수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다는 정보가 들어가게 해.”무진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네.” 서한기가 바로 대답했다.그날 저녁, 서한기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어 무진의 수하들을 안금여 일행이 있는 무인도로 유인했다.무진은 북성으로 돌아가면서 그곳에 손건호를 남게 해서 할머니 수생 상황을 시시각각 그에게 보고하게 했다.다른 사람에게 유인된 심이지만 손건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바로 안금여 회장과 그 일행의 위치와 생존 사실을 파악했다.손건호는 먼저 구조대에 알린 후,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무진은 죽을 먹은 후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던 중이었다.지금 그의 상태에는 절대 몸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연은 무진의 모든 업무 서류들을 치워버렸다. 아직 침대에서 내려올 수는 없지만, 지금은 깨어 있는 상태라, 무진은 눈을 감고 쉴 수밖에 없었다.베갯머리에 놓인 전화가 울리자 무진이 바로 받았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손건호의 격앙된 음성이 들렸다.“보스, 회장님과 강 이사님을 찾았습니다.”“어떤 상태야?” ‘돌아가신 거야? 아니면 살아 계신 거야?’끝의 한마디는 무진의 입에서 나오지 못했다. 무진의 목에서 나온 음성이 떨렸다.자신을 부모님 때와
수색대는 안금여 일행 모두를 작은 무인도에서 무사히 구조했다.다행히 안금여 일행은 성연과 무진에게 가져다줄 생각에 각종 특산물 등 먹을 것들을 비행기에 많이 실었던 터라 요 며칠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몸을 씻지 못하는 일은 좀 힘들었다.머리가 헝클어진 것 외에 안금여와 강운경은 몸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부상당한 기장과 부기장은 이미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고 있었고, 일행 중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구조대가 무진과 성연에게 알려준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안금여와 강운경을 모시러 직접 그곳까지 갔다.구조대의 차량에서 내린 안금여의 눈에 공항에 서 있는 두 어린 손자, 손부가 보였다.무진의 눈가가 붉었다. 만약 할머니와 고모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하늘은 무심치 않게 돌보셔서 할머니와 고모를 다시 그의 곁으로 돌려보냈다.“할머니.” 무진의 목소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얘야.” 안금여가 무진의 어깨를 토닥였다.만약 딸 운경과 자신이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면, 손자 무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무진이 이제야 겨우 부모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참이었다.그런데 자신들 두 사람이 또 다시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 무진은 무너지게 말 것이었다.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 사실 안금여는 크게 두렵지 않았다.다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무진이었다. 자신이 죽으면 그 아이가 얼마나 슬퍼할지 알 수가 없었다.그때 성연이 거리낌 없이 안금여의 품으로 뛰어들며 꼭 끌어안았다.“할머니,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안금여의 몸에서는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성연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끌어안은 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그동안 고생 많았다. 네가 항상 무진이 곁에 있어주느라 말이다. 네가 없었다면 무진이 버텨 내지 못했을 거야.”무진의 성격과, 부모님의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