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과 무진은 계속 손을 잡은 채 마을 내 시장을 구경했다.한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지인을 만난 성연은 바로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약혼자라고.어른들은 무진의 인물이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시장을 도는 내내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성연은 백합 한 다발을 골랐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꽃이었다.또 과일 몇 가지와 채소를 산 뒤에 이웃 아주머니의 주방을 빌린 성연은 직접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 몇 가지를 만들었다.그 동안 무진이 빌려온 바구니에 성연이 준비한 음식들을 담았다.일일이 물건을 다 담은 성연은 무진의 손에 작은 화환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다.궁금한 표정으로 성연이 물었다. “이건 어디에서 난 거예요?”무진은 바로 말했다.“이건 외할머니께 드리는 첫인사 선물이야. 처음 뵙는 자리에 빈손으로 가면 나에 대한 외할머니의 인상이 안 좋을 거 아냐.”성연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살짝 웃었다.“사람만 좋으면 외할머니는 그냥 좋아하실 걸요?”그녀도 무진이 이렇게 세심하게 마음 쓸 줄은 몰랐다.‘이 모든 게 무진 씨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지금 이런 저런 것들을 다 세심하게 고민한 것이고.’외할머니는 성연이 산에 묻어 드렸다.산길을 걷는 무진과 성연에게서 편안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금세 산 정상에 오른 두 사람 눈 앞에 묘비가 하나 보였다.성연이 준비해 온 것들을 하나하나 묘비 앞에 늘어놓은 후에 외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할머니, 할머니 보러 제가 왔어요.”고요한 미소와 자상한 얼굴의 사진 속 노인은 젊었을 적에는 고혹적인 분위기의 뛰어난 미인이었음이 분명했다.세월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는 없었다.성연이 다가와 무진을 잡아당겼다.“할머니, 이 사람이 제 약혼자예요. 저한테 엄청 잘해 줘요.”잠시 묘비를 바라보던 무진은 성연의 외할머니에게 허리를 깊이 굽히며 인사했다. 아주 엄숙한 태도에 말투도 매우 정중했다.“할머님, 성연이를 이렇게 잘 키워
외할머니께 제사를 드린 후, 성연은 무진을 데리고 마을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마을엔 성연이 살았던 흔적들로 가득했다.작은 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개발되지 않은 이곳의 시냇물은 도시의 수도보다 훨씬 맑고 깨끗했다.부지런히 일하는 어른들만 보이는 마을에는 공장이 없어서 공기도 아주 맑았다.성연과 무진은 작은 시냇가를 따라 걸었다.익숙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성연의 가슴엔 추억으로 가득 찼다.성연이 무진을 향해 말했다.“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함께 이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들판 저쪽에서 구워 먹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불을 완전히 끄는 것을 까먹어서 하마터면 밭의 짚더미를 홀랑 다 태워먹을 뻔한 거 있죠. 집에 돌아가서 외할머니한테 한 대 맞았어요. 그 일로 외할머니한테 유일하게 맞았던 때예요.”이전의 일들을 떠올리니 여전히 웃음이 나는 성연.“아팠어?” 무진이 성연의 손을 어루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애초에 맞았던 사람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성연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해 한스러울 정도다.다행히도 그들의 만남은 그리 늦지 않았다.한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던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안 아팠어요.”당시 아프지는 않았지만 아주 무서웠다. 처음으로 자상한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성연일 때린 후 외할머니는 우시며 몰래 약도 발라 주셨다.그 후로 성연은 두 번 다시 외할머니를 화나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그녀는 이 세상에 자신을 원하는 이는 외할머니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만약 외할머니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성연은 아직도 무서워서 제멋대로 굴지 못한다.이제 모두 지나간 일들에 불과했다. 성연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무진이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손을 잡은 채 걸어 내려가던 두 사람이 큰 나무 아래에 이르렀을 때, 성연이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알아요? 이것은 소귀나무예
이어 성연과 무진은 서로 처음 만났던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어쩌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진이 부상을 입고, 성연이 딱 맞춰 나타나 구했다.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창고 입구에서 멈추었다.성연은 당시 측은지심이 일어나 무진을 구해준 게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했다.아니었으면 아마 그 후의 일들은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성연과 무진이 마주 선 상태.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았다.“처음에 나를 구해준 사람이 너 맞지?”그들은 처음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다. 단지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무진은 성연이 어떤 목적으로 숨겼는지 몰랐다. 아마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무진도 이해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성연이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에 곁에 두었다.나중에는 성연을 떠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말하면 성연이 도망갈까 걱정하면서.이제 무진은 거의 때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어떤 일들의 베일을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야 할 때였다.성연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당시 무진 씨 옷차림을 보고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게다가 그렇게 큰 상처를 입혔다면 틀림없이 보통 원수가 아닐 테고. 사실 그때 원래는 무진 씨를 구할 생각이 없었는데, 무진 씨가 너무 잘생긴 거예요.”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맞아, 나 얼빠야.’“그럼 내가 정말 운이 좋았군. 네 시선을 끌만한 얼굴을 가져서.”무진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맞아요, 안 그랬으면 구하지 않았을 거예요.” 성연이 태연하게 인정했다.무진이 가볍게 몇 차례 웃은 뒤에 말했다.“당시에 너를 몇 번이나 찾아 왔었어. 며칠이나 찾아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더군. 그때 어쩌면 하늘은 우리를 위해 더 좋은 재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야.”그가 성연을 찾고 있을 때, 하느님은 성연을 그에게 보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성연이 눈에 의아한 기색을 띄고 회상했다.당시 성연이 외할머니의 장례를 다 치른 후 바로
아주머니와 그녀의 시어머니는 성연과 무진을 밥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성연은 차마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해 무진의 소매를 잡아당겨 남았다.이런 가정식 음식을 먹은 지도 한참이 되어서인지, 성연은 아직도 매우 그리워한다.식사를 하면서 어른들 몇 명과 최근 근황을 이야기했다.어른들은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했다.그날 저녁, 성연과 무진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북성 시로 돌아갔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주차하는 소리에 얼른 옷을 걸친 집사가 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집사가 웃으며 맞이했다.“도련님, 작은 사모님, 돌아오셨습니까? 야식 좀 드시겠습니까?”먼 길을 다녀오는 동안 성연은 배가 좀 고팠다. 그러나 무진과 성연 두 사람도 손과 발이 있는 어른인데 어떻게 집사를 깨워 늦은 저녁을 준비하게 하겠는가?비록 고용된 관리집사라 해도 강씨 집안에서 십여 년을 지낸 바로 어른인 셈이다.그래서 성연이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우리 이미 먹었으니 준비할 필요 없어요. 가서 쉬세요.”집사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한 번 쳐다보았다.무진이 집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집사가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도련님도 일찍 쉬십시오.”말이 끝낸 후 집사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성연은 소파 위로 뻗었다. 장시간 차에 앉아 있었더니 역시 엉덩이가 좀 아팠다.쿠션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역시 집에 돌아와서 취하는 가장 편안한 자세.아마도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진의 집은 언제부턴가 마음속 안전 지대가 되어버렸다. 무진이 코트를 끌러 한쪽에 던졌다.“배고프니?”성연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약간요. 준비하러 갈 거예요?”“응, 뭐 먹고 싶은데?” 무진이 소매를 걷어붙인 채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는 순간,무진이 정말 음식을 준비하려 하자 얼른 쫓아간 성연이 그의 손을 잡으며
겨울방학에 할 일이 없었던 성연은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주연정을 위해 수시로 두 과목을 보충지도해 주었다.게다가 날씨가 추워져 성연은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었다.무진은 가능한 한 업무를 집으로 가져와 처리하며 성연이 집에서 지루하지 않게 하려 애썼다.무진은 본래 성연이 추위를 잘 탄다고 생각해서 해남으로 휴가를 보내려 했다. 거긴 일년 내내 따뜻한 곳이니까.그러나 성연은 왔다갔다하며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곧 설인데다 무진도 그만하면 되었다.하지만 집에 있어도 무진에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면 성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또 재미있는 작은 물건들을 가져다주기도 한다.성연은 매일 이런 작은 물건들로 시간을 보냈다.무진은 당연히 집에 있을 수 있으면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무진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을 본 성연은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무진 씨 회사에 출근하세요. 나 혼자 집에 있어도 돼요.” 이러는 게 너무 번거롭게 느껴진 성연이다. 게다가 무진의 몸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쉴 수 있으면 가능한 한 쉬어 주는 게 좋았다.“회사는 여기서 멀지 않아. 그리고 회사가 너만큼 중요하진 않아.”무진은 다이렉트로 자신의 감정을 전해온다.성연은 이 남자가 점점 말을 너무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말했다.“무진 씨, 은근 사람을 꼬시는 멘트를 잘하는 것 보니 경험이 많은가 봐요?”성연은 무진의 나이에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무진이 자신을 대할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묘하게 불쾌했다.“실망시켜서 미안해.”말하면서 무진이 코끝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오자 두 사람의 숨이 거의 하나로 섞일 듯했다. 긴장한 성연이 꼴깍 침을 삼켰다.‘이런 동작은 반칙이지 않나?’“이렇게 자랄 때까지 정말 딱 한 사람에게 작업 걸었는데, 그게…… 바로 너야.” 무진이 몸을 낮춘 채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온몸이
“영화 보자고요?” 반짝하고 빛을 내던 성연의 시선이 무진의 노트북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순식간에 다시 어두워졌다.“그런데 무진 씨는 일해야 하잖아요?”성연의 반응을 보니 무진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아, 우리 꼬맹이 약혼녀는 어쩜 이렇게 철이 들었지?’무진은 책상 위의 서류를 거두어들였다.“오늘 일은 거의 다 끝냈으니 너와 같이 놀아도 돼.”만약 성연과 영화를 보는 이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그것은 무진이 이 일에 맞지 않다는 뜻일 터.“좋아요, 내가 가서 고를게요, 무슨 영화를 볼까요?” 신이 나 자리에서 일어난 성연은 후다닥 위층으로 뛰어갔다.이곳의 홈시어터에 무진이 한 번 데리고 갔었기에, 성연은 그 위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그녀가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고 무진이 말했지만, 성연 스스로 들볶는 것도 귀찮은데다 또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가끔 보면서 신선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성연이 위층으로 뛰어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무진은 바로 따라가지 않았다.주방으로 가서 과일과 간식을 바구니에 담아 올라갔다.성연이 온 후, 집사는 종종 집에서 간식들을 조금씩 준비해 두었다.어린 아가씨는 하도 잘 먹으니, 이 방면으로는 무진도 성연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많이 먹지 않고 몸에 영향을 주면 된다.무진이 들어가자 성연은 이미 담요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어때? 보고 싶은 영화 골랐어?”무진의 물음에 성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아니요, 고르기 힘들어요.”무진도 성연의 곁에 따라 앉았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바닥에 앉아 영화를 골랐다.결국 무진은 특별히 고전적인 공상과학영화를 꺼냈다.“이것 보자, 괜찮아.”이 영화의 제목은 성연도 익숙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래요, 이것 봐요.”무진이 테잎을 거는 동안 성연은 빈백 소파에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테잎을 걸자 홈시어터의 조명이 자동
안금여가 보니, 요 며칠 어린 손자 커플에게서 인기척이 없었다.성연도 한동안 고택에 오지 않고 있었다.두 사람이 성연의 고향에 가서 무슨 갈등이 생겨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 건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입이 둔한 무진은 뭔가 잘못한 게 있어도 변명도 제대로 못할 텐데.안금여는 성연이 화가 나서 무진을 원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이런 일은 안금여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어려웠다.그래서 엠파이어 하우스의 집사를 불러 무진과 성연의 근황을 물었다.안금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집사가 웃으며 대답했다.“아이고, 회장님, 걱정이 너무 많으시군요. 작은 사모님과 도련님, 두 분 서로 얼마나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련님은 사모님이 심심해할까 봐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지내십니다. 이틀 전에는 함께 영화도 보셨고요. 도련님이 사모님께 음식을 집어 주시는 모습도 봤습니다. 사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전부 사모님 접시 앞에 가득 쌓여 있더군요. 도련님이 사모님을 어찌나 끔찍하게 위하시는지요.”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집사는 언제나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성연과 무진을 마치 어린 자식처럼 여기면서 말이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갈등이 생긴다면, 안금여 보다 자신이 더 급할 것이다.안금여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먼저 와서 보고할 것이다.집사의 말을 들은 안금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군.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거지. 나는 두 아이가 마음 쓰여. 나머지는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아. 무진이는 표현을 잘 못하지. 성연은 또 나이가 어리고. 하지만 자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 이제 안심이 되는군.”“회장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또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도련님과 작은 사모님의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집사가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한 2년 정도 있으면 중손자를 안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안금여는 확실히 무진과 성연 사이의 아이를 보고 싶었다.그러나 이런 일은 자
성연은 방학 내내 집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또 그사이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도 않았다.그리고 무진과 함께 하루하루 마음 편하고 즐겁게 지냈다.성연은 매일 저절로 눈을 뜰 때까지 잠을 잤는데,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이날 세수를 다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성연은 강운경이 무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성연은 강운경을 보고 기뻤다.“고모, 어떻게 오셨어요?”“왜? 내가 반갑지 않아? 내가 너희 두 사람만의 세계를 방해한 거니?”강운경이 두 사람을 놀리는 투로 말했다.최근 좀 단련이 된 성연은 얼굴이 제법 두꺼워져서 이젠 더 이상 걸핏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자포자기의 의미가 좀 있지만 말이다.성연이 자연스럽게 무진 옆에 앉은 뒤에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오시면 당연히 환영이죠.”강운경이 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네 고 작은 입은 점점 더 꿀을 바른 것 같애.”성연도 히죽거리며 대답했다.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무진은 성연을 위해 누룽지를 식혀 건네주었다.성연에게 구은 달걀을 까 주기도 했다.성연은 누룽지에 구운 달걀을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했다. 색다른 맛이 있었다.요 며칠, 성연은 무진의 시중에 하도 익숙해져서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그러나 무진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강운경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성연과 무진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무진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런 적이 없었다. 금시초문임이 확실하다.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성연이 앞에서 전부 이례적이었다.‘참,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니.’예전에 무진에게 많은 아가씨들을 소개했지만, 무진은 늘 냉정하게 거절했었다. 마치 여자들을 한 번 봐는 것도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무진이 몸을 낮추고 한 소녀를 이리 지극정성으로 생각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강운경이 줄곧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성연이 고개를 들어 갸우뚱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