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철과 강상규가 수감되면서 무진을 해치려 한 일이 폭로되었다.북성에서 WS그룹이 차지하는 지위와 그 영향력은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비교할 수 없었다.당시 WS그룹 앞에 서 있는 경찰차들을 보고 많은 언론이 달려들었다.또 전 직원들 사이로 퍼져나가며 이 일이 완전히 수면 위로 드러나자, 자연히 언론에서도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게 되었다.언론이 곧장 기사를 써서 실음으로써 북성 시가 떠들썩했다.기사 아래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심지어 블로거들까지 가세해서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등, 이 사건에 대한 열기가 엄청났다.[두 늙은이 모두 곧 칠십이 되는 60대라며? 자기 아들과 손자까지 다 있는 사람이 왜 자기 집안의 어린 장손을 축복하지 못하는 거지? 어떻게 천륜에 어긋나는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강씨 집안 큰 집과 둘째, 셋째 일가의 사이가 계속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그렇지만 큰 집에서 다른 일가들에게 큰 잘못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에도 막다른 지경까지 내몰려서 이렇게 한 거겠지?][강무진 대표를 위해서 잠시 애도를. 이런 집안 어른이 있다니, 정말 가문 전체가 불행해.][…….]요 며칠 거의 온 북성 시에서 이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WS그룹은 일반인들에게 아주 잘 알려진 기업이었기에, 상류사회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 입을 모아 강상철, 강상규를 규탄했다. 천륜도 모르는 이런 비도덕적인 사람은 그냥 두면 안된다고.무진은 아주 빨리 기사들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었다.WS그룹의 지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가능성은 최대한 제거해야 했다.비록 강상철, 강상규의 행위가 지나치긴 했지만, 무진 또한 바라던 대로 두 사람을 고소해 수감시켰다.그러나 어찌되었든 저들 모두 WS 그룹의 사람임은 분명했다.이런 일이 생겼으니, WS그룹에 크든 작든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무진이 제때에 기사를 막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열기는 결코 식지 않았다.강상철, 강상규의 연령이 높긴 하지만, 살인 교사 등의 범죄를 저
강상철과 강상규의 자식들 중 일부는 해외에서 독립된 일가를 이루며, 강씨 집안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강씨 집안처럼 뿌리가 오래된 큰 가문은 수많은 일가 친척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집안의 지분을 나누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그래서 둘째, 셋째 일가는 다른 사업들을 벌였고, 국내에서 밥그릇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그 곳의 사업을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그렇게 그들은 모두 강상철과 강상규의 사업을 도왔다.이때, 자신들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자식들이 바로 해외에서 서둘러 귀국했다.자신들의 아버지가 국내에서 벌인 일들에 대해 그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요 몇 년 동안 처자식들 모두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의 도움으로 아주 잘 지내왔다.강상철과 강상규가 부정축재한 재산을 자신들도 부족함 없이 누렸다.부친의 나이가 많으니 자식들이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번 사태로 강상철과 강상규의 아들이 각각 한 명씩 해외에서 들어왔다.강상철의 아들 강명수와 강상규의 아들 강명호.둘째, 셋째 일가는 시종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관계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귀국한 당일, 강상철의 집에 모인 두 사람은 안금여와 무진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두고 대책을 세울 예정이었다.강상철의 부인 이선애는 남편이 한 짓에 분노가 일었지만, 어찌 되었든 수십 년을 부부로 지낸 사이였다.강상철이 연행되어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집안에서 내조만 하던 그녀는 집에서 마음만 졸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이런 상항에, 아들이 귀국하자, 비로소 의지할 기둥이 생긴 듯했다.아들 강명수를 본 그녀의 얼굴은 거의 눈물 범벅이었다. “명수야, 네 아버지, 얼마나 영민한 분이었니? 이건 엉겁결에 저지른 실수가 분명해. 네가 꼭 네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그 나이에 교도소에서 어떻게 지내실 수 있겠니?” 강상철의 부인은 아들 강명
이튿날, 강명수와 강명호는 선물을 한 꾸러미 사서 강씨 집안 고택으로 안금여를 찾아갔다.“큰어머님, 여러 해 못 뵈었는데도 예전과 다름없이 젊어 보이십니다.”말을 잘하는 편인 강명호는 안금여를 보자마자 칭찬을 늘어놓았다.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었거니와 모두 강상철과 강상규가 한 짓이기에, 두 시 조카들에게까지 못 본 체할 수는 없었던 안금여가 두 사람을 따라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입에 침이라도 바른 듯하구나. 모처럼 너희 둘이 방문했구나.”강명호와 강명수는 서로 눈을 맞춘 뒤에 자신들이 방문 목적과 강상철, 강상규의 일을 꺼냈다.“큰어머님, 저희 아버지께서 잠시 이성을 잃으셨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고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모두 한 가족 아닙니까?” 강명수는 울상을 지은 채 강상철, 강상규를 위해 사정을 했다.아버지가 아무리 큰 잘못을 지었다 해도 감옥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으로.“맞습니다, 큰어머님. 만약 두 분의 존재가 걸리신다면, 두 분이 나오자마자 저희가 해외로 모셔 가서 큰어머님과 큰집 식구들이 신경 쓰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둘째, 셋째 일가가 회사의 실권을 놓고 도전하는 것에 큰 집이 늘 신경을 쓰고 있음을 강명호는 잘 알고 있었다. 강명호와 강명수는 먼저 지연작전을 써서 큰집이 강상철과 강상규를 풀어주게 할 생각이었다.다른 일은 나중에 결정해도 되었다.당장의 급선무는 두 노인이 안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너희 둘 또한 무진의 숙부들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알고 있었니? 바로 너희들 아버지가 사람을 사서 무진의 차에 손을 대게 해서 무진의 차가 강으로 추락했다. 만약 무진의 명이 길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지금 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무진의 시신이었겠지. 너희들은 어른이니 일의 경중을 아주 잘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안금여는 사건이 발생한 과정을 남김없이 두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옳고 그름을 잘 식별하기를 바라며.강상철과 강상규는 정말 무진의 목숨을 노렸으므로, 지금 무
강명수와 강명호, 두 사람이 먼 해외에서 달려온 것만으로도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할 도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러나 안금여는 강상철과 강상규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계속 인정에 끌려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강상철, 강상규의 횡포가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이런 사단까지 벌어진 게 아닌가?이번에는 무슨 말로 설득하더라도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을 작정이었다.“너희들의 말은 내 잘 들었다. 오늘 날 설득하러 왔겠지만, 내 너희 두 사람에게 말하마. 일은 이미 벌어졌고 번복될 여지는 없다. 법에서 정한 대로 서방님들에게 판결을 내리겠지. 너희들이 이 늙은이를 보러 온다면 무척 기쁠 테지만, 너희들 부친 일로 찾아온다면 그럴 필요 없다. 나는 결코 두 사람을 그냥 풀어줄 생각이 없다.”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며 안금여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두 조카는 자연히 큰어머니 안금여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강명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안금여가 적어도 조카들의 낯을 좀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안금여는 조금도 인정을 남기지 않았다.자신과 강명호가 직접 부탁을 하는데도, 안금여는 전혀 생각을 돌리지 않았다.결국 강명호가 강명수의 팔을 툭 친 뒤에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큰 어머님. 다음에는 저와 명수 형이 큰어머님을 뵈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큰어머님 드리려고 사온 건강 보충제입니다. 해외 수입품인데, 시간 나실 때 드셔 보십시오.”말을 마친 후 강명호는 강명수의 팔을 잡아당기며 바로 고택을 떠났다.밖으로 나오자 강명호의 손을 뿌리친 강명호가 음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 노파, 진짜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어찌 되었든 일개 아녀자에 불과한 처지에 우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되지도 못했을 거면서. 이제 와서 안면몰수를 해?”“명수 형님, 아직 큰 집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느니, 말을 좀 조심하세요.” 강명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영민하신 작은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저렇게
늦은 저녁, 무진과 성연이 고택을 방문하자 안금여는 그 날 있었던 일을 무진에게 말해 주었다.무진의 생각을 알고 싶었기에.강씨 집안에 많은 일가 친척들이 있었지만, 강상철, 강상규만 육친이라 할 수 있었다.무진이 무언가 다른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안금여는 무진의 의견을 존중할 작정이다.안금여는 역시 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그런데 안금여의 말을 들은 무진이 두 어 차례 냉소를 터트렸다.“제 목숨을 거두려던 사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벌렸던 안금여는 결국 도로 입을 닫았다.무진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냉엄한 성정이다.가족에게 잘하는 거야 당연히 말할 필요가 없지만.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리가 없었다.안금여는 무진의 태도가 옳다고 생각했다. 우유부단해서는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 테니까.이후 며칠 동안의 회의 석상에는 강상철과 강상규의 자리를 완전히 빼 버렸다.임원진들은 시선을 내려 뜨고 반듯이 앉은 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이 틈에 무진은 강상철과 강상규의 수중에 있던 실권을 대부분 거두어 들였다.허수아비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 두 사람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구치소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그룹에서의 지위와 영향력이 곤두박질쳐 있을 터였다.일부 이사들과 주주들이 막으려 들었지만, 강상철, 강상규가 없는 지금 그룹의 최종 결재권은 가진 강무진 총괄대표가 결정한 일이다.그래서 지금 불만이 있다해도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는 상태.강상철과 강상규가 없는 한, 앞으로 자신들이 의지해야 할 사람은 강무진 대표였다.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사나 주주라 해도 대표 강무진의 눈 밖에 나서는 안되었다.‘그래, 못 본 걸로 하는 거야.’그리고 강상철, 강상규에게서 회사 운영권을 회수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다.강상철, 강상규와 달리 무진이에게 사고가 났을 때 임원진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염려했다.그전까지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던 강무진은
여러 날을 바쁘게 지내는 동안, 성연 쪽의 일도 대략 일단락되었다.지난 번에 무진에게 말한 게 더는 핑계가 아니게 되었다. 벌써 기말고사 기간이 된 것이다.다만 기본기가 탄탄한 성연이었기에 시간을 빼서 다른 일을 해도 큰 영향이 없었다.시험이 끝난 후 결과가 복도에 붙었다. 예전처럼 또 1등을 차지한 성연은 별다른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원래 성적을 보러 갈 생각도 없었지만, 주연정이 성연에게 성적을 보고 와서 알려주었다.성연에게 성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그러나 성적이 좋으면 선생님에게 휴가계를 내고 말하기가 더 편리해질 뿐.이게 바로 우등생의 특권이다.단조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성연을 보고 무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왜 그래? 방학이 즐겁지 않아?”“괜찮아요.” 성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학교에 가지 않으면 성연을 묶고 있던 속박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지만, 원래 학교 생활을 체험해 보려고 학교에 들어간 성연이었기에 별 차이가 없었다.“방학인데 어디 놀러 가고 싶은 데 없어?” 성연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무진이 물어왔다.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해서 성연이 마음에 안 들어 할까 걱정이었다.무진은 성연이 겨울방학 내내 집에 머물게 두지 않기로 했다.기분 전환 삼아 어디 가는 것도 좋고.“무진 씨 나를 데리고 놀러 갈 시간이 있어요?”성연이 되려 무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막 작은 할아버지들로부터 회사 몇 군데를 회수했으니, 수습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중요한 일들을 해야 하는 무진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또 자신이 놀고자 한다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터라, 모두 똑같았다. 놀든 안 놀든 상관없는 것이다.당장 시급한 일은 무진의 회사였다.무진이 자신 때문에 마음이 분산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놀러 갈 시간과 기회는 아직 많이 있었다.“아무리 바빠도 그 정도 시간은 뺄 수 있어.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나한테 말해. 데리고 갈 테니.” 무진이 입술 양끝을 당기며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성연
성연은 주연정의 집과 무진의 저택 엠파이어 하우스를 왔다갔다했다.왔다갔다하는 동안 어느새 설이 다가왔다.주연정의 집은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모두 일하시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성격이 유순한 사람들로 딸 주연정에게도 아주 잘했다.주연정처럼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애정 가득한 부모님과 단란한 가정, 성연은 때로 저도 모르게 주연정을 부러워했다.다른 사람에게 보충수업을 해 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성연은 꽤나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설이 다가오자 성연은 설 전후로 한동안 수업하러 못 갈 거라고 주연정에게 미리 알렸다.그래서 혼자 풀어보도록 연습 문제를 미리 준비해 주었다.그러자 주연정이 잔뜩 아쉬운 시선으로 성연을 보며 말했다.“성연아, 아니면 너 우리 집에서 설을 보내지 않을래? 우리 부모님도 너를 반기실 거야. 두 분 모두 널 아주 좋아하시거든.”“괜찮아, 설에는 나도……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잠시 생각하던 성연이 활짝 웃었다.예전에는 집에 자신과 외할머니 두 사람밖에 없었다.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두 사람밖에 없는 집은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외할머니가 가셔서 올해는 혼자 설을 지낼 줄 알았다.그러나 강무진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성연이 이렇게 말하자 주연정은 자연스럽게 수긍했다.설날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당연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법.주연정은 아쉬움을 뒤로 하며 성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럼 설날에 심심하면 놀러 와.”“그럴게, 그럼 나 간다.”성연이 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탔다.차는 안금여가 있는 고택으로 바로 향했다.세밑이 되자, 안금여는 고용인들을 시켜 새 창호를 붙이고 초롱을 내다 걸었다.강씨 집안에서 설을 쇠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내 걸린 초롱과 울긋불긋한 장식들로 인해 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웅장하면서도 고색 찬연한 모습의 고택에 이런 장
설 음식들은 성연과 강운경이 함께 만들었다.젊었을 적엔 음식 솜씨가 좋았던 안금여였지만, 할머니가 무리하는 게 싫었던 성연이 소파에 앉아 쉬게 했다.거실에서 안금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무진은 시시때때로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성연은 무척이나 바쁜 모습이다.옆에서 보던 안금여가 무진을 놀렸다.“무진아, 네 눈이 아예 성연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구나. 내 보기에, 너희 둘 이때까지 별 진전이 없어 보여. 그러면 안 되지, 무진아.”안금여의 말투에서 원망의 의미가 약간 느껴졌다.“성연이 아직 어려요.”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대답하는 무진의 마음은 더 무기력하게 느껴졌다.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성연이한테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짐승도 아니고.게다가 아직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성연을 겁먹게 할까 무진은 걱정이 되었다.“네 말도 일리가 있다만, 내가 보기에 성연이는 아주 특출 난 아이야. 너는 성연이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데, 만약 성연이가 제 또래의 남자아이를 좋아하기라도 하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안금여는 지금 무진 옆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중이다.자신의 손자는 무슨 말이든 속에 감추려고만 한다.누군가 계속 밀어붙이지 않으면 절대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성연인 그러지 않을 겁니다.”무진이 단정적인 어투로 말했다.무진은 성연이 약속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이전에 숱한 킹카들이 성연의 곁을 맴돌며 대시해도 성연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이후 성연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면 그땐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무진이 걱정하는 것은 이 문제일 따름이다.무진의 찌푸려진 아미를 보며 안금여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여라도 무진이 민망함에 성질이 나 성연을 데리고 가버리기라도 할까 봐.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방 쪽에서도 준비가 다 되었다.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차례차례 식탁에 올려졌다.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