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건강 회복은 강상철과 강상규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강상철이 지금 큰 집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다친 몸으로 회의에 참석했건만, 그런 자신 앞에서 위세를 부리던 안금여라니.어찌나 인정 사정없이 구는지.강상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기는 요즘 하루도 좋은 날이 없긴 했다.강상철의 표정을 본 집안의 고용인들이 모두 알아서 그 앞을 피해 다녔다.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모두 몸을 사렸다.사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겁내는 것이다.차를 마시던 강상철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질 뻔했다.강무진 그 놈은 도대체 왜 그렇게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무슨 목숨이 그렇게나 질긴지, 나 원.’……그 시각.안금여의 지시를 받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던 이에게서 회신이 왔다.무진이 앓아 눕게 된 원인이 당시 회사 내부 온도가 지나치게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했다.마침 엠파이어 하우스에서 무진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 보고를 들은 안금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를 끊고서도 안금여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화가 많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옆에 있던 모두가 안금여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었다.말할 것도 없이 냉방 담당자가 누군가에게 매수된 게 틀림없는 상황.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안금여가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내세요.”이번 일로 무진이 죽다 살아났다.‘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단 말인가?’양심이라고는 없는 그 사람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이리 악랄한 짓을 하다니, 천벌을 받을 놈들.’“할머니, 진정하세요.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누군지 반드시 알아낼 거예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할머니 건강을 해쳐서는 안돼요.” 성연이 안금여의 등을 부드럽게 쓸며 위로했다.그 놈들은 당연히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 때문에 할머니의 건강을 해롭게 할 가치는 전혀 없었다.“엄마, 성연이 말이 맞아요. 이제 원인을 알아냈으니 진짜 주모자를 찾는 것도 멀지 않았어
엠파이어 하우스를 나온 안금여는 즉시 회사로 갔다.당직을 섰던 보안요원을 사무실로 불러 하나하나 캐물었다.그날 밤 당직자는 단 두 명.캐묻는 건 간단했다.“그날 밤, 두 사람 중 누가 냉난방기의 조절 리모컨을 작동시켰어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안금여의 전신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그러자 보안 요원 두 명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회장님이 물으시는데 빨리 대답하세요.”옆에 서 있던 안금여의 비서가 혐오감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덜덜 떨고 있는 보안 요원을 바라보았다.보안 요원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그날 저녁에 온도조절기는 저희 두 사람이 교대로 관리했습니다. 제가 볼 때만 해도 계속 상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입만 살아 있는 듯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안금여가 냉소를 지었다.“상온, 상온이라.”곧이어 그녀가 손을 내밀자 비서가 즉시 서류 한 장을 건넸다.“대표실 입구의 온도계 기록입니다. 방금 상온이라고 했나요? 그런데 왜, 이 지점에서 실내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거죠?” 안금여가 서류로 책상에 내려쳤다.저들 스스로는 아주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안금여 쪽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었다.안금여 쪽에서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밝혀냈다.보안 요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반박했다.“회장님,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아마도 온도조절기가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이 일을 저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강상규가 돈으로 저 두 사람을 매수했고, 강상규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 냉방장치에 장난을 친 것이다.물론 저 두 사람이 그 사람을 들여보낸 것이고. 저들은 그냥 모른 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물론 냉방장치는 저들과 확실히 무관했다.그러니 저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일 터.“아직도 궤변을 늘어 놓는 겁니까?” 안금여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쏘아보았다.조금 전 두 사람의 소소한 동작을 안금여의 눈에도 들어왔다.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
이 일은 회사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WS그룹 직원 사이에서 의론이 분분했다.어쨌든 전체 보안실에 근무하는 직원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일시에 그처럼 많은 사람을 해고한 것을 보아 안금여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 지 있었다.그동안 회사 내 모든 직원들은 자신이 해고될까 봐 극히 조심했다.사람들은 보안 요원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해고되었는지도 잘 몰랐다.그저 강무진 대표의 병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 소식은 강상철, 강상규의 귀에도 전해졌다.배후의 주모자에게 경고하기 위해 본보기로 삼은 안금여의 의도를 강상규는 바로 알아차렸다.몇 차례 충격을 받았던 강상철은 부상까지 겹쳐 건강도 좋지 않았다.집에서 휴양 중이던 강상철을 강상규가 집으로 찾아와 이 일을 의논했다.강상규가 속으로 욕을 하며 강상철에게 말했다.“형님, 큰 형수가 회사에서 사람들을 해고할 때 얼마나 가차없었는지 아세요? 주주들도 정말이지, 말 한 마디 못하고, 정말 쓸모없는 놈들이에요.”‘예전에 자신들에게 부화뇌동해서 강무진을 짓밟을 때는 얼마나 신나게 밟아 댔는지 그새 잊었단 말이야?’지금은 찍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지금 강무진이 자신들에게 이익을 크게 주니, 자연히 아무 말도 못하는 게지. 우리가 강무진만큼 저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까 봐 말이야.”두 늙은 여우도 저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이게 바로 현실이었다.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 편에 붙을 이들이다.지금 회사 내의 저울은 점점 강무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이대로 가다가는 회사에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판이다.“무진이 놈 목숨이 어찌 그리 질긴지. 그렇게 오랫동안 끙끙거리면서도 아직 죽지 않다니.” 강상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덫에 걸릴 때마다 어찌 그리 매번 위기를 빠져나가는 지.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넌 무진이 신변에 유능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유능한 수하도 없이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겠어?” 강상철은 가볍게
무진의 몸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체력은 여전히 약한 상태였다.얼굴색도 아직 창백했다.성연은 이제 무진이 단 시간에 회복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무진이 목숨을 건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깨어난 후 며칠 쉬었더니 무진은 거의 회복되었다고 생각하고 회사에 나가려 했다.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은 뒤에 막 문을 나서려는 순간, 성연이 문을 막고 섰다.“어디 가시려고요?” 눈썹을 치켜세운 성연의 모습에서 은근한 분노가 느껴졌다.‘이 남자, 도대체 조금도 깨달은 게 없단 말이야?’‘자기 몸 상태에 대해 어쩜 이리도 생각이 없는 걸까?’“회사에 나가서 어떤지 좀 보고 싶어.” 성연의 마음을 살짝 구슬리려는 듯한 어조로 무진이 입을 열었다.성연의 마음이 약해지기를 바라며 이렇게 완곡하게 말을 했다.“몸이 아직 회복되지도 않았다는 거 몰라요?” 성연은 무진에게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무진 씨에게 회사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야?’‘어찌 되었든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나도 알아. 할머니가 회사에 계시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둘째, 셋째 할아버지가 또 어떤 트집을 잡는 건 아닌지.”무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럼 무진 씨는요? 당신이 지금 회사에 가면 할머니를 가장 걱정시키게 되는 거라고요! 안돼요, 못 가요. 집에서 쉬어요.” 성연이 다다다 말을 쏟아 낸 후, 문 앞을 막고 서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만약 무진이 오늘 진짜 회사에 간다면, 앞으로 다시는 무진을 간병하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성연의 굳어진 안색을 보니 화가 많이 난 것 같아 보였다.무진이 입술을 꽉 다문 채 그 자리에 섰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옆에서 지켜보는 집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했다.성연과 무진이 다투는 건 지금 처음 보았다.누구의 말을 거들어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무진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치 바람이 불면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저 몸으로는 견디지 못 할 게 분명했다.집사도 무진이 회사
서재 안.무진도 이번에 자신이 왜 열이 나고 앓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손건호가 지금 무진과 이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무진은 턱을 괸 채 사건을 분석했다.“아마도 강상철은 아닐 거야. 강상규 쪽에서 했을 테지.”부상을 당한 데다 제왕그룹으로부터 타격을 입은 강상철이 그리 빨리 손을 쓰기는 힘들었다.지금은 이번 일을 계획하고 시도할 기운이 없을 것이다.생각해 보니, 역시 강상규 쪽에서 손을 쓸 가능성이 커 보인다.강상철과 강상규는 한 편이었다. 이번에 강상철에게 속한 지사들의 경영권을 회수하면서 강상규 쪽도 영향을 받아 손해를 입었다.강상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당할 리가 없다.손건호가 물었다.“보스, 어떻게 대응할까요?”무진이 손끝으로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요즘 강진성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손건호가 대답했다.“작은 사모님의 의붓 여동생인 아연과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 어쩔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아마 사람들은 아연에게 꽤 미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강진성의 눈에 들만큼.그러나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다.게다가 아연은 성연의 의붓 여동생이기도 하다.강진성과 같이 엮이게 되면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다.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로서는 좋을 게 없었다.무진이 잠시 침음을 흘린 후 지시했다.“가서 무슨 약점 같은 거 없나 찾아봐.”비교적 주무르기 쉬운 편인 강진성은 귀찮아질 일을 이미 벌이고 있었다.강상규는 여태껏 자신의 사정을 봐 준 적이 없다. 당연히 무진도 절대 저들을 쉽게 봐 주지 않을 것이다.나가서 즉시 그 일을 조사하겠다는 뜻으로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진이 또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똑똑, 하는 소리가 아주 낭랑하다.무진은 문 밖에서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고개를 들어 손한기에게 말했다.“오늘 여기까지 하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도록 하고.”손한기가 고
요즘 송아연은 강진성을 유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들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으며 여러 호텔들을 돌아다녔다.손이 큰 강진성이 아연에게 선물도 많이 보냈다.돈에 눈이 먼 송아연 같은 여자는 돈으로 매수하면 된다고, 강진성은 아주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그리고 아연은 말을 잘하는 편이라 강진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아연과 같이 있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그런데 요 며칠 아연은 몸이 좀 이상한 걸 느꼈다.아침에 일어나면 먹은 것들을 대부분 그대로 토한다.입맛도 없었다.송종철이 출근하러 나간 후, 집에는 임수정과 아연 두 사람만 있었다.강진성이 또 수표로 아연 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었다.지금 아연은 집안의 보배였다.엄마 임수정뿐만 아니라 아버지 송종철도 아연을 무척이나 애지중지하ㅏ며 거의 원하는 대로 들어주고 있었다.두 사람은 또 아연을 위해 보양식을 만들어 주려 아예 전문 세프를 초빙하기까지 했다. 그래야 힘을 내어 계속 강진성을 꼬실 수 있을 테니까.어쨌든 지금 송씨 집안에서는 아연을 통해 가세를 일으켜 반등하기를 바라고 있었다.아침에 임수정은 아연에게 제비집 요리를 직접 가져다주었다.“아연아, 이거 정말 몸에 좋은 요리야. 너희 아버지 사업 파트너가 준 건데, 자기 먹는 것도 아까워서 너 먹으라고 가져왔어.” 제비집은 윤택이 흐르며 투명해 보이는 게 딱 봐도 상등품이었다.예전에는 이런 귀한 음식들을 자주 먹어 보지 않았다.아주 맛있어 보여 분명히 먹고 싶었다. 그런데 숟가락이 입에 닿는 순간 바로 구토가 올라와 즉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임수정도 깜짝 놀랐다.얼른 일어나서 아연의 뒤를 쫓아갔다.“아연아, 아연아, 아이고, 무슨 일이야?” 임수정이 아연 뒤에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화장실에서 한참을 웩웩거렸지만 제대로 토해 낸 건 없었다.아연을 거실로 데리고 간 임수정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아연은 물을 마신 후에야 속이 좀 편해졌다.“아연아, 이런 지 얼마나 됐니?” 임수정은 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임수정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아연은 즉시 불만스러워했다.“엄마, 우리 지금 진찰을 받으러 온 거예요, 아니면 물건이라도 훔치러 온 거예요? 나는 지금 강진성의 여자 친구라구요.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아. 그리고 지금 우리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허름한 병원에 와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아연은 인테리어가 좀 허름한 병원을 보면서 눈에 혐오감을 느꼈다.필사적으로 몸을 낮추려던 임수정은 아연의 날카로운 음성에 주위를 둘러보았다.“아이고, 조상님, 좀 조용히 해. 이따가 알게 될 테니. 아무튼 엄마가 널 해칠 리가 있겠니?”아연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결국 임수정의 노파심에 설득을 당한 아연이 결국 병원에 들어갔다.접수하고 또 검사를 한 후, 의사가 아연의 이름을 불렀다.임수정이 아연과 함께 들어갔다.의사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에게 진찰을 끝낸 의사가 말했다.“송아연 씨, 임신하셨습니다. 아이가 7주 정도 되었네요.”“임신이라고요? 진짜예요?” 아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어 했다.아연의 마음 속에 놀라움에 이어 강렬한 기쁨이 뒤따랐다.아이가 생겼다는 것은 자신이 강씨 집안 셋째 손주 강진성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앞으로 쓸 돈을 걱정할 일은 없겠지?“정말입니다. 아기가 건강하네요. 앞으로 정기적으로 검사 받으러 오세요. 또 휴식에도 많이 주의하시고 격렬한 운동은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영양도 충분히 보충해야 합니다.”의사가 웃으며 아연에게 말했다.“선생님, 감사합니다.”인사한 아연은 임수정을 끌고 나갔다.임수정은 아직도 좀 멍한 상태이다.과연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아연의 임신이 확실했다.병원 내 사람이 없는 곳을 찾은 임수정이 아연에게 물었다.“아연아, 너 이 아이, 어떻게 할 거야?”“당연히 낳아야지.” 아연이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임수정을 바라보았다.“그런데 강진성이 낳으라고 할까?” 임수정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처음에는
지금 아이가 생긴 게 임수정은 기쁘면서도 절반은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중요한 건 강진성 쪽의 태도를 보아야 했다. 만약 강진성이 이 아이를 원한다면 당연히 크게 기뻐할 일이다.그러나 만약 강진성이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북성에서 최고 권세를 가진 강씨 집안과 자신들이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기다리기 힘들었던 아연은 집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바로 강진성에게 전화를 걸어 서프라이즈가 있으니 나오라고 불렀다.강진성은 아연과 꽤나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마침, 요즘 다른 여자를 찾지 못한 참이어서 나오라는 아연의 말에 알았다고 승낙했다.강진성이 다가오자 아연은 즉시 앞으로 뛰쳐나와 강진성을 껴안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음성으로 불렀다.“진성 씨.”강진성이 경박스럽게 아연의 턱을 들어올렸다.“왜? 우리 애기는 하루도 날 안 보면 생각이 나는 거야?”“물론이죠. 나는 시시때때로 진성 씨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게 한이에요.”아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말해 줄 서프라이즈가 있다며? 도대체 무슨 서프라이즈야?”강진성이 웃으며 물었다.아연이 그의 귓가에 대고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나, 임신했어요.”아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진성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뭐?”아연은 강진성의 얼굴을 못 본 척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나, 임신했어요.”아연과 관계를 가질 때마다 매번 예방 조치를 했던 강진성은 그런데 어떻게 임신할 수가ㅏ 있지, 하고 생각했다.“이 아이, 내 아이가 맞아?” 강진성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가 이렇게 말하자 아연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잊지 말아요. 난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이 아이가 당신 아이가 아니면 누구 애라는 거예요?” 강진성이 양심도 없다고 아연은 생각했다.‘어떻게 날 의심할 수가 있어?’“얼마나 됐어?” 강진성이 물었다.“의사가 7주라고 했어요.” 아연이 대답했다.강진성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7주면 자신이 아연을 막 알게 되었을 때가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