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철은 병원에서 손자 강일헌의 보고를 통해 무진이 또 그렇게 많은 지사들을 회수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폭발했다.증오심으로 이가 갈렸다.요 몇 년 간 강상철 자신이 경영 책임자였다. 따라서 이번에 무진이 회수한 것은 모두 강상철의 권한인 것이다.하지만 강상규에게도 영향이 미쳤다.해외에 있던 강씨 집안 일가들이 귀국하며 자신 쪽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경영권을 회수당했다. 그 중 강상철의 손실이 가장 컸다.그러나 이것은 셋째 강상규도 영향을 받았다.강상규는 둘째 형 강상철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강상철이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이익 분배를 못한다는 의미이다.요 몇 년 동안 강상철을 통해 강상규가 얻은 이익이 적지 않았다.강상철의 안색이 어둡고 창백한 것을 본 강상규는 화가 치밀었다.“형님, 형님은 모르시죠? 강무진 저놈이 지금 얼마나 설치고 있는지. 회사 안에서 제가 최고인 줄 알아요. 우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습니다.”회의에서 강상규는 무진을 제지하려 한 두 마디 하려 했지만, 무진은 아예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심지어 자신의 의견조차도 무시했다.완전 투명인간 취급이었다.그러니 강상규가 안 갈 수가 있겠는가?회사 내 휴게실에 들어 가는데 직원 몇 명이 토론하는 소리가 들렸다.‘대세가 이미 기울었다, WS그룹은 이미 강무진의 세상이다’라는 소리들이었다.지금 회사의 인심은 점점 강무진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그 순간 강상규가 어떻게 숨을 참았는지 모를 정도다.강상규의 말을 듣던 강상철의 눈빛이 한순간 무거워졌다.“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데?”강상철도 당연히 무진이 저리 기세 등등한 꼴이 보기 싫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괜찮은 해결 방법이 없었다.“형님, 정말 이대로 앉아서 죽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강무진이 이미 지사 10여 개의 경영권을 다 회수해 갔다구요. 이대로 가면 회사에 우리 자리가 있기나 하겠습니까?”강상규는 애가 탔다.그는 가능한 한 빨리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자신들의 계획이 다 재수가 없
집으로 돌아간 후에 강상규는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다.더군다나 손자 강진성이 옆에서 부채질을 했다.강진성도 지난 번 골목에서 얻어맞았다고 확신했다.강무진이 손을 쓴 거라고.강신성은 지금까지 억울한 마음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강무진 쪽에 다시 당할까 무서웠다.그럼 그는 정말 목숨을 잃을 것이다.지금 할아버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강진성은 이 참에 할아버지가 강무진에게 본 때를 보여주기를 바랬다.옆에서 다시 말했다.“할아버지, 손을 대지 않으시면 강무진이 앞으로 더 할아버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무시할 겁니다.”강상규는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아버지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진성이 계속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강상규가 손을 들어 손자의 입을 막았다.“말할 필요 없다. 나에게 이미 계획이 있어.”강진성이 입술을 오므리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예, 할아버지.”할아버지의 방금 이 말은 단지 자신의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강상규는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아 무진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다.강상규는 속으로 이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그날 저녁, 무진이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틈을 타서 강상규는 악의적으로 회사의 난방을 끄고 냉방 상태로 켜두었다.이걸 이용해서 무진의 병을 자극할 생각이었다.예전에 무진은 겨울만 되면 몸이 나빠졌다.조금만 추워도 온몸이 아파서 하루 종일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그러나 그때는 무진이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아 강상철과 강상규의 눈엣가시가 아니었다.지금은 강무진이 잘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비록 무진이 그동안 체력을 많이 길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들보다 안 좋은 게 사실이다.지시받은 대로 처리한 후, 강상규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이사님, 지시 대로 다 했습니다. 강무진은 절대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방금 자신이 춥다고 느낄 정도의 온도였다.‘병자인 강무진이 어떻게 견딘다는 말인가? 그 긴 시간을.’강무진이 대단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무진은 워낙 바쁘다 보니 주의하지 않았다.평소 회사에는 그와 손건호 두 사람이었다.오늘 밤, 무진은 집에 가서 쉬라고 손건호를 돌려보냈다.손건호는 거의 한 달을 무진과 함께 밤을 새다시피 야근을 하고 무진의 지시에 따라 또 다른 일도 해야 했다.그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었다.그가 버티지 못할 걸 걱정한 무진이 결국 집으로 돌려보낸 참이었다.그래서 기온이 내려갔는데도 일깨워 줄 사람도 주위에 없었다.한창 바빠지자 무진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그리고 지금 많은 계열사의 경영권을 회수했으니 무진이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강상철, 강상규 쪽 사람들이 뒤에서 또 손을 쓰지 못하도록.일을 다 처리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무진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늦게 돌아가면 성연이 또 난리법석을 피울 것이다.그러나 막 일어서는 순간 무진의 몸이 휘청거렸다.잠시 비틀거린 무진은 간신히 책상을 잡고 몸을 지탱했다.머리도 핑 돌았다.무진이 손을 뻗어 자신의 이마에 대어보니 열이 나는 것 같았다.미열이 좀 있는 듯하다.무진은 간신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온 직후 무진은 정신을 잃을 듯했다.성연은 아직도 거실에서 게임을 하며 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다.문을 여는 소리에 성연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그러나 무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곧 눈살을 찌푸렸다.무진의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았다. 두 볼이 빨갰다.하지만 건강한 붉은색이 아니라 병색이 도는 붉은색이었다.절반밖에 하지 못한 게임이지만 더 이상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오락기 조종기를 내던지고 바로 무진의 곁으로 달려간 성연은 손을 들어 무진의 이마를 갖다 대었다.과연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장난 아니었다. 엄청 뜨거웠다.성연이 바로 화를 냈다.“아니, 왜 이렇게 목숨 걸고 일을 하는 거예요? 지금 몸이 펄펄 끓고 있는 것도 몰라요?”무진은 눈앞에 성연의 그림자가 왔다갔다하는 게 느껴졌다.의식이 좀 흐릿했지만, 성연이 화가 났다는
주치의가 바로 왔다. 무진의 상황이 좀 심각했다.즉시 무진의 체온을 낮추랴 체내에서 날뛰는 통증을 억제하랴 정신이 없었다.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니 이미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그러나 성연은 무진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그 시각, 무진의 상태를 연락 받은 손건호가 즉시 엠파이어 하우스로 달려왔다.성연이 일어나서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진 씨 괜찮던 몸이 왜 이렇게 힘들게 된 거예요?”손건호는 자신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한 뒤, 손건호가 푹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사모님께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보스가 깨어나시면 제 스스로 징계를 받도록 하겠습니다.”성연은 손을 내저었.“이건 손 비서님 탓이 아니에요.”그녀와 의사, 두 사람 모두 무진의 증세가 추위로 인한 일련의 합병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회사에서나 차 안에서나 충분히 난방이 공급되고 있었다.‘어떻게 한기가 들 수 있지?’무진은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또 항상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그렇다고 무진이 자기 몸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도 아닌데.생각에 잠겼던 성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뭔가 의심스러운 느낌.어떤 사람은 무진의 몸이 추위를 못 이기는 점을 이용해서 고의로 이런 소동을 일으켰다면?성연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손 비서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누가 그랬는지 반드시 알아내세요.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돼요.”성연은 자기 쪽 사람을 시키기가 불편했다.결국 시킬 사람이 손건호 밖에 없었다.무진의 일에 대해서라면 손건호는 당연히 도의상으로라도 거절할 수 없었다.그리고 원래 자신의 일이기도 했다.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사모님. 이 일은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하겠습니다.”“그럼 손 비서님께 맡길게요.” 성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간신히 무진 씨 몸을 정상 가까이 돌려놨었는데.’다시 원
그리고 다음 날도 무진은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다행히 성연의 보살핌으로 무진의 열은 내려간 상태였다.하지만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링거의 수액은 그저 수면 작용만 있을 뿐.그래서 무진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지금 무진 상태로서는 잠을 자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수면 상태에서 신체 회복이 더 빠를 수 있으니 말이다.무진은 그동안 너무 쉬지 않았다.성연은 거의 잠시도 무진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했다.직접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매 시간대마다 무진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이상 증세가 없다는 걸 확인해야 하니까.하지만 무진이 자리를 비우자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무진이 없는 동안 회사 업무는 모두 할머니 안금여가 무진을 대신해 처리했다.임원진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중에 강상철이 회의 석상에 나타났다.상식적으로 봤을 때, 강상철의 상처는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을 터였다.그런데 하필 무진이 자리를 비운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강상철의 움직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강상철을 바라보는 안금여와 강운경의 얼굴에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두 사람 모두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상철을 바라보았다.강상철이 나타나면 항상 좋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적개심이 뼛속에 새겨져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다시 침착함을 되찾은 안금여는 평소처럼 안건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한 후, 각 부서의 실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회의에 참석해서 난리를 칠 줄 알았던 강상철이 의외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보아하니 의견을 제시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강운경과 안금여는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설마 강상철이 양심껏 아무 말 안 하고 입을 다물고 있다고?’안금여의 말이 끝나가는 데도 강상철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드디어 회의 진행을 마친 안금여가 테이블 위 서류들을 정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자리에서 일어
비록 연로했지만 안금여의 위엄은 여전했다.무진이 자리에 있을 때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은 아니었으나.자리를 지키고 있은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주치의가 매일 방문해서 무진의 건강을 체크했다.그리고 성연이 사람들 모르게 무진을 치료하는 중이다.창고에 있는 인삼을 모두 꺼내 무진의 보신용으로 사용했다.인삼탕을 달여 매일 조금씩 무진에게 먹였다. 물론 성연이 직접 끓인 인삼탕이다.성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무진을 간병했다.무진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을 놓지 않은 채 돌보는 중이다.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않고 있지만 무진의 몸이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예전 같은 허약 상태는 벗어났다.매일 방문해서 무진의 몸을 체크할 때마다 주치의는 신기하게 생각했다.물론 가장 좋은 약을 쓰기도 하지만 그것 만으로 이런 효과를 내기는 힘들었다.아무래도 무진의 자가 치유 능력이 뛰어난 듯하다.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성연이 인삼탕을 들고 침실로 들어왔을 때도 주치의는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성연이 능숙한 자세로 무진의 몸을 받쳐 안은 채 무한한 인내심으로 한 입 한 입 무진에게 탕을 떠먹였다.입으로 들어가던 탕이 도로 흘러나오자 성연이 휴지로 깨끗이 닦았다.그 모습에 주치의는 성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저 어린 나이에 이처럼 세심하게 간병하다니.그래서 농담으로 한 마디 했다.“대표님의 몸이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는 데에는 사모님의 세심한 간병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주치의 말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성연이 난감해하자 오히려 옆에 서 있던 집사가 대신 입을 열었다.“그럼요. 사모님이 어찌나 세심하게 도련님을 돌보시는 지. 잠도 줄여 가며 매일 직접 간병하십니다.”집사까지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 더 쑥스러워진 성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모두 과찬이세요. 일반적인 간병 수준일 뿐이에요.”자신은 단지 무진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그리고 또 달리 말하자면 무진 역시
성연은 며칠 동안 잠을 설쳐가며 쉬지 않고 무진을 간병했다.인삼탕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그리고 드디어 무진의 의식이 돌아왔다.무진이 눈을 뜨는 순간, 성연은 하마터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정신이 들어요? 몸은 좀 어때요?” 기쁜 나머지 목소리가 얼마나 들떠 있는지 성연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다.눈을 뜨는 순간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 보이자 무진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깨어났으니 됐어요.” 성연이 한숨을 돌렸다.자신의 노력이 그래도 효과가 있었다.적어도 무진이 깨어났으니까.침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집사가 의식을 차린 무진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도련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대표님 모르시죠? 작은 사모님이 요 며칠 거의 눈도 붙이지 못한 채로 대표님을 간병하셨습니다.”“고생했어.” 무진이 손을 들어 올려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그러나 이제 막 깨어난 상태라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힘들지 않아요. 무진 씨, 자기 몸에 좀 더 신경 쓰면 안 돼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하느님, 부처님이라도 당신 못 구했어요.” 성연이 원망이 섞인 말투로 타박했다.자기 몸을 돌볼 줄 모르는 무진에게 화가 난 듯했다.“그런데 내가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거지?” 무진은 집에 도착한 그 순간까지 밖에 기억이 안 났다.회사에서부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움을 느껴서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그러나 작은 감기로 이리 오래 누워있을 리는 없지 않나?“한기가 들면서 고열이 난 게 병을 촉발시킨 주요 원인이에요. 하지만 누가 수작을 부린 건 아닌지 조사하고 있어요. 곧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예요.”이 일을 생각하던 성연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그녀의 미간도 같이 무심결에 찌푸려졌다.무진이 손을 들어 성연의 미간을 살며시 쓸었다. 미간의 주름을 펴고 싶다는 듯이.“나는 괜찮아. 넌 이제 이런 것들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처리할 게.”어떤 일이든 성연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가치가 없으니까.“무진
무진의 건강 회복은 강상철과 강상규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강상철이 지금 큰 집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다친 몸으로 회의에 참석했건만, 그런 자신 앞에서 위세를 부리던 안금여라니.어찌나 인정 사정없이 구는지.강상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기는 요즘 하루도 좋은 날이 없긴 했다.강상철의 표정을 본 집안의 고용인들이 모두 알아서 그 앞을 피해 다녔다.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모두 몸을 사렸다.사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겁내는 것이다.차를 마시던 강상철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질 뻔했다.강무진 그 놈은 도대체 왜 그렇게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무슨 목숨이 그렇게나 질긴지, 나 원.’……그 시각.안금여의 지시를 받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던 이에게서 회신이 왔다.무진이 앓아 눕게 된 원인이 당시 회사 내부 온도가 지나치게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했다.마침 엠파이어 하우스에서 무진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 보고를 들은 안금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를 끊고서도 안금여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화가 많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옆에 있던 모두가 안금여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었다.말할 것도 없이 냉방 담당자가 누군가에게 매수된 게 틀림없는 상황.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안금여가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내세요.”이번 일로 무진이 죽다 살아났다.‘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단 말인가?’양심이라고는 없는 그 사람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이리 악랄한 짓을 하다니, 천벌을 받을 놈들.’“할머니, 진정하세요.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누군지 반드시 알아낼 거예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할머니 건강을 해쳐서는 안돼요.” 성연이 안금여의 등을 부드럽게 쓸며 위로했다.그 놈들은 당연히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 때문에 할머니의 건강을 해롭게 할 가치는 전혀 없었다.“엄마, 성연이 말이 맞아요. 이제 원인을 알아냈으니 진짜 주모자를 찾는 것도 멀지 않았어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