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합작 건을 위해 무진이 직접 제왕그룹에 갔다.곽연철은 즉시 직원들에게 차와 간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합작 건과 관련한 회담은 곽연철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이건 WS그룹이 작성한 합작 계약서입니다. 만약 문제가 없다면 곽 대표님께서 제시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무진의 태도는 아주 좋았다.제왕그룹이 합작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정말 뜻밖의 경사였다.무슨 문제이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무진은 생각했다.곽연철은 단지 합작 계약서를 슬쩍 쳐다만 보았다. 아마 그는 합작 조항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바로 맨 뒤 페이지에 서명한 듯했다.무진과 손건호는 곽연철의 행동이 좀 충격적이었다.결국 무진이 정중하게 말했다.“곽 대표님, 더 안 보셔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바로 사인하시면, 제가 계약서에 함정을 파두지는 않았을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협력관계인 만큼 무진도 제왕그룹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이것은 장기적으로 바라보아야지, 당장의 이익만을 중시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곽연철은 속으로 몰래 투덜거렸다.강무진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스 송성연의 안목을 믿는다고.계약서에 서명을 마치면 성연에게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나는 강 대표님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인품을 믿겠습니다.”곽연철이 침착하게 말했다.무진은 본래 제왕그룹이 성연이 때문에 WS그룹과 합작한 것이라고 의심했다.그런데 지금 곽연철의 태도를 본 무진은 더 의심스러워졌다.아무리 그래도 첫 합작은 누구든 시원하게 하기 힘들었다.그래서 무진이 탐색하듯 물었다.“제왕이 WS그룹과 합작한 데에 혹시 다른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곽 대표님, 계속 의심이 드는군요. 곽 대표님께서 설명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무진이 이렇게 묻자 곽연철은 속으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확실히 강무진은 머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도 빨리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다니.그러나 곽연철이 강무진에게 알려 줄 일은 없을 게 분명하다.그래서 곽연철은 대외용 멘
곽연철이 친필로 서명한 계약서를 받아 든 무진은 바로 지사 3개 회사를 조정해서 새 프로젝트 개발에 참가시켰다.곽연철 쪽에서 사람을 보내어 회담을 진행했다.그런데 곽연철이 또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WS그룹은 반드시 자신들에게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만약 협조한다면, 그들은 이 직원들의 거취 문제를 처리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무진은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그는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곽연철이 이렇게 한 것도 단지 관리 운영의 편의성을 위해서일 뿐이니까.이 분야에서는 저들이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이쪽은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타당하다고 무진은 생각했다.곽연철 쪽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으니 무진도 안심했다.합작을 성사시키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안금여는 고택에서 한 상 거나하게 차렸다.교문에서 무진을 본 성연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이와 동시에 마음속으로 이해했다. 보아하니 제왕그룹과의 일이 확실히 무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듯싶었다.요즘 무진이 한가해졌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무진과 나란히 앉아 일관성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택에 도착해서 만한전석이라 불릴 듯한 음식을 보고 성연은 살짝 멍해졌다.“오늘 무슨 날인가요?”예전에 가족 연회가 있었을 때 고택에서 이런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던 기억이 났다.무진이 성연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할머니가 제왕그룹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축하하는 의미로 차리신 거야.”그는 본래 자랑할 생각이 없었지만, 할머니를 말릴 수가 없었다.마침 강상문도 집에 있었다.좋은 일을 축하하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웃으며 식사를 하니 좋았다.성연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 안금여를 기분이 아주 좋다는 게 바로 보였다.그녀는 집사에게 와인 한 병도 따게 했다.안금여가 잔에 와인을 따르려 하자 성연이 바로 제지했다.“할머니, 할머니는 기껏해야 한 모금밖에 못 드셔요. 더 이상은 안 돼요.”성연이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씨 집안의 이 두 환자는 성연이 엄
월요일.회의 때 모든 주주와 회사 임원들이 다 참석했다.무진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한 데이터를 전부 나누어 주었다.위에 보이는 것은 100% 돈을 벌 수 있는 데이터이다.WS그룹은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반대로 아무런 위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제왕그룹에 이익의 15%만 양보하면 되는 것이다.기타 사항은 모두 제왕그룹 쪽에서 할 것이다.이 프로젝트의 데이터는 확실히 보기 좋았다.주주들과 임원들은 모두 좋다고 생각했다.무진이 확실히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제왕그룹과의 합작을 이끌어낼 정도로 말이다.원래 강상철, 강상규 쪽에 줄을 섰던 이들 사이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지금 그들은 강무진이 강상철과 강상규를 확실하게 무너트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강상철과 강상규는 심지어 반격할 힘조차 전혀 없어 보였다.‘이러다가 강상철, 강상규에게 정말 미래가 있기나 할까?’그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큰 집을 따르지 않던 사람들의 결말을 그들 모두 보았던 것이다.그때 가서 이 일마저 잃는다면 정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 않겠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강상철, 강상규 쪽을 쳐다보았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아직 이들의 생각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화가 나서 죽을 것이다.강상철과 강상규는 비록 총명하긴 하지만 생각이 고루하고 가부장적이었다.그들은 수익을 낼 프로젝트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강상철이 입을 열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기뻐하기는 이르다. 만약 제왕그룹이 친 덫이라면 이건 정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게 자명해.”“이 새 프로젝트는 WS그룹에게 아주 큰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 관련된 경험이 없어요. 제 생각에도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강상규도 따라서 맞장구를 쳤다.오늘 강상문은 불현듯 마음이 동해 무진을 따라 출근했다.그는 할아버지 강상중의 친아들이다.누구도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는.저 두 늙은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강상문이 즉시 비웃었다.“둘째 숙부님과 셋째 숙부님의 투자 안목이
회의가 끝난 후.강상철과 강상규는 은밀히 클럽을 찾아 사석에서 따로 만났다.강상철의 안색은 아직도 좋지 않았다.“무진은 도대체 어떻게 제왕그룹과의 합작을 끌어냈지?”“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겠군. 정말 이상해.” 강상규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리고 강상문도 그렇지, 외국에나 그냥 잘 있지 말이야. 왜 굳이 귀국해서 우리 앞을 막아서?” 강상철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며 손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려쳤다.“제왕그룹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강상규도 매우 이해할 수 없음을 드러내었다.국내에서는 WS그룹과 제왕그룹의 교집합이 없다.무진이 제왕그룹을 알고 있다는 얘기도 못 들었는데.만약 알았다면 무진도 이처럼 오래 동안 그렇게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자신들이 보기에는 제왕그룹이 야심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WS그룹과 늘상 비교되며 서로 경쟁이 심했다.좀 듣기 거북하게 말하자면, 제왕그룹은 WS그룹과 적대관계라 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둘이 합작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그들이 합작하는 것은 강상철에게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무진의 인맥이 넓어질 수록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니까.저들이 계속 협력할 수 없게 해야 했다.“강무진이 이렇게 계속 세력을 키우면 앞으로 우리는 그를 건드리지도 못할 겁니다.”강상규의 표정이 다소 초조한 빛을 띄었다.지금의 강무진은 이미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만약 다시 이렇게 계속 세를 불려간다면 자신들에게 희망이 있기나 할까?그렇게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는데, 강상철과 강상규는 일이 자신들에게 점점 더 불리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저들이 협력할 수 없게 방법을 생각해 보거라.” 강상철이 눈을 뜨자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하지만 지금 계약을 다 마쳤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형님, 지금 저 늙은이들이 모두 데이터를 봤어요. 만약 그 프로젝트를 건드리면 저 늙은이들이 절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은 의논을 거듭한 끝에 유용한 대책을 얻었다.강상철이 사람을 보내 제왕그룹의 곽연철에게 선물을 보냈다.무진에게 속하는 인맥을 끌어오기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곽연철과의 식사 약속을 잡게 했다.결국 강상철 쪽 사람은 프론트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당했다.아무런 예의 격식도 없이 강상철이 보낸 사람은 제왕그룹 사람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아직도 집에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보냈던 사람이 곧 돌아왔다.강상철이 얼른 마중을 나가서 물었다.“어떻게 됐어? 제왕그룹에서 뭐라고 그래?”북성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강상철, 강상규였다.제왕그룹이 얼마나 대단하든 곽연철은 자신들 아래 연배이므로 자신들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라 생각했었다.적어도 식사 약속 정도는 해 주리라고 말이다.사람을 만나면 강상철 자신이 부추겨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이런 일은 자신들의 특기였다.회사의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자신들에게 회유시켰는데 제왕그룹 회장 한 명 정도 마음을 못 돌리겠는가?그런데 눈앞에 선 수하가 초조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입도 열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는 지금까지 강상철이 이처럼 조급하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보아하니 이번 합작이 매우 기대되는 게 분명한 것 같았다.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강상철이 마침내 수하에게 눈길을 주었다.“왜 말을 하지 안 하는 거야?”강상철의 음침한 눈빛을 본 수하 직원이 부들부들 떨었다.그리고 곽연철의 말을 그대로 읊었다.“곽연철 대표 말이, 자신은 잡다한 사람을 만나지도 선물도 받지 않는답니다. 이후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경비원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강상철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너 곽연철에게 내 이름을 말 안했어?”“제, 제가 말했는데도 곽 대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수하 직원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이런 어려운 일을 자신에게 맡기다니 정말 어쩔 수 없었다.강상철, 강상규
이 일은 강상철을 몹시 화나게 했다.곽연철은 숨기지 않고 제왕그룹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성연에게 알려주었다.이것도 본래 그녀가 지시한 것이다.두 늙은 여우가 분수를 지키지 않고 반드시 수작을 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성연이 벌써 방법을 생각해 둔 것이다.저 두 늙은 여우에 대해 성연은 조금도 사정을 봐줄 뜻이 없었다.무진을 그렇게 괴롭혔는데 사정을 봐 줘?그것은 더욱 불가능하다.성연은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돌아왔을 때 기분이 좋아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연정은 그 점을 예민하게 느꼈다.연정이 눈을 비비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성연아, 나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거니? 즐거워 보여.”순간 성연이 잠시 멈칫했다. “그래?”성연이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그렇게 뚜렷하게 표를 내서는 안돼.’“그래,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걸 보니 설마 연애는 아니겠지?” 이 말을 하던 연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교실 안의 다른 학생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했다.그들의 눈에 성연은 여신이자 공신이었다.각종 시합에 참가하고 돌아온 성연은 학우들을 대하는 것도 덤덤했다. 때로는 예의 차린 대답만 되돌렸다.겨우 주연정 정도와만 대화를 나눌 뿐 다른 이성과는 더더군다나 교류할 기회를 아예 주지 않았다.이때 연정이 불쑥 이런 말을 하자,어떤 학우들은 상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또 어떤 학우는 그저 참외만 먹고 있다.성연은 연정이 터뜨린 목소리와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시선을 느꼈다.참지 못한 성연이 손을 들어 연정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연정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휴…….”억울한 듯 연정이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아, 너 왜 그래.”“내가 말했지? 너는 하루하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만약 그런 생각들을 공부에 쏟으면 얼마나 좋을까?”성연은 연정의 성적이 나쁜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온종일 이런 가십에만 신경 쓰다니.’‘차라리 그냥 파파라치
저녁 시간.안금여도 자신의 방법을 통해 강상철 쪽 일을 알게 되었다.최근 집안에 연이어 좋은 일이 생겼다.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일격을 가하고, 또 큰 수익을 낼 사업도 챙기고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다.제왕그룹에 대해 말하자면, 안ㄴ금여는 제왕그룹 대표가 재미있는 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았다.제왕그룹이 진짜 강상철, 강상규 쪽의 선물을 받았다면?그럼 이 합작 건을 다시 잘 생각해 봐야 했겠지.안금여가 웃으며 이 일을 말한 뒤 무진에게 말했다.“제왕그룹의 대표가 꽤 괜찮은 사람 같구나. 무진아, 넌 친구가 너무 없어. 이번 합작을 통해 다른 사람과 잘 사귀어야 봐.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것도 괜찮고.”“할머니, 알겠습니다.” 사업은 역시 성실과 신뢰가 중요하다.무진은 암암리에 곽연철에 대한 자료들을 모았다.사업 방면에서 곽연철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은 걸 보니 꽤 믿을 만한 파트너인 듯해서 제왕그룹을 선택했다.사실 다른 보기에 상당히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었지만 무진이 오랫동안 뒤에서 계획했던 것이다.무진은 완벽을 추구하는 만큼 자신에 대한 요구 기준이 높았다.그렇지 않으면, 그는 매일 그렇게 많은 근무를 늘릴 필요가 없었다.책임감 있는 태도로 무진은 미사에 완벽함을 추구했다.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듣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설마 안금여가 그 일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본가 사람들에게 들켜 망신당하지 않도록 강상철이 사람을 은밀하게 보냈던 것이다.어쨌든 제왕그룹도 북성에서 함께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왕그룹은 사적으로 은밀히 강상철을 거절한 터였다.안금여가 안다는 것은 그녀의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설명했다.이 말들을 듣고 있는 무진은 마치 농담을 들었다는 듯 약간의 의아함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무진도 이 일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이 조손 두 사람은 정말 똑 닮았다.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도.성연은 명문 재벌 가문 사람들의 심기가 얼마나 깊은 지 다시
무진이 뒤에서 강상철, 강상규와 제왕그룹을 주시하는 일에 대해 성연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적어도 무진 쪽은 그녀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하면 된다.저녁식사 후 돌아가려던 성연과 무진을 안금여가 가로막았다.“오랜만에 왔으니 여기서 자고 가거라. 어차피 회사랑 학교도 가깝지 않니? 지금 돌아가서 사람들 깨우지 말고. 이미 시간도 늦었지 않니?” 안금여가 눈썹을 찌푸렸다.최근에 두 사람이 고택에 오는 횟수가 좀 잦아졌다.그러나 안금여는 젊은 두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성연은 어디서든 똑같다고 느꼈다.어차피 그녀는 학교에서 온 상태라 숙제도 모두 가방 안에 있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무진은 중요한 일은 늘 엠파이어 하우스의 서재에서 처리했다.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물었다.“그럼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갈까?”“난 괜찮아요.” 성연이 눈을 깜박였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안금여는 두 사람이 남겠다고 하자 얼굴 가득 활짝 웃었다.“그래 맞아.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도 일찍 먹고 가. 비록 너희들이 젊긴 하지만 자신의 젊음을 믿고 건강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돼.” 안금여는 늘 두 어린 손자, 손부의 건강을 걱정했다.그래서 두 사람의 의식주에 대해 참견도 하고는 했다.“네, 알았어요. 그럴게요.” 무진이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매일 안금여는 이렇게 잔소리를 한다.한 가지 일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그러나 성연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곁에 있는 가족이 떠나고 난 뒤에야 이런 따뜻한 잔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한다.그래서 성연은 안금여 곁에서 유난히 조심스럽게 또 고분고분했다.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자신에게 잘해 주는 또 다른 어른 곁에 있으려 하는 것이다.그들을 자고 가게 한 안금여는 혼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안금여가 떠난 후에야 성연이 낮은 소리
안금여가 한숨을 내쉬었다.“너와 성연이 모두 착한 아이들이야. 만약 정말 무슨 부득이한 상황이 닥치면, 이 할머니는 너희들이 좋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러지 마, 무진아.”“할머니, 말씀하신 그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무진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안금여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강운경이 옆에서 말렸다.“엄마, 우리도 잘 알고 있잖아요. 엄마가 성연이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시는지요. 하지만 무진이와 성연이 서로 감정이 깊어요. 둘 다 사리가 분명한 애들이에요. 무진이 우리를 찾아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안금여의 말은 두 사람을 위한 것이 맞다. 불길한 말은 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잠시 멍하니 있던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이에 대해서는 네 말이 맞다. 우리 집 무진이가 마침내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다니, 이 할머니가 당연히 기뻐해야지. 모두 이 할머니 잘못이다, 요 방정맞은 입 같으니라구.”무진이 얼른 말했다.“할머니, 할머니 탓하지 마세요. 모두 저와 성연일 위해서 하신 말씀이시잖아요?”“그렇네, 얼른 무진과 성연이 결혼식을 예약해야지. 성연이가 외국에서 나쁜 마음을 품은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말이다!” 강운경은 성연의 성격을 안다.겉으로 보기에는 성격이 강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간다면...‘정말 무진이 죽으려고 하겠네.’“그래, 근데 성연이 나이가 한참 어린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 강운경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계획을 다 세웠다.그러나 성연이 그러겠다고 할지는 아직 미지수.“성연이는 분명히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성연이 곧 개학할 텐데, 성연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그러면 성연이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막는 양상이 된다.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실, 불안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시 돌아왔다.무진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그러나 마음이 심란해지며 성연이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그래서 무진은 성연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고택에 들렀다.무진이 고택으로 들어왔을 때, 안금여와 강운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무진을 보던 안금여는 무진의 뒤를 쳐다보았다.“아니 왜 성연이는 너와 함께 오지 않았어?”무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저었다.“같이 안 왔어요.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두 분에게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무진의 태도가 너무 공적이고 진지한 터라, 안금여와 강운경도 덩달아 긴장하며 다급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회사의 일을 떠올렸다.“성연이가 곧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성연이가 더 뛰어나게 성장하는 걸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연이 떠나면, 더 이상 제가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무진의 음성이 유난히 침중했다.성연은 아직 너무 젊었다. 외부에는 성연이를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무진이라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무진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조바심과 불안은 오직 눈앞의 가족 두 사람 앞에서만 드러낼 수 있었다.무진이 에둘러 말했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바로 알아들었다.무진의 말을 듣던 안금여와 강운경이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무슨 큰 일인가 했더니,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안금여와 강운경이 박장대소를 했다.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무진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날이 있다니.제 마음이 이리도 빨리 들통나 버리자 무진은 좀 민망함을 느꼈다.무진이 입술만 오물거리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강운경이 그런 무진을 놀렸다.“예전에 내가 무진이 너에게 괜찮은 아가씨들을 참 많이도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너 꿈쩍 하지도 않더니. 그때 나 정말 걱정했었어. 네가 고독한 모습으로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