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운경의 생일날이 되었다.조승호는 아내 운경과 함께 생일을 보내기 위해 특별히 휴가까지 내었다.전날 밤, 성연은 고모부 승호에게 먼저 계획을 알렸다. 그리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운경을 데리고 나가 있어달라고 요청했다.성연의 요청을 받아들인 승호가 운경을 데리고 외출한 후, 성연과 무진은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운경의 저택으로 왔다.운경과 승호, 두 사람이 거주하는 저택은 아주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다.평소 아주 사이 좋은 두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성연은 직접 사 온 물건들로 거실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성연이 선택한 재료들은 모두 저택 내부 벽에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는 것들이다. 성연이 벽에 장식물을 달기 시작하자 무진이 옆에서 도왔다.성연이 지시하는 대로 무진이 따라 하는 모습은 마치 여러 번 해본 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성연은 운경이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장미를 통해 낭만과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고.사실 장미, 하면 흔히 가녀린 꽃 송이를 떠올리지만, 스스로 꿋꿋이 비바람을 견디며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들장미도 있으니까. 그래서 장미를 사용해서 거실을 장식할 생각이다.하지만 성연은 한참을 고민하고서 겨우 시작했다. 장미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프로포즈 장소로 보이기 쉬우니까 말이다.그래서 성연은 장미를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화원 주인에게 가장 신선한 꽃을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구석구석에 적당하게 꽂힌 장미꽃들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자신이 장식한 거실을 보며 성취감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성연이다.한편 생일 파티 준비에 열중한 성연을 바라보던 무진은 심장이 벌렁거리자 뒤에서 성연을 끌어안았다. 이런 친밀한 접촉에 익숙하지 않았던 성연은 온몸을 통해 미세한 전율을 느꼈다.잠시 멍했다 정신이 돌아온 성연이 팔꿈치로 무진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헸다.“무진 씨, 너 뭐하는 거예요? 환한 대낮에 이 무슨 불한당 같은 짓이에요?”“내 약혼
거실 장식을 끝낸 후 이상은 없는지 구석구석 확인까지 마무리한 성연은 직접 사온 재료로 운경의 생일 음식을 만들 참이다.무진도 그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다시 봐도 무진이 음식을 하는 모습은 성연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아, 지난번에 먹었던 야식이 무진 씨가 준비했던 거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안금여의 말에 따르면 무진은 혼자 생활한 시간이 많았다고 하니까.‘음식을 할 줄 아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겠지.’무진 같은 류의 사람은 음식을 하는 것보다 배달을 시키는 게 더 이상해 보이긴 했다.능숙한 동작으로 칼질을 하는 무진을 보면서 성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마음 놓고 재료를 손질하던 일에 집중했다.성연이 고생하는 게 안타까운 무진.하지만 오늘의 세프는 성연이인 이상 말릴 수도 없는 노릇.그래서 손질하기 힘든 재료들은 모두 무진이 미리 다듬어 놓았다.성연이 간단한 것들만 다듬으면 되게.재료 손질이 끝난 후에는 무치고 볶고 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옆에서는 미역국을 끓고 있었다.땀을 뻘뻘 흘리는 성연을 본 무진이 휴지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내가 할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성연이 끝까지 버티자 무진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저 옆에서 양념병을 건네고 땀을 닦아주며 최대한 일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성연이 한 가지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생일 상을 차렸다.상 차림이 끝나자 성연은 무진과 함께 할머니 안금여를 모시러 고택으로 향했다.안금여는 두 사람과 함께 운경의 저택에 도착했다.그 때까지 운경은 백화점에 있었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남편 승호가 함께 쇼핑을 하자며 자신을 데리고 나왔다.그리고는 영화를 보며 데이트 중이었다.운경이 보기에 오늘 승호는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평소 자신을 무척 아끼고 잘했다. 남편 조승호는. 하지만 뒤에서 든든히 받쳐줄 줄이나 아는 목석 같은 남편은 데이트에는 잼병이다.생일
사실 운경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오빠와 올케가 같은 날 사고로 사망한 후, 그저 남은 가족들이라도 오순도순 함께할 수 있기만 늘 바랬다.지나간 과거를 붙잡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는 잡을 수 있는 것이니까.지금 이 순간 눈앞의 이 장면이 운경의 마음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감정을 건드렸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안금여와 무진을 끌어안았다. 성연을 가운데 둔 채로.온 가족이 함께 부둥켜안았다.옆으로 다가간 승호가 운경의 어깨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운경은 때로 감정에 잘 치우는 사람이었다. 결점도 감싸 안을 만큼 오직 신경 쓰는 이는 가족들뿐이었다.성연이 준비한 생일이 운경의 마음을 건드렸다.눈물을 그치지 않는 운경을 보며 안금여 또한 마음이 아렸지만 부러 여상한 말투로 핀잔을 주었다.“어른이 되어서도 울고 있으면 어떡하니? 어린 조카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안금여에게 핀잔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운경은 안금여의 품에 안겼다.기대어 오는 운경의 표정을 보며 안금여도 울컥하는 표정으로 운경의 어깨를 살살 어루만졌다.어렸을 때는 집 안에서 오냐오냐 떠받들어지며 응석받이로 자란 운경이다.세상 물정 모르고 좋아하는 것들만 해도 집에서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위로 오빠가 버티고 있었기에 운경이 걱정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러나 이후 오빠네 부부, 즉 무진의 부모가 사망하고 이어서 아버지 강상중이 세상을 떠났다.무진만 의지할 기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운경도 마음의 기둥을 잃었다.그 동안 강씨 집안과 그룹을 지키느라 안금여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나약하다고 생각해서 늘 마음이 놓이지 않던 운경이었다.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운경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한순간에 훌쩍 자란 듯했다.알아서 먼저 무진을 보살폈고, 무진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은 후에는 알아서 회사 경영을 돕기 시작했다.한창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곧 일년에 한 번 있는 ‘강씨 집안 대모임’이 돌아온다.여느 가족모임과는 달리 집안 대모임 날에는 강씨 집안 자손이라면 아무리 먼 곳에 있다할 지라도 달려와야 했다.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두 한 가족임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옛 선조 때부터 정해진 집안 규칙이었다.하지만 어느새 모임의 목적이나 성격이 변해 버렸다.이제 대부분 의무적이거나 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집안 대모임에 참석할 뿐이다.해외에 뿌리를 내린 집안 사람들도 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잇따라 입국했다.무진 쪽에서는 이 사람들의 행방을 모두 알고 파악하고 있었다.관례에 따라 모두 제일 먼저 본가 고택을 방문해서 안금여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안금여는 현재 최연장자인데다 본가라는 권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하루 일찍 들어와 강상철과 강상규를 먼저 만났다.무진은 이 사람들의 행적을 예의 주시하도록 지시한 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북성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집안 대모임 전날 밤.안금여는 무진과 성연을 고택으로 불렀다.운경도 함께 자리했다.颜如意想着他们有事情要谈,自己应该不方便听,于是就找了个地方,自己逛一逛。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었던 안금여는 잘 듣지 못할 장소를 찾아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비록 강씨 집안 사람들은 자신을 경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면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알아 두어야 했다.안금여가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무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안금여의 앞에 서서 낮은 음성으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그는 안금여가 자신들을 부른 까닭을 잘 알고 있다.집안 대모임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할머니는 분명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 터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그 사람들이 곧 올 거야. 내 속이 참 시끄럽구나.” 안금여가 눈썹을 찌푸렸다.다른 것은 걱정되지 않았지만, 유독 무진과 성연에 대해서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저들은 감춰둔 속셈도 많은데다 외국에서 자라서인지 정당하지 않은 술수도 곧잘
손건호는 요 며칠 해외에서 들어온 일가의 명단을 정리했다.그리고 강상철과 강상규를 방문한 인사들을 무진에게 보고했다.이쪽에 좋은 감정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좋을 리가 없다.무진도 알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안금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이는 모든 일가가 본가를 염두에 두는 건 아니라는 증거다.미리부터 타초경사, 즉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 저들이 진짜 움직일 생각을 할 때, 진정한 강자가 무엇인지 무진은 저들에게 가르쳐 줄 작정이다.손건호가 옆에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보스, 저들에게 경고를 좀 할까요?”손건호는 무진의 깊은 생각을 모른다.다만 강상철과 강상규를 먼저 방문한 이들이 보스 강무진과 본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은 분명했다.최근 몇 년간은 본가가 언제나 최고 권위의 상징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저들은 본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경고를 주지 않으면 이 분노를 삼킬 수 없을 것 같은 손건호다.“됐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할 테니 경거망동하지 마.” 뒤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저들의 목표는 강상철, 강상규 쪽과 일치한다.저들은 본가의 실수를 찾으려 들고 있었다. 무진 또한 마찬가지로 저들의 약점을 찾고 있다.지금은 누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느냐에 달렸다.“알겠습니다.”손건호가 우물우물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무진은 손건호를 한 번 돌아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뒷짐을 진 채 창가에 서서 저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는 무진의 얼굴이 싸늘했다.안금여의 염려스러운 마음, 손건호의 불편한 마음을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하지만 방법이 없다. 급한 마음에 뜨거운 두부를 먹을 수는 없으니.천천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때가 되면 본가에 맞서는 인간들 모두를 깨끗이 쓸어버릴 것이다.이 일에 대한 보고를 마친 후, 손건호가 나갔다.무진이 서재 문을 열자 성연이 입구에 서 있었다.시계를 보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잠이 드는 성연이기에
덕망이 높은 안금여는 남편 강상중이 세상을 뜬 후 강씨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인이다.귀국해서 안금여를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 모두 선물을 가지고 왔다.평소 고택은 쓸쓸한 편이다.성연과 무진이 건너와야 좀 시끌벅적한 기운을 띌 뿐.그런데 지금 고택은 찾아온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대동하기도 했으니.거실에는 아이들 장난치는 소리와 여자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했다.그들과 떨어진 가장들은 모두 안금여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회장님, 이건 제가 특별히 해외에서 골라 온 건강식품입니다. 지난번에 머리를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이게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남자가 웃으며 선물을 내밀었다.이들은 강씨 집안 직계가 아니기 때문에 안금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비교적 가까운 관계에서는 이렇게 부르지 않을 터.안금여가 고개를 숙여 선물을 슬쩍 쳐다보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답례의 말을 했다.“생각이 깊군요.”앞으로 나와 선물을 받은 집사가 고용인을 시켜 창고에 가져다 놓게 했다.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했고, 모두 집사가 옆에서 대신 받았다.만약 틀리지 않다면 이 선물들은 십중팔구 창고 안에서 먼지로 가득하게 될 터이다.안금여는 이들이 선물한 건강식품을 먹지 않을 것이다.이들의 태도가 비할 데 없이 좋아 보이지만, 사실 진심을 가진 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시정잡배 같은 족속들로 하나같이 상대하기 힘들었다.모두 해외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로, WS그룹이 해외에도 지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강씨 집안에 기대려는 것이다.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기네 가장들로부터 안금여와 친해지라는 명령을 받았다.오랫동안 그룹을 운영했던 안금여이기에 그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었다.웃을 때는 그저 자상한 할머니 같아 보였다.하지만 조금이라도 굳은 표정을 지을 때면 차가운 눈빛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대단했다.여자들은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결국 노란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일어서더니 안금여 앞으로 걸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온 지 한참 지났지만 무진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약혼녀는 말할 것도 없고.두 사람을 언급하자 안금여의 표정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성연이는 아직 학교가 파하지 않아서 나중에 무진이가 가서 데려올 겁니다.”“아직 학생이었군요.” 사람들이 놀라 서로 쳐다보았다.“학생이면 어때서?” 저들의 어감이 다소 좋지 않게 들리자 안금여의 표정이 냉랭해졌다.옆에 있던 사람들이 얼른 변명했다.“사실 좀 놀라서 그랬습니다. 지금은 다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시대 아닌가요? 당연히 상관없지요.”“맞아요, 맞아.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걸요.”“강 대표가 어린 아가씨와 짝을 맺을 줄은 몰랐어요. 평소 좀 쌀쌀해 보이는 느낌이라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회장 안금여의 눈 밖에 나서는 안되는 것이다.지금이야 안금여가 늙었다 해도 여전히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다.특히 강무진이 지금 회사를 접수한 이후, 본가의 위상은 더 높아진 게 사실이니까.저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안금여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러나 이후 누가 말을 걸어도 안금여는 그저 냉담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다들 안금여가 화났음을 알고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조용히 음식만 먹었다.수업이 끝난 성연은 즉시 교문으로 달려갔다.방금 수업 중에 교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진의 메시지를 받았다.무진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은 성연의 동작이 참으로 날랬다.차에 도착했을 때, 성연이 숨을 헐떡였다.차문을 열어 주던 무진의 눈에 땀을 뻘뻘 흘리는 성연이 보였다. 그 모습이 싫기는커녕 직접 휴지를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말끔히 땀을 닦아준 후, 무진이 성연의 뺨을 쓸며 말했다.“뭐가 그리 급해서?”“늦으면 무진 씨가 난처할까 봐요.” 성연이 가장 걱정한 게 바로 이것이다.무진의 말을 들으니 지금 고택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모두 해
백화점에서 흰색 원피스를 골라 입은 성연이 머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자 그윽한 향기를 뿜는 한 떨기 작약 같은 모습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성연이 전신으로 내뿜는 귀족적인 분위기와 카리스마는 옆에 선 무진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무진의 눈동자가 한순간 더 짙어졌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몰고 고택으로 향했다.성연은 무진의 팔을 잡은 채 함께 차에서 내렸다.아니나 다를까, 고택의 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두 사람이 등장하자, 성연을 본 사람들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어렸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린 무진이 성연을 뒤로 감싸듯이 앞으로 나서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단시켰다.이 자세는 분명 성연을 두둔하는 게 명백했다.무진은 성연을 자신의 여자로 대하며 성연에 대한 소유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고택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들어찼다.이전에 성연이 강씨 집안에 막 들어왔을 때, 강상철과 강상규는 무진이 시골 여자애와 결혼한 것에 대해 나팔 불지 못해 안달이었었다.약혼녀도 겨우 시골 촌뜨기밖에 안되는 폐물이라고 조롱했었다.그러나 지금 보니 성연의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겁먹지 않으며 적절하게 나가도 들어올 줄도 알았다.‘이게 어디 시골 계집애의 모습이야?’안금여는 이 작자들을 마주하고 있는 게 고역이었다.성연과 무진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의 미간이 확 펴졌다.안금여가 성연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성연아, 할머니한테 오렴.”성연이 얌전하게 걸어가며 안금여를 불렀다.“할머니.”다들 안금여와 성연이 서로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해했다.그들은 안금여가 성연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무시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성연은 모임에 참석했을 뿐 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은 듯 보였다.성연은 전혀 시골뜨기 같지 않았다. ‘설마 강상철과 강상규가 잘못 안 것은 아니겠지?’“여기 모두 우리 강씨 집안의 일가 친척들
두 사람이 얘기를 마쳤을 때 마침 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곽연철이 거실에 있는 것을 본 무진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곽 대표님,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나서 오셨어요?”“너무 오랫동안 성연이를 못 봐서 성연이하고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강 대표님과 성연이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거도 몰랐을 겁니다.”곽연철은 탓하듯이 말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직 준비 중입니다. 날짜가 확정되면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곽연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무진과 보스의 결혼식인 이상 강무진이 반드시 잘 준비할 거야.’‘그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어.’“얘기 나누세요. 나는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성연은 집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좀 아팠다.“내가 같이 갈까?” 무진이 바로 말했다.언제나 성연을 우선시하는 태도였다.“아니요, 곽 대표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무진 씨가 얘기 나누세요.” 성연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두 남자는 사업 얘기 말고는 다른 게 없었다.그러나 마침 돌아온 무진에게 곽연철이 정말 알려줄 얘기가 있었다.“지금 연기의 신 소지한 씨의 회사가 설립되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 제왕그룹과 합작으로 연예인을 발굴할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곽연철이 근황을 말했다.무진은 자타가 공인한는 재계 정상에 서 있는 CEO다.그래서 곽연철은 무진에게 어떤 좋은 의견이 있는지 듣고 싶었다.무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소지한이 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선택한 건 예상했지만, 또 의외이기도 했어.’‘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쪽에서 말한다면, 소지한은 그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지.’‘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의 신이라고 일컬어졌기에, 연예계의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더욱 잘 알고 있을 거야.’‘다른 업계에 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소지한에게 가장 타당한 업종이야.’무진이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저도 같이 출자해서 프로젝트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곽
곽연철은 오자마자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성연과 무진이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직접 봤기에, 이제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되자 곽연철도 정말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잘됐네요, 보스. 강 대표님이 정말 보스에게 잘해 주시니 평생 맡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님의 능력은 강해서 보스를 잘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연철이 이렇게 칭찬하는 말을 듣자, 자신의 마음도 더없이 달콤했다.‘그래. 무진 씨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무진 씨는 줄곧 나를 잘 보호했고, 부딪칠 만한 것도 없었어.’‘가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무진 씨도 나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성연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느꼈다.“보스, 언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입니까?” 곽연철은 그때 축의금을 크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결혼하게 되면 틀림없이 알릴 테니까 걱정 마.” 성연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몇 명에 불과했다.‘내 결혼식에는 모든 사람이 참석해야 해.’“이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스승님의 행방을 이렇게 오랫동안 찾지 못했는데,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최악의 경우 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곽연철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성연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부정했다.‘그렇게 실력이 강한 스승님이 또 적지 않은 거물들도 치료하셨어.’‘스승님이 위험에 처할 리가 없어.’‘내가 찾고 있다는 걸 스승님도 분명히 알고 계실 거야.’‘다만, 만나러 오려고 하지 않으실 뿐이야.’‘때가 되면 오실 거고 이제 거의 다 됐어.’“아니야, 스승님은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신 분이야. 신비한 분이지만, 제자의 결혼식에는 꼭 오실 거야.” ‘스승님이 이렇게 나를 총애하시는데.’그래서 성연은 스승님이 반드시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하기야 스승님은 뭐든지 주머니를 털어 보스에게 주셨지요. 결혼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