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운경의 생일날이 되었다.조승호는 아내 운경과 함께 생일을 보내기 위해 특별히 휴가까지 내었다.전날 밤, 성연은 고모부 승호에게 먼저 계획을 알렸다. 그리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운경을 데리고 나가 있어달라고 요청했다.성연의 요청을 받아들인 승호가 운경을 데리고 외출한 후, 성연과 무진은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운경의 저택으로 왔다.운경과 승호, 두 사람이 거주하는 저택은 아주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다.평소 아주 사이 좋은 두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성연은 직접 사 온 물건들로 거실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성연이 선택한 재료들은 모두 저택 내부 벽에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는 것들이다. 성연이 벽에 장식물을 달기 시작하자 무진이 옆에서 도왔다.성연이 지시하는 대로 무진이 따라 하는 모습은 마치 여러 번 해본 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성연은 운경이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장미를 통해 낭만과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고.사실 장미, 하면 흔히 가녀린 꽃 송이를 떠올리지만, 스스로 꿋꿋이 비바람을 견디며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들장미도 있으니까. 그래서 장미를 사용해서 거실을 장식할 생각이다.하지만 성연은 한참을 고민하고서 겨우 시작했다. 장미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프로포즈 장소로 보이기 쉬우니까 말이다.그래서 성연은 장미를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화원 주인에게 가장 신선한 꽃을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구석구석에 적당하게 꽂힌 장미꽃들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자신이 장식한 거실을 보며 성취감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성연이다.한편 생일 파티 준비에 열중한 성연을 바라보던 무진은 심장이 벌렁거리자 뒤에서 성연을 끌어안았다. 이런 친밀한 접촉에 익숙하지 않았던 성연은 온몸을 통해 미세한 전율을 느꼈다.잠시 멍했다 정신이 돌아온 성연이 팔꿈치로 무진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헸다.“무진 씨, 너 뭐하는 거예요? 환한 대낮에 이 무슨 불한당 같은 짓이에요?”“내 약혼
거실 장식을 끝낸 후 이상은 없는지 구석구석 확인까지 마무리한 성연은 직접 사온 재료로 운경의 생일 음식을 만들 참이다.무진도 그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다시 봐도 무진이 음식을 하는 모습은 성연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아, 지난번에 먹었던 야식이 무진 씨가 준비했던 거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안금여의 말에 따르면 무진은 혼자 생활한 시간이 많았다고 하니까.‘음식을 할 줄 아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겠지.’무진 같은 류의 사람은 음식을 하는 것보다 배달을 시키는 게 더 이상해 보이긴 했다.능숙한 동작으로 칼질을 하는 무진을 보면서 성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마음 놓고 재료를 손질하던 일에 집중했다.성연이 고생하는 게 안타까운 무진.하지만 오늘의 세프는 성연이인 이상 말릴 수도 없는 노릇.그래서 손질하기 힘든 재료들은 모두 무진이 미리 다듬어 놓았다.성연이 간단한 것들만 다듬으면 되게.재료 손질이 끝난 후에는 무치고 볶고 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옆에서는 미역국을 끓고 있었다.땀을 뻘뻘 흘리는 성연을 본 무진이 휴지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내가 할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성연이 끝까지 버티자 무진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저 옆에서 양념병을 건네고 땀을 닦아주며 최대한 일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성연이 한 가지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생일 상을 차렸다.상 차림이 끝나자 성연은 무진과 함께 할머니 안금여를 모시러 고택으로 향했다.안금여는 두 사람과 함께 운경의 저택에 도착했다.그 때까지 운경은 백화점에 있었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남편 승호가 함께 쇼핑을 하자며 자신을 데리고 나왔다.그리고는 영화를 보며 데이트 중이었다.운경이 보기에 오늘 승호는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평소 자신을 무척 아끼고 잘했다. 남편 조승호는. 하지만 뒤에서 든든히 받쳐줄 줄이나 아는 목석 같은 남편은 데이트에는 잼병이다.생일
사실 운경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오빠와 올케가 같은 날 사고로 사망한 후, 그저 남은 가족들이라도 오순도순 함께할 수 있기만 늘 바랬다.지나간 과거를 붙잡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는 잡을 수 있는 것이니까.지금 이 순간 눈앞의 이 장면이 운경의 마음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감정을 건드렸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안금여와 무진을 끌어안았다. 성연을 가운데 둔 채로.온 가족이 함께 부둥켜안았다.옆으로 다가간 승호가 운경의 어깨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운경은 때로 감정에 잘 치우는 사람이었다. 결점도 감싸 안을 만큼 오직 신경 쓰는 이는 가족들뿐이었다.성연이 준비한 생일이 운경의 마음을 건드렸다.눈물을 그치지 않는 운경을 보며 안금여 또한 마음이 아렸지만 부러 여상한 말투로 핀잔을 주었다.“어른이 되어서도 울고 있으면 어떡하니? 어린 조카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안금여에게 핀잔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운경은 안금여의 품에 안겼다.기대어 오는 운경의 표정을 보며 안금여도 울컥하는 표정으로 운경의 어깨를 살살 어루만졌다.어렸을 때는 집 안에서 오냐오냐 떠받들어지며 응석받이로 자란 운경이다.세상 물정 모르고 좋아하는 것들만 해도 집에서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위로 오빠가 버티고 있었기에 운경이 걱정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러나 이후 오빠네 부부, 즉 무진의 부모가 사망하고 이어서 아버지 강상중이 세상을 떠났다.무진만 의지할 기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운경도 마음의 기둥을 잃었다.그 동안 강씨 집안과 그룹을 지키느라 안금여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나약하다고 생각해서 늘 마음이 놓이지 않던 운경이었다.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운경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한순간에 훌쩍 자란 듯했다.알아서 먼저 무진을 보살폈고, 무진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은 후에는 알아서 회사 경영을 돕기 시작했다.한창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곧 일년에 한 번 있는 ‘강씨 집안 대모임’이 돌아온다.여느 가족모임과는 달리 집안 대모임 날에는 강씨 집안 자손이라면 아무리 먼 곳에 있다할 지라도 달려와야 했다.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두 한 가족임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옛 선조 때부터 정해진 집안 규칙이었다.하지만 어느새 모임의 목적이나 성격이 변해 버렸다.이제 대부분 의무적이거나 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집안 대모임에 참석할 뿐이다.해외에 뿌리를 내린 집안 사람들도 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잇따라 입국했다.무진 쪽에서는 이 사람들의 행방을 모두 알고 파악하고 있었다.관례에 따라 모두 제일 먼저 본가 고택을 방문해서 안금여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안금여는 현재 최연장자인데다 본가라는 권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하루 일찍 들어와 강상철과 강상규를 먼저 만났다.무진은 이 사람들의 행적을 예의 주시하도록 지시한 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북성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집안 대모임 전날 밤.안금여는 무진과 성연을 고택으로 불렀다.운경도 함께 자리했다.颜如意想着他们有事情要谈,自己应该不方便听,于是就找了个地方,自己逛一逛。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었던 안금여는 잘 듣지 못할 장소를 찾아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비록 강씨 집안 사람들은 자신을 경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면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알아 두어야 했다.안금여가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무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안금여의 앞에 서서 낮은 음성으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그는 안금여가 자신들을 부른 까닭을 잘 알고 있다.집안 대모임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할머니는 분명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 터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그 사람들이 곧 올 거야. 내 속이 참 시끄럽구나.” 안금여가 눈썹을 찌푸렸다.다른 것은 걱정되지 않았지만, 유독 무진과 성연에 대해서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저들은 감춰둔 속셈도 많은데다 외국에서 자라서인지 정당하지 않은 술수도 곧잘
손건호는 요 며칠 해외에서 들어온 일가의 명단을 정리했다.그리고 강상철과 강상규를 방문한 인사들을 무진에게 보고했다.이쪽에 좋은 감정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좋을 리가 없다.무진도 알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안금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이는 모든 일가가 본가를 염두에 두는 건 아니라는 증거다.미리부터 타초경사, 즉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 저들이 진짜 움직일 생각을 할 때, 진정한 강자가 무엇인지 무진은 저들에게 가르쳐 줄 작정이다.손건호가 옆에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보스, 저들에게 경고를 좀 할까요?”손건호는 무진의 깊은 생각을 모른다.다만 강상철과 강상규를 먼저 방문한 이들이 보스 강무진과 본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은 분명했다.최근 몇 년간은 본가가 언제나 최고 권위의 상징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저들은 본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경고를 주지 않으면 이 분노를 삼킬 수 없을 것 같은 손건호다.“됐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할 테니 경거망동하지 마.” 뒤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저들의 목표는 강상철, 강상규 쪽과 일치한다.저들은 본가의 실수를 찾으려 들고 있었다. 무진 또한 마찬가지로 저들의 약점을 찾고 있다.지금은 누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느냐에 달렸다.“알겠습니다.”손건호가 우물우물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무진은 손건호를 한 번 돌아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뒷짐을 진 채 창가에 서서 저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는 무진의 얼굴이 싸늘했다.안금여의 염려스러운 마음, 손건호의 불편한 마음을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하지만 방법이 없다. 급한 마음에 뜨거운 두부를 먹을 수는 없으니.천천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때가 되면 본가에 맞서는 인간들 모두를 깨끗이 쓸어버릴 것이다.이 일에 대한 보고를 마친 후, 손건호가 나갔다.무진이 서재 문을 열자 성연이 입구에 서 있었다.시계를 보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잠이 드는 성연이기에
덕망이 높은 안금여는 남편 강상중이 세상을 뜬 후 강씨 집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인이다.귀국해서 안금여를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 모두 선물을 가지고 왔다.평소 고택은 쓸쓸한 편이다.성연과 무진이 건너와야 좀 시끌벅적한 기운을 띌 뿐.그런데 지금 고택은 찾아온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대동하기도 했으니.거실에는 아이들 장난치는 소리와 여자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했다.그들과 떨어진 가장들은 모두 안금여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회장님, 이건 제가 특별히 해외에서 골라 온 건강식품입니다. 지난번에 머리를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이게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남자가 웃으며 선물을 내밀었다.이들은 강씨 집안 직계가 아니기 때문에 안금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비교적 가까운 관계에서는 이렇게 부르지 않을 터.안금여가 고개를 숙여 선물을 슬쩍 쳐다보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답례의 말을 했다.“생각이 깊군요.”앞으로 나와 선물을 받은 집사가 고용인을 시켜 창고에 가져다 놓게 했다.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했고, 모두 집사가 옆에서 대신 받았다.만약 틀리지 않다면 이 선물들은 십중팔구 창고 안에서 먼지로 가득하게 될 터이다.안금여는 이들이 선물한 건강식품을 먹지 않을 것이다.이들의 태도가 비할 데 없이 좋아 보이지만, 사실 진심을 가진 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시정잡배 같은 족속들로 하나같이 상대하기 힘들었다.모두 해외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로, WS그룹이 해외에도 지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강씨 집안에 기대려는 것이다.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기네 가장들로부터 안금여와 친해지라는 명령을 받았다.오랫동안 그룹을 운영했던 안금여이기에 그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었다.웃을 때는 그저 자상한 할머니 같아 보였다.하지만 조금이라도 굳은 표정을 지을 때면 차가운 눈빛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대단했다.여자들은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결국 노란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일어서더니 안금여 앞으로 걸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온 지 한참 지났지만 무진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약혼녀는 말할 것도 없고.두 사람을 언급하자 안금여의 표정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성연이는 아직 학교가 파하지 않아서 나중에 무진이가 가서 데려올 겁니다.”“아직 학생이었군요.” 사람들이 놀라 서로 쳐다보았다.“학생이면 어때서?” 저들의 어감이 다소 좋지 않게 들리자 안금여의 표정이 냉랭해졌다.옆에 있던 사람들이 얼른 변명했다.“사실 좀 놀라서 그랬습니다. 지금은 다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시대 아닌가요? 당연히 상관없지요.”“맞아요, 맞아.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인 걸요.”“강 대표가 어린 아가씨와 짝을 맺을 줄은 몰랐어요. 평소 좀 쌀쌀해 보이는 느낌이라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회장 안금여의 눈 밖에 나서는 안되는 것이다.지금이야 안금여가 늙었다 해도 여전히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다.특히 강무진이 지금 회사를 접수한 이후, 본가의 위상은 더 높아진 게 사실이니까.저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안금여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러나 이후 누가 말을 걸어도 안금여는 그저 냉담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다들 안금여가 화났음을 알고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한 채 조용히 음식만 먹었다.수업이 끝난 성연은 즉시 교문으로 달려갔다.방금 수업 중에 교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진의 메시지를 받았다.무진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은 성연의 동작이 참으로 날랬다.차에 도착했을 때, 성연이 숨을 헐떡였다.차문을 열어 주던 무진의 눈에 땀을 뻘뻘 흘리는 성연이 보였다. 그 모습이 싫기는커녕 직접 휴지를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말끔히 땀을 닦아준 후, 무진이 성연의 뺨을 쓸며 말했다.“뭐가 그리 급해서?”“늦으면 무진 씨가 난처할까 봐요.” 성연이 가장 걱정한 게 바로 이것이다.무진의 말을 들으니 지금 고택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모두 해
백화점에서 흰색 원피스를 골라 입은 성연이 머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자 그윽한 향기를 뿜는 한 떨기 작약 같은 모습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성연이 전신으로 내뿜는 귀족적인 분위기와 카리스마는 옆에 선 무진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무진의 눈동자가 한순간 더 짙어졌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몰고 고택으로 향했다.성연은 무진의 팔을 잡은 채 함께 차에서 내렸다.아니나 다를까, 고택의 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두 사람이 등장하자, 성연을 본 사람들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어렸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린 무진이 성연을 뒤로 감싸듯이 앞으로 나서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단시켰다.이 자세는 분명 성연을 두둔하는 게 명백했다.무진은 성연을 자신의 여자로 대하며 성연에 대한 소유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고택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들어찼다.이전에 성연이 강씨 집안에 막 들어왔을 때, 강상철과 강상규는 무진이 시골 여자애와 결혼한 것에 대해 나팔 불지 못해 안달이었었다.약혼녀도 겨우 시골 촌뜨기밖에 안되는 폐물이라고 조롱했었다.그러나 지금 보니 성연의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겁먹지 않으며 적절하게 나가도 들어올 줄도 알았다.‘이게 어디 시골 계집애의 모습이야?’안금여는 이 작자들을 마주하고 있는 게 고역이었다.성연과 무진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의 미간이 확 펴졌다.안금여가 성연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성연아, 할머니한테 오렴.”성연이 얌전하게 걸어가며 안금여를 불렀다.“할머니.”다들 안금여와 성연이 서로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해했다.그들은 안금여가 성연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무시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성연은 모임에 참석했을 뿐 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은 듯 보였다.성연은 전혀 시골뜨기 같지 않았다. ‘설마 강상철과 강상규가 잘못 안 것은 아니겠지?’“여기 모두 우리 강씨 집안의 일가 친척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