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를 남긴 사람으로 인해 무진이 성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다들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더 이상 감히 도발할 생각을 못했다.고택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안금여 주위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성연은 안금여의 한쪽 옆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무진은 또 다른 반대쪽에 앉았다.무진의 맞은 편에는 슈트 차림의 중년 남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이 두 사람은 각각 할아버지의 사촌 동생들인 강상호, 강상현이다.무진과 이들의 관계는 보통이다.그러나 이전에 본가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강상철, 강상규를 따라 본가에 무시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무진은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이들이 이번에 온 목적은 단순하지 않았다. 어차피 화해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이런 사람들을 마주하며 무진이 좋은 낯빛을 할 리가 만무하다.하지만 이들이 웃어른들임을 생각한 무진은 제대로 교육받은 대로 그저 웃어른으로만 대하고 있다.“눈 깜짝할 사이에 무진이 네가 이렇게 컸구나.”강상현이 감탄성의 발언을 했다.무진을 바라보는 눈빛에 약간의 연민까지 담겨 있는 것이 몹시도 위선적으로 보였다.“넷째 할아버님의 심려 덕분에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강씨 집안에는 방계가 많은 편이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친동생이다. 두 명의 사촌동생은 비록 직계는 아니지만, 호칭 서열에 따라 넷째, 다섯째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무진이 네가 지금 회사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리도 많이 좋아졌다니 정말 운이 좋았구나.”강상호가 불쑥 의미불명의 말을 꺼냈다.이들의 눈에는 무진이 이 모든 것을 가진 게 순전히 운으로 보이는가 보다.이들이 무진의 강함을 인정하려면 직접 눈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을 터.그들을 말을 듣고 있던 무진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잠시 가벼운 웃음을 터트린 후 고개를 들었다.“다섯째 할아버님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꿍꿍이를 품고 있다.하지만 안금여의 건강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할아버지의 사촌 여동생인 강영애는 안금여보다 약간 젊었다.하지만 건강이 예전만 못했다.그녀의 머리에는 새치가 적지 않아서 좀 초췌해 보였다. 또 정신 상태도 안금여 보다 좋지 않았다.이것은 오랫동안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또 몸을 돌볼 시간이 없었기도 했고.강영애는 젊었을 때 꽤나 유능한 사람이었다.당시 강영애의 집안에는 큰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녀를 내세웠다.그녀는 혼자만의 힘으로 집안을 지탱했으며, 회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할아버지에게 중용되었다.하지만 스트레스도 엄청났지만 긴장을 풀 시간이 전혀 없었다.나이가 들자 그런 상태의 후유증들이 모두 몸에서 나타났다.그래서 입원을 밥 먹듯이 했다.안금여와 운경은 강영애의 상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강영애의 집안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 중시할 뿐 그녀에 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다행히 자기 가족들을 잘 알고 있던 강영애는 젊었을 적에 이미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 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말로는 지금보다 더 비참했을 것이다.안금여도 강영애를 보자 감개무량했다.“아가씨, 우리 둘 다 못 만난지 몇 년 되었지요?”“맞아요, 올케. 어느덧 우리 둘 다 이렇게 늙었네요.” 강영애의 눈시울도 약간 촉촉해졌다.“아가씨, 요 몇 년 간 어떻게 지냈어요?” 망설이던 안금여가 강영애의 몸 상태를 물었다.지금 보기에 강영애의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그렇죠 뭐. 올케도 그 사람들 알잖아요. 나는 지금도 그들과 같이 살지 않아요. 그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집안 사람들을 언급하는 강영애의 눈에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그 말을 들은 안금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예전에 아가씨가 희생한 건 다 잊은 거야?”강영애가 쓴웃음을 지었다.“그들 본성이 원래 그런 걸요. 나는 이미 익숙해요.”
조금 뒤에 고택에는 본가 사람들만 남았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여유를 되찾았다.안금여가 시큰시큰한 등을 두드렸다.“이 사람들이 만약 몇 번만 더 오면, 내 수명이 아마 몇 년은 줄어들 거야.”‘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너무 귀찮아. 환심을 사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그녀는 정말 그런 인내심이 없다.이를 본 성연은 안금여를 도와서 손으로 허리를 눌렀다.“할머니, 그들한테 화 낼 필요 없으세요.”‘단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일 뿐인데, 그들 때문에 자신의 심신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가치가 없어.’“나는 저들 때문에 내 속을 끓이지는 일은 확실하게 없을 거야. 단지 귀찮을 뿐이지.”안금여가 손을 흔들었다.자기 가족 앞에서는 안금여도 그렇게 망설이지 않았다.성연은 말없이 살짝 웃었다.그녀는 프로 같은 기술로 사람을 편안하게 주물렀다. 안금여는 가늘게 실눈을 떴다.운경과 무진은 한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갑자기 운경의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든 그녀는 위의 메시지를 한 번 보았는데, 다 본 후에 그녀는 완전히 멍해졌다.그녀의 멍한 표정을 본 무진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고모, 왜 그래요?”“네 삼촌이 돌아왔어.” 운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무진의 삼촌 강상문은 일찍 할아버지와 갈등을 일으켜서 해외로 보내져서 연수를 받았다.강상문도 기개가 있어서 요 몇 년 동안 아예 작정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다.운경의 유일한 친동생이라서 가족들이 모두 그리워했다.평소에 이런 자리라면, 그는 절대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이번에 그가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만약 안금여가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할 것이다.“삼촌이 돌아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무진이 운경의 표정을 살폈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그러나 그도 운경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감격했을 것이다.요 몇 년 동안, 모두들 강상문은 여전히 할아버지를 원망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안금여는 그에게 더욱 미
몇 사람이 동시에 문밖으로 나갔다.짙은 빨간색에 장미 무늬가 있는 셔츠를 입은 남자가 차에 기대어 있는 것이 보였다.살짝 웨이브가 진 머리에 호리호리한 체형이 아주 어려 보이면서도 핸섬했다.지금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든 채로 두 다리를 꼬아 차에 비스듬히 기댄 폼이 다소 시니컬한 분위기를 풍겼다.성연은 은근히 그를 살펴보았다.‘무진 씨 삼촌이 그렇게 젊으실 줄은 몰랐어.’‘무진 씨와는 숙질 같지 않고 형제 같아.’발자국 소리를 들은 강상문이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넣으며 농담처럼 말했다.“아이고, 그래도 누가 나를 데리러 나왔네. 나는 또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말하면서 강상문은 가슴을 가리면서 가슴 아픈 표정을 지었다.그의 농담에 무겁기만 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먼저 운경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기 시작했다.“네가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그래도 알고 있는 거야?”강상문이 다가와 운경의 손목을 다정하게 붙잡았다.“누나,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데도 예전이랑 똑같이 예쁘네.”운경이 퉁명스럽게 손끝으로 그의 이마를 짚었다.“당치 않은 말만 자꾸 할 거야?”강상문의 눈빛이 안금여에게 옮겨갔다. 그리고 점잖게 똑바로 서자 아주 영리해 보였다.“엄마.”이 한 마디를 언제 들었는지 안금여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녀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래, 돌아왔으니 됐다.”그녀는 이제 그런 일들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아들 상문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른 건 생각할 것도 없었다.상문이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일 터.그녀도 옛일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가족이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강상문의 눈이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다시 성연에게 가서 멈추었다.그리고 비로소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씨가 바로, 무진이 약혼녀인 송성연?”성연은 강상문을 보며 꽤 잘 맞추었다.사람도
안금여는 즉시 집사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그리고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강상문은 말주변이 아주 뛰어나 식사하는 내내 운경과 안금여를 모두 즐겁게 했다.평소에 잘 웃지 않던 무진조차도 그의 말을 들으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조금 있다가 안금여는 머리가 맑지 않아서 쉬러 가려고 했다.그녀는 평소 바로 이 시간에 잔다.이미 오래 버텼더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그러나 강상문이 어렵게 돌아왔기에 안금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깨어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 될까 봐 두려웠다.강상문은 안금여의 생각을 알아차렸다.그는 안금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했다.“엄마, 저 이번에 돌아와서 며칠 더 있을 거예요. 잘 모실 테니 먼저 쉬세요.”이 말을 듣자 안금여도 안심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말을 마치자, 운경은 안금여를 부축해서 방으로 갔다.그들이 간 후에야 강상문은 무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무진아, 정말 오랜만이구나, 우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한 잔 해야겠다.”무진은 거절하지 않았다.강상문은 그에게 있어서 더욱 친구 같았다.그들 둘 사이에는 숙질 간이라는 경계가 없었다.집사가 부엌에 가서 술을 가져왔다.하지만 시간이 좀 늦어서 테이블도 다 정리되고 요리사도 다 잠이 들었다.안주가 없었다.강상문이 턱을 쓰다듬었다.“이거 참 번거롭게 됐네.”냉장고를 열어 본 성연은 식재료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숙부님, 제가 안주를 만들어 드릴게요.”성연은 이런 상황이니 오늘 저녁에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평소에는 무척 반득하기만 한 무진이었기에 가까스로 긴장을 풀 수 있을 때 어쨌든 흥이 깨지면 안 된다.“성연이가 요리도 할 줄 알아?”강상문은 좀 놀란 눈빛이었다.“조금 할 줄 알아요.”성연이 겸손하게 말했다.“그럼 됐어, 네게 맡길게.” 강상문은 무진을 끌고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거실에 도착해서야 강상문이 말했다.“좋아, 안목이 아주 좋아. 성연
거의 맛이 간 두 사람을 본 성연이 그들에게 해장약 한 알씩을 먹였다.‘그렇지 않으면, 내일 깨어나면 머리가 아플 거야.’성연은 집사를 찾아서 강상문을 방으로 데려가라고 했고, 자신은 무진을 끌고 방으로 돌아왔다.방에 도착한 성연은 화장실에 가서 수건에 따뜻한 물을 묻혀 무진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끈적끈적하고 불편할 테니까.성연이 무진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생각지도 못하게 반쯤 닦아주었을 때 무진이 눈을 떴다.그리고 성연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는 무진이 이미 취해 뻗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깨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무진의 이마를 만졌다.“어디가 불편해요?”무진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없이 성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가 몹시 취했다고 생각한 성연은, 상대도 하지 않고 계속 얼굴을 닦아주었다.다음 순간, 무진이 성연의 손목을 잡았다.성연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 사이에 입술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진한 술 냄새가 입안으로 스며들었다.성연은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어질어질함을 느꼈다.몸부림치지도 않고 나른한 느낌에 성연은 무진의 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성연은 입술이 부은 것 같았다.동작을 멈춘 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턱을 갖다 대었다.한참이 지나자 무진은 비로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이 널 아주 좋아해.”온 가족이 성연을 좋아하니 무진은 누구보다 기분이 좋았다.마치 자신의 소유물이 가족들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생각을 하다 보니 차분했던 감정이 이 시간 꽤나 흘러 넘치는 걸 피할 수 없었다.‘모든 중요한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무진씨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겠지?’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진의 등에 손을 얹고 가볍게 두드렸다.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마음으로 무진을 아꼈다.집안 사람들이 모인 후로 응대하느라 바빴다.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면 다행이지만, 모두 각자의 마음 속에 서로 다른 마음이 꼭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안금여를 보러
학교에 도착하자 성연은 바로 잠에 빠졌다.주연정은 그녀와 몇 마디 하려 해도 늦었다.저도 모르게 성연을 위해 바람막이가 되어 주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았다.‘이 분이야 말로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학년 일등을 하는 이가 아닌가? 선생님은 전혀 상관하지 않을 거야.’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리고 성연을 도와 외투를 당겨서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했다.성연은 아주 편안하게 잤다.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책상이 좀 딱딱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그러나 무진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집안 대모임, 좋게 말하면 가족 모임이야.좀 듣기 거북하게 말하자면 총결산을 할 때라는 말이고.강씨 집안의 본가는 북성에 있지만, 국외에도 적지 않은 지부가 있다.그 지부들도 모두 강씨 집안의 사람들이 관리한다.그러나 국외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비록 강씨 집안에 소속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1년에 한 번 열리는 연례 회의는 저들의 실적을 펼쳐 보이는 때이다.손건호는 보고서 한 묶음을 무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보스, 모두 여기 있습니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은 이 집안 사람이라는 작자들이 성실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저들이 진짜 수치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무진은 앞의 몇 장에 있는 숫자를 펼쳐보고는 바로 머리가 아팠다.‘이 사람들, 나를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공한 재무제표도 엉망진창이군.’‘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짜 장부가 섞여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천천히 조금씩 봐야만 그 속의 문제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아.’‘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무진은 반드시 엄격히 점검해야지, 조금이라도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꾹 참고서 난잡한 보고서를 계속 보았다.제출된 보고서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고 그들이 계속 보는 것에 짜증을 내게 해서,
성연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돌아왔는데, 무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평소 무진은 바빠도 늘 성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그런데 무진이 집에 돌아오지도 않은 채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좀 걱정스러운 마음에 성연이 집사에게 물었다.“무진 씨는요?”그러자 집사가 바로 대답했다.“대표님은 아직 회사에 계십니다. 요즘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표님은 작은 사모님께서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식사하고 쉬시라고 하셨습니다.”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무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밥을 먹고 주방에 가서 재료를 씻었다.그 모습을 본 집사는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어디 성연이 움직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달려와서 얼른 말했다.“작은 사모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고용인들에게 준비하라고 하세요.”성연은 손을 내저었다.“아니예요, 제가 먹을 걸 좀 만들어서 무진 씨에게 보내려고요.”집에서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무진이 많이 먹지 않는 듯했다.오히려 자신이 만든 음식은 무진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무진 씨, 회사에서 피곤할 텐데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그 말을 들은 집사는 문득 크게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현명하십니다. 그럼 제가 밖에 있을 테니, 작은 사모님이 하시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성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고개를 숙이고 재료를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성연은 탕수갈비와 감자채, 강낭콩볶음, 그리고 국을 하나 만들었다.다 만든 후에, 잽싼 동작으로 도시락에 담은 후에 집사에게 차를 준비하게 해서 무진의 회사로 갔다.회사에서 손건호는 스스로 좀 힘듦을 느꼈다.그는 사무실 입구에 서서 망설이며 들어가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손건호는 문을 밀고 들어갔고, 고개를 숙인 채 재무제표를 보고 있는 무진을 보고 권유했다.“대표님, 그래도 뭐 좀 드세요.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배 안 고파.” 앞에 있는 장부를 보
안금여가 한숨을 내쉬었다.“너와 성연이 모두 착한 아이들이야. 만약 정말 무슨 부득이한 상황이 닥치면, 이 할머니는 너희들이 좋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러지 마, 무진아.”“할머니, 말씀하신 그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무진은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안금여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강운경이 옆에서 말렸다.“엄마, 우리도 잘 알고 있잖아요. 엄마가 성연이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시는지요. 하지만 무진이와 성연이 서로 감정이 깊어요. 둘 다 사리가 분명한 애들이에요. 무진이 우리를 찾아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안금여의 말은 두 사람을 위한 것이 맞다. 불길한 말은 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잠시 멍하니 있던 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이에 대해서는 네 말이 맞다. 우리 집 무진이가 마침내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다니, 이 할머니가 당연히 기뻐해야지. 모두 이 할머니 잘못이다, 요 방정맞은 입 같으니라구.”무진이 얼른 말했다.“할머니, 할머니 탓하지 마세요. 모두 저와 성연일 위해서 하신 말씀이시잖아요?”“그렇네, 얼른 무진과 성연이 결혼식을 예약해야지. 성연이가 외국에서 나쁜 마음을 품은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말이다!” 강운경은 성연의 성격을 안다.겉으로 보기에는 성격이 강하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간다면...‘정말 무진이 죽으려고 하겠네.’“그래, 근데 성연이 나이가 한참 어린데, 그렇게 하겠다고 해?” 강운경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계획을 다 세웠다.그러나 성연이 그러겠다고 할지는 아직 미지수.“성연이는 분명히 그러겠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성연이 곧 개학할 텐데, 성연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그러면 성연이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막는 양상이 된다.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실, 불안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시 돌아왔다.무진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그러나 마음이 심란해지며 성연이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그래서 무진은 성연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고택에 들렀다.무진이 고택으로 들어왔을 때, 안금여와 강운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무진을 보던 안금여는 무진의 뒤를 쳐다보았다.“아니 왜 성연이는 너와 함께 오지 않았어?”무진이 두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저었다.“같이 안 왔어요.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두 분에게 드릴 말이 있어서예요.”무진의 태도가 너무 공적이고 진지한 터라, 안금여와 강운경도 덩달아 긴장하며 다급히 물었다.“무슨 일이냐?”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회사의 일을 떠올렸다.“성연이가 곧 학교로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성연이가 더 뛰어나게 성장하는 걸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연이 떠나면, 더 이상 제가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무진의 음성이 유난히 침중했다.성연은 아직 너무 젊었다. 외부에는 성연이를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무진이라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무진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조바심과 불안은 오직 눈앞의 가족 두 사람 앞에서만 드러낼 수 있었다.무진이 에둘러 말했지만, 안금여와 강운경은 바로 알아들었다.무진의 말을 듣던 안금여와 강운경이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무슨 큰 일인가 했더니,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안금여와 강운경이 박장대소를 했다.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무진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날이 있다니.제 마음이 이리도 빨리 들통나 버리자 무진은 좀 민망함을 느꼈다.무진이 입술만 오물거리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강운경이 그런 무진을 놀렸다.“예전에 내가 무진이 너에게 괜찮은 아가씨들을 참 많이도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너 꿈쩍 하지도 않더니. 그때 나 정말 걱정했었어. 네가 고독한 모습으로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