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성은 손이 부러졌고 성연의 납치도 철저히 실패로 돌아갔다.강상철과 강상규가 회합을 가졌다.강상철은 강상규의 맞은편에 앉아 침울하게 말했다.“동생, 이번에도 너무 무모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그렇다 치고 손자도 지키지 못했으니.”이번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해 강상규도 속으로 화가 난 상태였다.그래서 강상규가 비아냥거렸다.“지난번 일헌이 출국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지 않았습니까?”강상규는 모두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니 누가 누구를 말할 게 못된다는 뜻.그리고 자신들과 강상철은 서로 협력 관계의 파트너이니 자신도 계속 소소한 일들을 하며 강상철의 문책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동생,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 않느냐? 지난번에 너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잖니? 그런데도 말을 안 듣고는.” 강상철의 어투가 많이 차분해졌다.“형님, 그 말씀은 타당치가 않습니다. 이게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입니까?” 강상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원망하다가 금방 차분해졌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일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음을 그들은 알았다.어디까지나 같은 편인 그들 사이가 어색하게 되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다시 이성을 찾은 강상규가 먼저 강상철에게 사과했다.“형님, 미안합니다. 진성이 손을 다쳐서 마음이 무척 괴롭습니다. 귀에 좀 거슬렸던 말들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강상규도 강상철에게 물러날 길을 열어주었다.그는 강상철이 줄곧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그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강상철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강상규의 말을 듣던 강상철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졌다.“동생, 네 심정은 내가 이해한다. 나도 잘못 말한 부분이 있어.”두 사람은 서로 사과한 후에 또 다시 좋은 협력 관계가 되었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한 그들이니만큼 서로의 습관에 대해서도 훤하다.혼자라면 불가능하다.서로 힘을 합쳐야만 본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강상규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강상철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였다.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모양이 아주 여유 있어 보였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해외에 있던 몇 분이 얼마 뒤에 곧 귀국할 거다. 나는 이미 인사를 했다. 그때가 되면 모여서 강무진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다. 강무진이라도 그들을 누를 순 없다고 믿는다.”강상철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눈에는 매서운 기운이 가득 담고서.그 말을 듣던 강상규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형님, 정말 그 분들이 돌아오신다는 거요?그들이 직접 나에게 전한 소식인데 설마 가짜겠어?” 이 일을 꺼낸 강상철의 눈서에 모처럼 웃음기가 번졌다.강상규도 정말 반가운 소식이라 생각했다.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만약 그 분들이 정말 돌아오신다면, 정말 볼 만할 겁니다.”“우리는 이때를 기다렸지 않느냐?” 강상철이 찻잔을 가볍게 흔들었다.그 분들은 정말 만만하지도 않은 실력에다 성질도 좋지 않았다.강상철은 그 분들이 돌아오신 후 처참하게 끝날 강무진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었다.“그래, 그때 꼭 잔치를 해야지. 무진이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줄 아나 본데, 그 분들과 맞서는 건 겨우 고개만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이 보다 좋은 소식에 비하면 자신들의 예전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이미 무진의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말을 마친 후 의자에 앉아 있는 강상철을 보던 강상규가 웃으며 말했다.“형님, 이렇게 좋은 일이 있는데 우리 술 한 병을 따서 축하합시다. 마침 내가 이 클럽에 곱게 모셔 두고 있던 귀한 술이 있는데, 형님 마음에 들 겁니다.”강상철이 차뿐만 아니라 좋은 술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강상규는 잘 알고 있었다.다만 최근 몇 년 동안 몸이 불편해서 아주 뛰어난 술이 아니면 강상철은 입에 대지 않을 터.예전에 강상규는 자신 술을 내 놓기가 무척 아까웠다.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축하를 해야 할 때였다.그들은 곧 전세를 뒤집을 것이다.
요 며칠 성연과 무진은 고택에서 안금여와 함께 식사를 했다.매일 성연이 자신의 앞에 안전하게 있는 모습을 본 후에야 안금여가 안심했다.밥을 다 먹은 후, 안금여와 무진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그분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안금여가 눈살을 찌푸렸다.“외국에 있던 그 분들, 강상철, 강상규와 가까이 지냈어. 게다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보니 최근엔 제대로 관리할 수도 없었고. 모두 한 성격 한다. 심지어 나도 안중에 두지 않아. 무진아, 너 조심해야 한다.”말할 것도 없이 강상철, 강상규 쪽이었으니.‘분명 무진을 힘들게 할 텐데.’안금여는 예전에 신경 쓸 마음이 있었다.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외국의 교육은 국내와 시종 달랐다.그 분들은 이율배반적이었다. 간도 크고 무슨 미친 짓을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이들이었다.안금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역시 그 분들이 결과를 생각지도 않고 무진을 난처하게 한다면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다.듣고 있던 무진은 냉소만 지었다. 눈에는 두려움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진은 말로 안금여를 위로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병사가 오면 장수가 물을 막고 흙으로 덮으면 됩니다. 옆에서 몇 마디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마이동풍 식으로 들으면 됩니다.”요 몇 년 동안 무진이 들은 유언비어도 적지 않았다.그 보다 더 힘든 날이 온다 해도 그들을 두려워할 리가.그리고 이 북성 전체가 무진의 땅이었다.그들이 해외에서 아무리 날뛴다 해도 이곳에 와서는 이곳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법.만약 좋고 나쁨도 구분하지 못한다면, 무진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성연은 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구름 속에 안개가 낀 듯했다.그러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강씨 집안의 일이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그들의 일이다.게다가 무진의 말투를 들으니 이 일에 대해서도 따로 생각이 있는 듯했다.그녀는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조용히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하면 된다.안금여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되었든
눈 깜짝할 사이에 운경의 생일이 되었다.예년에는 무진이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운경도 그런 습관이 없었다. 생일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기껏해야 식사만 했을 뿐이다.올해는 무진이 돌아온 데다 성연이도 있어 온 가족이 모두 모였다.운경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운경의 생일은 성연이 우연히 알게 되었다.그날 그녀는 고택에서 안금여와 함께 있었다.흥이 난 안금여가 예전의 가족앨범을 가지고 나와 성연에게 보여주었다.가족사진들이 들어있었다.그리고 각자의 개인 사진 같은 것도 있었다.그녀가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무진이었다.무진은 어렸을 때도 옥처럼 매끈한 이목구비의 어린이였다. 줄무늬 멜빵바지를 입은 무진의 뒤에는 잘생긴 남자와 부드러운 얼굴의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이 두 사람이 무진의 부모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러나 그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서있는 무진은 활력이 넘쳤다.이후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점차 사라졌다. 마지막에는 강운경, 안금여, 그리고 무진 세 사람만 남았다.무진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사라졌다.그런 무진의 변화를 본 성연은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부모님의 죽음은 분명 무진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무진의 사진을 바라보는 성연을 보며 안금여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예전에는 무진이도 많이 밝았었지. 나중에 사고가 있었던 거 너 들었지? 무진이에게 큰 충격이었다는 것도.” 지난 일을 생각하던 안금여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안금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옛날이 어땠든 지나간 일은 지나갔어요. 지금은 괜찮잖아요?”성연이 자신을 위로하는 본 안금여가 미소를 지으며 감탄했다.“네 말이 맞다. 사람은 앞을 봐야지. 나를 봐라. 점점 옛날로 돌아가.”“할머니, 앞으로 우리 모두 할머니 곁에 있을 거예요. 잃어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겠지만요.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요.”성연이 일부러 안금여를 일깨웠다.좋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몸도 좋아질 수 있었다
아이가 없는 운경은 거의 모든 시간을 회사와 가족에게 바쳤다.어쨌든 표시를 해야 했다.성연은 어차피 똑똑히 봤으니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자신이 하기로 결심한 이상 후회하지 않게 해야지.성연은 집으로 돌아간 후 무진과 운경의 생일에 대해 의논했다.무진의 눈에 한 가닥 놀라움이 스쳐 지나가더니 곧 평온함을 되찾았다.“성연아,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무진이 물었다.“아직 특별한 생각은 없어요.” 성연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했다.그녀의 기억에 예전 자신의 생일을 운경이 많이 도왔다고 들었다.성연은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이번에는 자신이 운경을 위해 힘을 쓸 차례였다.“괜찮아, 아직 좀 남았어. 천천히 생각해.” 무진은 어떻게 하든 성연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다.성연은 늘 사리판단이 분명하니 절대 터무니없는 일을 하지 않을 테니.그가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그의 가족을 위해 애쓴다는 건 성연이도 자신을 이 집안의 일원으로 여긴다는 뜻이리라.무진의 기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점차 성연이 이 집안에 녹아들기 시작했다.이렇게 지내다 보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성연이 쉽게 떠나지 않겠지?무진은 자신에게 사심이 있음을 인정했다.그러나 그의 눈에 성연의 즐거움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고모님께 좀 색다른 생일파티를 해드리고 싶은데 좋은 제안이 없나요?” 성연이 턱을 괴고 말했다.“난 그런 거 잘 몰라.” 무진이 태연하게 말했다.성연을 제외하고 그는 어느 누구도 기쁘게 해주려 시도한 적이 없었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은 무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그래서 무진에게 기댈 수가 없었다.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성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탁자 위를 긁고 있다.무진이 그녀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정말 생각이 안나면 안 하면 돼. 회사의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도 있어.”그의 밑에는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으니.사실은 성연이 고생하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성연이 의기소침하게 말했다.“무진 씨 무
운경의 생일을 준비하기로 한 후 성연은 난관에 봉착했다.운경에게 잊을 수 없을 만치 의미 있는 생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예태까지 성연은 늘 홀로 자유롭게 지냈던 사람이었다.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예 가족애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그러다 강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가족의 정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모든 것들을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하지만 생일 파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도무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성연은 학교에 가서도 이 일만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생각할수록 걱정이 되는 성연.옆에 앉아 있던 짝 연정은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는 듯한 성연에게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성연아, 무슨 일인데 그래?”연정의 관심 어린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자신에게도 이렇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학교 친구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순수한 마음을 가진 연정에게는 말해 줘도 무방하지 싶었다.그래서 고모 운경의 생일 파티에 대해 연정에게 말해 주었다.성연의 말을 들은 연정이 바로 말했다.“성연아, 너네 고모처럼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부족한 게 뭐가 있겠니? 사실 화려하게 꾸미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애. 고모님이 원하는 건 그냥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지 않을까? 정성껏 준비해서 고모님이 네 마음을 아시면 되지 않을까?”연정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하다 싶은 조언을 했다.연정의 말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여겨진 성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정의 말을 메모했다.“고마워, 나중에 내가 밥 살게.” 성연이 맥이 풀린 듯 말했다.“그럼 나 기다릴 테니 잊으면 안돼.” 연정이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물론 성연이 사 주는 밥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성연과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으로.연정은 진심으로 성연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성연은 성격이 아주 좋았다. 게다가 성적도 무려 전교 1등으로 아주 뛰어났다. 비록 자신은 1등과 무관하지만,전교 일등과 짝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어깨가 올라가는지.전교 1등의
어느덧 운경의 생일날이 되었다.조승호는 아내 운경과 함께 생일을 보내기 위해 특별히 휴가까지 내었다.전날 밤, 성연은 고모부 승호에게 먼저 계획을 알렸다. 그리고 준비를 마칠 때까지 운경을 데리고 나가 있어달라고 요청했다.성연의 요청을 받아들인 승호가 운경을 데리고 외출한 후, 성연과 무진은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운경의 저택으로 왔다.운경과 승호, 두 사람이 거주하는 저택은 아주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다.평소 아주 사이 좋은 두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성연은 직접 사 온 물건들로 거실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성연이 선택한 재료들은 모두 저택 내부 벽에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는 것들이다. 성연이 벽에 장식물을 달기 시작하자 무진이 옆에서 도왔다.성연이 지시하는 대로 무진이 따라 하는 모습은 마치 여러 번 해본 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성연은 운경이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장미를 통해 낭만과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고.사실 장미, 하면 흔히 가녀린 꽃 송이를 떠올리지만, 스스로 꿋꿋이 비바람을 견디며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들장미도 있으니까. 그래서 장미를 사용해서 거실을 장식할 생각이다.하지만 성연은 한참을 고민하고서 겨우 시작했다. 장미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프로포즈 장소로 보이기 쉬우니까 말이다.그래서 성연은 장미를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하지만 화원 주인에게 가장 신선한 꽃을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구석구석에 적당하게 꽂힌 장미꽃들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자신이 장식한 거실을 보며 성취감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성연이다.한편 생일 파티 준비에 열중한 성연을 바라보던 무진은 심장이 벌렁거리자 뒤에서 성연을 끌어안았다. 이런 친밀한 접촉에 익숙하지 않았던 성연은 온몸을 통해 미세한 전율을 느꼈다.잠시 멍했다 정신이 돌아온 성연이 팔꿈치로 무진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헸다.“무진 씨, 너 뭐하는 거예요? 환한 대낮에 이 무슨 불한당 같은 짓이에요?”“내 약혼
거실 장식을 끝낸 후 이상은 없는지 구석구석 확인까지 마무리한 성연은 직접 사온 재료로 운경의 생일 음식을 만들 참이다.무진도 그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다시 봐도 무진이 음식을 하는 모습은 성연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아, 지난번에 먹었던 야식이 무진 씨가 준비했던 거지’라는 생각을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안금여의 말에 따르면 무진은 혼자 생활한 시간이 많았다고 하니까.‘음식을 할 줄 아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겠지.’무진 같은 류의 사람은 음식을 하는 것보다 배달을 시키는 게 더 이상해 보이긴 했다.능숙한 동작으로 칼질을 하는 무진을 보면서 성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마음 놓고 재료를 손질하던 일에 집중했다.성연이 고생하는 게 안타까운 무진.하지만 오늘의 세프는 성연이인 이상 말릴 수도 없는 노릇.그래서 손질하기 힘든 재료들은 모두 무진이 미리 다듬어 놓았다.성연이 간단한 것들만 다듬으면 되게.재료 손질이 끝난 후에는 무치고 볶고 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옆에서는 미역국을 끓고 있었다.땀을 뻘뻘 흘리는 성연을 본 무진이 휴지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내가 할게.”성연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요.”성연이 끝까지 버티자 무진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저 옆에서 양념병을 건네고 땀을 닦아주며 최대한 일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성연이 한 가지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생일 상을 차렸다.상 차림이 끝나자 성연은 무진과 함께 할머니 안금여를 모시러 고택으로 향했다.안금여는 두 사람과 함께 운경의 저택에 도착했다.그 때까지 운경은 백화점에 있었다.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남편 승호가 함께 쇼핑을 하자며 자신을 데리고 나왔다.그리고는 영화를 보며 데이트 중이었다.운경이 보기에 오늘 승호는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평소 자신을 무척 아끼고 잘했다. 남편 조승호는. 하지만 뒤에서 든든히 받쳐줄 줄이나 아는 목석 같은 남편은 데이트에는 잼병이다.생일
두 사람이 얘기를 마쳤을 때 마침 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곽연철이 거실에 있는 것을 본 무진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곽 대표님,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나서 오셨어요?”“너무 오랫동안 성연이를 못 봐서 성연이하고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강 대표님과 성연이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거도 몰랐을 겁니다.”곽연철은 탓하듯이 말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직 준비 중입니다. 날짜가 확정되면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곽연철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무진과 보스의 결혼식인 이상 강무진이 반드시 잘 준비할 거야.’‘그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어.’“얘기 나누세요. 나는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성연은 집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좀 아팠다.“내가 같이 갈까?” 무진이 바로 말했다.언제나 성연을 우선시하는 태도였다.“아니요, 곽 대표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무진 씨가 얘기 나누세요.” 성연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두 남자는 사업 얘기 말고는 다른 게 없었다.그러나 마침 돌아온 무진에게 곽연철이 정말 알려줄 얘기가 있었다.“지금 연기의 신 소지한 씨의 회사가 설립되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 제왕그룹과 합작으로 연예인을 발굴할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곽연철이 근황을 말했다.무진은 자타가 공인한는 재계 정상에 서 있는 CEO다.그래서 곽연철은 무진에게 어떤 좋은 의견이 있는지 듣고 싶었다.무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소지한이 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선택한 건 예상했지만, 또 의외이기도 했어.’‘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쪽에서 말한다면, 소지한은 그 세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지.’‘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의 신이라고 일컬어졌기에, 연예계의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더욱 잘 알고 있을 거야.’‘다른 업계에 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소지한에게 가장 타당한 업종이야.’무진이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저도 같이 출자해서 프로젝트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곽
곽연철은 오자마자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성연과 무진이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직접 봤기에, 이제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되자 곽연철도 정말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잘됐네요, 보스. 강 대표님이 정말 보스에게 잘해 주시니 평생 맡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님의 능력은 강해서 보스를 잘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연철이 이렇게 칭찬하는 말을 듣자, 자신의 마음도 더없이 달콤했다.‘그래. 무진 씨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무진 씨는 줄곧 나를 잘 보호했고, 부딪칠 만한 것도 없었어.’‘가끔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무진 씨도 나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성연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자신이 복을 받았다고 느꼈다.“보스, 언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입니까?” 곽연철은 그때 축의금을 크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결혼하게 되면 틀림없이 알릴 테니까 걱정 마.” 성연이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 몇 명에 불과했다.‘내 결혼식에는 모든 사람이 참석해야 해.’“이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스승님의 행방을 이렇게 오랫동안 찾지 못했는데, 혹시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최악의 경우 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곽연철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성연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부정했다.‘그렇게 실력이 강한 스승님이 또 적지 않은 거물들도 치료하셨어.’‘스승님이 위험에 처할 리가 없어.’‘내가 찾고 있다는 걸 스승님도 분명히 알고 계실 거야.’‘다만, 만나러 오려고 하지 않으실 뿐이야.’‘때가 되면 오실 거고 이제 거의 다 됐어.’“아니야, 스승님은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신 분이야. 신비한 분이지만, 제자의 결혼식에는 꼭 오실 거야.” ‘스승님이 이렇게 나를 총애하시는데.’그래서 성연은 스승님이 반드시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하기야 스승님은 뭐든지 주머니를 털어 보스에게 주셨지요. 결혼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