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규와 강진성은 돈만 주면 되는 줄 생각했다.그러나 그들은 성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무진의 심리를 무시했고, 강무진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성연의 위치도 과소평가했다.강진성은 마음이 몹시 괴롭다.늘 강무진을 무시하던 자신이었기에 자연히 강무진이 자신을 누르게 그냥 두고 싶지 않았다.특히 오늘, 강무진은 정말 얼굴이 닳을 정도로 자신을 비난했다.앞으로 그가 회사에 나가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강진성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집에도 머물지 못했다.친구가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승낙의 메시지를 보냈다.룸에 들어서니 음악 소리가 귀청이 터질 듯했다.강진성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술 한 잔이 날아왔다.그는 바로 잔을 비웠다.룸에 있는 이들은 모두 강진성의 나쁜 친구들이다.못된 취미가 서로 잘 맞았다. 모두 나쁜 것들로만.강진성은 소파에 앉아 말도 하지 않고 한 모금 한 모금 술만 마셨다. 이러면 마음속의 근심을 없앨 수 있을 것만 같았다.강진성의 이런 모습을 본 친구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이봐, 강진성, 왜 그래? 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강진성은 강씨 집안의 사람이라 주변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누군가 묻는 말에 강진성은 마치 괴로움을 뒤집어쓴 것처럼 회의 중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강진성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정말 제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거야? 감히 이 몸을 위협하다니.” 오후의 답답했던 심정을 생각하던 강진성은 또 다시 우울한 지 술을 한 모금 마셨다.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듣고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진성아, 그런 인간은 마음에 두지 마. 강무진은 무슨 개뿔.”“맞아, 병신 주제에 어떻게 너를 이기겠어?”“앞으로 강씨 집안의 자리에는 네가 앉아야지? 지금은 그 놈과 따질 생각 마.”“…….”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치켜세우는 소리들만 해댔다.강진성을 잔뜩 위로 위로 치켜세웠다.그는 직접 술병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나쁜 친구들에게 허풍을 떨
강진성은 술에 취해 클럽에서 나왔다. 술에 취해 몸이 휘청거렸다.악당 녀석들은 모두 술에 취해서 서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강진성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이니. 녀석들은 바로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강진성은 대리운전을 불러 돌아가려고 했다.그런 일을 하고도 집에 가지 않은 채 외박을 한다면, 그걸 할아버지가 아시게 된다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도 남을 것이다.골목을 지날 때 눈앞이 캄캄해졌다. 마대자루로 머리가 덮인 채 끌려가 한바탕 두들겨 맞았다.때리는 사람이 손이 아주 매웠다.강진성은 온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강씨 집안의 셋째 도련님으로 군림하던 그를 감히 누가 때린다는 말인가?강진성은 즉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당신들 누구야? 날 왜 때리는 거야?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강씨 집안의 셋째 손자야. 만약 니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즉시 반드시 끝장 낼 줄 알아!”그를 때리던 사람은 그런 강진성을 보며 입가를 당겼다.‘이 지경에도 저런 말을 하다니.’‘강진성은 정말 구제불능일 정도로 어리석군.’그렇게 쉽게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에게 알려주겠는가? 그럼 머리에 마대를 씌울 필요가 뭐 있다고.더군다나 때릴 만큼 다 때렸으니 자신의 신분을 밝힐 기회는 결코 없을 터.돼지 같은 강진성은 자신이 엄청 똑똑한 것처럼 자랑한다.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러는 건지.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묵묵히 강진성을 때렸다. 때리는 동작이 점점 세졌다.신분을 밝혀도 소용없었다.강진성은 더 이상 이렇게 맞으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때리지 마, 때리지 마, 원하는 거 다 줄게. 때리지 마.” 강진성은 자신이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오한이 났다.‘대체 누구야?’‘어쨌든 강씨 집안 사람인데 도대체 누가 감히 그를 때린다는 말이야?’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
강진성은 강씨 집안의 사람이다.강씨 집안은 북성에서 진짜 명문 집안이었다.강씨 집안과 관련한 무슨 조그마한 얘기거리도 각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강씨 집안 셋째 손자인 강진성은 거의 반 공인이라 할 수 있었다.그날 저녁, 즉시 어떤 사람이 강진성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찍어 가십 기사 상단에 올려놓았다.그가 얻어터진 일이 떠들썩하게 전해졌다.주인이 있는 여자를 데리고 놀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기사 아래에는 조롱하는 댓글들도 있었다.“정말, 어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여자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기어코 주인이 있는 여자를 건드리다니, 정말 천박해.”“아마 부자들은 이런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모양이야. 퉤, 정말 맞아도 싸.”“한 마디만 하자면, ‘쓰레기 같은 상류사회’.”아래에서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WS그룹의 주식은 이것 때문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지금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이 강진성이 아니라 강무진이니까.그래서 모두들 강진성의 일을 우스갯거리 안주로 삼았다.본가와 둘째, 셋째 일가가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회사를 깨끗하게 떼어낸 채로.강진성 자신의 품행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듯.물론 이 소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내용이었다.그러나 이 소문을 들은 강상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집사가 신문을 강상규 앞에 가져다 놓았다.앞에 있는 신문을 보던 강상규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이 개자식!” 그렇게 많은 돈을 배상해야 할 줄은 몰랐다. 강진성의 기억력이 전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클럽까지 가더니 거기서도 조심할 줄 모르고 그런 일을 당했다.정말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집사가 옆에서 보더니 말했다.“사장님, 도련님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았으니 억울한 마음이 많이 들 겁니다.”집사가 말을 안 했으면 그래도 나았을 텐데, 집사의 말을 듣던 강상규는 속으로 더 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억울? 그 놈이 억
주말에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던 성연은 무진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아침 먹어, 내가 너를 데리고 갈 데가 있어.”무진이 성연에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성연의 눈이 반짝였다.“나 데리고 놀러 가려고요?”한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진이 서프라이즈를 선물하면 좋겠다.“다 먹으면 알려줄게.”무진이 일부러 뜸을 들였다.성연은 식탁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그리고 무진을 따라 차에 올랐다.길에서 성연은 줄곧 참으면서 무진에게 묻지 않았다.‘약간의 신비감을 남겨두는 것이 좋아.’그러나 성연은 기다리다가 무진이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발견했다.성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무진 씨, 나를 데리고 병원에 왜 왔어요?”“강진성이 입원을 했어.”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성연은 곧 깨달았다.‘그러고 보니 무진 씨는 나를 구경꾼으로 데리고 온 거야.’무진이 병실로 가는 동안에 성연은 강진성에 관한 뉴스를 싹 훑었다.‘와, 정말.’‘꼴 좋군.’‘이 정도는 응징해야 강진성한테 딱 맞다고 할 수 있지.’병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 성연은 비로소 느릿느릿 휴대전화를 넣었다.그들이 병실로 갔을 때, 병실에는 강진성 혼자만 있었다.그는 팔에 깁스까지 하고 있어서, 보기에 약간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성연은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그녀 같은 소인배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정말 잘 때렸어.’무진은 일부러 성연을 데리고 온 것이다.그는 옆에 서서 강진성을 바라보았다.“괜찮아? 할머니가 특별히 나보고 너한테 병문안 다녀오라고 당부하셨어. 어쨌든 모두 강씨 집안 사람이니, 사촌 형인 내가 한 번은 보러 와야지.”깁스를 한 강진성의 낭패스러운 모습이 무진에게도 보였다.기분이 극도로 나빠진 강진성이 거짓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형님, 고맙습니다. 괜히 형님을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게 하는군요.”무진이 절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일부러 자신을 보고 비난하러 온 거야.’‘
병상에 누운 강진성은 반항할 능력도 없이 나른했다.평소처럼 목을 뻣뻣이 세우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패배한 수탉 같은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성연도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눈빛에는 조롱이, 말투에는 경멸도 섞여 있었다.“이번에 팔이 부러졌으니 다음에는 불구가 될 수도 있겠어요. 여자를 놀릴 때는 조심해야 해요.”강진성은 성연 때문에 피를 토할 정도로 화가 났다.그는 이 일이 무진이 한 짓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심지어 감히 무진과 큰 소리로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팔이 아직도 은근히 아팠다. 그는 지금 감히 무진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그는 때린 놈들은 무진이 찾은 놈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그 날조된 소문 또한 강무진이 퍼뜨렸을 것이다.강진성은 정말 입이 있어도 열기 어려웠다.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몰랐고,답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성연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강진성 본인은 집안의 잔치에서 자신이 어떻게 무진을 괴롭혔는지 모를 거야.’‘이제 거꾸로 됐어.’‘정말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거야.’무진과 성연도 빈손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제대로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들은 또한 마음대로 과일 바구니도 하나 샀다.성연은 자신이 사온 것이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바로 옆에 있는 과일을 집어 든 그녀는 씻은 뒤에 의자에 앉았다.강진성 맞은편에 앉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이야, 이 사과 정말 꿑처럼 다네.”강진성도 방금 밥을 먹어서, 원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그러나 성연이 과일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사과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성연은 일부러 놀라며 말했다.“왜요? 도련님도 먹고 싶어요?”강진성은 성연에게 딱 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얼굴이 즉시 붉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화가 난 것이었다.그는 가볍게 두 번 기침을 했다. “먹고 싶은 게 아니에요.”성연은 아주 대범한 모습으로 말했다.“아이 참, 먹고 싶으면 말해도 말하세요. 사촌형과 사촌 형
집으로 돌아갈 때, 성연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강진성의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한 마디로 일 년 간의 웃음 포인트를 도맡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떠올리며 음미하면 되겠다 생각했다.그녀는 정말 마음이 상쾌했다.나온 후에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기 풍경이 괜찮은 것 같아요.”‘여긴 개인 병원인 것 같은데 환경이 좋아 보이네.’“그럼 구경하자.” 무진이 그녀를 데리고 걸어갔다.병원 중앙에는 사람 꽃도 많이 심어서 예뻐 보였다.성연이 먼저 무진의 팔을 붙잡았다.무진의 몸이 움찔했지만, 곧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성연이 남들 앞에서 이처럼 먼저 다가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무진의 마음도 따라서 반쯤 누그러졌다.성연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괜찮아, 그녀가 온전히 내 곁으로 돌아왔으니.’만약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다면, 무진은 절대 저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 또한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자 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성연은 가까이 있어서 무진의 감정을 느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보았다.“왜 그래요?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요?”“아니야.”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성연이 더 이상 묻지 않자, 잠시 멈추었던 무진이 계속 말했다.“그냥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내가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그 말을 들은 성연은 갑자기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마음이 복잡했다.‘무진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그가 무척이나 두려웠다는 걸 말하는 거겠지.’‘그를 그렇게 걱정시킨 사람은 바로 나야.’그녀의 마음이 어떻는지 잘 모르겠다.그녀는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 “지금 내가 옆에 있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겁내지 말아요.”무진은 성연의 어깨에 머리를 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마치 다음 순간에 성연이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꽉 안았다.성연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나는 괜찮으니까 정말 이럴 필요 없어요. 무진씨.”그녀는
성연은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요즘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데, 왜 걸핏하면 감동하는 거야?’그녀는 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른 채 집으로 돌아오자 안금여가 와 있었다.소파에 앉아 있는 안금여에게 집사가 차를 타 주었다.찻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신 안금여가 무진과 성연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안금여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자 성연이 먼저 안금여에게 안부를 물었다.미소를 지은 안금여가 무진을 바라보며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강진성은 어떻게 된 거냐?”무진이 대답했다.“두 손이 부러졌답니다. 어차피 죽지도 않을 텐데, 잠시라도 나쁜 짓은 못하겠지요.”무진이 이렇게 한 까닭은 강진성에게 작은 교훈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이 일은 강상규가 시작한 것이다.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건드린 만큼 강상규 역시 잘 지낼 생각은 말아야지.강상규 쪽으로는 강진성 외에 없었다.하루 종일 강상규는 종일 ‘진성이 이 못난 놈’을 읊지만, 그러나 무진은 알고 있다. 강상규가 자신의 혈육을 가장 아낀다는 것을.그렇지 않았다면 강진성을 저렇게 키우지도 않았을 터.그는 지금 강진성의 한쪽 손만 베었다. 그것도 가볍게.강상규에게 주는 경고였다. 건드리지 말하야 하는 것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강상철, 강상규 그리고 자신 강무진, 이 세 사람은 모두 견제와 균형의 관계이다.그들은 자신을 건드릴 수 없었다. 무진 역시 마찬가지로 꺼리는 부분이 있다.그러나 무진은 다른 사람을 건드릴 수는 있었다.이 역시 강상철과 강상규가 그에게 가르쳐 준 바였다.무진의 말을 들은 안금여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다음에 저들이 다시 감히 우리 성연이를 건드린다면, 보름 동안 누워 있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안금여가 볼 때 죽지 않으면 된 것이다.강진성의 상처는 성연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다행히 성연은 마음이 강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시 엄청 놀랐을 테지.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던 성연은 조금 전 눌러 둔 감정
성연은 안금여와 함께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강진성을 보면서 교훈을 얻었지만 성연이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강상규가 이 일을 빌어 무진을 증오하지 않겠는가?외국에 있을 때 그들은 하마터면 무진을 죽일 뻔했다.이번에 강진성이 부상을 당했으니 강상규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겉으로 대놓고는 건드리지 못할 터.뒤에서 또 어떤 일을 벌일까 걱정이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잔인하고 수법도 악랄했다. 성연이 직접 본 적도 있었다.성연은 무진이 자신 때문에 강상철과 강상규의 증오를 산 게 아닌지 걱정이었다.그러나 고택에 있으며 성연은 줄곧 참고 말하지 않았다.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다.“무진 씨가 그런 거 강상철, 강상규가 틀림없이 알게 될 텐데. 그들이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까?”무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큰 소리쳤다.“그들이 만약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도 괜찮아. 직접 치워버리지 뭐.”성연은 무진이 강상철과 강상규를 정리하려는 생각을 한 지 오래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많이 움직일수록 허점도 더 많이 드러날 테니, 무진에게는 드문 기회이기도 할 터.“조심해요.” 잠시 생각하던 성연이 여전히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성연이 이마를 잔뜩 찡그린 것을 본 무진이 갑자기 웃었다. 입으로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나 걱정하는 거야?”성연은 그의 웃음이 좀 이해가 안되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너 이거 좀 쓸데없는 말 아니에요?”무진이 갑자기 다가와 몸을 기울여 성연을 품에 안았다.성연은 무진을 밀어내려고 애썼다.손이 무진에 닿으려 할 즈음 멈췄다.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무진은 이렇게 성연을 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나는 무척 기분이 좋아.”“뭐가 좋아요?” 성연이 입을 삐죽거리며 내는 목소리가 좀 막힌 듯했다.“네가 날 걱정하는 게 기분이 좋아.”무진이 솔직하게 말했다.예전에는 자신에 대한 성연의 감정이 줄곧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최근에 일어난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