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회의 일은 한창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요 며칠, 선생님의 질문 빈도와 학생들이 대답한 질문, 그리고 토론의 깊이를 살폈다.답변에 참가한 모든 학우들 가운데서 성연의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그녀는 각 선생님들의 투표로 ‘주변론자’로 뽑혔다.선생님들은 모두 성연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이윤하는 성연의 능력을 본 후 점차 성연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았다.성연에게도 좀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성연의 담임 선생님으로서, 만약 성연이 성공한다면 그녀도 따라서 덕을 보게 될 것이고, 상금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이윤하는 심지어 성연을 지도하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이윤하는 사람됨이 비록 좀 정이 없긴 하지만, 가르치는 역량은 매우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녀는 북성남고 토론대회의 예전 지도교사로서 많은 자료들을 비축하였고 또 적수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두 일일이 성연에게 가르쳐주었다.그녀가 이번 변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이날, 수업하기 몇 분 전에, 이윤하는 성연을 교무실로 불렀다.이윤하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이번 토론대회에서 대략 다뤄질 내용인데, 어떤 것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아. 시간이 있으면 좀 더 뒤져 봐. 그때 가서 주제를 이해 못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그녀의 말투는 매우 평온했다. 심지어 약간의 칭찬도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학생을 대할 때 비로소 하는 것이다.사실 이윤하와 성연은 그들 두 사람이 그렇게 조화롭게 지낼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첨예하게 대립하지도, 냉소로 비웃지도 않고, 평범한 사제처럼 함께 지낸다.성연이 자료를 받았다.“네, 선생님 감사합니다.”요 며칠 지내면서, 성연도 사실 이윤하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앞서 자신에게도 잘못된 이 있었다.이윤하는 책임을 지는 선생님이다. 아마도 자신의 학습태도가 그다지 단정하지 않아서, 이윤하를 이렇게 혐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지금은 괜찮지 않아요?’이윤하는
성연은 원래 놀고 오자는 마음으로 토론대회에 참가했을 뿐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원래 참가할 생각도 없었고.그러나 성연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고, 그녀도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이윤하가 그녀에 대해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니 뭐라 하든 그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바로 학생으로서의 체험이라고 생각하자.’하교할 때 성연은 또 이윤하가 오전에 준 자료를 가지고 돌아갔다.오늘 밤은 게임을 하지 않고 이 자료들을 볼 계획이었다.교문에 도착했는데 진미선이 보였다.성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직접 진미선을 지나쳐 앞으로 가려고 했다.진미선이 그녀를 불렀다. “성연아.”성연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진 여사님, 무슨 일이세요?”이 소리를 듣고 진 여사는 심장이 약간 따갑다고 느꼈다.그녀는 마음속의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성연아, 너를 보러 오고 싶었어.”성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고 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미선이 진심으로 그녀를 보러 왔다면 태양이 서쪽에서 떴을 것이다.그녀의 표정이 차갑다.“할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요, 여기서 나와 빙빙 돌지 않아도 돼요.”진미선은 고개를 저었다.“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냥…… 보고 싶어서, 널 보러 오고 싶었어.”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성연도 물어볼 것이 없다.고개를 돌려 막 가려고 하다가, 성연은 진미선의 팔에 멍이 든 것을 눈치챘다.여름이라 옷이 얇고 가볍다.진미선이 긴 소매를 입고 일부러 흔적을 가리려 해도, 성연은 시력이 좋았다.진미선의 이마에도 약간의 멍자국이 있다.푸르스름한 것이 좀 무서워 보일 정도다.얼굴도 많이 초췌해져서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예전처럼 그런 고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지금 이런 모습의 진미선은 엉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진미선은 확실히 잘 지내지 못한다.그녀의 몸에는 지금 상처투성이다.지난번에 제왕그룹과 합작해서 많
엄마 진미선이 지금 남편의 집에서 잘 지내지 못하고 있음을 성연도 알아차렸다.원래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성연이다.하지만 불현듯 임종 직전 남기신 외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외할머니는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그러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한 차례 입술을 앙 다문 성연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몸의 상처는 어떻게 된 거예요?”성연의 말을 들은 진미선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꽁꽁 가린다고 가렸는데도 성연이 알아차린 것이다.곧장 정신을 차린 진미선은 황급히 상처 부위를 다시 가렸다.그리고 성연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성연은 말도 안되는 진미선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직접 묻는다고 진미선이 사실대로 인정할 리는 없을 터.항상 남들 눈을 의식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성연은 진미선의 팔을 잡아당기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자 육안으로 보이는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팔에 있는 더 큰 멍자국이 보였다.이미 시퍼렇게 부어오른 피멍 자국이 팔 전체에 퍼져 있는 형상이 무서워 보일 정도다.진미선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한 걸 보는 순간, 뜻밖에도 성연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화가 난 성연이 추궁하듯 물었다. “그 남자가 때린 거예요?”예전에는 아버지 송종철이야 말로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진미선에게 이처럼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그러나 진미선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했다. 그런데 손찌검을 당했다?당연히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않는가.재혼한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성연이 이미 눈으로 확인했지만, 진미선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 변명했다. “아니야.”왕대관은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단지 냉랭한 태도로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을 뿐.성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왕대관이 아니라면 왕씨 집안의 그 노친네겠군.’왕대관의 모친이 자신을
성연의 예리한 시선이 맞닿아오자 진미선은 버티기가 힘들었다.성연이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결국 난감해진 진미선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이번 방문 목적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회사에서 영향력 있는 제품 광고모델이 필요해. 그런데 요즘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야. 성연아, 네가 좀 엄마를 위해 방법을 찾아 줄 수 없을까?”이번 신제품을 위해 왕대관은 꽤 많은 투자를 했다.그러나 광고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진미선과 왕대관은 난관에 부딪쳤다.유명 모델이 아니고서는 제품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없을 터였다.하지만 최근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유명인들은 최소 몇 십억을 제시해야 섭외할 수 있었다.지금 그들의 능력으로는 그 많은 돈을 구할 재간이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성연을 통해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이다.진미선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성연은 단번에 알아들었다.진미선의 목적은 소지한이었다.성연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학생인 내가 무슨 모델을 알겠어요? 이번에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네요.”잠시 입을 벌린 채 벙긋거리던 진미선이 속셈을 드러냈다.“성연아, 너와 소지한…….”마침내 본심을 드러내는 진미선을 바라보며 성연이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소지한을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뭐라고 소지한을 알고 있겠어요?”성연은 정말 지긋지긋했다.결국 진미선은 또다시 자신을 이용 수단으로 취급했다.기분이 극도로 나빠졌다.진미선은 이를 악문 채 계속해서 말했다.“성연아,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 너라는 거 알아. 비록 내가 네 곁에 계속 있지는 않았지만 내 딸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만약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오늘 성연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광고 방면의 일은 자신과 왕대관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줄을 놓아줄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한 거였다.그들 회사는 결코 크지 않았다. 협력도 주로 작은 업체들과 하다 보니 유명 연예인을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원래는 눈
입술을 꽉 다문 채 진미선에게 잡힌 손을 빼며 성연은 결국 도와주기로 했다.“좋아요, 내가 이번에는 외할머니를 봐서 당신을 도와주겠어요. 하지만 이것도 마지막이에요.”성연은 잠시 눈을 감고 속으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자신은 절대 진미선에게 마음 약해지지 않으리라.그녀는 정말 너무 피곤했다.자신을 이용수단으로 여길 뿐인 진미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성연에게 있어서 진미선은 외할머니와의 관계를 빼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진미선이 얼굴에 기쁜 빛을 드러내며 성연의 손을 잡으려 다시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성연은 그 손을 피했다.진미선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마워, 성연아, 정말 고마워.”성연은 진미선에게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떠났다.진미선이 이러는 건 자신에 대한 성연의 감정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언젠가 감정이 밑바닥을 드러내는 날이 올 테지.하지만 성연이 생각하기에 진미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한다면 혈육의 정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결국 자신이 쓸모가 없다 싶으면 다시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 안달할 테고.성연은 가끔 스스로 비애감을 느꼈다.분명 자신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일 테지.그러나 언뜻 보아도 사실 자신은 가진 게 하나도 없었다.성연은 벽에 기대었다.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투정을 갈무리했다.감정을 모두 정리한 후 소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했다.성연의 말을 모두 들은 소지한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무슨 낯으로 너에게 부탁을 한단 말이야? 너 더 이상 그 사람들 상관하지 마.”소지한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절 들지 않았다.진미선 같은 사람을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성연이 진미선에게 어떤 푸대접을 받앗는지 알기에 더 돕고 싶지 않았다.성연처럼 좋은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자신을 위해 분개하는
마지막에 가서야 왕대관 회사의 신제품 광고모델 제의를 소지한이 받아들였다.그러나 진미선과 왕대관이 애가 닳도록 바로 연락을 주지 않고 일부러 며칠간 질질 끌었다.어차피 계약서에 사인도 안 한 상태, 단지 구두로 승낙했을 뿐이다. 물론 가긴 갈 테지만 진미선과 그 남편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면야 기분이 꽤나 좋을 것이다.그들도 아마 감히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할 터.집에 돌아온 성연은 꽤나 피곤한 기색이다.매번 진미선, 송종철을 만날 때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느끼는 성연이다.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게 정말 귀찮고 짜증났다.기분이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그런 성연의 기색을 눈치 챈 무진이 먼저 다가와 관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성연은 진미선과 있었던 일을 무진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그녀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이런 속상한 일은 말해 봤자 속상한 사람만 더 늘어날 뿐.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눈을 반쯤 가늘게 뜬 성연이 소파에 기댄 채 말했다.“요즘 토론대회로 바빠서 그런지 피곤해요.”성연을 가만히 살피던 무진이 다가가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성연의 관자놀이를 눌렀다.생각지도 못한 동작에 깜짝 놀란 성연이 다소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소파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무진 씨 위치의 사람도 이런 걸 할 수 있어요?”하, 하고 헛웃음을 지은 무진이 반문했다.“네 보기에 도대체 내가 어떤 위치인데?”그의 생각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다만 대상이 누구냐는 거지.그 대상이 성연이라면 안되는 게 뭐가 있겠는가?그는 개의치 않았다.“바로 강씨 집안의 실권자죠.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계셔서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요.”성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아주 거침없이.성연의 말을 듣던 무진은 순간 멍해졌다가 피식 웃었다.“네 마음속에서 날 그렇게 높게 평가했던 거였어?”성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이게 원래 사실이니까?”성연의 눈에 비록 양친이 모두 없다 해도 어쨌든 무진
흔들흔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나른하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무진의 안마로 신경이 풀리며 온몸이 노곤하니 졸렸다.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던 성연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무진에게 물었다.“무진 씨 상처는 어때요?”귀국한 후 무진은 일이 많아졌다.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성연은 매일 무진이 사골국 마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생각해 보니 한동안 무진에게 몸 상태를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무진은 손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거의 다 나았어.”성연은 썩 신뢰하지 않았다.무진은 요즘 과부하에 걸릴 정도로 일이 많았다.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날마다 쌓였다.이런 상황에서는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딜 것이 분명.성연은 원래 행동파였다.무진에게 속아 넘어 가느니 직접 보는 게 낫지.성연은 무진이 반응할 틈을 아예 주지 않았다.무진의 손을 꽉 잡은 채 소매를 끌어올렸다.성연은 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무진은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상처 부위 전체를 다 만져본 후 비로소 무진이 잘 회복되었음을 확인했다.“손대지 마.”거의 20여 년을 외롭게 지냈던 무진이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자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다.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명확했다.평소 그가 자랑하던 강한 의지도 성연 앞에서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깊이 빠져 있었다.자신이 무진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성연은 아직 잘 몰랐다.그래서 무진의 말을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든 생각은 무진이 자신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구나였다.그러니 미간을 찡그린 성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좋지 않을 밖에.“왜요? 나는 만지지도 못해요?”무진이 손대지 못하게 하자 기어코 손대려 하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그것도 모자라 아예 옷 자락을 젖히고 무진의 복근을 쓰다듬었다.매일 운동을 하는 무진이다 보니 복부에는 얄팍한 복근이 자리잡고 있었다.퍽 단단하게 만져지는 것이 감촉
잠시 멍하니 있던 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의 눈을 마주보았다.동시에 머리 밑의 느낌이 좀 이상한 것 같았다.성연은 뒤늦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성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재빨리 무진의 다리 위에 뉘였던 몸을 일으키며 손을 떼고는 도망치듯 뛰어갔다.‘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성연의 뒷모습을 보며 무진이 한숨을 쉬었다.곧바로 욕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욕실에서 나왔을 때 피부에는 찬기운이 가득했다.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생각했다.‘도대체 언제쯤 다 자랄지…….’조만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하루하루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느라진즉 피곤했던 성연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 아무 생각없이 잠이 들었다.무진이 얼마나 냉가슴만 끙끙 앓고 있는지 알 리가 전혀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토론대회의 날이 되었다.학교는 이번 시합을 강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다.학생들이 참관하는 데에도 동의했다.이번 대회의 관객들은 거진 모두 북성남고 학생들이었다.성연은 북성남고에서 늘 화제를 일으키는 인물이었으니까.그녀가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서 시끌벅적했다.동시에 모두 성연의 능력이 어떤지 보고 싶어했다.이번 토론대회가 비교적 중요하다고 생각한 학교는 강당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특별히 학생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강당 전체가 빼곡히 찬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성연은 아직도 교실에 앉아 있었다.대회는 아직 시작 전이었다. 성연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충분히 준비했지만 상대방의 수준이 어떤 지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전술에 따라 방법을 강구할 밖에.성연은 자료를 한 번 볼 생각이었다.선생님들이 준비를 위해 나가자 수업하는 반은 없었다. 학교의 온 교실들이 시끌시끌했다.잠시 자료를 보고 있던 성연은 누가 팔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짝인 주연정이 자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주연정에 대해 성연이 가진 인상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아주 단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