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고집부리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점이 오히려 무진을 좀 의아하게 했다.‘경제관리학, 그럼 다 볼 수 없는 서류가 있을 거야.’‘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해.’‘딱 봐도 성연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야.’특히 강운경은 성연에게 자신을 도우라고 했다.‘그녀가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어?’무진은 자신이 성연을 잘 알지 못하는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그러나 성연의 대답은 안금여를 매우 만족시켰다.성연을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과 성연 스스로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안금여는 성연이 정말 철이 들었다고 느꼈다.마음속으로 성연이 더욱 좋아졌다.안금여는 끊임없이 성연에게 요리를 집어주었다.“성연아, 너는 좀 많이 먹어야 해. 네가 마른 걸 봐.”자신의 그릇에 작은 산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성연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할머니, 됐어요. 됐어요. 조금만 더 하면 다 못 먹어요.”“이게 얼마나 된다고? 많이 먹어.” 안금여는 이상하게 계속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성연은 정말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결국 방금 적잖이 먹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 다만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느라 주의하지 않았을 뿐.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성연은 구조를 요청하는 눈빛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은 아무런 기색도 없이 성연의 그릇에서 반찬을 반으로 나누어 온 다음 자신이 천천히 그 음식들을 깨끗이 먹었다.동시에 입을 열어 도와주었다.“할머니, 성연이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직접 집을 줄 알아요. 할머니만 드세요.”“좋아.” 안금여는 유쾌하게 젓가락을 거두었다.그 두 사람의 작은 동작을 강운경은 옆에서 정말 똑똑히 보았다.‘무진이가 전에는 결벽증도 있었는데, 언제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있어?’그의 그런 결점이 성연이 앞에서는 전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친고모이지만 무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이거 벌써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강운경은 흥, 가볍게 코웃음을
토론대회의 일은 한창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요 며칠, 선생님의 질문 빈도와 학생들이 대답한 질문, 그리고 토론의 깊이를 살폈다.답변에 참가한 모든 학우들 가운데서 성연의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그녀는 각 선생님들의 투표로 ‘주변론자’로 뽑혔다.선생님들은 모두 성연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이윤하는 성연의 능력을 본 후 점차 성연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았다.성연에게도 좀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성연의 담임 선생님으로서, 만약 성연이 성공한다면 그녀도 따라서 덕을 보게 될 것이고, 상금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이윤하는 심지어 성연을 지도하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이윤하는 사람됨이 비록 좀 정이 없긴 하지만, 가르치는 역량은 매우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녀는 북성남고 토론대회의 예전 지도교사로서 많은 자료들을 비축하였고 또 적수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두 일일이 성연에게 가르쳐주었다.그녀가 이번 변론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이날, 수업하기 몇 분 전에, 이윤하는 성연을 교무실로 불렀다.이윤하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이번 토론대회에서 대략 다뤄질 내용인데, 어떤 것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아. 시간이 있으면 좀 더 뒤져 봐. 그때 가서 주제를 이해 못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그녀의 말투는 매우 평온했다. 심지어 약간의 칭찬도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학생을 대할 때 비로소 하는 것이다.사실 이윤하와 성연은 그들 두 사람이 그렇게 조화롭게 지낼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첨예하게 대립하지도, 냉소로 비웃지도 않고, 평범한 사제처럼 함께 지낸다.성연이 자료를 받았다.“네, 선생님 감사합니다.”요 며칠 지내면서, 성연도 사실 이윤하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앞서 자신에게도 잘못된 이 있었다.이윤하는 책임을 지는 선생님이다. 아마도 자신의 학습태도가 그다지 단정하지 않아서, 이윤하를 이렇게 혐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지금은 괜찮지 않아요?’이윤하는
성연은 원래 놀고 오자는 마음으로 토론대회에 참가했을 뿐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원래 참가할 생각도 없었고.그러나 성연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고, 그녀도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이윤하가 그녀에 대해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니 뭐라 하든 그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바로 학생으로서의 체험이라고 생각하자.’하교할 때 성연은 또 이윤하가 오전에 준 자료를 가지고 돌아갔다.오늘 밤은 게임을 하지 않고 이 자료들을 볼 계획이었다.교문에 도착했는데 진미선이 보였다.성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직접 진미선을 지나쳐 앞으로 가려고 했다.진미선이 그녀를 불렀다. “성연아.”성연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진 여사님, 무슨 일이세요?”이 소리를 듣고 진 여사는 심장이 약간 따갑다고 느꼈다.그녀는 마음속의 슬픔을 억누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성연아, 너를 보러 오고 싶었어.”성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고 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미선이 진심으로 그녀를 보러 왔다면 태양이 서쪽에서 떴을 것이다.그녀의 표정이 차갑다.“할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요, 여기서 나와 빙빙 돌지 않아도 돼요.”진미선은 고개를 저었다.“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냥…… 보고 싶어서, 널 보러 오고 싶었어.”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성연도 물어볼 것이 없다.고개를 돌려 막 가려고 하다가, 성연은 진미선의 팔에 멍이 든 것을 눈치챘다.여름이라 옷이 얇고 가볍다.진미선이 긴 소매를 입고 일부러 흔적을 가리려 해도, 성연은 시력이 좋았다.진미선의 이마에도 약간의 멍자국이 있다.푸르스름한 것이 좀 무서워 보일 정도다.얼굴도 많이 초췌해져서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예전처럼 그런 고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지금 이런 모습의 진미선은 엉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진미선은 확실히 잘 지내지 못한다.그녀의 몸에는 지금 상처투성이다.지난번에 제왕그룹과 합작해서 많
엄마 진미선이 지금 남편의 집에서 잘 지내지 못하고 있음을 성연도 알아차렸다.원래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성연이다.하지만 불현듯 임종 직전 남기신 외할머니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외할머니는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그러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한 차례 입술을 앙 다문 성연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몸의 상처는 어떻게 된 거예요?”성연의 말을 들은 진미선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꽁꽁 가린다고 가렸는데도 성연이 알아차린 것이다.곧장 정신을 차린 진미선은 황급히 상처 부위를 다시 가렸다.그리고 성연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성연은 말도 안되는 진미선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직접 묻는다고 진미선이 사실대로 인정할 리는 없을 터.항상 남들 눈을 의식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성연은 진미선의 팔을 잡아당기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자 육안으로 보이는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팔에 있는 더 큰 멍자국이 보였다.이미 시퍼렇게 부어오른 피멍 자국이 팔 전체에 퍼져 있는 형상이 무서워 보일 정도다.진미선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한 걸 보는 순간, 뜻밖에도 성연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화가 난 성연이 추궁하듯 물었다. “그 남자가 때린 거예요?”예전에는 아버지 송종철이야 말로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진미선에게 이처럼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그러나 진미선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했다. 그런데 손찌검을 당했다?당연히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않는가.재혼한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성연이 이미 눈으로 확인했지만, 진미선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 변명했다. “아니야.”왕대관은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단지 냉랭한 태도로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을 뿐.성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왕대관이 아니라면 왕씨 집안의 그 노친네겠군.’왕대관의 모친이 자신을
성연의 예리한 시선이 맞닿아오자 진미선은 버티기가 힘들었다.성연이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결국 난감해진 진미선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이번 방문 목적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회사에서 영향력 있는 제품 광고모델이 필요해. 그런데 요즘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야. 성연아, 네가 좀 엄마를 위해 방법을 찾아 줄 수 없을까?”이번 신제품을 위해 왕대관은 꽤 많은 투자를 했다.그러나 광고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진미선과 왕대관은 난관에 부딪쳤다.유명 모델이 아니고서는 제품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없을 터였다.하지만 최근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유명인들은 최소 몇 십억을 제시해야 섭외할 수 있었다.지금 그들의 능력으로는 그 많은 돈을 구할 재간이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성연을 통해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이다.진미선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성연은 단번에 알아들었다.진미선의 목적은 소지한이었다.성연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학생인 내가 무슨 모델을 알겠어요? 이번에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네요.”잠시 입을 벌린 채 벙긋거리던 진미선이 속셈을 드러냈다.“성연아, 너와 소지한…….”마침내 본심을 드러내는 진미선을 바라보며 성연이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소지한을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뭐라고 소지한을 알고 있겠어요?”성연은 정말 지긋지긋했다.결국 진미선은 또다시 자신을 이용 수단으로 취급했다.기분이 극도로 나빠졌다.진미선은 이를 악문 채 계속해서 말했다.“성연아,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 너라는 거 알아. 비록 내가 네 곁에 계속 있지는 않았지만 내 딸을 못 알아볼 리가 없지.”만약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오늘 성연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광고 방면의 일은 자신과 왕대관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줄을 놓아줄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한 거였다.그들 회사는 결코 크지 않았다. 협력도 주로 작은 업체들과 하다 보니 유명 연예인을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원래는 눈
입술을 꽉 다문 채 진미선에게 잡힌 손을 빼며 성연은 결국 도와주기로 했다.“좋아요, 내가 이번에는 외할머니를 봐서 당신을 도와주겠어요. 하지만 이것도 마지막이에요.”성연은 잠시 눈을 감고 속으로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자신은 절대 진미선에게 마음 약해지지 않으리라.그녀는 정말 너무 피곤했다.자신을 이용수단으로 여길 뿐인 진미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성연에게 있어서 진미선은 외할머니와의 관계를 빼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진미선이 얼굴에 기쁜 빛을 드러내며 성연의 손을 잡으려 다시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성연은 그 손을 피했다.진미선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마워, 성연아, 정말 고마워.”성연은 진미선에게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떠났다.진미선이 이러는 건 자신에 대한 성연의 감정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언젠가 감정이 밑바닥을 드러내는 날이 올 테지.하지만 성연이 생각하기에 진미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만 한다면 혈육의 정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결국 자신이 쓸모가 없다 싶으면 다시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 안달할 테고.성연은 가끔 스스로 비애감을 느꼈다.분명 자신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일 테지.그러나 언뜻 보아도 사실 자신은 가진 게 하나도 없었다.성연은 벽에 기대었다.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투정을 갈무리했다.감정을 모두 정리한 후 소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했다.성연의 말을 모두 들은 소지한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무슨 낯으로 너에게 부탁을 한단 말이야? 너 더 이상 그 사람들 상관하지 마.”소지한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절 들지 않았다.진미선 같은 사람을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성연이 진미선에게 어떤 푸대접을 받앗는지 알기에 더 돕고 싶지 않았다.성연처럼 좋은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자신을 위해 분개하는
마지막에 가서야 왕대관 회사의 신제품 광고모델 제의를 소지한이 받아들였다.그러나 진미선과 왕대관이 애가 닳도록 바로 연락을 주지 않고 일부러 며칠간 질질 끌었다.어차피 계약서에 사인도 안 한 상태, 단지 구두로 승낙했을 뿐이다. 물론 가긴 갈 테지만 진미선과 그 남편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면야 기분이 꽤나 좋을 것이다.그들도 아마 감히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할 터.집에 돌아온 성연은 꽤나 피곤한 기색이다.매번 진미선, 송종철을 만날 때면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느끼는 성연이다.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게 정말 귀찮고 짜증났다.기분이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그런 성연의 기색을 눈치 챈 무진이 먼저 다가와 관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성연은 진미선과 있었던 일을 무진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그녀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이런 속상한 일은 말해 봤자 속상한 사람만 더 늘어날 뿐.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눈을 반쯤 가늘게 뜬 성연이 소파에 기댄 채 말했다.“요즘 토론대회로 바빠서 그런지 피곤해요.”성연을 가만히 살피던 무진이 다가가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성연의 관자놀이를 눌렀다.생각지도 못한 동작에 깜짝 놀란 성연이 다소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소파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무진 씨 위치의 사람도 이런 걸 할 수 있어요?”하, 하고 헛웃음을 지은 무진이 반문했다.“네 보기에 도대체 내가 어떤 위치인데?”그의 생각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다만 대상이 누구냐는 거지.그 대상이 성연이라면 안되는 게 뭐가 있겠는가?그는 개의치 않았다.“바로 강씨 집안의 실권자죠.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계셔서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요.”성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아주 거침없이.성연의 말을 듣던 무진은 순간 멍해졌다가 피식 웃었다.“네 마음속에서 날 그렇게 높게 평가했던 거였어?”성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이게 원래 사실이니까?”성연의 눈에 비록 양친이 모두 없다 해도 어쨌든 무진
흔들흔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나른하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무진의 안마로 신경이 풀리며 온몸이 노곤하니 졸렸다.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던 성연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무진에게 물었다.“무진 씨 상처는 어때요?”귀국한 후 무진은 일이 많아졌다.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성연은 매일 무진이 사골국 마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생각해 보니 한동안 무진에게 몸 상태를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무진은 손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거의 다 나았어.”성연은 썩 신뢰하지 않았다.무진은 요즘 과부하에 걸릴 정도로 일이 많았다.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날마다 쌓였다.이런 상황에서는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딜 것이 분명.성연은 원래 행동파였다.무진에게 속아 넘어 가느니 직접 보는 게 낫지.성연은 무진이 반응할 틈을 아예 주지 않았다.무진의 손을 꽉 잡은 채 소매를 끌어올렸다.성연은 무진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무진은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상처 부위 전체를 다 만져본 후 비로소 무진이 잘 회복되었음을 확인했다.“손대지 마.”거의 20여 년을 외롭게 지냈던 무진이었다. 그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자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다.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명확했다.평소 그가 자랑하던 강한 의지도 성연 앞에서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깊이 빠져 있었다.자신이 무진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성연은 아직 잘 몰랐다.그래서 무진의 말을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든 생각은 무진이 자신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구나였다.그러니 미간을 찡그린 성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좋지 않을 밖에.“왜요? 나는 만지지도 못해요?”무진이 손대지 못하게 하자 기어코 손대려 하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그것도 모자라 아예 옷 자락을 젖히고 무진의 복근을 쓰다듬었다.매일 운동을 하는 무진이다 보니 복부에는 얄팍한 복근이 자리잡고 있었다.퍽 단단하게 만져지는 것이 감촉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