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생일 선물을 주러 왔어. 지난 번엔 촬영 때문에 직접 못 줬잖아. 그래서 지금 직접 건네주려고 바로 달려온 거야.”뒤자리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든 소지한이 성연에게 건넸다.애초에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소지한이 자신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선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성연이 케이스를 열어 보니 반짝이는 목걸이가 안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조명 아래에서 무수한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목걸이 뒤에는 성연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니 감촉이 좋았다.목걸이를 구경한 성연이 케이스와 함께 받아 든 채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마음에 들어.”메인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소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잘게 썰은 다음 성연의 앞에다 옮겨 주었다.“천만에. ‘오빠’ 라고 불러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성연은 편안한 마음으로 소지한의 서비스를 즐겼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치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있는 다람쥐 마냥.“음…… 다음 생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성연과 실랑이하지 않은 채 계속 스테이크를 썰어준다, 물을 따라준다 하며 바쁘게 식사 시중을 들던 소지한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성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도시로 돌아오니 어때? 적응은 됐어?”“뭐 그럭저럭. 그치만 시골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애.” 성연이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시끄러운 도시보다 평온한 시골을 더 좋아하는 성연이다. 시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었다.북성 시에 와서 못 볼 꼴을 너무 너무 많이 보았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밉상들이었다.소지한은 성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성연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소지한이 부드러운 음
성연과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에 무진은 일찍 퇴근하고 이제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하지만 돌아온 집 어디에서도 성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집사를 불러 물었다. “성연이는요?”집사가 고개를 저었다.“도련님, 저도 영문을 모르겠네요. 작은 사모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무진이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한창 소지한과 웃고 떠들고 있던 중이었다.테이블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리자 성연이 고개를 돌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성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하자 소지한이 물었다.“왜? 누구야?”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너 먹고 있어.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에 들어간 성연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는 것을 본 무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어디야?” 무진이 물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초조함이 짧은 한 마디에 묻어났다.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간다는 걸 무진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음을 상기했다.만약 무진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이 대답했다.“친구와 밥 먹고 있었어요.”무진의 음성이 곧장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내가 데리러 갈까?”차마 강무진 더러 데리러 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와서 소지한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설명할 지 난감하기도 하고.그녀 같은 일반인이 대스타와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니까.그러니 강무진이 모르게 하는 편이 좋았다.그러자 성연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거의 다 먹었어요.”“그래, 그럼 조심해서 들어와.” 무진 또한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성연이 손을 씻은 후 밖으로 나갔다.소지한은 서빙 직원에게 주스 두 잔을 다시 건네어 받았다.성연이 탄식하며 말했다.“나를 돼지처럼 살찌울 생각이야? 너는 스타잖아? 스
저녁을 다 먹은 후, 소지한은 성연과 헤어졌다.그러나 소지한과 함께 있는 성연의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혔다.그날 저녁, 뉴스, 인터넷 등의 머리기사는 모두 ‘소지한과 밀회를 즐긴 묘령의 여성’이었으며, 두 사람의 연애가 드러난 것으로 의심받았다.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수많은 팬과 네티즌들은 모두 소지한의 SNS에 글을 남겼다.[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나 실연당했어.]댓글 창의 메세지는 모두 이 한 줄로 도배되었다.그토록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여태 어떤 여자 스타와도 스캔들이 난 적이 없었던 소지한이었다.그러니 한 번 말이 나오니 모두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지난번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낸 소지한을 떠올린 팬들은 소지한 스스로 이 스캔들을 사실로 확증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진흙탕 속에서도 고고하고 깨끗했던 우리 오빠야.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오빠에게 손을 댄 거야? 도대체 누가?”팬들은 모두 눈이 헐도록 울고불고 난리였다.소지한이 여자친구가 없다면 팬들은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어느 누구도 그를 얻을 수 없으니 모두에게 공평한 셈.그러나 지금 누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들에게 떠든 것이다.오빠 부대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인터넷 사이트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기사로 도배되었다.사진 속의 소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흰색 맨투맨을 입은 채 옆모습만 살짝 드러낸 상태였다. 급하게 찍었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정확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집에 돌아온 성연은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진을 보았다.성연이 먼저 그에게 인사를 했다.“다음에는 밥 먹고 오게 되면 미리 말할게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그리고 성연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앞으로 나는 항상 집에 와서 밥을 먹을 거야.”원래 방에 갈 생각이었던 성연이 반쯤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무진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뭐 먹었죠?”무진이
손건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사모님이 어떻게 소지한을 알고 있을까요? 지난번에 소지한이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사모님은 아니겠지요? 마침 사모님 생일도 그날이었고요.”무진이 손한기의 휴대폰을 치웠다. 무진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보스?” 무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어디 불편한가 싶어 손건호가 물었다.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먼저 돌아가. 이 일은 당분간 할머님에게 알리지 말고.”“알았습니다.”대답한 손건호는 강씨 집안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한 틈을 타 안금여에게로 들어가는 정보를 통제했다.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곳 저택에도 안금여의 사람들이 있었다.집사도 가끔 불려가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이런 식으로 사람을 지켜보는 걸 무진은 극도로 싫어했다. 감시와 다를 바 없이 느껴져서.나중에야 할머니 안금여의 관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자신의 병만 아니었다면 안금여도 지나치게만 묻고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에게 아주 큰 개인 공간을 주었다.무진은 결국 이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머무는 걸 묵인했다.일이 있든 없든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식을 전할 것이다.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안금여가 송성연을 얼마나 아끼는지.그런 성연에 관한 정보니 반드시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알게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전해질 것이다.그래서 무진은 손건호에게 빨리 통제하란 지시를 내린 것이다.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그도 고민해야 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할머니 사람들을 깨끗이 정리할 것인지 말 것인지.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엇을 해도 불편할 터.무진이 안금여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다.그저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순한 불편감일 뿐.게다가 오늘 밤은 기분이 엄청 나쁜 터라 평소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 것들을 떠올리자 더 거슬린 것이다.서재가 휑뎅그렁했다.무진이 인터넷에 접속하자 자극적인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전체적인 실루엣으로 보면 잘 어울리는 두
무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니 성연은 이미 목욕을 끝내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참을성 있게 옆에서 기다리던 무진은 드라이기가 멈추자 입을 열었다.“오늘 어디 갔었어?”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말했잖아요?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아까 무진이 전화를 했을 때, 친구와 밥을 먹고 있다고 말했었다.‘그런데 지금 또 다시 묻는 건 뭐야? 강무진이 단기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거야? 아니면 뭐 때문인데?’무진이 다시 또 물었다. “어떤 친군데?”성연을 똑바로 쳐다보는 무진의 눈빛이 형형했다. 말투도 다소 거칠었다.성연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무진을 쳐다보았다. ‘저 말이 어째 좀 흉흉하게 들리는 건 왜지?’그러나 또 아무 생각 없이 설명했다.“예전에 알던 친구예요.”무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친구라면 조심해야지. 온통 기사로 시끄러워.”바로 이어서 휴대전화를 성연에게 건네주었다.깜짝 놀란 성연은 즉시 무진을 보았다. 그리고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차렸다.‘톱스타를 알고 지내는 이유를 설명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후대폰을 돌려받은 무진은 목욕을 하러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물어볼 뜻이 없다는 듯.하지만 성연은 무진이 여전히 화가 나 있음이 느껴졌다.게다가 그 화가 절대 가볍지 않은 느낌이다.그러나 성연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친구면 친구인 거지. 밥만 먹었을 뿐 별다른 것도 없었는데 뭘.’단지 소지한의 신분이 좀 특수한 것뿐이다.무진이 무슨 화를 저렇게 내는지 모르겠다.‘왜 남의 사생활까지 신경 써? 그런 법이 어딨어?’성연도 이유 모를 그의 화를 상대하기 귀찮았다.야식 거리를 찾아 주방으로 갔다.소지한과 저녁으로 많이 먹었는데도 왠지 또 위가 텅 빈 것 같았다.자꾸 뭔가 당겼다.그래서 주방으로 내려가 요기 거리를 찾았다.그러나 뜻밖에도 평소 일찍 쉬러 가던 집사가 오늘 저녁에는 가지 않고 있었다.집사에게 배고프다고 하소연한 성연.집사도 요리 솜씨가 꽤 좋았다. 그리고 성연의 평소 입맛을
야식을 먹은 후 방으로 돌아온 성연은 무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냥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잠을 잤다.일찍부터 졸렸던 성연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얌전하게 자는 성연의 얼굴을 보던 무진은 이가 근질근질했다.‘아니, 저 혼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거 아냐? 화를 냈는데도 눈꼽 만큼도 신경을 안 써?’무진이 다가가 성연의 얼굴을 꼬집었다.얼굴이 하얀 성연의 볼이 금세 붉어지는 것을 본 무진의 눈에 한순간 허탈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속의 답답함은 희한하게도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무진은 속으로 묵묵히 자신의 한계치를 하향 조정했다.성연이 내일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건다면 용서해야지,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성연의 반사신경이 뛰어난 편이지만, 그 남자에게 이런 뜻이 있다해도 성연은 모를 것이다.‘아마 진짜 친구이겠지.’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을 위로한 무진이 겨우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다음 날 아침.아침 식사 시간, 먼저 일어난 무진이 식탁 앞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눈이 자꾸 위층을 향하고 있으니, 눈치 빠른 사람들은 모두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터.하지만 어찌나 감쪽같이 위장을 했던지 집사와 비서 손건호도 모두 무진의 작은 동작들을 놓치고 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성연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평소처럼 성연이 자신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그런데 오늘 아침, 성연은 마치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앞을 쓰윽 지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투명인간 취급을 한 것이다.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았더라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한 무진이다. 그러나 성연은 아침식사 내내 무진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아니 도대체 누가 잘못했는데? 어떻게 자신과 성연의 입장이 바뀐 것 같지?’성연이 뜻밖에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화를 내는 거냐고?무진은 울화가 치밀며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답답했다.조만간 성연 때문에 화가 나 죽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아침을 다 먹고 입을 닦은 성연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성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무진은 비록 손건호의 말을 부인하였지만 회사에 있는 내내 얼굴색이 검은 물이 배어 나올 정도로 어두웠다.손건호는 무진의 곁을 지키기가 너무 조심스러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앞에 있는 경비실로 걸어갔을 때 경비원이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무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출근 시간에 핸드폰을 가지고 놀아? 이것이 WS그룹의 규정이야? 근무태만으로 인사고과에 반영하겠습니다!”무진의 호통을 들은 경비원이 아연실색을 했다. 그리고 얼른 휴대폰을 뒤로 숨기며 애원했다.“대표님, 대표님.”무진은 경비원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징계 조치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경비원은 망연히 자신의 뒤통수를 만졌다.‘평상시에는 대표님은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하필 내가 우리 마누라의 문자를 보려다가 걸릴 줄은 몰랐어.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대표님, 오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복도에 선 무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먼지가 내려 앉은 구석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회사에서 환경미화원 월급도 넉넉히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수준으로 청소를 하는 거지?”손건호는 구석에 떨어진 먼지를 슬쩍 쳐다보니 아마도 누군가 조심하지 않고 무의식으로 한 것 같았다. 손건호는 지금 함부로 남을 대신해서 말을 할 처지가 못되었다. 자신도 덩달아 트집 잡힐까 겁이 난 것이다.지금의 무진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지금 자기 보스는 작은 사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하다.그렇지 않으면, 보스도 사모님 때문에 기분이 이 지경까지 나쁘지 않을 테니까. 지금은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무진이 사무실로 들어갔고, 마침 누군가가 들어와 업무를 보고했다.그는 손에 든 서류를 뒤적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이것이 당신들 설계팀의 작품입니까? 왜 이번 달 실적이 지난달보다 떨어진 겁니까?”“대표님, 저희 실적은 1% 밖에 안 떨어졌어요. 그리고 이 설계도는…….”설계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무진을 보며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무
성연도 고민하고 있었다. 비록 뒷모습만 나왔을 뿐인데도 강무진이 바로 알아보았다.그러니 무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볼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특히 강운경과 안금여.만약 그들이 알았다면, 무진이 알게 된 것보다 분명 더 심각했을 것이다.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 소지한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정했다.성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소지한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있었다.“송상연, 무슨 일인데 나한테 전화할 생각을 다 한 거야?”옆에 있던 로드매니저가 소지한의 말투를 듣고 참지 못하고 흘깃 곁눈질을 했다.소지한이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상대방에게 친근한 반말을 하고 있어.’‘그리고 여자인 것 같은데.’밖에서 떠들고 있는 ‘소지한 여자친구’를 생각하던 로드매니저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이 일이 생겼을 때 회사는 즉시 소지한을 불렀다.소지한에게 물었지만 시종 사진속의 여자애의 신분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소지한은 톱스타이고 신분도 신비로워 회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모시고 있는 형편이다. 그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감히 강요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소지한의 통화를 듣고 있던 로드매니저의 마음은 온통 여러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다.그러나 소지한은 경계심이 강했다.사람들이 자신의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 그는 한적한 구석을 찾아 성연과 통화했다.성연이 직설적으로 말했다.[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언론에서 찾아오는 것은 더 싫어. 그 스캔들 너도 봤지? 네가 직접 해명해.]원래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댓글에 남겨진 그 사람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였다.성연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알았어.” 소지한은 성연이 싫어하는 일은 당연히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성연은 소지한과 한 두 마디 잡담을 더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통화가 끝난 뒤 소지한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로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