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연철이 떠난 뒤 진미선이 사무실로 돌아왔다.왕대관이 즉시 다가서며 물었다.“제왕그룹의 곽 대표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진미선이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진미선은, 성연이 소개해줬다고 설명했다.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전 곽연철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왕대관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 딸, 정말 능력 있는 아이야. 강씨 집안이 아니더라도 제왕그룹이라면 나쁘지 않아. 당신 어떻게 성연일 설득한 거야?”그날 집에 돌아온 진미선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어떻게 이야기되었냐고 물었을 때 진미선은 아예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잘 안된 거라고, 그래서 진미선이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진미선에게 이런 카드가 있었다니.“내가 걔 엄마예요.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요”진미선이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말했다.“당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앞으로 자신도 상류 사회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그리고 이제 회사는 제왕그룹의 도움으로 점점 더 커질 테고.그에 따라 자신도 영화를 누리게 될 테고.왕대관은 진미선을 끌어안으며 칭찬했다.“당신, 당신이 지금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일등공신이야. 이 개발 사업 건이 얼마짜리인지 알아. 떨어지는 이윤만 자그마치 60억이라고.”회사를 오랜 기간 경영해 왔지만, 지금까지 이처럼 큰 건을 맡은 적은 없었다.진미선의 두 눈이 커졌다.‘뭐, 60억? 그게 무슨 소리야?’하지만 꽤나 익숙한 듯이 보이기 위해 겉으로는 침착한 척 가장하며 말했다.“60억밖에 안되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요? 이제 제왕그룹이 있으니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질 텐데요.”“당신 말이 맞아. 제왕그룹과 제휴하게 되면 앞으로 우리 회사, 북성에서 점점 더 커지게 될 거야. 우리 신분도 따라서 높아질 거고.” 처음 진미선과 결혼했을 때는 자신이 좀 손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서쪽에서 해가 떴는지 시어머니가 이미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았다.진미선을 바라보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예전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와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해야 했다.그 기분,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운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진미선이 왕씨 집안으로 시집온 이래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이다.과연 쓸모 있느냐, 쓸모 없느냐에 따른 대우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평소와 달랐다. 맛난 것들은 전부 왕대관 앞에 쌓아 놓느라 진미선 앞에는 김치 접시만 있었는데.이제 진미선 앞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시어머니의 변화는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했다.생각해보니 왕대관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 엄마에게 이미 알려준 모양이었다.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이처럼 돌변한 것이다.밥을 먹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얘 아가.”그동안 뿌리 깊게 심어진 시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진미선이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네. 어머니.”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야 속으로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역시 자신은 어쩔 수가 없다고.지금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는데도 왜 아직도 시어머니에게 굽실거려야 하지?하지만 이미 대답한 이상 어쩔 수 없지.“대관이에게서 다 들었다. 그런 좋은 관계가 있다니 앞으로 잘 관리해서 남편을 내조하면 우리 왕씨 집안도 잘되고, 너도 복을 누리지 않겠니?” 왕대관의 모친은 처음부터 진미선이 싫었다.그러나 지금 어찌 되었든 진미선이 나름 힘을 쓴 셈이니, 좀 더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자신은 언젠가 아들보다 먼저 떠날 것이니, 진미선이 아들 왕대관을 도울 수 있다면 안심하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알았습니다, 어머니.” 시어머니의 말에 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리상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수긍의 빛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자신
점심 시간, 성연은 늘 하듯이 보건실에 가서 잠을 잤다.그녀가 보건실에 갈 때마다 서한기는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내놓았다.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보통은 주는 대로 먹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한 번 휙 보기만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서한기의 눈에 의혹의 빛이 들어찼다.“보스, 배고프지 않아요? 음식은 먹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것들이 당기지 않는 겁니까?”“벌써 먹었어.” 서한기의 수다를 듣고 싶지 않은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드셨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한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언제 드셨어요? 설마 아침을 말하는 건 아니죠?”“아니야. 방금 식당에서 먹고 왔어.” 서한기의 시끄러운 잔소리에 짜증이 난 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조금 전 수업이 끝났자,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함께 밥 먹으러 가자고 성연에게 왔다.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북성남고에 온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 식당에 가서 먹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승낙했던 것이다.귀족학교답게 학교 식당의 음식들이 다 괜찮았다.“식당요?” 서한기가 속으로 놀랐다. “보스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요?”성연이 눈을 치켜 뜨며 흘겼다.“왜? 나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안돼?”“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제 말은 보스가 워낙 귀한 신분이잖습니까? 그러니 식당 같은 곳과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한기가 얼른 변명을 했다.“네가 나에게 주문해 준 배달 음식이 식당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성연이 서한기를 비웃었다.서한기는 앞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쳐다보았다.‘아니, 배달 음식이 어때서? 최소 식당보다 종류는 더 다양하잖아.’‘요즘 배달 음식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但是这个人如果是自己的老大,那就正常了。‘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보스라면 말이 달라지지.’자신이 좀 찌질했음을 서한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어물 슬쩍 웃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직접 갈아입은 성연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원래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북성남고의 교복은 너무 눈에 띄었다.그렇다고 교복을 입고 소지한이랑 만날 순 없지 않은가?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갔다.소지한은 레스토랑 위층 전체를 예약해 두었다.여기서 내려다보면 북성 시 전체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촘촘히 이어진 조명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레스토랑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어 소지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워낙 알려진 소지한의 신분으로 인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식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제대로 식사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왔다.“송성연, 여기야.”성연의 뒤를 따르던 종업원이 소지한의 음성을 듣고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하, 한숨을 내쉰 성연이 멋쩍은 듯 코만 만지작거렸다.이렇게 큰 식당에 소지한 혼자 있었다.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는데 굳이 큰 소리로 부를 건 또 뭐란 말인가?‘소지한, 저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야?’성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청수한 얼굴의 소지한은 마치 예술조각 같이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화장을 지운 상태인데도 피부는 또 어찌나 깨끗한지.오늘 성연을 만나러 온다고 일부러 캐주얼한 차림을 해서인지 온몸 전체에서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소지한과는 여러 번 만났으니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은 저도 모르게 소지한의 얼굴에 잠시 넋이 나갔다. 사실 저 얼굴은 정말 치명적이다.과연 아시아 여성들의 ‘국민 남편’감 1순위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얼굴 하나만으로도 사람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성연은 곧바로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응대할 수 있었다.이미 다년간 친구로 지내왔는데, 새삼 저 얼굴에 미혹된다는 게 웃기지 않겠는가?소지한이 성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성연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송
“이 녀석.”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생일 선물을 주러 왔어. 지난 번엔 촬영 때문에 직접 못 줬잖아. 그래서 지금 직접 건네주려고 바로 달려온 거야.”뒤자리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든 소지한이 성연에게 건넸다.애초에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소지한이 자신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선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성연이 케이스를 열어 보니 반짝이는 목걸이가 안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조명 아래에서 무수한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목걸이 뒤에는 성연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니 감촉이 좋았다.목걸이를 구경한 성연이 케이스와 함께 받아 든 채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마음에 들어.”메인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소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잘게 썰은 다음 성연의 앞에다 옮겨 주었다.“천만에. ‘오빠’ 라고 불러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성연은 편안한 마음으로 소지한의 서비스를 즐겼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치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있는 다람쥐 마냥.“음…… 다음 생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성연과 실랑이하지 않은 채 계속 스테이크를 썰어준다, 물을 따라준다 하며 바쁘게 식사 시중을 들던 소지한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성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도시로 돌아오니 어때? 적응은 됐어?”“뭐 그럭저럭. 그치만 시골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애.” 성연이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시끄러운 도시보다 평온한 시골을 더 좋아하는 성연이다. 시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었다.북성 시에 와서 못 볼 꼴을 너무 너무 많이 보았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밉상들이었다.소지한은 성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성연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소지한이 부드러운 음
성연과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에 무진은 일찍 퇴근하고 이제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하지만 돌아온 집 어디에서도 성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집사를 불러 물었다. “성연이는요?”집사가 고개를 저었다.“도련님, 저도 영문을 모르겠네요. 작은 사모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무진이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한창 소지한과 웃고 떠들고 있던 중이었다.테이블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리자 성연이 고개를 돌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성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하자 소지한이 물었다.“왜? 누구야?”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너 먹고 있어.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에 들어간 성연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는 것을 본 무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어디야?” 무진이 물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초조함이 짧은 한 마디에 묻어났다.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간다는 걸 무진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음을 상기했다.만약 무진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이 대답했다.“친구와 밥 먹고 있었어요.”무진의 음성이 곧장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내가 데리러 갈까?”차마 강무진 더러 데리러 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와서 소지한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설명할 지 난감하기도 하고.그녀 같은 일반인이 대스타와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니까.그러니 강무진이 모르게 하는 편이 좋았다.그러자 성연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거의 다 먹었어요.”“그래, 그럼 조심해서 들어와.” 무진 또한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성연이 손을 씻은 후 밖으로 나갔다.소지한은 서빙 직원에게 주스 두 잔을 다시 건네어 받았다.성연이 탄식하며 말했다.“나를 돼지처럼 살찌울 생각이야? 너는 스타잖아? 스
저녁을 다 먹은 후, 소지한은 성연과 헤어졌다.그러나 소지한과 함께 있는 성연의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혔다.그날 저녁, 뉴스, 인터넷 등의 머리기사는 모두 ‘소지한과 밀회를 즐긴 묘령의 여성’이었으며, 두 사람의 연애가 드러난 것으로 의심받았다.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수많은 팬과 네티즌들은 모두 소지한의 SNS에 글을 남겼다.[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나 실연당했어.]댓글 창의 메세지는 모두 이 한 줄로 도배되었다.그토록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여태 어떤 여자 스타와도 스캔들이 난 적이 없었던 소지한이었다.그러니 한 번 말이 나오니 모두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지난번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낸 소지한을 떠올린 팬들은 소지한 스스로 이 스캔들을 사실로 확증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진흙탕 속에서도 고고하고 깨끗했던 우리 오빠야.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오빠에게 손을 댄 거야? 도대체 누가?”팬들은 모두 눈이 헐도록 울고불고 난리였다.소지한이 여자친구가 없다면 팬들은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어느 누구도 그를 얻을 수 없으니 모두에게 공평한 셈.그러나 지금 누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들에게 떠든 것이다.오빠 부대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인터넷 사이트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기사로 도배되었다.사진 속의 소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흰색 맨투맨을 입은 채 옆모습만 살짝 드러낸 상태였다. 급하게 찍었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정확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집에 돌아온 성연은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진을 보았다.성연이 먼저 그에게 인사를 했다.“다음에는 밥 먹고 오게 되면 미리 말할게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그리고 성연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앞으로 나는 항상 집에 와서 밥을 먹을 거야.”원래 방에 갈 생각이었던 성연이 반쯤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무진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뭐 먹었죠?”무진이
손건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사모님이 어떻게 소지한을 알고 있을까요? 지난번에 소지한이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사모님은 아니겠지요? 마침 사모님 생일도 그날이었고요.”무진이 손한기의 휴대폰을 치웠다. 무진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보스?” 무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어디 불편한가 싶어 손건호가 물었다.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먼저 돌아가. 이 일은 당분간 할머님에게 알리지 말고.”“알았습니다.”대답한 손건호는 강씨 집안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한 틈을 타 안금여에게로 들어가는 정보를 통제했다.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곳 저택에도 안금여의 사람들이 있었다.집사도 가끔 불려가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이런 식으로 사람을 지켜보는 걸 무진은 극도로 싫어했다. 감시와 다를 바 없이 느껴져서.나중에야 할머니 안금여의 관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자신의 병만 아니었다면 안금여도 지나치게만 묻고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에게 아주 큰 개인 공간을 주었다.무진은 결국 이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머무는 걸 묵인했다.일이 있든 없든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식을 전할 것이다.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안금여가 송성연을 얼마나 아끼는지.그런 성연에 관한 정보니 반드시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알게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전해질 것이다.그래서 무진은 손건호에게 빨리 통제하란 지시를 내린 것이다.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그도 고민해야 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할머니 사람들을 깨끗이 정리할 것인지 말 것인지.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엇을 해도 불편할 터.무진이 안금여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다.그저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순한 불편감일 뿐.게다가 오늘 밤은 기분이 엄청 나쁜 터라 평소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 것들을 떠올리자 더 거슬린 것이다.서재가 휑뎅그렁했다.무진이 인터넷에 접속하자 자극적인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전체적인 실루엣으로 보면 잘 어울리는 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