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서쪽에서 해가 떴는지 시어머니가 이미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았다.진미선을 바라보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예전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와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해야 했다.그 기분,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운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진미선이 왕씨 집안으로 시집온 이래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이다.과연 쓸모 있느냐, 쓸모 없느냐에 따른 대우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평소와 달랐다. 맛난 것들은 전부 왕대관 앞에 쌓아 놓느라 진미선 앞에는 김치 접시만 있었는데.이제 진미선 앞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시어머니의 변화는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했다.생각해보니 왕대관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 엄마에게 이미 알려준 모양이었다.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이처럼 돌변한 것이다.밥을 먹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얘 아가.”그동안 뿌리 깊게 심어진 시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진미선이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네. 어머니.”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야 속으로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역시 자신은 어쩔 수가 없다고.지금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는데도 왜 아직도 시어머니에게 굽실거려야 하지?하지만 이미 대답한 이상 어쩔 수 없지.“대관이에게서 다 들었다. 그런 좋은 관계가 있다니 앞으로 잘 관리해서 남편을 내조하면 우리 왕씨 집안도 잘되고, 너도 복을 누리지 않겠니?” 왕대관의 모친은 처음부터 진미선이 싫었다.그러나 지금 어찌 되었든 진미선이 나름 힘을 쓴 셈이니, 좀 더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자신은 언젠가 아들보다 먼저 떠날 것이니, 진미선이 아들 왕대관을 도울 수 있다면 안심하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알았습니다, 어머니.” 시어머니의 말에 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리상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수긍의 빛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자신
점심 시간, 성연은 늘 하듯이 보건실에 가서 잠을 잤다.그녀가 보건실에 갈 때마다 서한기는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내놓았다.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보통은 주는 대로 먹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한 번 휙 보기만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서한기의 눈에 의혹의 빛이 들어찼다.“보스, 배고프지 않아요? 음식은 먹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것들이 당기지 않는 겁니까?”“벌써 먹었어.” 서한기의 수다를 듣고 싶지 않은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드셨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한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언제 드셨어요? 설마 아침을 말하는 건 아니죠?”“아니야. 방금 식당에서 먹고 왔어.” 서한기의 시끄러운 잔소리에 짜증이 난 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조금 전 수업이 끝났자,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함께 밥 먹으러 가자고 성연에게 왔다.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북성남고에 온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 식당에 가서 먹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승낙했던 것이다.귀족학교답게 학교 식당의 음식들이 다 괜찮았다.“식당요?” 서한기가 속으로 놀랐다. “보스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요?”성연이 눈을 치켜 뜨며 흘겼다.“왜? 나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안돼?”“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제 말은 보스가 워낙 귀한 신분이잖습니까? 그러니 식당 같은 곳과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한기가 얼른 변명을 했다.“네가 나에게 주문해 준 배달 음식이 식당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성연이 서한기를 비웃었다.서한기는 앞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쳐다보았다.‘아니, 배달 음식이 어때서? 최소 식당보다 종류는 더 다양하잖아.’‘요즘 배달 음식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但是这个人如果是自己的老大,那就正常了。‘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보스라면 말이 달라지지.’자신이 좀 찌질했음을 서한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어물 슬쩍 웃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직접 갈아입은 성연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원래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북성남고의 교복은 너무 눈에 띄었다.그렇다고 교복을 입고 소지한이랑 만날 순 없지 않은가?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갔다.소지한은 레스토랑 위층 전체를 예약해 두었다.여기서 내려다보면 북성 시 전체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촘촘히 이어진 조명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레스토랑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어 소지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워낙 알려진 소지한의 신분으로 인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식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제대로 식사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왔다.“송성연, 여기야.”성연의 뒤를 따르던 종업원이 소지한의 음성을 듣고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하, 한숨을 내쉰 성연이 멋쩍은 듯 코만 만지작거렸다.이렇게 큰 식당에 소지한 혼자 있었다.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는데 굳이 큰 소리로 부를 건 또 뭐란 말인가?‘소지한, 저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야?’성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청수한 얼굴의 소지한은 마치 예술조각 같이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화장을 지운 상태인데도 피부는 또 어찌나 깨끗한지.오늘 성연을 만나러 온다고 일부러 캐주얼한 차림을 해서인지 온몸 전체에서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소지한과는 여러 번 만났으니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은 저도 모르게 소지한의 얼굴에 잠시 넋이 나갔다. 사실 저 얼굴은 정말 치명적이다.과연 아시아 여성들의 ‘국민 남편’감 1순위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얼굴 하나만으로도 사람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성연은 곧바로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응대할 수 있었다.이미 다년간 친구로 지내왔는데, 새삼 저 얼굴에 미혹된다는 게 웃기지 않겠는가?소지한이 성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성연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송
“이 녀석.”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생일 선물을 주러 왔어. 지난 번엔 촬영 때문에 직접 못 줬잖아. 그래서 지금 직접 건네주려고 바로 달려온 거야.”뒤자리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든 소지한이 성연에게 건넸다.애초에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소지한이 자신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선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성연이 케이스를 열어 보니 반짝이는 목걸이가 안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조명 아래에서 무수한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목걸이 뒤에는 성연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니 감촉이 좋았다.목걸이를 구경한 성연이 케이스와 함께 받아 든 채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마음에 들어.”메인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소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잘게 썰은 다음 성연의 앞에다 옮겨 주었다.“천만에. ‘오빠’ 라고 불러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성연은 편안한 마음으로 소지한의 서비스를 즐겼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치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있는 다람쥐 마냥.“음…… 다음 생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성연과 실랑이하지 않은 채 계속 스테이크를 썰어준다, 물을 따라준다 하며 바쁘게 식사 시중을 들던 소지한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성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도시로 돌아오니 어때? 적응은 됐어?”“뭐 그럭저럭. 그치만 시골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애.” 성연이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시끄러운 도시보다 평온한 시골을 더 좋아하는 성연이다. 시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었다.북성 시에 와서 못 볼 꼴을 너무 너무 많이 보았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밉상들이었다.소지한은 성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성연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소지한이 부드러운 음
성연과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에 무진은 일찍 퇴근하고 이제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하지만 돌아온 집 어디에서도 성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집사를 불러 물었다. “성연이는요?”집사가 고개를 저었다.“도련님, 저도 영문을 모르겠네요. 작은 사모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무진이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한창 소지한과 웃고 떠들고 있던 중이었다.테이블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리자 성연이 고개를 돌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성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하자 소지한이 물었다.“왜? 누구야?”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너 먹고 있어.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에 들어간 성연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는 것을 본 무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어디야?” 무진이 물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초조함이 짧은 한 마디에 묻어났다.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간다는 걸 무진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음을 상기했다.만약 무진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이 대답했다.“친구와 밥 먹고 있었어요.”무진의 음성이 곧장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내가 데리러 갈까?”차마 강무진 더러 데리러 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와서 소지한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설명할 지 난감하기도 하고.그녀 같은 일반인이 대스타와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니까.그러니 강무진이 모르게 하는 편이 좋았다.그러자 성연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거의 다 먹었어요.”“그래, 그럼 조심해서 들어와.” 무진 또한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성연이 손을 씻은 후 밖으로 나갔다.소지한은 서빙 직원에게 주스 두 잔을 다시 건네어 받았다.성연이 탄식하며 말했다.“나를 돼지처럼 살찌울 생각이야? 너는 스타잖아? 스
저녁을 다 먹은 후, 소지한은 성연과 헤어졌다.그러나 소지한과 함께 있는 성연의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혔다.그날 저녁, 뉴스, 인터넷 등의 머리기사는 모두 ‘소지한과 밀회를 즐긴 묘령의 여성’이었으며, 두 사람의 연애가 드러난 것으로 의심받았다.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수많은 팬과 네티즌들은 모두 소지한의 SNS에 글을 남겼다.[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나 실연당했어.]댓글 창의 메세지는 모두 이 한 줄로 도배되었다.그토록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여태 어떤 여자 스타와도 스캔들이 난 적이 없었던 소지한이었다.그러니 한 번 말이 나오니 모두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지난번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낸 소지한을 떠올린 팬들은 소지한 스스로 이 스캔들을 사실로 확증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진흙탕 속에서도 고고하고 깨끗했던 우리 오빠야.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 오빠에게 손을 댄 거야? 도대체 누가?”팬들은 모두 눈이 헐도록 울고불고 난리였다.소지한이 여자친구가 없다면 팬들은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어느 누구도 그를 얻을 수 없으니 모두에게 공평한 셈.그러나 지금 누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들에게 떠든 것이다.오빠 부대가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인터넷 사이트가 소지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기사로 도배되었다.사진 속의 소녀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흰색 맨투맨을 입은 채 옆모습만 살짝 드러낸 상태였다. 급하게 찍었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정확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집에 돌아온 성연은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진을 보았다.성연이 먼저 그에게 인사를 했다.“다음에는 밥 먹고 오게 되면 미리 말할게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그리고 성연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앞으로 나는 항상 집에 와서 밥을 먹을 거야.”원래 방에 갈 생각이었던 성연이 반쯤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무진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뭐 먹었죠?”무진이
손건호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사모님이 어떻게 소지한을 알고 있을까요? 지난번에 소지한이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사모님은 아니겠지요? 마침 사모님 생일도 그날이었고요.”무진이 손한기의 휴대폰을 치웠다. 무진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보스?” 무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어디 불편한가 싶어 손건호가 물었다.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먼저 돌아가. 이 일은 당분간 할머님에게 알리지 말고.”“알았습니다.”대답한 손건호는 강씨 집안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한 틈을 타 안금여에게로 들어가는 정보를 통제했다.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곳 저택에도 안금여의 사람들이 있었다.집사도 가끔 불려가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이런 식으로 사람을 지켜보는 걸 무진은 극도로 싫어했다. 감시와 다를 바 없이 느껴져서.나중에야 할머니 안금여의 관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자신의 병만 아니었다면 안금여도 지나치게만 묻고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에게 아주 큰 개인 공간을 주었다.무진은 결국 이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머무는 걸 묵인했다.일이 있든 없든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식을 전할 것이다.이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안금여가 송성연을 얼마나 아끼는지.그런 성연에 관한 정보니 반드시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알게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전해질 것이다.그래서 무진은 손건호에게 빨리 통제하란 지시를 내린 것이다.그러나 이 일을 겪으면서 그도 고민해야 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할머니 사람들을 깨끗이 정리할 것인지 말 것인지.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무엇을 해도 불편할 터.무진이 안금여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다.그저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순한 불편감일 뿐.게다가 오늘 밤은 기분이 엄청 나쁜 터라 평소 마음속의 응어리 같은 것들을 떠올리자 더 거슬린 것이다.서재가 휑뎅그렁했다.무진이 인터넷에 접속하자 자극적인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전체적인 실루엣으로 보면 잘 어울리는 두
무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니 성연은 이미 목욕을 끝내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참을성 있게 옆에서 기다리던 무진은 드라이기가 멈추자 입을 열었다.“오늘 어디 갔었어?”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말했잖아요?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아까 무진이 전화를 했을 때, 친구와 밥을 먹고 있다고 말했었다.‘그런데 지금 또 다시 묻는 건 뭐야? 강무진이 단기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거야? 아니면 뭐 때문인데?’무진이 다시 또 물었다. “어떤 친군데?”성연을 똑바로 쳐다보는 무진의 눈빛이 형형했다. 말투도 다소 거칠었다.성연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무진을 쳐다보았다. ‘저 말이 어째 좀 흉흉하게 들리는 건 왜지?’그러나 또 아무 생각 없이 설명했다.“예전에 알던 친구예요.”무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친구라면 조심해야지. 온통 기사로 시끄러워.”바로 이어서 휴대전화를 성연에게 건네주었다.깜짝 놀란 성연은 즉시 무진을 보았다. 그리고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차렸다.‘톱스타를 알고 지내는 이유를 설명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후대폰을 돌려받은 무진은 목욕을 하러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물어볼 뜻이 없다는 듯.하지만 성연은 무진이 여전히 화가 나 있음이 느껴졌다.게다가 그 화가 절대 가볍지 않은 느낌이다.그러나 성연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친구면 친구인 거지. 밥만 먹었을 뿐 별다른 것도 없었는데 뭘.’단지 소지한의 신분이 좀 특수한 것뿐이다.무진이 무슨 화를 저렇게 내는지 모르겠다.‘왜 남의 사생활까지 신경 써? 그런 법이 어딨어?’성연도 이유 모를 그의 화를 상대하기 귀찮았다.야식 거리를 찾아 주방으로 갔다.소지한과 저녁으로 많이 먹었는데도 왠지 또 위가 텅 빈 것 같았다.자꾸 뭔가 당겼다.그래서 주방으로 내려가 요기 거리를 찾았다.그러나 뜻밖에도 평소 일찍 쉬러 가던 집사가 오늘 저녁에는 가지 않고 있었다.집사에게 배고프다고 하소연한 성연.집사도 요리 솜씨가 꽤 좋았다. 그리고 성연의 평소 입맛을
성연은 무진에게 졸업식이 끝나면 바로 귀국할 거라고 말했다.하지만,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 내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의 졸업식이 어땠는지 전화해 보고 싶었다.‘성연이 약속한 사진도 보내지 않았어.’무진이 줄곧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무진은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성연이 내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여전히 학교에 있었어. 3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는 어디에도 갈수 없어.’무진은 성연을 걱정하느라 애가 탔다.망설이지 않고 바로 샤넬 가문에 전화를 걸어서, 성연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좀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무진도 즉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무진의 마음은 성연에 대한 미안함으로 몹시 혼란스러웠다.성연이 북성을 떠나 유럽으로 갔을 때 무진은 줄곧 불안했다.혹시나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그런데 지금 가장 걱정하던 일이 결국 발생했어.’‘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무진이 샤넬의 오빠와 통화할 때 샤넬과 목현수가 바로 옆에 있었다.오빠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것을 본 샤넬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미세스 송이 없어졌다는 거야.”샤넬의 오빠가 조용히 말했다.“어, 어떤 미세스 송인데요?” 샤넬은 한동안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목현수는 미세스 송이 바로 성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샤넬도 오빠에게 물어보았다.“성연이에요?”샤넬의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미세스 송이 갑자기 강 대표와 연락이 끊겼다고 해. 아무리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게다가 미세스 송이 예약한 항공편도 없어. 강 대표가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 쪽에 조사를 도와달라고 했어. 지금 강 대표는 이미 A국에서 유럽으로 오고 있어.”“그럼 빨리 움직여야지요.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요.” 샤넬은 바로 오빠에게 조사를 재
성연이 좀 피로해졌을 때 캐서린이 밖에서 들어왔다.손에는 긴 채찍을 들고 있었다.채찍에는 미늘들이 박혀 있었다.캐서린은 두말없이 바로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말 안 할 거야?”채찍에 박힌 미늘들이 성연의 몸에 바로 핏자국을 남겼다.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었다.고통에 신음 소리를 낸 성연이 캐서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몰라.”“아직도 주둥이만 살아가지고.”캐서린이 말하면서 또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성연의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아파서, 이미 어디가 더 아픈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고통을 꾹 참는 성연의 모습을 보고 캐서린이 웃었다.손에 든 채찍을 가늠하는 한편 웃으면서 말했다.“당당한 아수라문의 보스가 이제는 내 포로가 되었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캐서린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자, 성연은 고개를 쳐들고 캐서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그 순간, 캐서린은 뜻밖에도 성연의 눈빛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그러나 성연의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어쨌든 성연의 머리카락은 놓아주었다.힘없이 고개를 숙인 성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절대 캐서린을 가만히 두지 않겠어.’“네 충성스러운 개들이 모두 우리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말해봐. 만약 네 부하들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리석게도 희생을 겁내지 않고 널 구하러 올까?”캐서린은 느물거리면서 말했다.“그러면 안 돼!” 성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내 부하들은 내가 잘 알아.’‘내가 캐서린에게 납치된 걸 알게 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구하러 올 거야.’성연은 몇 년 전의 참극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실혼전 사람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야.’‘차라리 내가 희생되더라도 나를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죽게 만들 수는 없어.’캐서린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부하들을 신경 쓰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 지금 아수라문에서는 너 혼자만 내게 쓸모가 있어. 다른 자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원래 송성연을 몰래 여기다 잡아
성연의 흥분한 기색을 본 캐서린이 웃었다.“미스 송, 넌 지금 나한테 잡혔어. 그렇게 사납게 굴지 마.”캐서린을 노려보는 성연의 눈빛은 짙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당연히 네가 쓸모가 있으니까 널 데려왔지. 아니면 내가 너를 왜 데리고 왔겠어?”캐서린은 우리에 갇힌 맹수 같은 성연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이제 송성연은 내 손에 떨어졌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어.’“그냥 바로 말해, 구태여 빙빙 돌릴 필요가 있어?” 성연은 캐서린의 손에 떨어졌어도 여전히 굴복하지 않았다.“좋아, 좋아. 나는 이런 네 모습을 감상하려는 거야.” 박수를 치면서 다가간 캐서린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고학중은 도대체 어디에 있어? 그때 청혈진주는 도대체 어디에 숨겼지?”성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네가 찾아와서 나한테 스승님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했잖아? 이제는 나한테 반문하는 거야?”캐서린이 질문에 대해서 성연은 알지 못했다.심지어 청혈진주가 뭔지도 잘 몰랐다.성연은 스승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스승님의 행방은 더욱 몰랐다.성연은 스승이 위험에 처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좋아하는 제자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성연의 이런 행동을 본 캐서린은 성연이 꼴에 자존심만 세다고 생각했다.‘송성연은 고학중의 제자인데, 어떻게 스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수 있어?’캐서린이 손끝으로 성연의 뺨을 가볍게 그었다.“미스 송, 나는 미녀를 아끼는 사람이야. 눈치껏 행동하라고 충고할게. 그렇지 않으면 이따가 고생할 거야.”마치 독사가 성연의 뺨을 핥는 듯한 캐서린의 행동에 성연은 정말 반감이 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전혀 피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이 하는 대로 당해야 하는 이런 기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필 성연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내가 예전에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나한테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너를
가는 도중에 성연은 침묵한 채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여자를 따라서 한 장원에 도착했다.성연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여자가 성연에게 뭔가 뿌리자 바로 온몸에 힘이 없어졌다.성연은 자신을 묶는 여자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당,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성연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서 아주 미약했다.여자가 자신에게 뿌린 약은 연골산과 비슷한 약이었다.성연은 발버둥치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지금 이 순간, 성연은 비로소 속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목표는 아마도 성연 자신이었을 것이다.방금까지 위선적이었던 가면을 벗은 여자의 얼굴은 차갑고 표독스러웠다.“나를 잊었어? 미스 송은 정말 건망증이 심하네.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 캐서린은 손을 뻗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성연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면서 웃는 캐서린의 눈가에 어두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성연은 여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나를 잡았으니 이유라도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성연이 물었다.캐서린이 냉소하며 말했다.“애초부터 너를 노렸지만 뜻밖에도 네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어. 이제야 겨우 내가 기회를 잡게 된 거야.”성연은 여자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이 여자는 정말 전혀 기억이 없어.’‘게다가 나는 아예 이 여자를 모르는데.’성연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자 캐서린은 더욱 화가 났다.‘내가 기억하는 걸 왜 송성연은 모두 잊어버린 거야?’캐서린의 마음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나는 캐서린이야! 아직 기억하고 있어?”캐서린은 성연을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은 고개를 저었다.“기억이 나지 않아.”화가 난 캐서린은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좋아, 아주 좋아.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캐서린은 성연을 억지로 장원의 지하실로 끌고 갔다.어두컴컴한 이곳은 주위에서 습하고 썩는 냄새가 났다.캐서린은 성연을 지하실의 유일한 의자에
졸업식이 끝난 후 성연의 유럽에서의 학업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귀국 준비를 하려고 기숙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성연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아주 아름답고 젊은 서양 여자였다.“당신이 송성연 씨인가요?” 젊은 여자가 물었다.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 있는 여자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었다.어디서 봤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나 이 사람은 성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성연은 예의상 웃으며 말했다.“전데요, 무슨 일이신가요?”“중요한 일이 있어서 미스 송을 어디로 좀 초대해서 상의하고 싶은데요?” 여자가 성연을 초대했다.성연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누구도 쉽게 믿지 않았다.‘게다가 이 여자와는 처음 만났을 뿐이야.’‘어떻게 처음 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어?’‘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상의할 수 있단 말이야?’“아니요, 저는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해요.”성연의 말투가 싸늘해졌다.성연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여자는 입술을 가리면서 가볍게 웃었다.“송성연 씨, 미리부터 성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당신의 이름부터 말해야 하지 않나요?” 성연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송성연 씨 당신이 줄곧 고학중 씨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당신의 스승님이지요? 내가 너에게 말한다면, 나와 함께 가겠다고 대답할 건가요?” 여자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성연에게 가장 중요한 걸 자신이 가지고 있기에, 성연이 거절할 거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의 이름을 듣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흥분해서 여자의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당신이 정말 제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나요?”성연은 힘이 세서 여자가 좀 아플 정도로 세게 잡았다.그래도 여자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미스 송이 알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가야 합니다.”손을 놓은 성연은 반신반의하면서 여자
성연이 학교로 가는 날, 무진은 직접 성연을 공항으로 데려다 주었다.두 사람은 이별을 아쉬워했다.그러나 성연은 결국 가야만 했다.한참동안 포옹을 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자 성연은 비행기에 올랐다.유럽에 간 뒤 반년 동안 성연은 남은 과정을 이수했다.곧 졸업식이 다가왔다.저녁에 기숙사에서 무진과 통화했다.[느낌이 어때?]” 무진이 물었다.[내일이 졸업식인데 긴장돼?]“괜찮아요, 정상적으로 졸업하는 거라서 긴장되지는 않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했다.[미안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무진의 눈빛에는 미안한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다.원래 성연의 졸업식에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기다렸다.성연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다.그러나 급한 일이 생겨서 무진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어쩔 수 없이 성연이를 서운하게 만들었어.’“괜찮아요. 무진 씨 일이 바쁜 거 알아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성연은 졸업식이 그저 사진만 찍는 것이지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무진이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성연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럼 졸업식 끝나면 사진 보내줘.] 무진도 성연이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다.“알았어요. 무진 씨 혼자 집에서 일하는데 건강에도 주의해야 해요.”성연은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매번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았다.성연도 그렇게 큰 회사를 관리해봤기 때문이다.무진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더욱 잘 알 수 있었다.[알았어, 잘 자.] 무진은 성연에게 뽀뽀를 날린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졸업식이 곧 다가왔다.일단 강의실에 있으면서 학생들은 졸업 소감을 공유했다.그들의 지도교수도 바뀌었는데 지금의 지도교수는 아주 부드러운 유럽 여성이었다.단상에서 축사를 하던 지도교수가 갑자기 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송성연 학생이 이번에 학과에서 학점이 가장 높아요. 성연 양은 이에 대해서 미래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선물을 산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를 방문하러 본가로 갔다.두 사람이 선물을 들고 들어오는 걸 본 안금여가 탓하듯이 말했다.“나는 또 너희가 신혼여행에만 급급해서 이 할미는 잊어버린 줄 알았구나.”“할머니, 어떻게 할머니를 잊어버리겠어요.” 안금여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가간 성연은 안금여의 등을 안마해 주었다.안금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지만, 아주 기분 좋게 성연의 안마를 받아들였다.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는 바로 주방에서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다.‘이제야말로 내 집에 돌아왔어. 온갖 음식들이 전부 나를 위한 거야.’밥을 먹을 때 안금여는 줄곧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성연아, 많이 먹어야 해. 너는 너무 말랐어.”“할머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성연은 얼른 자신의 그릇을 감싸면서 말했다.안금여는 끊임없이 반찬을 집어주었고, 성연의 그릇에는 곧 한 무더기가 쌓이게 되었다.“괜찮아, 이렇게 말랐는데 많이 먹어야지.” 안금여는 그러고도 성연에게 반찬을 더 집어준 뒤에야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았다.성연은 이미 적잖은 간식을 먹고 온 터라, 지금은 정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바로 무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무진은 성연을 흘겨보더니 성연의 그릇에 쌓여 있는 반찬들을 자신에게 옮겼다.안금여의 눈앞에서 버젓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안금여는 무진이 이렇게 당당하게 성연을 비호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 이래야 해. 성연이는 무진이 아내니까 무진이가 성연이를 감싸는 것도 당연해.’“성연아, 무진아. 결혼식도 끝났는데 너희들은 계획이 있니? 신혼여행을 갈 생각은 없어?” 연로한 안금여는 잘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이 유행한다고 했다.“할머니, 저희는 안 갈 거예요.” 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성연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에게 아무런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하지만 성연이 신혼
결혼식이 끝난 후, 그래함과 유채연은 세계 일주 여행을 계속했다.유럽으로 돌아간 목현수와 샤넬은 유럽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했다.결국 그들의 친척 대부분은 유럽에 있기 때문이다.목현수는 샤넬의 친척들 생각도 좀 신경을 써야 했다.샤넬의 오빠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기에.성연은 두 사람이 비행하는 도중에 먹을 수 있게 직접 특산물을 준비했다.비행기가 이륙하자 무진의 품에 기댄 성연의 눈빛에는 어렴풋이 서글픈 기색이 비쳤다.“정말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제는 또 각자의 길을 가야 하네요.”“괜찮아. 보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자주 볼 수 있어. 그들도 자기만의 삶이 있잖아.” 두 사람이 같은 반지를 끼고 있어서 척 봐도 부부임을 알 수 있었다.“맞아요. 아마도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요.” 성연은 이번에 헤어져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모두 다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성연은 무진과 함께 차에 올랐다.돌아오는 길에 무진이 다정하게 물었다.“뭐 좀 먹을래?”요 며칠 성연은 줄곧 결혼식 일로 정말 말도 못하게 바빴다.집에 돌아오면 아무렇게나 식사를 해치운 뒤에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다.간식도 정말 맛이 없었다.“그럼 옆의 마트에 한번 구경하러 가요.” 성연은 정말 군침이 돌면서 입술을 핥았다.“그래.”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워둔 뒤 무진과 성연은 함께 마트로 들어갔다.마트에는 온갖 맛있는 간식들이 가득했다.성연은 좋아하는 간식이 보이는 족족 카트에 집어 넣었다.곧 간식이 한 무더기가 쌓였다.묵묵히 성연의 뒤를 따르던 무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성연이 고른 간식들을 몰래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성연은 자기가 카트에 넣었던 간식들이 어쩐지 갈수록 줄어든다고 느꼈다.고개를 돌린 뒤에야 무진이 하는 짓을 볼 수 있었다.눈썹을 찌푸린 성연은 수상쩍다는 듯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뭐 하는 거예요?”무진이 진지하게 말했다.“간식을 이렇게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아.”‘이 간식 더미가
저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진과 성연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지금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갈아 입지 않았다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연계진과 조수경의 모습을 발견했다.조수경은 알지만, 연계진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그러나 연계진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조수경이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서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눈썹을 찌푸린 무진의 모습은 분명히 그들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는 게 확실했다.무진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보고 성연이 물었다.“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무진은 성연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쨌든 술을 손님들께 술을 권해야겠네요. 자, 갑시다.” 그래함이 다가와서 무진과 목현수에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야.’‘술을 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무진이 술잔을 들고 술을 권하러 두 사람을 따라 갔다.성연이 무진의 소매를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마셔요.”‘무진 씨 위장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알았어.” 무진은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목현수와 그래함이 말했다.“성연아 걱정 마. 네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두 사람의 놀리는 말에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성연을 더 이상 농리지 않고 세 사람은 바로 손님들에게 갔다.곧 무진, 목현수와 그래함이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성연은 샤넬, 유채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유채연은 궁금한 듯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연이 미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