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식탁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계속 말했다.“그리고 고모님, 고모부님…….”강무진 또한 자신을 무척 아껴주지만 이런 상황에서 말을 꺼내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그도 이해해 줄 거야.’운경이 닭살 돋는다고 눈을 흘기며 말했다.“아부하지 마.”그러나 운경의 미간에는 웃음으로 인한 주름이 한 가득이었다. 운경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질책도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운경과 조승우는 자식이 없어 무진을 아들처럼 생각했다.그 당시 무진의 부모가 일찍 죽으며 어린 무진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압박감에도 어린 조카를 돌보며 회사 일에 매진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질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이제 와서 나이를 먹으니 더 이상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조승우도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그는 운경을 사랑하고 운경의 의견을 존중하며 모든 것을 그녀의 뜻에 따른다.아이가 없어도 그들은 잘 지내 왔으니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무진이도 좋은 아이니 앞으로 자신들에게 효도할 테고, 자신들의 노후도 잘 돌봐 줄 것이다.운경의 생각엔 별거 아니었다. 오빠의 아이도 당연히 자신의 아이인 것이다. 이미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녀 자신이 자식이 있나 없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모두들 이야기를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 가운데 저녁식사를 했다.그러면서 운경은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말투는 여전히 툭툭 쏘았다. 송성연을 힐끗 쳐다보던 운경이 말했다.“너 진짜 갈비처럼 말랐어. 많이 먹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모두 우리가 널 학대하는 줄 알겠다.”운경은 일관되게 이렇다. 입은 칼 같은데 마음은 두부처럼 연하다. 그릇에 있는 음식을 집어먹는 성연은 맛있게 먹기만 할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 성연을 쳐다보던 운경은 가끔 음식을 집어주며 마음을 드러냈다.성연은 속으로 혼자 미소지었다. ‘강씨 집안 식구들은 하나같이 성품이 좋다. 뭐라고 할까, 그래, 츤데레처럼.’언제나 생각을 속에 숨기고만 있다.시간이 너
무진이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참 다양한 인생들이고, 인성 또한 헤아리기 힘들지.”아마도 갓 아이를 임신했을 땐 즐거워했겠지. 하지만 나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기쁨이 사라져갔겠지. 생활의 어려움과 이기심에 의해 서서히 소멸되듯이.사람은 무능할 때 약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자식은 부모에게 가장 많이 의지하는 존재이.이로 인해 비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지.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성연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난 괜찮아요. 그래도 외할머니가 계셔서 사랑 받았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들도 많은 걸요. 정말 불쌍하게도.”의존자가 가해자가 됐을 때 아이는 반항할 방법이 없었다.마음속의 유일한 빛이 꺼질 때 또 마음은 얼마나 절망적일까?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고 많은 어려움과 어쩔 수 없음이 있다는 걸 스스로 경험하고서야 알게 된다.무진이 가볍게 턱을 문질렀다.“세상은 넓은 만큼 불행한 아이들도 많지. WS그룹 그룹은 최근 몇 년 동안 선천성 중증 질환에 대한 자선 사업을 포함해서 여러 복지원들을 지원해 왔어.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도 소용없더군. 모든 사람을 다 도울 수 없는 거야.”모처럼 무진이 한숨을 쉬었다.어쩔 수 없다. 보이는 부분이라도 도울 수밖에. 자신의 미약한 힘을 다해 변화시키려 노력할 밖에는.자신들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행한 일들이 발생한다.이것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다.무진은 복지관에서 한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어려서 부모님이 데리고 가셨다.자신이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는 아이들의 눈에서 얼마나 강렬한 갈망의 빛이 뿜어져 나오던지. 무진을 차마 바로 보기 힘들었다.그때, 그 아이들은 생각했겠지. 자신들의 부모님은 어디에 있는지, 왜 자신들을 버렸는지 말이다.부모님 돌아가신 후에도
성연은 여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마음속에 살아있는 동안 사회를 행복하게 하고 더 많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이 생각이 굳어진 후 성연의 마음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앞으로 언젠가는 여길 떠날 것이다.성연은 강씨 집안 가족들이 준 따뜻함에 연연해 하며 아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자신은 잘 지내게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으니까.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그저 희망일 뿐. 그녀의 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스승님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녀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것.빈부귀천 없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 속에서 살아갈 운명이다.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되돌릴 수 없다.강씨 집안 가족들은…….할머니와 고모가 저렇게 좋으신 분들이니 틀림없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며 성연의 생각들이 모두 정리되었다. 흩어진 긴 머리를 쓸어보니 이미 다 말랐다.성연은 하품을 한 번 한 뒤 강무진에게 말했다.“나 자러 갈래요. 졸려.” “우유 한 잔 마시고 자.” 무진이 한마디했다. “안 마셔요.” 성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강씨 집안의 우유는 아주 신선했다. 하지만 성연이 느끼기에 우유에는 항상 비린 맛이 나서 별로 즐기지 않았다.매번 무진과 안금여는 왜 그토록 우유를 마시라고 권하는지 모르겠다. “너는 아직도 몸이 더 자라야지…….”무진이 성연을 힐끗 보며 한 마디 더했다.“너무 작아.”성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화가 나서 무진의 곁으로 다가가 자신의 키와 비교했다. 성연은 거의 1미터 70센티미터였다. 반면 무진은 거의 1미터 90 이고. ‘도대체 이 사람은 뭘 먹고 이렇게 자란 거야.’잠시 비교해 보던 성연은 좀 충격을 받았다. ‘그래, 확실히 좀 작은 건 맞아.’ 매서운 눈초리로 무진을 쏘아 보았다.“마셔요. 마신다고!”말이 끝나자마자 거실로 간 성연은 냉
환한 조명 아래 가지런히 내려 뜬 속눈썹 아래 그늘이 지며 무진의 얼굴에서는 어떤 생각도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생각에 잠겼던 무진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이 저 여자애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음을.처음 만났을 때, 알았어야 했다. 이토록 특별한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함을.자신의 자제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송성연의 매력은 너무 과소평가했고.그러나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일 밖에. 그 뒷감당이야 나중 문제고.다음 날은 주말이라, 성연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다.고3 학생들은 모두 보충수업이 있었지만, 성연에게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었다.성연의 성적은 보충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미 시험을 통해 증명된 바.성연의 보충수업 불참에 대해 교장선생님이 묵인하자 다른 선생님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화창한 주말에 무진은 회사에 나갔다특별히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진 성연은 따로 보관해 두었던 생일선물을 모두 꺼내 오게 해서 확인하기 시작했다.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하나씩 뜯어보았다.하나같이 값나가는 선물들이었다. 휴대폰에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이 선물들의 대략적인 가격을 추산해보니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성연은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인 끝에 모든 선물들을 다 확인했다.그녀의 다리 주변에 온갖 비싼 물건들이 쌓였다.정원에서 돌아온 집사의 눈에 선물 더미에 파묻혀 있는 성연이 보였다.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집사가 조심스럽게 선물더미를 피해 성연에게 다가가 물었다.“사모님, 어떻게 하시려고요?”성연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모두 팔려고요.”성연의 말에 아연실색한 집사가 다시 물었다.“혹시 돈이 필요하십니까?”모두 생일연회에 참석했던 고위 인사들이 엄선한 선물들이었다.가격이 가장 저렴해 보이는 것만 해도 수천만 원은 되어 보인다. 판다면 무척 아까울 터.물론 돈이 부족하거나 따로 필요한 게 아니었다. 평소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 강
집사는 이 일을 무진에 보고했다.끝까지 보고를 들은 뒤 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성연이 받은 선물이었다. 선물을 처리할 권리도 그녀에게 있었고.그러니 무진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아이다.무진은 성연이 돈이 필요한가보다 하고 생각했다.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내내 게임을 하던 성연이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서 인터넷에 올린 선물들을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회신을 보내고 있었다.성연이 사진을 꽤 잘 찍었던 데다가 가격도 적당했다. 인터넷에 올린 후 문의와 주문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성연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물건을 팔아본 건 처음이었다.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 성연은 더욱 자신감을 가졌다.무진은 그녀 옆에 앉아 또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인터넷 직거래로 한창 바쁜 그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문서철 사이에서 미리 준비해 왔던 블랙카드를 꺼내어 성연에게 건넸다.한창 게임을 하느라 바쁘던 성연은 무언가 자신의 눈앞을 가리자 짜증이 났다. 고개를 치켜들고 눈앞의 문건을 똑바로 응시하던 성연이 순간 멍해서 물었다.“뭐예요?”눈앞에 내밀어진 블랙카드에 대해서는 성연도 알고 있었다. 전세계 어디서든 한도액 없이 사용 가능한 한정판 카드였다.엄청 까다로운 가입절차를 거친 극소수의 블랙 카드 소지자들은 세계 최고의 VVIP급 대우를 받았다.‘아니, 이 카드를 왜 내 앞에 들이미는 거야? 자랑하는 거야 뭐야?’하지만 다음 순간 무진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 놀랐다.“넣어 둬.”“네?” 성연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이 한정판 블랙카드를 강무진이 나한테 준다고?’‘강무진, 너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냐?’‘지난 번에는 바닷가 저택을 선물해서 자신을 놀래키더니, 이번엔 자신의 블랙카드를 준다고?’“자.” 성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무진이 다시 한 번 더 내밀었다.성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월요일, 성연이 올린 선물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다 팔렸다.판매 금액을 모두 은행계좌에 넣은 성연은 서한기를 찾아 보건실로 갔다.마침 배가 아픈 학생에게 서한기는 약을 처방해 주고 있었다.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바로 들어가지 않던 성연은 약을 처방받은 학생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갔다.약병을 정리한 서한기가 성연을 보더니 다소 놀라워하며 물었다.“보스, 어떻게 오셨습니까?”요즘 성연은 보통 수요일과 금요일에만 보건실을 찾았다.월요일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성연은 카드를 책상 위에 올린 후에 말했다.“여기에 들어있는 돈을 소원재단에 보내.”소원재단은 자선사업을 위해 성연이 설립한 것이다.고개를 끄덕인 서한기가 카드를 받았다.그런 뒤 놀리듯 물었다.“보스, 이 돈은 어디서 난 겁니까?”성연이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리셀 사이트에서 생일 선물 거래한 돈.”그제야 돈의 출처를 알게 된 서한기가 말했다.“뭐 이것도 어찌 보면 그 부자들을 위해 덕을 쌓는 셈이네요. 세상에 부자들도 많은데 왜 그렇게 많은 비극이 발생할까요?”“모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원조의 손길을 내미는 게 아니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그들의 의무도 아니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거지 뭐.”자신이 그렇게 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부자들의 돈도 그냥 그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원하면 주는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슨 평등이니 불평등이니 할 것도 없었다.“하긴. 근데 보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팔았는데 강씨 집안에서 아무 말도 안 해요?”강씨 집안은 백 년을 이어온 명문세가였다. 서한기가 볼 때, 그런 집안들에는 이런저런 규정들이 분명 엄청 많을 텐데 말이다.강씨 집안에 들어간 성연이 여러모로 괴롭힘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 달리 괜찮은 건가?사람들이 준 선물을 성연이 이렇게 처리해 버렸으니.느낌이 좀 안 좋았다.“별말 없었어. 팔 건 다 팔았는데. 그 많
저녁 무렵 수업이 끝나자 성연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골목에서 잠시 기다리게 했다.그리고 진미선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러 나오라고 했다.성연의 전화를 받은 진미선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성연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마침 남편 왕대관이 곁에 있었다.남편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그것 봐. 내 생각이 맞았지? 성연이 마음에는 여전히 당신의 ‘엄마’라는 존재가 있는 거야.”또한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던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약간 떨리고 있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뭘 어떻게 해? 당연히 만나러 나가야지. 내가 저녁에 회식이 있어서 당신을 데리고 갈 수가 없어. 좀 침착하게 잘해.” 왕대관이 진미선의 어깨를 두드렸다.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알았어요.”늦게 가면 성연이 짜증을 낼까 걱정된 진미선이 얼른 옷을 갈아입고 성연의 학교 옆에 있는 까페로 갔다.까페에 도착했을 때, 성연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여전히 어찌해야 좋을 지 어색해하며 진미선이 성연을 불렀다.“성연아.”성연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데, 약간 나른한 표정이다.“앉으세요.”진미선이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자 성연이 종업원을 불러 음료수를 주문했다.“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전화로 해도 돼. 귀찮게 일부러 여기서 나를 기다릴 필요 없이 말이야.” 현재 성연의 신분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인 만큼 자연히 성연을 살살 달래며 구슬려야 했다.“당신이 강씨 집안 고택에 찾아갔다고 들었어요. 원하는 게 뭐예요?”성연의 말투가 상당히 차가웠다.진미선은 자신이 찾아간 일을 안금여가 성연에게 알릴 줄은 몰랐다.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진미선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성연아, 네 엄마로서 네가 강씨 집안에 시집간 것을 알게 된 이상 당연히 방문해서 인사해야지.”성연이 한쪽 입술 꼬리를 치켜 올린 채 조소했다.“여기 우리 두 사람밖에 없으니, 굳이 나한테까지 진
하고자 했던 말을 마친 성연은 더 이상 까페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책가방을 들고 돌아갈 생각이었다.꼭 해야 할 말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전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진미선이 좀 더 자신을 제대로 알았다면, 조금만 더 양심이 있었다면 다시 따지고 들지 않았을 터.성연을 쳐다본 진미성이 재빨리 성연 곁으로 걸어가 손을 잡고 간청했다.“성연아, 너 지금 능력이 있잖니? 엄마가 부탁할게. 널 키워 주신 네 외할머니를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좀 도와주렴. 내가 왕씨 집안에서 입지를 좀 다지도록 말이다.”진미선을 쳐다보던 성연은 생각했다.‘어쩜 이젠 자기 감정 숨기는 것도 귀찮은 모양이지?’마음속에 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어쩌면 진짜 혈연관계에서 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성연은 늘 스스로 그딴 거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처럼 이익 수단으로만 여기는 진미선과 마주하고 있으니 그녀 역시 마음 한 켠이 선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저도 모르게 진미선에게 자신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을 도구로 여기는 것 외에 진미선에게 털끝 만한 모녀의 정이 남아 있기라도 할까?‘뭐, 그래도 괜찮아.’진미선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이상, 자신도 그녀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후 성연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더라도 지나치다 할 수 없었다. 진미선과는 더더욱 관계없고.그냥, 자신을 낳아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지 뭐.성연이 잠시 눈을 감았다. 결국엔 마음을 모질게 먹지 못했다.성연이 눈을 떴을 때, 이미 평정심을 되찾은 후였다.진미선을 응시한 채 말했다.“강씨 집안은 포기하세요. 대신 제왕그룹을 소개해 드리죠. 단 이번 한 번뿐이에요!”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인정을 받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진미선의 일이다.이 정도까지 해 준 것으로 이미 계산이 끝난 셈이다.어릴 적 모녀의 정 같은 건 조금도 없이 딸을 버리고 가버린 진미선에 비하면 자신은 훨씬 관대하지 않은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