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투약한 다음 날 아침, 안금여가 깨어났다.서서히 눈을 뜨며 깜빡거렸다. 흐릿했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며 청명해졌다.“엄마, 깼어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 운경은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안금여의 상태를 확인하며 바라보았다.딸의 목소리를 들은 안금여가 고개를 돌려 딸을 한 번 보았다.“괜찮아.”깨어난 안금여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했다. 이제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흥분한 운경은 어쩔 줄을 몰라 손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그럼 엄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딸을 알아본 표정을 지은 안금여가 기대에 찬 운경에게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 딸을 내가 못 알아볼까 그래?”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운경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금여의 손을 붙잡았다.“엄마, 엄마, 절 알아보시는 거예요. 못 일어 나실까 걱정했어요.”안금여가 운경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이 아이들 모두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효심을 다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마음이 뿌듯함으로 충만했다. 모두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었다.할머니가 회복된 것을 확인하자 운경의 뒤에 서 있던 무진의 미간이 서서히 풀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오래 동안 노력하는 건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만, 다 큰 애가 울면 어떻게 하니? 무진이도 있는데 나중에 창피해서 어쩌려고 그래.” 살짝 핀잔을 준 안금여가 휴지를 꺼내 운경에게 건넸다.“엄마, 그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드디어 일어나셨으니 한시름 놓았어요.”운경이 눈물을 닦자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회사에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쳤어도, 무진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흔들림 없었던 그때보다 더 힘든 시간들이었다.하지만 그 힘든 날들을 모두 견뎌냈다.가까스로 긴장을 풀 수 있게 된 운경은 이제부터라도 엄마가 여생을 평안히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랬다.‘한평생 힘들게 사셨으니 이제라도 잘 돌보아 드려야지.’“아이고, 아직도 울 게 더 남았어?”
“감사하실 필요 없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인 걸요.” 할머니의 감사인사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보답을 받은 기분이었다.안금여 또한 자신에게 무척 잘해 주지 않았는가. 그런 안금여의 선의에 보답하고 싶었을 뿐.부드러운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던 안금여가 운경을 쳐다보고는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나지막한 음성으로 꾸짖었다.“운경아, 너는 하루 종일 이것저것 의심하느라 피곤하지도 않아. 나를 이렇게 열심히 돌본 성연이한테 그렇게 밖에 말을 못해? 정말 한심하구나?”운경이 입을 열어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확실히 그녀의 말의 좀 독단적이긴 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성연이 나쁜 마음을 먹었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나.운경이 말을 못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성연이 입을 열었다.“할머님, 고모님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고모님도 할머님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걸요. 제가 좀 신중하지 행동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미리 고모님에게 이런 치료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 했었는데 오해가 좀 있었어요. 고모님이 말 한 게 모두 맞아요.”안금여는 이미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성연은 이전의 일을 왈가불가 따지고 싶지 않았다.앞으로 좀 더 강씨 집안에서 지내야 하니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가 있고 싶지 않았다.그리 대범한 편은 아니지만 몇 번을 생각한 끝에 운경을 위해 말을 거들기로 판단한 것이다.반대로 운경은 성연이 자신을 거들어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심지어 무진조차 자신을 탓하고 있었는데 말이다.그런데 외려 성연이 도량이 넓고 옹졸하지 않았다.성연이 자신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엄마가 깨어났으니 분명 운경 자신에 대해 일러바칠 거라고 생각했었다.하긴 자신이 사소한 일을 확대시킨 점도 있어 엄마가 뭐라고 말해도 듣기만 하던 참이었다.하지만 성연이 이 아이가 지금 이처럼 도량이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운경은 성연을 좀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성연아, 미안해 방금 말을 실수했어. 내가
안금여가 좋아지자 강상철과 강상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화가 나 이마에 핏줄이 섰으며 온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 강상철이 찻잔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으며 호통을 쳤다.“애초에 회장님이 절대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않았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요즘 정말 하는 일마다 순조롭지 않았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강일헌도 믿기지 않는지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일을 위해 1억이나 써가며 공들였는데, 후회가 밀려왔다.“할아버지, 애초에 그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절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었어요. 그리고 설사 회복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빠르게 회복지는 몸한다고요.”약을 주기 전에 자신에게 약의 효과에 대해 얼마나 허풍을 떨었냔 말이다.자기들 연구소의 아주 대단한 성과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 없을 거라고 하더니. 강일헌은 지금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해독 할 수 없기는 개뿔! 일주일도 안 돼서 해독이 되었잖아? 내가 그 새끼 허튼소리에 속아 넘어가다니!’“그럼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 할 건데. 회장님이 회복되셨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야?” 강상철은 화가 나서 목소리마저 음산했다.강일헌은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수 십년 동안 할아버지가 이처럼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강상규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형님, 이 일은 일헌이 탓이 아닙니다. 일헌도 우리를 도와 일을 잘 하려고 한 거고요. 일헌이 이런 것에 대해 잘 몰라 속은 것 같네요. 그 놈은 분명 사기꾼일 겁니다.”“하루 종일 멍청한 짓이나 하고, 사람 하나도 제대로 못 알아보고 사기나 당하고. 이것 밖에 못해?” 강상철이 온몸을 떨어가며 화를 냈다.‘큰 집이 비어있는 틈을 이용해 철저히 준비했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형님, 회장님 정말 괜찮은게 맞을까요? 저는 그들이 회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유언비어를 퍼뜨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정말 치매에 걸렸던 형수 안금여가 그런대로 효과 있는 약 때문에 조금
강일헌은 머리를 써서 그 약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다.이전에 그에게 약을 줬던 왕명식에게 전화해서 그 약이 아주 유용하다며 다시 큰 거래를 하고 싶다는 말로 불러 내었다.예상대로 1시간 후에 왕명식이 클럽에 나타났다.화가 난 강일헌이 재빠르게 다가가 팔로 목을 조인 채 뒤로 끌고 갔다.왕명식이 곧 소리를 질렀다.“뭐야, 왜 그래, 강일헌? 무슨 일인데 그래? 놓고 말해. 나랑 거래하겠다면서? 날 죽일거야?”강일헌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를 룸안으로 끌고 들어 갔다.그런데 룸 안에는 강상철과 강상규가 같이 앉아 있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들어 보려고 같이 온 것이다.룸에 도착하자 강일헌이 손을 풀었다. 몰래 강일헌에게 욕설을 퍼부으려던 왕명식의 눈에 자리에 단정히 앉은 두 노인이 보였다.강씨 가문의 강상철과 강상규는 큰형인 강상중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명성이 자자했다.북성에서 누가 그들을 모르겠는가?그들이 뒤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 뿐. 당연히 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다행히 방금 욕설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왕명식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다.앞으로 다가간 왕명식이 비위를 맞추며 웃었다. “강상철 사장님, 강상규 사장님, 안녕하세요.”그의 공손한 태도에 강상철과 강상규의 마음이 좀 풀렸다.“안 본 사이에 철이 들었구나.”“과찬이십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왕명식이 웃으며 말하자, 순간, 강상철의 안색이 바로 변했다.“무릎 꿇어!”“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왕명신은 일이 갑자기 왜 이런 험악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무릎을 꿇으라면 꿇어야지. 묻는 말에 대답 잘해.” 강일헌이 뒤에서 그의 어깨를 눌렀다.앞에 있는 두 어르신을 보면서 왕명식의 마음이 가라앉았다.‘일 얘기면 일 얘기지, 왜 굳이 무릎까지 꿇으라고 그래?’그러나 왕명식은 내색 없이 반쯤 무릎을 꿇었다.
안금여가 정신을 회복한 후, 성연은 할 일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지며 예전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히 게으른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었다.그리고 때마침 성연의 18세 생일 겸 성인식이 다가오고 있었다.성연은 안금여의 눈에 들어 아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성인식은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축하해주는 중요한 날이니 만큼 당연히 소홀히 할 수 없는 날이기도 했다.지금 집에는 운경과 안금여 두 사람만 있었다.죽을 다 먹은 안금여가 운경에게 말했다.“성연의 성인식이 곧 다가 오지 않니? 융성하게 치러 줘야지. 그 아이를 서운하게 해서는 안돼.”그때 성인식을 하는 김에 성연의 신분도 발표할 생각이었다.진작 마음속으로 성연을 손자며느리로 인정한 안금여이다.운경이 질투하는 척 투덜거리며 말했다.“엄마, 성연이 그 애가 그렇게 좋아요? 나한테는 그렇게 잘해주지도 않으면서.”“너 좀 부끄러운 줄 알거라. 넌 어른이야. 성연이가 너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아. 성연이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날 돌보았는데도 넌 그 애한테 어떻게 했니? 애를 오해해서 서운하게 하지 않았니? 이번에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너 앞으로 성연이를 볼 낯이나 있겠니?” 안금여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자신의 손자 며느리인 성연의 신분은 자연히 비할 데 없이 귀했다.‘이번 성인식을 통해 외부에도 성연의 얼굴도 알려야지.’‘어느 누구도 함부로 성연을 대하지 못하도록 말이야.’만약 누구든 강씨 가문의 사람으로 약정된 성연에게 무슨 짓이든 하려 할 땐 반드시 자신의 힘부터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엄마는 그래서 내가 사과했잖아요?” 안금여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훈계를 들은 운경이 당황했다.자기 보다 한참 어린 아이 때문에 한참이나 꾸지람을 듣게 되자, 정말 창피했다.“네가 성연에게 한 말들이, 가벼운 사과 몇 마디로 넘어갈 수 있겠니? 성연이 속이 깊으니까 별말 안 했지. 난 그리 쉽게 용서해 줄 생각 없어.” 안금여가 딸을 노려보
연구할 필요도 없어진 데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성연은 보건실 쪽으로 잘 가지 않았다.가끔씩 가서 잠만 잘 뿐이었다.서한기가 준비해 준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운 성연은 온통 부드러운 구름 속에 빠진 듯 편안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다른 방면에서는 별다른 요구가 없는 성연이지만 잠자는 장소만큼은 반드시 편안한 곳을 고집했다.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성연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바로 잠이었다.서한기는 의자에 기대어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단톡 방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채팅 내용을 보던 서한기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나른하게 누웠 있던 성연이 눈꺼풀을 들어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고 있는 거야?”난데없는 성연의 질문에 서한기가 깜짝 놀랐다.가볍게 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성연 앞으로 다가가 눈을 찡긋거렸다.“보스, 잊었어요? 보스 곧 열 여덟 살이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조직 멤버들이 단톡 방에 모여 보스를 위한 생일파티를 상의하고 있었어요.”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성연의 리더십은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수하들 대부분이 성연에게 은혜를 입고 기꺼이 그녀의 곁을 따르는 이들이었다.겉으로는 상사와 부하의 관계이지만, 사실 친구라 해도 무방했다.성연이 내리는 지시를 어느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따랐다.성연이 하품을 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이제 곧 18세였지만 평소에 맞는 생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기대하는 바도 딱히 없었다.외할머니가 계실 때면 미역국 한 그릇을 끓여 주시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외할머니가 안 계시니 생일을 보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성연의 조직 ‘아수라문’의 멤버들은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로 유명한데, 그들이 자신의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상상하자 눈 앞이 깜깜해졌다. ‘현명한 결정이 아닌 것 같은데?’성연이 강하게 거부했다.“필요 없어. 자기 일들이나 잘 하라고 그래. 하루 종일 빈둥거릴 생각은 말라 그래.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의 생일날이 다가왔다.안금여는 퇴원했다. 옷장 안에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치마 아래에 금박이 붙은 자주색 한복을 꺼내 입었다. 병원에서 휴양하고 있는 동안 많이 좋아진 혈색 탓에 자주색 한복을 입으니 더 품격 있고 우아해 보였다.상당히 정성 들여 곱게 치장했다.고택 내부의 대형 홀을 개방하여 연회장으로 꾸몄다. 북성 거물들은 모두 연회에 초대했다.초대받은 이들 모두 북성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었다.고급세단들이 길가에서부터 고택 입구까지 줄지어 늘어섰다.고택 뒤를 둘러싼 일대 전체가 강씨 가문 소유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주차장, 개인 영역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 주변이 모두 개인 소유이니 마음대로 주차한들 아무도 관여할 수 없었다.강씨 가문의 고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곳으로, 원래는 고풍스러운 한옥 저택이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동서양의 건축 스타일을 결합시켜 아름다운 오늘의 고택이 된 것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눈이 즐거워졌다.강씨 집안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에만 초대장을 보내 사람들을 고택으로 초대했다.그만큼 안금여가 성연의 성인식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었다.연회장은 운경이 직접 꾸몄다.매일 시간을 내서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며.안금여가 계속 신경 쓰라 다그치기도 했지만 운경 자신도 한 점 실수 없이 성연의 성인식을 준비하고 싶었다.어쨌든 성인식은 한 아이의 일생에 정말 중요한 날이기도 하니까.성연이 치렁치렁한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은 운경이 사진 견본을 안금여에게 보여주며 상의하기도 했다.안금여는 소녀라면 당연히 몽환적인 핑크색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경에게 연회장을 온통 핑크색으로 장식하라 일렀다.하지만 운경의 의견은 정반대였다.성연은 평범한 여자애들과 달리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운경과 안금여의 의견이 엇갈리며 이 때문에 하마터면 싸울 뻔하기도 했다.물론 안금여가 일방적으로 화내는 것이었지만.
불현듯 어떤 예감이 든 성연이 입을 열어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등이 우르르 달려들어 성연을 끌어다 의자에 앉혔다.얼른 일어나려 하는데 큼직한 손이 성연의 작은 어깨를 덮었다.“왜 일어나?”이어 무진의 음성이 들리자 성연이 입을 삐죽였다.“이거 뭐예요?”“오늘 네 열 여덟 성인식이 있을 거야. 스타일링 끝나면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자.”담담하게 들리는 음성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뭍은 듯하다고 느껴졌다.성연의 예쁜 얼굴이 온통 짜증났음을 감추지 않았다.“필요 없다고 했잖아요?”“할머니 의견이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물론 무진은 막지 않았지만,지금 완전히 오리발 내미는 격이었다.무진의 말에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두 거절했을 테지만, 할머니 안금여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할머니가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거니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일이 있으면 전화해. 밖에 나가 있을게.” 무진이 밖으로 나갔다.성연은 의자에 앉아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얼굴을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작은 사모님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베이스는 가볍게 해도 되겠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성연의 깨끗한 피부를 보고 부러워했다.메이크업을 업으로 하는 프로들이니 얼마나 다양한 피부를 봐 왔겠는가.대부분 화장을 지우고 나면 피부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성연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피부를 가진 것이다.한 번 터치했을 뿐인데 감촉이 하도 좋아 손에서 떼고 싶지가 않았다.메이크업 팀은 오기 전에 이미 성연의 신분에 대해 들었다.성연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모두 들었고.저택에서 열리고 있는 연회의 성대함을 그들도 눈으로 본 바였다.그러니 성연이 얼마나 아낌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터. 성연의 얼굴에서 손을 놀리는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러웠다.하지만 성연의 나이가 이렇게 어리다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작은 사모님, 평소에 어떻
원피스로 갈아입은 예민주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영롱한 몸매를 좌우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볼수록 입가의 미소가 커졌다.‘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어떤 남자든 나를 한번 보기만 하면 다시 보고 싶어서 참지 못했지.’예민주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유럽의 재벌 2세들과 명문가의 젊은이들, 어떤 조직의 거물급 인사들도 예민주를 만나기만 하면 고백하고 싶어할 수밖에 없었다.예민주의 짙은 남색 눈동자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유럽 혈통일 거라고 오해하게 만들었다.그리고 예민주도 이를 이용할 줄 알게 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를 이용했다.마치 지금 예민주가 문을 열자, 자신의 미모에 놀란 서한기가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지금 예민주의 몸에는 아주 좋은 향이 감돌았다. 이 향은 남성을 매혹시키는 작용을 한다.예민주는 성연과 차를 마시려는 게 아니라 무진의 식사 자리에 참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모님께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차를 마시자고 하셔!”눈빛을 거두면서 서한기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책망했다. 예민주를 본 후부터 욕망 통제의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것 같았다.‘이건 이전의 엄격하고 맹렬했던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아.’“그래요, 한기 오빠! 몇 년 동안 언니 곁에 있었어요?” 예민주가 갑자기 물었다.“10년 이상 됐지!” 서한기는 조금도 꺼리지 않고 대답했다.“그럼 한기 오빠가 정말 고생이 많네요! 언니에게 충성하느라.”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몹시 화가 났다.‘내 부하들은 모두 예전에 아버지가 병환에서 구해준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이 성연의 명령을 듣는 건 아버지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야.’‘은혜를 갚아야 할 대상은 분명히 나야. 어쨌든 송성연은 아니라고!’“가요!” 예민주가 갑자기 서한기의 눈앞으로 손을 내밀었다.서한기는 어리둥절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건 나보고 부축하라는 뜻인가?’“한기 오빠, 이건 유럽식 예절이예요! 계단을 내려갈 때는 여자를 부축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면 내가
저녁에 손건호는 벤틀리에 탄 채 무진이 타기를 기다렸다.연회 장소는 무진이 정했다. 7명의 임원들은 이미 고급 한식집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물론 무진이 이 식사 자리를 만든 것은 임원들을 만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도대체 어떤 신비한 조직에 속아서 유럽으로 갔는지 더 많이 알고 싶었다.‘이 7명이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모두가 동시에 당했을까?’2층, 침실 입구에서 성연은 남편의 의상 코디를 도와주고 있을 때 무진이 물었다.“정말 같이 가지 않겠어?”성연은 고개를 저었다.“정말 괜찮아요! 분명히 또 당신들끼리 사업 얘기를 하고 술을 마실 텐데요. 여자 혼자 가면 심시하기만 해요, 또 당신도 신경을 써야 하니 귀찮을 테고 얼마나 안 좋아요!”“안 귀찮아. 그 식당 음식이 정말 맛있는데 같이 먹지?” 무진이 씩 웃으면서 손을 뻗어 성연의 얼굴을 건드렸다.손끝에 마치 끝없는 부드러움을 감고 있는 듯했다. 성연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모두 이렇게 완벽하고 예쁘다고 느꼈다!남편의 손가락이 마치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성연의 뺨이 붉어졌지만, 마음은 더욱 달콤하기만 했다.“정말 됐어요! 다음에 당신이 나하고 같이 가요. 나는 집에서 푹 쉬면서, 사매와 함께 있을 게요.” “오늘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하면서 잊고 있던 기억들을 생각나게 했는데, 사매의 감정이 무너질까 봐 걱정이 돼요!”성연은 결혼식 이후 예전처럼 감성적이지 않았다. 이미 어린 소녀가 아니라 예비 엄마이다. 그래서 자연히 더욱 사리에 밝아졌다.“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어. 술은 많이 안 마시겠다고 약속할게!” 다짐하던 무진이 갑자기 머리를 들이대더니 아내의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를 했다.성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한 번 쳐다보더니 바로 흘겨보면서 말했다.“봐 봐요. 립스틱이 다 찍혔잖아요! 이렇게 하고서 위엄도 하나도 없이 어떻게 그 임원들을 만나겠어요? 고개 숙여봐요. 내가 닦아줄게!”무진이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이자, 성연
예민주가 한 말은 조금도 거짓말 같지 않았다.다만 자세한 내용들을 많이 숨겼을 뿐이다. 더군다나 예민주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다.예씨 가문이 그때 몰락하면서 형식상으로는 붕괴되었다 해도 여전히 거대한 부를 남겼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생활은 전혀 궁핍하지 않았다.반대로 오랫동안 호사스러운 생활을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다.이밖에 예중천은 또 일부 사람들을 남겨주었는데 모두 아주 무게감이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WS그룹의 이 7명의 고위 임원들처럼.이 7명은 원래 예씨 가문에 속했던 사람들로 예중천과 무진의 아버지는 과거에 복잡한 원한이 얽혀 있었다. 결국 예씨 가문이 몰락한 뒤 예중천은 이들 7명을 강씨 가문에 집어넣은 것이다.그래서 예민주는 수시로 그들에게 지시할 수 있었다. 예씨 가문에서 필요하면 무조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마지막 상속자인 예민주는 사실상 가문을 되살리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예민주가 원하는 건 시종일관 무진 한 사람이다.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 뒤 한참을 침묵하던 무진, 성연과 목현수 세 사람은 온화한 표정으로 예민주를 위로했다.“저는 괜찮아요, 사형, 언니, 무진 오빠, 고마워요!”완벽하게 잘 대처했기에 이제 예민주는 당당하게 무진의 곁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성연아, 송성연! 네가 정말 좋은 언니라면 남편을 내게 보내! 그래야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목현수는 예민주에게 물었다.“만약 네가 원한다면 유럽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나와 샤넬이 반드시 사매를 도와줄게.”“사형, 호의에 감사드려요! 저는 당분간은 국내에 머물고 싶어요. 엄마가 그 세 명의 원수가 우리 가족을 망치게 했다고 말씀하셨거든요.”“엄마의 후반생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들었으니 제가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해요! 그래서 국내에 남아서 천천히 조사하려고요!”예민주는 성연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언니, 제가 당분간 언니 집에 머물러도 괜찮을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