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할 필요도 없어진 데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성연은 보건실 쪽으로 잘 가지 않았다.가끔씩 가서 잠만 잘 뿐이었다.서한기가 준비해 준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운 성연은 온통 부드러운 구름 속에 빠진 듯 편안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다른 방면에서는 별다른 요구가 없는 성연이지만 잠자는 장소만큼은 반드시 편안한 곳을 고집했다.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제외하고 성연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바로 잠이었다.서한기는 의자에 기대어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단톡 방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채팅 내용을 보던 서한기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나른하게 누웠 있던 성연이 눈꺼풀을 들어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고 있는 거야?”난데없는 성연의 질문에 서한기가 깜짝 놀랐다.가볍게 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성연 앞으로 다가가 눈을 찡긋거렸다.“보스, 잊었어요? 보스 곧 열 여덟 살이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조직 멤버들이 단톡 방에 모여 보스를 위한 생일파티를 상의하고 있었어요.”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성연의 리더십은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수하들 대부분이 성연에게 은혜를 입고 기꺼이 그녀의 곁을 따르는 이들이었다.겉으로는 상사와 부하의 관계이지만, 사실 친구라 해도 무방했다.성연이 내리는 지시를 어느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따랐다.성연이 하품을 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이제 곧 18세였지만 평소에 맞는 생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기대하는 바도 딱히 없었다.외할머니가 계실 때면 미역국 한 그릇을 끓여 주시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외할머니가 안 계시니 생일을 보낼 기분도 들지 않았다.성연의 조직 ‘아수라문’의 멤버들은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로 유명한데, 그들이 자신의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상상하자 눈 앞이 깜깜해졌다. ‘현명한 결정이 아닌 것 같은데?’성연이 강하게 거부했다.“필요 없어. 자기 일들이나 잘 하라고 그래. 하루 종일 빈둥거릴 생각은 말라 그래.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연의 생일날이 다가왔다.안금여는 퇴원했다. 옷장 안에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치마 아래에 금박이 붙은 자주색 한복을 꺼내 입었다. 병원에서 휴양하고 있는 동안 많이 좋아진 혈색 탓에 자주색 한복을 입으니 더 품격 있고 우아해 보였다.상당히 정성 들여 곱게 치장했다.고택 내부의 대형 홀을 개방하여 연회장으로 꾸몄다. 북성 거물들은 모두 연회에 초대했다.초대받은 이들 모두 북성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었다.고급세단들이 길가에서부터 고택 입구까지 줄지어 늘어섰다.고택 뒤를 둘러싼 일대 전체가 강씨 가문 소유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주차장, 개인 영역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 주변이 모두 개인 소유이니 마음대로 주차한들 아무도 관여할 수 없었다.강씨 가문의 고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곳으로, 원래는 고풍스러운 한옥 저택이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동서양의 건축 스타일을 결합시켜 아름다운 오늘의 고택이 된 것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눈이 즐거워졌다.강씨 집안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에만 초대장을 보내 사람들을 고택으로 초대했다.그만큼 안금여가 성연의 성인식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었다.연회장은 운경이 직접 꾸몄다.매일 시간을 내서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며.안금여가 계속 신경 쓰라 다그치기도 했지만 운경 자신도 한 점 실수 없이 성연의 성인식을 준비하고 싶었다.어쨌든 성인식은 한 아이의 일생에 정말 중요한 날이기도 하니까.성연이 치렁치렁한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은 운경이 사진 견본을 안금여에게 보여주며 상의하기도 했다.안금여는 소녀라면 당연히 몽환적인 핑크색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경에게 연회장을 온통 핑크색으로 장식하라 일렀다.하지만 운경의 의견은 정반대였다.성연은 평범한 여자애들과 달리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운경과 안금여의 의견이 엇갈리며 이 때문에 하마터면 싸울 뻔하기도 했다.물론 안금여가 일방적으로 화내는 것이었지만.
불현듯 어떤 예감이 든 성연이 입을 열어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등이 우르르 달려들어 성연을 끌어다 의자에 앉혔다.얼른 일어나려 하는데 큼직한 손이 성연의 작은 어깨를 덮었다.“왜 일어나?”이어 무진의 음성이 들리자 성연이 입을 삐죽였다.“이거 뭐예요?”“오늘 네 열 여덟 성인식이 있을 거야. 스타일링 끝나면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자.”담담하게 들리는 음성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뭍은 듯하다고 느껴졌다.성연의 예쁜 얼굴이 온통 짜증났음을 감추지 않았다.“필요 없다고 했잖아요?”“할머니 의견이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물론 무진은 막지 않았지만,지금 완전히 오리발 내미는 격이었다.무진의 말에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두 거절했을 테지만, 할머니 안금여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으니까.할머니가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 거니까.“이 스타일리스트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일이 있으면 전화해. 밖에 나가 있을게.” 무진이 밖으로 나갔다.성연은 의자에 앉아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얼굴을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작은 사모님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베이스는 가볍게 해도 되겠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성연의 깨끗한 피부를 보고 부러워했다.메이크업을 업으로 하는 프로들이니 얼마나 다양한 피부를 봐 왔겠는가.대부분 화장을 지우고 나면 피부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성연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피부를 가진 것이다.한 번 터치했을 뿐인데 감촉이 하도 좋아 손에서 떼고 싶지가 않았다.메이크업 팀은 오기 전에 이미 성연의 신분에 대해 들었다.성연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모두 들었고.저택에서 열리고 있는 연회의 성대함을 그들도 눈으로 본 바였다.그러니 성연이 얼마나 아낌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터. 성연의 얼굴에서 손을 놀리는 하나하나가 무척 조심스러웠다.하지만 성연의 나이가 이렇게 어리다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작은 사모님, 평소에 어떻
무료하게 의자에 기대 앉은 성연은 요구에 따라 눈을 감았다, 떴다가 또 입술을 오므렸다.아직 좀 더 자야 정신이 맑아질 터인데, 지금 자신의 주변에서 왔다갔다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잘 수도 없었다.생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성연이었다. 정말 이런 거창함은 원하지 않았다.‘성인이면 성인이지, 그냥 생일 지내듯 하면 안되나?’그러나 안금여가 자신을 위해 이렇듯 성대한 성인식을 마음대로 준비해 주니, 자신이 이 집에서 소중한 존재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안금여는 정말로 송성연 자신을 마음에 담았다.이미 성연을 위해 여러 벌의 예복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는 성연의 화장이 끝나자 예복들을 옷장에서 모두 꺼내 보였다.“작은 사모님,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세요.”다양한 색상의 예복들이 대충 열 벌 정도 되어 보였다.가까이 걸어간 성연이 예복을 만져 보았다.옷의 촉감이 무척 좋은 것이 모두 수제품일 터.바느질 처리와 디자인 모두 최상급으로 강씨 집안 가족들이 무척 신경 썼음이 분명했다.안금여의 각별한 마음을 헛되게 할 수 없어서 성연은 예복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마지막으로 은백색의 예복을 골라 피팅 룸 안에 들어가 갈아입었다.그러자 스타일리스트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벌어졌다. 저도 모르게 칭찬이 나왔다.“작은 사모님, 안목이 정말 뛰어나시네요.”성연이 고른 이 예복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연에게 가장 잘 어울렸다.“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빼놓지 않은 성연이 다시 의자에 앉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다가와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헤어스타일링을 하는 동안은 얼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다.강씨 집안이 부른 스타일링 팀이니 함부로 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성연의 새카만 머리카락은 실크처럼 매끄럽고 광택이 흐르며 부드러웠다.와, 이런 머리카락을 스타일링 할 수 있다니, 라며 스타일리스트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나중에 다시 헤어스타일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장차 일
전화를 끊은 후 밖으로 나간 성연이 의자에 앉아 호기심에 다이버에 들어갔다.헤드라인을 장식한 건 한 동영상이었다. 호기심에 동영상을 켰다.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배우 소지한이 카메라 앞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오늘, 중요한 사람의 생일입니다. 여기 마이크를 빌어 그녀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고 싶습니다.”소지헌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인물이었다.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각종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휩쓸었다.영상이든 광고든 그가 찍은 것들은 하나같이 뛰어났고,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그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빈자리 없이 꽉 찼으며 때로 표를 사지 못할 때도 있었다.소지한은 또 고아하기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타락의 온상지, 연예계에서도 그 어떤 스캔들 하나 없었다.그래서 팬들로부터 ‘금욕의 남신’으로 불리기도 했다.화면에 보이는 잘 생긴 남자를 보며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때 옆에서 마지막 스타일링 작업을 마무리하던 스타일리스트가 휴대폰 화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혹시 소지한 씨 좋아하세요?”성연이 멀뚱멀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뭐 그런 대로요. 그냥 클릭하니까 보이네요.”“아, 그런가요?” 스타일리스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의 스타일링을 모두 마치자 왔을 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바로 분장실을 나갔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성연은 휴대폰 화면에 뜬 인터뷰 영상을 계속 보았다.평소 소지한은 친근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했다.그 또한 누구에게도 호감을 드러내지 않았고.그런데 지금 이런 폭탄 같은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누가 그렇게 운이 좋은 거야?’‘소지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관계가 나쁘지 않을 텐데.’큰 뉴스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얼른 물었다.“소지한 씨가 언급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유럽 굴지의 총재 그래함은 이름 없는 별 하나를 사서 어떤 신비에 싸인 사람의 이름으로 명명하고는 또 공중에 드론을 띄워 ‘생일축하’라는 글자를 그렸다.세계적인 거물 심우재는 누군가를 위해 거액을 들여 산 주식으로 하룻밤만에 1억을 벌었고 그 돈을 전부 그 누군가의 계좌에 넣었다.남아프리카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상인은 얼마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하기 위해 아주 진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루카는 좋아하는 여성에게 주기 위해 십 억 상당의 바이올린을 손에 넣었다.미국 내 유명한 연구팀 또한 그 사람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를 바로 오늘 날짜로 시작했다. 예쁜 소녀에게 주는 생일 축하 선물이라며…….이외에도 헤드라인을 차지한 많은 사례들이 아래에 계속 이어졌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그러나 성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이게 그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걸 아니까.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쟁쟁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물들이었다.돈과 힘이라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평소에는 다들 냉담하기 그지없는 이들이라 이런 퍼포먼스를 하며 자신들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물론 그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용기 있는 사람도 없지만.예전에 영국 여왕이 그 중 한 사람을 청한 적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었다.평소 언론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이렇듯 큰 액션을 취하고 있으니, 이로 야기된 센세이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런 소식이 전해진 날, 전 세계 인터넷이 모두 마비되었다.PC 뒤에 앉은 이들은 모두 앞다투어 기사를 만들어 올리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이 소란 속의 인물들은 당연히 돈만 가진 것이 아니라 비주얼도 끝내 주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팬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아래에 있는 팬들의 댓글은 거의 대동소이 했다.다들 이 거물급 인사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어 댔다.이 인사들이 이처럼 목소리를 낼 정도라면
인터넷상에 오른 기사들은 서로 다른 채널에서, 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매일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어떤 기사는 외국 언론에 실린 것이다.하지만 성연의 관심 목록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클릭하면 모두 붉은 폭죽이 몇 차례나 터지는 것이 무척이나 눈에 띈다.기사 몇 개를 찾아보던 성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이 사람들, 정말 돈 많은 걸 이렇게 자랑해?’똑똑똑.바로 그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성연은 이 기사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자신이 직접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머릿속에 모두 담았으니까.화면을 위로 터치해서 열려 있던 화면을 지웠다.그리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그때 문밖에서 여자 고용인이 기웃거리며 모습을 보였다.실내를 한 차례 빙 둘러본 후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성연에게 고정했다.침만 꼴깍 삼키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성연이 지금 강씨 집안 회장님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부자들은 함께 지내기 어렵다고 하던데.’‘만일 내 말이 이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면 어떡하지?’고용인이 입을 오므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멍하니 입을 열지 않는 고용인을 본 성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무슨 일이에요?”마치 자신을 무서운 호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고용인의 표정아 보였다.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던 성연은 좀 의아했다.‘나 그렇게 무섭지 않은데?’성연이 먼저 입을 여는 것을 본 고용인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작은 사모님,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배고프지 않으신 지 물어보라고요.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지금 여기서?’성연은 자신의 귀에 문제가 있나, 하고 의심했다.‘겨우 이런 작은 질문인데, 방금 저 고용인은 왜 말을 못한 거야?’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이곳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모두 소심할 정도로 신중했다.여태껏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해본 적이 없는 성연이다.고용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간이 쫓기다시피 무진
찰칵-성연의 음성이 흘러나오자마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무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진은 늘 그렇듯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다만 오늘 착용한 슈트에는 어두운 색상의 장미 문양이 들어가 은근히 화려하고 고귀해 보였다.휴대폰을 거둔 성연이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에요?”“뭘 그렇게 보고 있어? 활짝 웃고 있던데?” 무진이 성연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성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들어올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가 생일 선물을 보내서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어요.”생각지도 않게 거의 매년 이들은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고 있다.성인식이 있어서인지 올해는 다들 유난히 큰 선물들을 보냈다.다행히도 자신을 생각해서 신분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한 명 한 명 불러서 일일이 수습해야 했을 터였다.“네…… 친구?” 무진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그가 기억하기로 성연은 학교든 집이든 대부분 혼자 왔다갔다했다.누구와 가깝게 지내는 걸 여태 본 적이 없었다.‘혹시 시골마을에 있는 친구인가?’‘뭐 그럴 수도 있지.’무진의 말투가 무척이나 귀에 거슬린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무슨 말투예요? 나는 친구도 못 가져요?”“그런 뜻이 아니었어. 얼른 준비를 해. 시간이 늦었어. 벌써 음식을 먹었어?” 무진이 구석에 놓인 그릇과 쟁반을 보았다.“먹었어요. 준비할 거 없어요. 스타일링도 다 끝났는 걸요.” 성연이 일어서서 무진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이제서야 성연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된 무진이었다.허리가 잘록 들어간 디자인의 은백색 드레스는 마치 한 손에 잡힐 듯한 성연의 가녀린 허리를 한껏 강조하고 있었다.은색 드레스에 성연의 피부는 투명한 광택이 흐르는 듯 더 희고 깨끗해 보였다.무진은 성연의 몸매가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평소 성연은 주로 루즈한 스타일의 옷차림이라 완벽한 S라인을 잘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이 순간, 성연이 이제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