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후 밖으로 나간 성연이 의자에 앉아 호기심에 다이버에 들어갔다.헤드라인을 장식한 건 한 동영상이었다. 호기심에 동영상을 켰다.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배우 소지한이 카메라 앞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오늘, 중요한 사람의 생일입니다. 여기 마이크를 빌어 그녀에게 생일 축하를 전하고 싶습니다.”소지헌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인물이었다.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각종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휩쓸었다.영상이든 광고든 그가 찍은 것들은 하나같이 뛰어났고,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그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빈자리 없이 꽉 찼으며 때로 표를 사지 못할 때도 있었다.소지한은 또 고아하기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타락의 온상지, 연예계에서도 그 어떤 스캔들 하나 없었다.그래서 팬들로부터 ‘금욕의 남신’으로 불리기도 했다.화면에 보이는 잘 생긴 남자를 보며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때 옆에서 마지막 스타일링 작업을 마무리하던 스타일리스트가 휴대폰 화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혹시 소지한 씨 좋아하세요?”성연이 멀뚱멀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뭐 그런 대로요. 그냥 클릭하니까 보이네요.”“아, 그런가요?” 스타일리스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의 스타일링을 모두 마치자 왔을 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바로 분장실을 나갔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성연은 휴대폰 화면에 뜬 인터뷰 영상을 계속 보았다.평소 소지한은 친근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했다.그 또한 누구에게도 호감을 드러내지 않았고.그런데 지금 이런 폭탄 같은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누가 그렇게 운이 좋은 거야?’‘소지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관계가 나쁘지 않을 텐데.’큰 뉴스거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얼른 물었다.“소지한 씨가 언급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유럽 굴지의 총재 그래함은 이름 없는 별 하나를 사서 어떤 신비에 싸인 사람의 이름으로 명명하고는 또 공중에 드론을 띄워 ‘생일축하’라는 글자를 그렸다.세계적인 거물 심우재는 누군가를 위해 거액을 들여 산 주식으로 하룻밤만에 1억을 벌었고 그 돈을 전부 그 누군가의 계좌에 넣었다.남아프리카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상인은 얼마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하기 위해 아주 진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루카는 좋아하는 여성에게 주기 위해 십 억 상당의 바이올린을 손에 넣었다.미국 내 유명한 연구팀 또한 그 사람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를 바로 오늘 날짜로 시작했다. 예쁜 소녀에게 주는 생일 축하 선물이라며…….이외에도 헤드라인을 차지한 많은 사례들이 아래에 계속 이어졌다.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그러나 성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이게 그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걸 아니까.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쟁쟁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물들이었다.돈과 힘이라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평소에는 다들 냉담하기 그지없는 이들이라 이런 퍼포먼스를 하며 자신들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물론 그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용기 있는 사람도 없지만.예전에 영국 여왕이 그 중 한 사람을 청한 적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었다.평소 언론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두 이렇듯 큰 액션을 취하고 있으니, 이로 야기된 센세이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런 소식이 전해진 날, 전 세계 인터넷이 모두 마비되었다.PC 뒤에 앉은 이들은 모두 앞다투어 기사를 만들어 올리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이 소란 속의 인물들은 당연히 돈만 가진 것이 아니라 비주얼도 끝내 주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팬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아래에 있는 팬들의 댓글은 거의 대동소이 했다.다들 이 거물급 인사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어 댔다.이 인사들이 이처럼 목소리를 낼 정도라면
인터넷상에 오른 기사들은 서로 다른 채널에서, 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매일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어떤 기사는 외국 언론에 실린 것이다.하지만 성연의 관심 목록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클릭하면 모두 붉은 폭죽이 몇 차례나 터지는 것이 무척이나 눈에 띈다.기사 몇 개를 찾아보던 성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이 사람들, 정말 돈 많은 걸 이렇게 자랑해?’똑똑똑.바로 그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성연은 이 기사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자신이 직접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머릿속에 모두 담았으니까.화면을 위로 터치해서 열려 있던 화면을 지웠다.그리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그때 문밖에서 여자 고용인이 기웃거리며 모습을 보였다.실내를 한 차례 빙 둘러본 후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성연에게 고정했다.침만 꼴깍 삼키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성연이 지금 강씨 집안 회장님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부자들은 함께 지내기 어렵다고 하던데.’‘만일 내 말이 이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면 어떡하지?’고용인이 입을 오므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멍하니 입을 열지 않는 고용인을 본 성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무슨 일이에요?”마치 자신을 무서운 호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고용인의 표정아 보였다.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던 성연은 좀 의아했다.‘나 그렇게 무섭지 않은데?’성연이 먼저 입을 여는 것을 본 고용인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작은 사모님, 회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배고프지 않으신 지 물어보라고요.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세요?”‘지금 여기서?’성연은 자신의 귀에 문제가 있나, 하고 의심했다.‘겨우 이런 작은 질문인데, 방금 저 고용인은 왜 말을 못한 거야?’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이곳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모두 소심할 정도로 신중했다.여태껏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해본 적이 없는 성연이다.고용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간이 쫓기다시피 무진
찰칵-성연의 음성이 흘러나오자마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무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무진은 늘 그렇듯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다만 오늘 착용한 슈트에는 어두운 색상의 장미 문양이 들어가 은근히 화려하고 고귀해 보였다.휴대폰을 거둔 성연이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에요?”“뭘 그렇게 보고 있어? 활짝 웃고 있던데?” 무진이 성연의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성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들어올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가 생일 선물을 보내서 감사인사를 하고 있었어요.”생각지도 않게 거의 매년 이들은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고 있다.성인식이 있어서인지 올해는 다들 유난히 큰 선물들을 보냈다.다행히도 자신을 생각해서 신분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그렇지 않았다면, 한 명 한 명 불러서 일일이 수습해야 했을 터였다.“네…… 친구?” 무진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그가 기억하기로 성연은 학교든 집이든 대부분 혼자 왔다갔다했다.누구와 가깝게 지내는 걸 여태 본 적이 없었다.‘혹시 시골마을에 있는 친구인가?’‘뭐 그럴 수도 있지.’무진의 말투가 무척이나 귀에 거슬린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무슨 말투예요? 나는 친구도 못 가져요?”“그런 뜻이 아니었어. 얼른 준비를 해. 시간이 늦었어. 벌써 음식을 먹었어?” 무진이 구석에 놓인 그릇과 쟁반을 보았다.“먹었어요. 준비할 거 없어요. 스타일링도 다 끝났는 걸요.” 성연이 일어서서 무진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이제서야 성연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된 무진이었다.허리가 잘록 들어간 디자인의 은백색 드레스는 마치 한 손에 잡힐 듯한 성연의 가녀린 허리를 한껏 강조하고 있었다.은색 드레스에 성연의 피부는 투명한 광택이 흐르는 듯 더 희고 깨끗해 보였다.무진은 성연의 몸매가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평소 성연은 주로 루즈한 스타일의 옷차림이라 완벽한 S라인을 잘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이 순간, 성연이 이제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
성연과 무진의 외모는 북성 시 전체, 아니 S국 전체에서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났다.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그래서 두 사람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들렸다.침착하면서도 조금도 눌리지 않는 듯한 깔끔한 성연의 행동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말하지 않으면 성연이 시골 출신이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아래로 내려가자 무진은 성연을 데리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응대했다.거의 대부분이 강씨 집안과 우호협력 관계의 파트너들과 일부 강씨 집안 방계 혈족들이었다.“성연아, 이 분은 진 어르신이셔. 진씨 집안과 우리 강씨 집안은 대대로 교분을 나누는 관계지.” 무진이 한복을 차려 입은 한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지팡이를 짚고 있는 진 어르신은 꽤나 깐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하지만 성연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이 아이가 바로 내 할머니가 그리도 칭찬하는 아이인 게야? 확실히 괜찮아 보이는구나.”안금여의 안목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오랜 지기들은 잘 알고 있었다.안금여의 눈에 아무나 쉽게 들지 못했다.가끔 사업 상 만날 때마다 안금여가 한 두 마디 언급하였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칭찬 일색이었다.그래서 진작부터 만나보고 싶었던 진 어르신이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좋아 보였다.칭찬에 얼굴이 붉어진 성연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으며 적당한 태도를 보이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어르신. 모두 과찬이십니다.”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드는 듯 진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무진의 성격은 좀 너무 무거워. 이 아이, 꽤나 영리해 보이는 게 무진과 서로 잘 맞출 수 있을 듯하구나. 네 할머니가 인연을 잘 찾아 맺어주었어.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린다.”성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진과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장차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하지만 할머니가 이미 모든 걸 다 말씀하신 듯했다.진 어르신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구조를 요청하는 눈빛으로 무
무진과 성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홀에 모인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무진이 쓴 은색의 가면에는 고전적인 문양이 들어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하지만 위로 쭉 뻗은 몸에서 느껴지는 풍격은 물론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를 감출 수는 없었다.가까운 사람들과 강씨 그룹의 고위직 임원들을 제외하고 북성시에서는 강무진의 본 모습을 본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그런데 이때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니 사람들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가십을 즐기는 여성들이 구석에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채 무진과 성연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강무진은 ‘다리 저는 미치광이’라면서요? 그런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맞아요. 강씨 집안 같은 세력가에서 자란 기질은 확실히 뭔가 달라. 가면 아래 얼굴을 보고 싶네요.]말을 하면서 무진의 가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이렇게 해서 가면을 뚫고 강무진의 본 얼굴을 보기라도 할 것처럼.[어쩌면 못 생겼을지도 몰라요. 소문이 꼭 허황된 것만은 아닐 거예요. 사실일 가능성도 높아요.][아니야, 저 몸에 저 카리스마 좀 봐. 어떻게 얼굴이 못 생겼을 수 있겠어?][그래요. 저 몸이면 불 끄고 있으면 상관없어요!][도대체 이게 무슨 호랑말코 같은 소리야? 평소의 그 얌전한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다들 옆에서 소곤소곤 속삭여댔다.모두 무진의 몸에 대한 화제가 뜨거웠다.얼굴은 안 되고 몸매는 맞춰도 그들은 다 괜찮다.“여기서 이런들 다 무슨 소용이야? 저 사람에겐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 그때 한 사람이 불쑥 한마디 내던졌다.마치 얼음물 한 바가지를 퍼 부은 것 같았다. 방금까지 뜨겁게 주고받던 사람들의 열기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그때서야 여인들의 시선이 성연에게로 향했다.성연의 계란형 얼굴은 완벽했다. 몸매도 그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많은 이들의 시선이 성연의 몸에 달라붙었다.심지어 앞줄에 서 있던 몇몇 남자들은 눈빛이 이미 멍해 있었다.성연은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손을 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는 안금여의 마음이 몹시 흡족했다.웃으며 성연에게 손을 들어 불렀다.“예쁜 것, 할머니한테 오렴.”성연이 드레스자락을 든 채 다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렀다.“할머님.”오늘의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안금여가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는 선언임을 잘 알았다.이렇듯 자신에게 잘해 주는 안금여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자, 할머니를 따라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하자꾸나.” 안금여가 성연의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갔다.이때 스포트라이트가 안금여와 성연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성연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몽롱한 조명까지 한 층 둘렀다.성연은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요정 같았다.모두들 숨을 죽인 채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은 짧은 한 두 마디로 인사했다. ‘모두들 제 생일 파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리고 ‘할머님의 크나큰 애정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며 앞으로도 이 집에서 할머니를 잘 모시며 보답하겠다’는 말이 이어졌다.모두 사교적인 언사이긴 했지만 그 속엔 성연의 진지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보통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성연인만큼 일단 입을 열었으면 반드시 지킬 것이다.그러니 이 말이야 말로 안금여에 대한 훌륭한 보답일 터.성연의 침착한 태도를 보는 안금여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성연의 곁으로 다가선 안금여가 진지하게 성연을 소개했다.“제 곁에 있는 아이는, 제 마음이 다 흡족하네요, 바로 우리 집안 장손 강무진의 약혼녀입니다. 아직 어려서 놀 궁리만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밖에서 무슨 실수를 하더라도 저희 강씨 집안의 새 사람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이 늙은이가 화를 낼 겁니다.”안금여가 짐짓 농담인 듯 무대 아래의 사람들에게 경고했다.성연이 미움을 살 리 없다는 걸 모두에게 알린 것이다.강씨 집안에서 송성연의 자리를 남겨둠으로써 만약 성연과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강씨 집안에 맞서게 되는 셈인 것이다. 안금여는 그리 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안
축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축하와 함께 선물을 증정했다.“작은 사모님, 생일 축하합니다. 아직 학교에 다닌다고요?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펼쳐지길 바랍니다. 또 좋은 성적도 거두길 바래요.” 세심하고 호감이 가는 축하 인사말을 건넸다.성연은 이 선물들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다.어쨌든, 강씨 집안 후광 덕을 본 셈이다.성연이 주저하며 움직이지 않자, 안금여가 앞으로 나와 성연의 팔을 건드렸다.“성연아, 받아야지. 주시는 분의 성의를 생각 해야지. 괜찮아.”성연이 어쩔 수 없이 선물을 받았다.모두들 치켜세우는 말들이다. 갈수록 예뻐지기를 바란다, 마음에 드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강무진과 백년해로하며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일찍 자손을 낳기를 바란다 등 성연은 할 말이 없었다.그러나 안금여가 즐거워하는 것을 본 성연은 입을 열려다 결국 다물었다.감정 없이 그냥 선물 받는 로봇처럼하도 웃어서 얼굴이 다 굳은 것 같아 그저 속으로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선물 증정이 끝난 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안금여가 고개를 돌리자 세상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연이 눈에 들어왔다.참지 못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많이 피곤해?”“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함께 계속 여기 서 있던 안금여 같은 노인도 피곤함을 호소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앞에서 피곤함을 호소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그렇게 연약하지 않았다.단지 이런 자리가 불편할 따름이다.갑갑하게도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지금 웃으며 자신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뒤에서는 자신을 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상류층 사람들이야 허세 부리길 좋아하는 인사들 아닌가.성연의 안색이 썩 좋지 않은 걸 본 안금여가 맞은편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선물을 건네려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섰다.안금여가 성연에게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다.“피곤하면 좀 쉬어. 물도 마시고.”고용인에게 눈짓을 하자 즉시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