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철과 강상규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다.큰집에서 저렇게 떠들썩하니 움직이는데 모르기가 더 어려울 판.거실에 앉은 강상철과 강상규 앞에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놓여 있었다.찻잔을 든 강상규가 코끝에 대고 가볍게 향을 맡은 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둘째 형님네 차가 제일입니다. 같은 차인데도 제가 우리면 이런 향이 안 나옵니다.”강상철은 픽 웃었다.“네 형수 아니냐. 온종일 쓸데없는 짓거리만 할 줄 알아도 차 우리는 솜씨만큼은 봐 줄만 하지.”“형님 복이네요.” 강상규는 슬쩍 웃었다.“차야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타라고 하면 돼지. 근데 큰집에서 해독제를 찾았다면서?” 강상철의 말투에는 알 수 없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해독제?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큰 형수 치료하려고 미칠 겁니다. 지금 꿈이냐 생시냐 하고 있을 테고.” 강상규 또한 대수롭잖게 여기는 표정이다.“이미 다 늙었는데 구할 건 또 뭐야. 저 늙은이가 죽지 않고 뒤에서 몰래 무진을 훈련시켜 결국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잖아?”회의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는 강상철은 치가 떨려왔다.전략을 잘 짰다고 생각했다. 곧 큰 집을 끌어내릴.그런데 또?설마 일평생 저 자리와는 인연이 없는 운명이라고?그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일이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습니다. 강무진을 저 자리에서 쫓아낼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합니다.” 강무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고려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자신들이 평소 강무진을 너무 무시하는 바람에 진 거라고 여겼다.어떤 말도 소용없었다.“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강무진이 뒤에서 그렇게 큰 수를 숨기고 있을 줄. 지금 그 놈 위치에서 또 누가 건드릴 수 있겠어?” 강상철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강무진이 화상으로 연결했던 회사들.저들의 지분은 볼 만한 정도가 못 된다. 하물며 강무진이 상속권을 가지고 있으니.그 늙은이들은 이런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든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으로 붙을 터.
강상철이 냉소를 흘렸다.“강무진이 자리에 오른 후, 네 쪽에서는 몇이나 잘렸어?”“적어도 절반은 될 걸요.” 이 일만 생각하면 강상규도 머리가 아프다.최근 이쪽 세력이 엄청 약해졌다. 예전에 곳곳에 박아 뒀던 자기 편 인사들이 강무진 때문에 거의 다 잘려나가고 있는 판이었다.그 놈은 도대체 어쩜 그렇게 이쪽 라인들만 정확하게 골라 내는지. 분명 계속 이쪽을 주시해 왔을 것이다.그야말로 족집게 수준이다.이건 절대 우연일 수가 없었다.강무진 이 놈이 어찌나 전광석화 같이 손을 쓰는지 안금여 보다 더 지독했다. 예전에는 대충 눈감아 주기도 했는데, 지금 강무진이 실권을 쥐니 자신들의 손실이 막대했다.“다시 우리 사람을 심을 방법을 생각해야 해.” 자신들을 대신할 눈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앞으로 강씨 본가에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방법을 생각해야 해. 무진이 자리에 오르고 처음 얼마간은 기세 등등 하겠지. 당분간은 그러라고 해.”무진의 능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강경하게 맞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땐 잠시 바람을 피하는 게 상책.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손자 강일헌과 강진성이 들어왔다.한쪽에 잠자코 대기하면서 두 할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다.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지금 사태가 긴박하니 아무래도 불똥이 튀지 않게 있어야 했다.“아니면, 무진이 그 놈 주변부터 손을 쓰면 어떨까? 강무진 주변에 손건호라는 비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진이 비밀을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약점만 쥘 수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강상철은 자신이 말하면서 점점 흥분되었다. 제법 그럴 듯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안 됩니다. 그 놈 주변의 것들은 모두 특수 훈련을 받은 놈들입니다. 무진이 우리 옆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엎드려 있으면서도 들키지 않았던 건 내부 결속력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때 가서 괜히 인심도 얻지 못한 채 무진이 그 놈에게 되려 당
지금의 WS 그룹은 거의 강무진이 한 손으로 받치고 있다 봐야했다.강일헌과 강진성 두 사람 모두 굳은 표정이다.자신들이 관리하는 계열사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강무진이 격노한 상항에 자신들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이제야 비로소 강무진이 상대하기 까다롭고 만만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할아버님, 계열사에서 지원금 20억을 지원 요청했는데, 강무진은 6억만 승인했어요. 이래서야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화가 난 강일헌의 얼굴이 푸르죽죽하다.강무진이 결재하던 그 때가 마침 직원 월급이 나가는 날이었다.지원금이 너무 깍여서 하마터면 월급도 지불하지 못할 뻔했다.결국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제 돈으로 메꿨다.“겨우 6억? 그럴 리가…….”잠시 생각하던 강상철이 갑자기 미심쩍다는 듯이 강일헌을 째려보았다.“너 예전에 중간에서 리베이트 많이 해먹었지?”그렇지 않으면 20억을 올렸는데, 무진이 저렇게 깍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순간 멍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강일헌은 무의식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에요, 할아버님, 제가 어떻게…….”“너 지금 사실대로 말해! 그런 적 있어? 없어?” 강상철이 눈에 띄게 화를 내었다. 음성도 거칠었다.강일헌의 목이 움츠러들었다.원래 이런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다.강상철이 화가 난 걸 보니 더 무서워 말할 수가 없었다.상황을 지켜보던 강상규가 얼른 사태를 적당히 수습하고자 강일헌을 구슬렀다.“일헌아, 여기 우리뿐이야. 솔직히 말해 봐라. 무슨 일이든 우리끼리 같이 해결해야지.”강상규의 온화한 태도에 강일헌이 용기를 내어 이실직고했다.“매번 본사에서 돈을 보내오면 제가 1억 정도 하고 고객들이랑 친구들 접대도 하고 그랬어요. 이건 원래 본사가 결재해야 하는 겁니다. 예전에 큰할머니가 계셨을 때는 이렇게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화가 난 강상철이 냉소를 지었다.“너, 눈을 크게 뜨고 봐라. 지금 회사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지금은 계열사뿐 아니라
안금여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병실도 이미 다 준비 되었다. 필요한 의료기기들도 모두 세팅이 끝난 상태.조승호는 다음날 실험을 진행하기로 계획을 잡았다.성연은 병원에서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안금여의 쪽의 상태를 훤히 알고 있었다.오늘 밤에 약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그날 저녁, 평소대로 무진에게 침을 놓았다.그리고 무진에게 가져다 줄 약재를 들고 오는데 무진이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좀 멍해 보였다.모처럼 멍한 모습을 본 성연이 침대가로 다가가서 손을 내밀며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지금 무슨 생각 해요?”“할머니 생각.” 정신을 차린 무진이 눈앞에 있는 성연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말했다.“하나도 안 걱정 안된다며?” 성연이 피식, 참지 못하고 웃었다.무진이 보이는 것처럼 차분하다고만 생각했다.어제도 자신에게 겁나지 않는다고 허세를 부렸었다.“거짓말을 너도 믿어?” 무진이 부인도 하지 않고 바로 솔직하게 인정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할머니 안금여가 줄곧 자신을 안아 키웠다.자신을 보호하던 할머니가 이렇게 되었는데 그가 어떻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자신도 나무토막이 아니었다.다만 표현을 잘하지 못할 뿐이다. 오래된 습관으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 뿐.그래서 성연이 물었을 때 그의 태도는 좀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무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한들 별 소용도 없을 테고.“거짓말을 진짜로 믿으면 어떡하려고?” 성연이 눈을 깜박였다.강무진의 방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원래 솔직한 사람인 성연은 있는 그대로 말한다.아마 무진도 자기 성격 때문이겠지.“나를 모르면 그렇겠지.”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성연이 눈을 부릅뜨고 째려봤지만 할 말이 없었다.‘사람들이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안다고?’‘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건 싫다, 너무 피곤해.’욕실에 받아 놓은 물에 약재를 풀었다.
성연은 CCTV를 아주 영리하게 피하며 저택 내부를 빠져나갔다.저택 엠파이어 하우스는 강무진의 사적인 영역이다.오직 무진이 절대 신임하는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기에 CCTV를 많이 설치하지 않았다.주로 저택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점 때문에 성연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CCTV의 사각지대를 찾아낸 성연이 담 위에서 뛰어내렸다.깔끔한 동작으로 발끝을 세워 가볍게 착지했다.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성연은 저택을 둘러싼 숲을 지나 밖으로 빠져나갔다.성연은 오늘 일을 위해서, 움직이기 편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 운동복을 입었다.평소에도 활동성 좋고 무난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성연인지라 무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다.숲 반대편 길가에는 이미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성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있던 서한기가 성연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보스, 솜씨가 전혀 녹슬지 않았는데요?”서한기가 있던 곳에서는 담장을 넘는 성연의 모습이 다 보였다.동작이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예쁘게 담 넘는 사람은 우리 보스 말고는 없을 거야.’“어째 내가 많이 늙기라도 한 것 같다?” 성연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아, 보스, 그렇게 말하지 말죠? 사람이 칭찬하면 기분 좋게 받아주면 안돼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서한기가 마이바흐의 시동을 걸고 엠파이어 하우스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그럼 사실이 아니야?” 눈썹을 찡그린 성연은 좀 이해가 안된다는 어투였다.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거만함도 깔려 있고.서한기는 목이 막히는 듯했다.‘사실이 그렇다 해도 그렇지, 보스, 좀 겸손하면 안 돼요?’‘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해?’서한기는 한 차례 숨을 깊숙이 들이마신 후, 입꼬리를 잡아당겨 올리며 대꾸했다.“물론 사실이죠. 우리 보스가 제일이지요.”서한기의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본 성연이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네 웃음이 조금만 더 진실해 보이면, 내가 믿어주지.”
송성연과 서한기는 두 길로 나뉜다.성연과 서한기는 두말할 필요 없이 각자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함께 병원 뒷문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한밤중에도 병원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고 안은 고요했다.병원의 불빛은 터무니없이 새하얗고 마치 사람을 스며들게 하는 것 같다.성연은 당직을 맡고 있는 간호사를 피해 위층으로 올라갔다.구석자리 한 곳을 찾아 노트북을 켠 서한기는 병원 내부 시스템으로 들어가 감시 시스템을 통제했다.이제 성연은 야간 순찰하는 간호사와 경비원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고모부 조승호가 약품을 보관하는 방을 찾았다.할머니 안금여의 약은 따로 보관하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곳의 지형에 익숙했다.곧 약품을 보관실에 도착했다.약품 보관실이 있는 층은 평소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성연이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실내.어둠 속에 몸을 감춘 성연은 실내를 자유자재로 누볐다.캐비닛을 열고 막 약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성연이 동작을 멈추자 뒤쪽에서 불빛 한 줄기가 들어 왔다.순간 그녀는 날쌔게 몸을 움직여 얼른 뒤편의 책상 밑으로 숨었다.아무래도 경비원이 야간 순찰을 돌고 있는 것 같았다.과연 성연의 생각대로 야간 순찰을 돌고 있는 경비원이었다.경비원이 들어와 먼저 한 바퀴를 둘러 본 다음 손전등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중얼거렸다.“조심성 없이 누가 이런 거야? 캐비닛 문도 닫지 않고. 이 안의 약이 얼마나 비싼 건데. 만약 하나라도 잃어버려 봐, 그럼 누가 책임질 거야?”캐비닛을 닫은 경비원은 다시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본 후 문을 잠그고 나갔다.경비원이 나간 후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방금 방에 들어왔던 경비원이 동료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무 문제 없다니까! 다시 가서 확인해 봐? 믿지를 않으니 원, 설마 무슨 일 생기겠어?”“너 나중에 몰
다음 날, 안금여에게 시약하기 시작했다.약이 안금여의 체내에 성공적으로 들어갔다.병실 안에는 강씨 집안의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안금여의 상황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긴장한 사람은 강운경이었다.운경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 한 채 엄마 안금여만 바라보았다.많은 사람들이 설득했음에도 운경은 한사코 식사를 거부했고, 결국 모두 포기한 상태였다.사람들의 거듭된 설득에 황급히 한두 수저 뜨는 둥 마는 둥 한 운경이 엄마의 병상을 지켰다.성연도 병실에 같이 있었지만, 운경이 귀찮아 하는 눈치라 병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있었다.처음 약물을 투여했을 때, 안금여는 계속 잠만 잤다.별다른 반응은 없었다.운경은 남편 승호의 손을 잡은 채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을 했다.“엄마 이대로 잠이 들어서 안 깨시는 건 아니겠지?”“그럴 일 없을 거야.” 승호가 고개를 저었다.모두 안금여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친구에게 약을 받을 때 승호는 재차 확인했었다.설령 이 약이 치매에 효과가 없다 해도 몸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안금여의 몸에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터였다.“그런데 엄마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반응이 없으시지?” 운경은 머리가 아팠다.낮에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은데 엄마의 몸상태까지 걱정해야 하니 그녀의 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지금 걱정까지 더해지자 몸 여기저기가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운경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승호가 뒤에서 운경의 목, 어깨,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너무 조급해 하지 마. 어머님은 좋아지실 거야. 약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거야. 그리고 이거 한가지만 기억해. 이전보다 더 나빠지는 일은 절대 없어. 어머님은 꼭 회복될 거야. 한 번해서 안 되면 두 번 하면 돼. 나는 절대 포기 하지 않아. 어머님이 좋아지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계속 노력할 거야.”운경은 사실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과중한 업무로 수면 시간이 줄어들며 불규칙적이 되다 보니 어
약을 투약한 다음 날 아침, 안금여가 깨어났다.서서히 눈을 뜨며 깜빡거렸다. 흐릿했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며 청명해졌다.“엄마, 깼어요? 지금 기분이 어때요?” 운경은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안금여의 상태를 확인하며 바라보았다.딸의 목소리를 들은 안금여가 고개를 돌려 딸을 한 번 보았다.“괜찮아.”깨어난 안금여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했다. 이제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흥분한 운경은 어쩔 줄을 몰라 손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그럼 엄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딸을 알아본 표정을 지은 안금여가 기대에 찬 운경에게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 딸을 내가 못 알아볼까 그래?”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운경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금여의 손을 붙잡았다.“엄마, 엄마, 절 알아보시는 거예요. 못 일어 나실까 걱정했어요.”안금여가 운경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이 아이들 모두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효심을 다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마음이 뿌듯함으로 충만했다. 모두 자신이 키운 아이들이었다.할머니가 회복된 것을 확인하자 운경의 뒤에 서 있던 무진의 미간이 서서히 풀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오래 동안 노력하는 건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만, 다 큰 애가 울면 어떻게 하니? 무진이도 있는데 나중에 창피해서 어쩌려고 그래.” 살짝 핀잔을 준 안금여가 휴지를 꺼내 운경에게 건넸다.“엄마, 그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드디어 일어나셨으니 한시름 놓았어요.”운경이 눈물을 닦자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회사에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쳤어도, 무진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흔들림 없었던 그때보다 더 힘든 시간들이었다.하지만 그 힘든 날들을 모두 견뎌냈다.가까스로 긴장을 풀 수 있게 된 운경은 이제부터라도 엄마가 여생을 평안히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랬다.‘한평생 힘들게 사셨으니 이제라도 잘 돌보아 드려야지.’“아이고, 아직도 울 게 더 남았어?”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
로얄 스위트 룸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우아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룸 내부 구석구석마다 화려함의 극치였다.스위트 룸에 들어서자 마자 은은한 향이 났다.“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묙현수의 볼에 키스를 한 미스 샤넬은 목현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목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30분 후.찰칵, 소리가 났다.욕실 문이 열리면서 미스 샤넬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무심코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던 목현수.눈앞의 장면에 몸이 뻣뻣이 굳었다.물빛 실크 가운을 걸친 미스 샤넬의 허리에는 얇은 띠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실크 가운 사이로 풍만한 가슴 계곡과 희고 긴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그녀가 천천히 목현수를 향해 걸어오자, 가운 안의 나신이 슬쩍 드러났다.목현수의 머리가 띵해 오기 시작했다.한 호텔 룸 안에서 내보이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건강한 성인 남자인 목현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미스 샤넬은 목현수에게 다가가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보면 볼수록 실망감만 들었다.자신의 몸까지 드러내며 이렇게 다가가는데도 자신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목현수.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미스 샤넬.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목이 멘 음성으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목현수도 미스 샤넬이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미스 샤넬은 항상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이어서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런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자 목현수 자신도 깜짝 놀랐다당황한 목현수가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그냥 내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 몰랐을 뿐이야.”미스 샤넬이 화가 나서 말했다.“당신, 평생 이 여자 저 여자 유혹하려는 거죠!”그녀의 눈에 원망과 질책의 빛이 들어찼다. 또한 짙은 실망감도.목현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
성연은 수시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음식을 먹으면서 성연이 농담처럼 물었다.“사형, 사형은 미스 샤넬과 언제 결혼할 거예요? 이번에 돌아왔으니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쁜 미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형을 따라다니는 걸 모른 척할 수 있어요?”성연은 그저 슬쩍 물어보았을 뿐이다.지난번에도 물어봤지만 매번 이 문제를 회피하는 목현수였기에.“곧 할 거야. 다음 달 즈음에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그런데 목현수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정말 몰랐던 성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무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옆에서 목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두 달이면 목현수가 유부남이 된다는 말이지?’‘엄밀히 말해 지금 미스 샤넬은 목현수의 약혼녀.’‘이제는 목현수도 더 이상 성연이에게 매달릴 수 없다는 거지.’무진은 이제야 정말 위기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도 옆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그럼 이게 신혼여행인가요?” 그 말을 들은 목현수가 눈을 치켜 떴다.‘하, 내가 강무진 네 놈의 얄팍한 생각을 모르는 줄 알아?’‘성연이를 내가 뺏을까 봐 겁이 났던 거 아니야?’‘이제 내가 결혼한다고 하니 강무진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어.’“그런 셈이지요.” 목현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무진은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슬쩍 가렸다.주문했던 음식들을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이 음식점의 주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A국 특유의 디저트였다.미스 샤넬은 방금 먹은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맛있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디저트로 나온 이 케익들.동물을 본떠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미스 샤넬은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포크를 들었다.“이 케익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성연이 손을 흔들었다.“모두 먹는 것들이에요. 미스 샤넬. 많은 생각하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