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말에 운경이 냉정함을 되찾았다.당장 가장 시급한 일은 엄마 안금여를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넌 고모부한테 가서 엄마를 빨리 회복시킬 수 있는지 알아봐. 회사 쪽은 내가 가서 진정시키도록 할게.” 속으로는 분함을 참을 수 없었지만 사태는 수습해야 했다.방법이 없었다. 누군가는 버티고 있어야 했다.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돌아간 강일헌은 안금여가 치매를 얻은 상황을 강상철에게 보고했다.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 확실하게 본 거 맞아?” 튀어나올 듯 커다랗게 뜬 강상철의 눈에 기쁜 빛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다소 믿기지 않는 듯했다.“네. 제가 직접 가서 봤는데 틀림없습니다. 큰 할머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강일헌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예전에 이런 상황이 생겼다면, 안금여는 분명 그에게 몇 마디 했을 터였다.“정말 잘 되었구나.” 강상철이 턱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그리고 즉시 강상규에게 연락해서 불렀다.의심할 여지없이 강상철과 강상규에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다.사실 일이 이렇게 쉽게 성공하게 될 줄은 자신들도 생각 못했던 바였다.그리고 저들 마음대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이제 회장직은 틀림없이 자신들의 것이었다. 어디 도망가지 않을 터.“일헌아, 이번 일 아주 잘했다. 무진이네 본가는 이번 참에 완전히 망하겠구나. 허허.”강상철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동안 음울하기 그지없던 얼굴에 드디어 해가 비친 듯했다.“할아버지,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는데요, 뭐.” 병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 특히 성연에게 말꼬리를 잡혔던 일.‘그쪽에서 알면 또 어때서? 뭐 어쩌라고?’강상규도 강일헌을 향해 한바탕 칭찬의 말들을 쏟아냈다.“역시 일헌이 네가 부리는 사람답구나. 아주 좋아.”“셋째 할아버님, 과찬이십니다.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잔뜩 칭찬을 받은 강일헌의 어깨가 으쓱거렸다.“이번에 일헌이가 큰 일을 해줬어. 나중에 원하는
그러나 한걸음에 달려온 주주들을 운경이 병실 밖에다 막아 세웠다.회장님은 지금 안정이 필요한 시기로 조그만 충격도 견딜 수 없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은 가능한 회장님 방문을 자제해 달라,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리면 된다, 라는 말로.아무도 안금여를 만나지 못하자, 주주들은 점차 안금여가 이미 치매에 걸렸다고 믿게 되었다.심지어 오후에 온 주주는 운경에게 따져 물었다.“회장님, 정말 신경 방면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만약 회장님에게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우리 주주들에게 해명을 해야 할 겁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숨겨서는 안됩니다. 회사는 모두의 것이고, 회장은 회사를 이끄는 리더예요. 그러니 우리는 제대로 알 자격이 있단 말입니다!”당당하게 내뱉는 주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 일리 있었다. 다만 강운경을 압박해서 반드시 진상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너무 강할 뿐.그렇게 오랜 시간 회사를 관리해 오면서 이런 저런 풍파도 겪어보지 못했을까? 놀라지도 않은 운경이 침착함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주주분들께서 어디서 이런 유언비어를 전해 들으셨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회장님께서는 병을 치료 중이십니다. 아시다시피 주주총회의 일로 충격을 받으신 터라 회사 관련자들은 만나지 않게 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큰 실적은 내지 못하셨어도 회사를 위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회장님이 좀 더 회복되시기를 기다려 주십시오.”논리정연하고 사리에 합당한 운경의 말이 앞서 큰 소리로 따지던 주주의 말을 전부 가로막았다.“만약 이사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강대표는 반드시 사실대로 알려 주십시오!”주주는 이를 악문 채 운경을 한참 노려보더니 몸을 돌려 떠났다.마침내 사람을 설득해 보낸 운경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 쌓였다.요 며칠 엄마 안금여를 지키면서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미간을 찌푸린 운경이 병실로 들어섰다.“상황이 어떻습니까?” 무진이 물었다.화가 난 운경이 이를 갈며 말했다.
“다시 생각해 봐.” 무진이 나서겠다고 하자 운경이 다소 주저하며 말렸다.지금 이 시기에 드러내겠다는 것은 스스로 무대 위에 올라가 둘째, 셋째 숙부와 맞서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저 두 숙부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 몇 년 동안 자신들이 저들을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무진이 위험에 처할까 봐 두려웠다.집안에서,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할머니가 안 계신데 모든 걸 고모님께 떠넘길 수는 없잖아요.” 무진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주주들의 일로 안금여는 이미 둘째, 셋째 숙부에 의해 쓰러진 상태인 것이다.저들이 더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두 숙부들은 자신들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깊고 어두운 곳에서 그렇게 오래 웅크려 있었으니 이제 실력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집안의 장손인 강무진을 두 여자가 가로 막을 수는 없었다.이미 결심을 굳힌 무진을 본 운경도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다만 걱정스럽게 물을 뿐이었다.“너, 어느 정도 자신 있는 거니?”강상철과 강상규는 그 수법이 악랄했다. 저들과 겨룰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제가 손을 대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무진이 턱을 슬쩍 들어올렸다.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과장이라고 하겠지만, 무진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누구든지 자기도 모르게 설득되었다.시종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운경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상황을 지켜보던 손건호가 옆에서 운경을 안심시켰다.“대표님, 저희 보스의 실력을 아직도 못 믿으십니까? 보스가 나서면 이 위기는 곧 끝날 겁니다.”손건호는 강무진에게 회사를 접수하라고 어떻게 설득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앉아서 당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저쪽에서 자신들의 머리를 밟고 올라설 테니까.보스가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이다. 직접 손을 쓰기만 하면 못할 일이 없을 텐데.“말이야 그렇지만, 둘째, 셋째 숙
강씨 집안의 WS그룹이 오늘과 같은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모두 강무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다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막후에서 조종하다 보니 아무도 모를 뿐.저들은 무진을 마냥 능력 없는 아랫사람으로만 치부했다. 무진의 실력을 간과한 채.운경은 조카 무진이 충분히 기댈 수 있을 만큼 든든하다는 걸 깨달았다.잠시 고민하던 운경이 무진의 말에 동의했다.“네가 하기로 결심한 이상 난 무조건 지지하도록 할게.”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오전 수업시간,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했는지 성연이 책상에 엎드려 자지도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그런 성연의 모습이 상당히 의아스러웠다.어떤 선생님들은 꽤 기뻐하기도 했다.송성연이 생각만큼 그렇게 고집스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살았다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며.선생님들을 가장 기쁘게 한 것은 성연에게 문제를 풀게 한 것이다.성연도 거침없이 답을 말했다.거의 모든 선생님이 수업 중에 성연을 호명해서 문제에 답하게 했다.그리고 역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문제들이었다.송성연이 만점으로 북성남고에 편입했다는 말이 진작부터 돌았었다.그러니 선생님들이 성연의 실력을 측정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할 터.예전엔 성연이 줄곧 잠을 자고, 교장선생님의 사전 지시가 있어서 선생님들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의 변화에 선생님들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어느 선생님이든 성적 좋은 학생을 좋아할 수밖에.문제에 답을 마친 성연이 자리에 앉았다.그러자 선생님이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칭찬했다.“송성연 학생은 평소에 잠만 자는 것 같더니 안 보는 데서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야. 이건 지난 번 시험 문제였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 했어. 그런데 송성연 학생이 맞추다니. 평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걸 증명했구나. 모두 이 답안을 본보기로 삼아야겠디.”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반장이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그리고 많은 시선이 성연에게로 향했다.만약 한 선생님만 칭찬했다면 그들도 믿지 않았을
성연의 엄숙한 표정을 본 서한기가 참지 못하고 삐딱하게 말했다.“보스, ‘스카이 아이’ 조사하러 간 것 아니었습니까?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진전이 없습니까? 거꾸로 강씨 집안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 같네요? 진짜 거기에 빠진 건 아니겠지요?”예전에는 송성연이 누구에게도 이러는 걸 본 적이 없었다.특별히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런 대우를 받은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송성연은 귀찮은 일을 무척이나 사람이다.조금이라도 귀찮다고 여겨지거나 일을 하는 데 머리를 써야 한다든지 하면 바로 한 두발짝 뒤로 물러섰다.그런 그녀가 자발적으로 귀찮은 일에 손댄다? 그건 그녀 마음속에 차지한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는 의미.송성연이 강씨 집안에 있다 보니 서한기도 그 집안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요즘 강씨 집안 WS그룹과 관련한 소문들로 떠들썩했다.그도 약간 들은 바가 있었다.강씨 그룹의 회장이 입원을 했다는데 성연이 이 약을 찾는 것은 아마 그 회장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참 희한하기도 하지.’웃을 듯 말 듯, 다소 서늘한 표정의 성연이 서한기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내 일을 네가 따져?”성연 자신도 사실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그녀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이 일을 좌시해선 안된다고.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마음을 따라 움직였을 뿐.하물며 그녀가 이렇게 하는 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몸이 괜찮았을 때, 할머니는 그녀에게 무척 잘해주었어. 나 대신 화도 내주시고.’살아 계실 때 외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은혜를 알고 보답해야 한다고.결국 자신이 이러는 것 모두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다.이런 차원에서 보면, 빠져들고 말고는, 그녀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 그녀에게 잘해 준다.의술인으로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구해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서한기가 말하는 그런 게 아니야.’성연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서한기는 갑자
서한기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을 받고 즉시 사람을 보내 이 일을 처리하게 했다.그날 일은 정확하게 처리됐다.저녁에 집으로 돌아간 성연이 무진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시간이 지나면서 집안의 요리사들도 성연의 입맛을 파악하고 매번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 절반, 무진이 늘 먹던 음식 절반이 식탁에 놓였다. 강씨 집안에서 성연이 대접받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해 주었다.절반쯤 식사를 했을 때 성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최근 밴드에 가입했어요. 밴드 활동이 있어서 앞으로 2시간쯤 늦게 집에 올 거예요.”무진에게 일부러 이 정보를 흘렸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고등학생이 취미 동아리에 참여하는 거야 정상적인 일일 테니.“운전기사에게 좀 늦게 데리러 가라고 하지. 아니면 네가 바뀐 시간을 기사에게 알려주든가.”무진은 성연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주주들과 둘째, 셋째 숙부 쪽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성연이 쪽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성연이 원하는 걸 최대한 들어줄 뿐.“고마워요.” 생각해 보던 성연도 감사 인사를 했다.할머니는 병원에 계시니 무진의 미간엔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가라앉은 기운이 왠지 무거웠다.무진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낀 성연이 주저주저 위로의 말을 꺼냈다.“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할머니 좋아지실 거예요.”“응.”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비록 단순한 말 몇 마디였지만, 무진의 얼굴이 많이 풀린 걸 볼 수 있었다.다음 일.성연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보건실로 달려갔다.보건실은 이미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귀족 학교 북성남고는 결코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그래서 보건실도 넓고 컸다. 어젯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한기는 보건실 내에 독립된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내부는 사한기가 깨끗이 정리해 두었다. 그만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모두 어린 학생들이라 이쪽과 연관되었을 리 만무하고.보더라도 의료기구인 줄 알고 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보
곧 회사를 접수하기 위해 무진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한동안은 성연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병원에 더 있어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고모부 조승호가 퇴원을 권했다.“병원에 계시는 게 엄마에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더 잘 돌볼 수 있을 테니까.” 운경은 엄마의 퇴원에 찬성하지 않았다.“똑같아. 집에 가셔서 익숙한 것들을 보시면 장모님 마음이 좀 더 좋아지실 테고, 병세에도 도움이 되겠지.” 조승호는 언제나처럼 사심이 없었다.그저 어떻게 해야 장모님이 더 좋아지실까, 하는 마음 외에는.“알았어요.” 운경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저녁 무렵. 수업을 마친 성연이 무진과 함께 안금여를 강씨 고택으로 모셔갔다.집안에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이 모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선대 회장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의 세월을 모셨던 안금여의 이런 모습을 본 집사는 눈물 범벅이었다.“마님, 어찌, 어찌 이런 일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며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집사를 알아보지 못한 안금여는 그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멍한 눈을 한 채.바라보던 운경도 가슴이 아파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집안의 고용인들을 모두 해산시긴 운경이 입을 열었다.“집사님, 우린 요즘 무척 바빠요. 집사님이 집에 있으면서 엄마를 잘 보살펴야 해요. 생각이 짧은 고용인들에게 빈틈을 주지 않도록 하시고요.”지금의 안금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평소 고용인들에게 엄격했었다.일부 고용인들은 원한을 품을 수도 있기 마련.지금의 안금여는 어떤 짓을 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운경은 곁에서 돌볼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많을 터였다.자신이 곁에 없을 때, 엄마가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이었다.사실 엄마를 누구에게 맡겨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집사는 이 집안 사람이라 할 만큼 믿을 수 있었다.“아가씨, 걱정 마세요. 제가 부인을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며 안금여를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성연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운경은 모르고 있었다.이 기회를 빌려서 할머니 안금여의 몸을 검사해 보려는.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양도 적고 썩 정확하지도 않았다.직접 검사해 보아야 할머니 치매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다.또 할머니의 몸 상태에 근거해야만 가장 적절한 약을 조제할 수 있고.할머니의 몸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했다.마침, 다음 날이 주말이었다.송성연은 안금여 곁을 지키려 고택에 왔을 때, 무진과 운경이 모두 없었다.성연이 집사에게 말했다.“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기분을 좀 전환하고 싶어요. 뭐가 튀어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의 공기가 그래도 좀 신선하죠. 늘 안에 갇혀 계시면 건강 회복에도 좋지 않아요.”이유는 아주 충분했다.평소 안금여는 성연을 좋아했지만, 집사의 눈에 송성연은 여전히 외부인인 뿐이었다.아직 경계심을 다 지우지 못한 집사는 성연처럼 어린 여자아이가 안금여를 잘 돌볼기나 할까 걱정이 앞섰다. 안금여를 놓고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성연을 바라보는 집사의 마음이 여전히 놓이지 않았다.“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을 뒤따라가게 하겠습니다. 좀 더 안전하게.”성연이 손을 흔들었다.“괜찮아요, 편하게 왔다 갔다 할 거예요.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성연의 말에도 집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작은 사모님,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뒤에 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만약 사고가 생기면 성연의 이 작고 가녀린 몸으로는 안금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을 터.집사는 속으로 이런 생각 중이었다.“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할머니를 자극하면 어떡해요?” 성연이 일부러 말했다.“제가 멀리서 따르게 시키겠습니다. 그러면 회장님께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해도 집사는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집사가 붙인 경호원이 뒤따르는 데에 동의했다.집사에게 다른 악의가 없다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